제16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가하성과 하태균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구내식당으로 향하며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제발, 팀원분들께 친절하게 대해주시면 안 돼요? 나중에 성격 파탄자라고 소문나겠다고요!”
“괜찮아, 나는 이미 성격 파탄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몸이니까.”
“저는 아니거든요?!”
유은영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훗날,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성격 파탄자라고 손가락질당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됐다.
그렇게 구내식당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머, 지 팀장!”
2팀의 팀장, 나혜선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옆에는 소문의 F급 힐러 분이신가 봐?”
지화자가 성가시다는 얼굴과는 다르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지 팀장, 오늘 우리 팀장들이랑 같이 점심 먹자! F급 힐러 분도 같이!”
유은영도 지화자도 싫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혜선은 두 사람이 거절하기도 전에 그들과 팔짱을 끼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 누님. 진짜 지화자 데리고 왔네? 옆에는 누구?”
“이번에 0팀에 전담 어시스트로 데리고 왔다는 힐러 분 아니야? 안녕하세요? 신호걸이라고 합니다.”
“나는 영웅. 신영웅이야.”
“그리고 여기 과묵하게 서 계시는 분은 조수현 팀장님. 1팀의 팀장님이시죠.”
3팀과 4팀의 팀장, 영웅호걸이 유은영의 몸을 하고 있는 지화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지화자는 썩은 얼굴로 심드렁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은영입니다.”
이 상황이 귀찮아 죽겠다는 듯, 싫증 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그때 1팀의 팀장인 조수현이 지화자에게 아는 척을 해 왔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 0팀의 전담 어시스트가 된 사람이 유은영 씨일 줄은 몰랐습니다.”
“뭐야, 수현 형님. 힐러 분이랑 아는 사이야?”
“금요일에 A-Index 오류로 예측하지 못한 게이트에 지화자 팀장님과 휘말렸던 분입니다.”
“오오, 뭐야. 왜 갑자기 F급 힐러를 전담 어시스트로 데리고 왔나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어?”
“지화자 팀장이 게이트에서 좋게 봤었나 보네요? 아니면 F급이라는 등급과 다르게 숨겨진 힘이 있다던가?”
그런 거 없는데요.
조용히 있던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얼떨결에 현장 파견 부서의 팀장들과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야, 지화자. 깨작깨작 먹지 좀 말고 팍팍 먹어!”
“팍팍 먹고 있으니까 신경 끄지?”
라고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유은영의 몸에 들어간 지화자.
“네? 아니, 뭐? 예?”
신호걸이 잔뜩 당황하여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의 생각을 대변한 것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누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러세요?!”
유은영이 어처구니가 없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잔뜩 당황한 얼굴인 신호걸에게 말했다.
“신호걸 팀장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토마토를 잘 못 먹어서요.”
“아아, 그렇구나.”
신호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화자가 난생처음으로 제게 존댓말을 했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만 그랬지 다른 팀장들은 아니었다.
“지 팀장, 오늘 무슨 일 있어? 우리랑 같이 점심도 먹고 존댓말도 사용하고 왜 그렇게 친절하게 변했대?”
“사람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곧 죽을 때라고 하던데, 아니지?”
“뭐가 아니… 읍!”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의 입을 틀어막고는 헤실거렸다.
“그냥 지금까지 여러분한테 너무 딱딱하게 군 것 같아서요! 살짝 이미지에 변신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살짝이 아닌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으나 어련히 죽을 때가 됐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자, 그보다 다들 내 선물 받았어?”
나혜선이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 신호걸이 투정 부렸다.
“제주도 하면 감귤이지! 왜 감귤을 안 사 온 거야, 누님?”
“감귤 초콜릿 사다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 줄래, 영웅 씨?”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유은영은 이 자리가 불편했다. 그건 지화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일어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A-Index의 알람이 갑작스럽게 뜨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거다.
―국가 넘버, 82.
서울 마포구 성산동 515-39 게이트 생성 예정입니다.
예상 정보를 전달해 드립니다.
Type: 시나리오
Lank: S급
게이트 생성 예정 시간을 아래와 같이 전달해드립니다.
20■■. 10. 31
PM 8: 32―
신영웅이 미간을 좁혔다.
“마포구면 수현 형님네 담당이죠? S급이라니, 이번에 대규모 공략팀 꾸려야겠네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금요일에 논산시로 출장 갑니다. 그쪽에도 주말에 S급 게이트가 예정되어 있어서…….”
