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화 (17/200)

제17화

유은영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유은영 씨, 이번 시나리오 게이트에 대한 정보 나왔나요?”

시나리오 게이트는 A-Index를 통해 주어질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 알 수 있었다.

유은영의 질문에 지화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나왔습니다, 팀장님. 총 세 가지의 키워드더라고요. 전략, 전술, 지력.”

아무래도 이번 시나리오 게이트는 머리를 쓰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그렇다면…….

“유은영 씨의 의견에 따라 아레나 쪽에서 인원을 뽑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러면서 유은영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무, 물론!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명단이 많잖아? 그렇지, 태균 씨?”

“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명단 오는 거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어때, 가하성 씨? 괜찮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가하성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태균이 눈치를 보다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가하성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이내 덩그러니 남겨진 두 여자가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했다.

“지화자 씨! 가하성 씨랑 사이좋게 지낸다면서요?!”

“저 자식이 자꾸 기어오르잖아.”

“기어오를 수밖에 없죠! 지금 지화자 씨는 F급 힐러인 데다 오늘 갑자기 전담 어시스트로 0팀에 온 입장이잖아요!”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갑자기는 아니지. 0팀에 전담 어시스트가 배정될 거란 건 알고 있었던 일이잖아?”

“어쨌든요! 제발, 좀!!”

유은영이 다그쳤다. 지화자는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 참, 원하는 것도 많아.”

좀처럼 성질을 죽이는 법이 없는 지화자였지만, 그녀는 이번 한 번만큼은 유은영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화를 가라앉히고 돌아온 가하성에게 먼저 사과하러 다가간 거다.

“가하성 씨, 미안.”

“네?”

“조금 전에는 내가 너무 내 의견만 몰아붙인 것 같아서. 사과의 의미로 어깨 좀 주물러 주려고 하는데 괜찮지?”

“네에?”

“뒤로 돌아 봐.”

“아니요, 괜찮… 아악……!”

가하성의 몸이 허물어졌다.

유은영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밀려드는 업무에 잠깐 숨 좀 돌릴 겸, 하태균과 가하성은 A동 로비의 커피숍에 내려갔다.

“하성아, 어떠냐.”

“유은영 씨요?”

가하성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는 말했다.

“성격 진짜 괴팍해요. 아마 제 어깨, 지금 멍들었을걸요?”

하태균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좀 괴팍하신 것 같기는 하더라.”

“하지만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

이윽고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가하성은 받은 잔에 빨대를 꽂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장 파견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일머리도 있는 것 같아서요.”

하태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성격 괴팍해도 일머리 좋으면 됐지. 그보다 라이랑 리아랑은 어때? 연락돼?”

“전혀 안 돼요. 보니까 팀장님도 걔들이랑 연락하는 거 포기한 것 같던데요.”

라이, 리아.

두 사람은 결근 중인 0팀의 팀원들이었다.

“형님도 걔들이랑 연락 안 되죠? 되나요?”

“아니, 안 돼. 그러니까 너한테 연락되냐고 물었지. 도대체 그 녀석들은 무슨 생각이람.”

“저인들 알겠나요? 때가 되면 어련히 나오겠거니 해요, 형님.”

“그래도 걱정이 되는걸.”

하태균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걱정스레 말했다.

“그 녀석들 아직 어리잖아. 끼니는 제때 챙겨 먹고 있을지…….”

“잘 챙겨 먹고 있겠죠. 어리다고 해도 세상 살아가는 법은 진작 깨달은 녀석들이잖아요?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가하성이 몸속에 카페인을 공급하고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보다 우리 팀장님,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나요?”

“나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달