“아, 그러면.”
현장 파견 부서의 모든 팀장의 시선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지화자 팀장, 파이팅.”
“하필, 또 A-Index가 눈치 없게 일요일 밤에 게이트가 열린다고 하네? 지 팀장, 힘내.”
“그리고 또 하필이면 시나리오 유형이네. 주말 강제 야근 축하해, 지화자.”
참고로, 조수현이 공략하러 나가는 게이트 역시 일요일 밤에 예정되어 있는 게이트였다.
조수현이 애잔한 눈빛으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어 주고는 일어났다.
“입맛이 뚝 떨어졌네. 나 먼저 일어난다.”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는 두 사람의 뒤를 보며 신호걸이 멍하니 읊조렸다.
“이미지 변신하겠다니 뭐니 하더니만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좀 봐.”
“그때는 지 팀장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었나 보지. 그러려니 해.”
신호걸의 말을 뒤이어 나혜선이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보다 참 불쌍하네. 주말에 야근이라니.”
“어쩌겠어, 누님. 그게 0팀의 역할인데. 그보다 누님, 진짜 감귤 안 사 왔어?”
신호걸이 나혜선과 재잘거렸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두 사람,
신영웅과 조수현은 지화자와 유은영이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생각할 것이 있다는 듯, 고민에 잠긴 얼굴로 말이다.
* * *
“으아악! 짜증 나!”
유은영이 구내식당을 나오자마자 발을 구르며 투정을 부렸다.
“땜빵 나가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그러게.”
유은영은 0팀에 대해 지화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서북권과 동북권은 1팀, 도심권은 2팀, 3팀은 서남권. 그리고 5팀은 동남권을 담당해.”
“그럼, 0팀은요?”
“우리는 땜빵 담당. 1팀과 2팀, 3팀과 4팀이 부득이한 일로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 그들을 대신해서 게이트를 공략하러 나가는 팀이지.”
땜빵을 해 봤자 얼마나 한다고 했는데 벌써 두 번째였다. 더욱이 이번에 발생 예정인 게이트는 S급.
유은영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지화자에게 물었다.
“영웅 씨가 대규모 공략팀 꾸려야 하니, 뭐니 하시던데 그건 무슨 소리예요?”
“유은영 씨, 주말에 내가 가르쳐 준 거 벌써 까먹은 거야?”
지화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유은영을 보며 말했다.
“S급은 무조건 센터의 주도 아래에서 공략팀이 꾸려지게 되어 있다고 했잖아.”
수년 동안 갖춰 온 체계였다.
“언니는 마포구에서 일어날 S급 게이트의 공략 대장이 될 거야.”
“제가요?”
“응, 그러니까 사무실에 올라가자마자 먼저 각 길드에 협조 요청을 보내도록 해.”
협조 요청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귀찮을 것 같았다.
“팀 꾸리는 건 쉬울 거야. 공략에 참가하겠다는 녀석들이 많을 테니.”
“S급이라서요?”
“응, 소식 듣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공략하겠다고 나설걸? 그런데 고생을 좀 할 거야. 혹시 스콜피언 길드 알아?”
“네? 네, 들어봤어요.”
스콜피언(Scorpion).
대한민국 내에서 탑을 달리고 있는 길드였다.
“아마, 스콜피언의 길드장이 이번 공략에 직접 참가하려고 할 텐데, 나랑 사이가 좀 안 좋거든.”
“지화자 씨랑 사이좋은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나요?”
지화자가 말없이 유은영을 노려봤다. 그 사나운 눈길에 유은영이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물었다.
“스콜피언의 길드장님과는 사이가 왜 안 좋은데요?”
“나 때문에 만년 2등이라서. 그리고 지유하를 천년만년 사랑하셨던 극성팬이라서.”
유은영이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지, 지유화 씨 남자 친구분은 조수현 팀장님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슨 천년만년 사랑을 하셨다는…….”
“유은영 씨, 오해하지 마. 내가 말하는 ‘사랑’은 동경의 의미니까. 그리고 말했잖아?”
“뭐를요?”
“그 인간, 지유화의 극성팬이라고. 빠순이 알지? 그런 부류라고 보면 돼.”
어쨌거나 지화자와는 좋은 사이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지화자.
그녀는 친언니인 지유화를 제 손으로 죽인 살인자였으니.
그런데 스콜피언의 길드장이 그 지유화의 극성팬이란다.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냥… 조수현 팀장님네 게이트 공략하러 가면 안 될까요……?”
“어디 한 번 부장한테 말해 봐. 잘도 허락해 주겠네.”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언니, 제발 내 얼굴로 그딴 표정 좀 짓지 마.”
지화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곧장 표정을 풀었지마는 말이다.
지화자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온 유은영은 곧장 길드를 추려 S급 게이트 공략과 관련하여 공문을 발송했다.
“팀장님, 스콜피언 길드장님께서 참가 의사를 보내오셨습니다. 내일 중으로 명단 꾸려서 보내 준다고 합니다.”
“아레나 쪽에서도 참가 의사를 보내왔어요. 역시 내일 중으로 명단 꾸려서 보내 준다고 하네요.”
“그렇게나 빨리?”
암만 S급 게이트라고 해도 그렇지, 그에 관해 알리자마자 이렇게 굶주린 이리처럼 달려들다니.
오후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지화자가 각 길드에 보낸 공문을 확인하며 유은영에게 물었다.
“지화자 팀장님, 공략 인원은 몇 명으로 생각 중이세요?”
“이, 인원?”
“네, S급이라고 하더라도 시나리오 유형인 만큼 너무 많은 인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은영이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서른 명 정도면 될까?”
지화자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아니면 열다섯?”
지화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스물……?”
비로소 지화자가 밝게 미소를 지었다. 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가하성이 말했다.
“아직 답 오지 않은 길드들한테 참가 원하면 내일까지 명단 추려서 보내 달라고 해야겠네요.”
“그렇죠, 받은 명단에서 인원을 또 추려야 하니까요.”
덧붙여지는 목소리에 가하성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저희 업무 체계를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유은영 씨.”
“현장 파견 부서 업무 쪽에 관심이 많아서 틈틈이 공부했거든요.”
“쓸데없는 공부를 하셨네요.”
“쓸데없는 공부는 아니었죠.”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이렇게 0팀의 전담 어시스트로 같이 공략을 나가게 됐으니까요.”
“제대로 힐도 못 하는 F급 힐러인데 말이죠.”
파지직, 지화자와 가하성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험악해지려는 분위기 속에서 유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은영 씨, 잠깐 저 좀 봐요.”
지화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은영을 따라갔다. 드르륵, 사무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지화자가 날 선 목소리를 내었다.
“봐요가 아니라 봐. 도대체 언제까지 존댓말을 쓸 생각이야?”
“좀 봐줘요! 존댓말 안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단 말이에요.”
유은영이 투덜거리고는 말했다.
“가하성 씨랑 좀 사이좋게 지내 주면 안 되나요?”
“걔가 먼저 시비를 걸잖아.”
“그러니까 그 시비 거는 걸 무시하라고요!”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나는 오는 시비 거절하지 않고 받아치는 성격이라.”
“저는 아니에요!”
유은영이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하고는 앓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요, 지화자 씨. 나중에 서로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의 상황을 좀 생각해 보자고요.”
지랄 맞은 성격 파탄자로 센터에서 소문이 자자해지는 건 사양이었다.
“그래, 알았어. 가하성, 그 자식이랑 사이좋게 지내 볼게.”
하지만 지화자의 말은 수 분도 채 되지 않아 지켜지지 않았다.
“당연히 아레나 보다는 스콜피언 쪽의 사람들을 더 많이 데려가야죠. 아닙니까?”
“아니요, 스콜피언의 전력이 아레나보다 우수하기는 하지만 그런 이유로 더 많은 인원을 데려가면 안 됩니다.”
지화자가 말을 덧붙였다.
“더군다나 이번 게이트는 타임 브레이커 유형이 아니라 시나리오 유형이잖아요. 머리 쓰는 양반들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스콜피언도 머리 쪽으론…….”
“뒤처지죠.”
지화자가 가하성의 말을 매섭게 끊었다.
“당장, 그쪽의 길드장만 봐도 그렇잖아요?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무식한 주먹질밖에 없는데.”
주먹을 쓰는 게 특기인 하태균이 몸을 움찔거렸다.
가하성은 지화자를 노려보다가 유은영에게 물었다.
“팀장님.”
“네? 아, 아니, 응?”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뭐가……?”
가하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유은영 씨랑 제 의견 쪽에서 어느 쪽이 더 낫냐고요.”
왜 갑자기 나한테 불똥이 튄 것 같지?
유은영은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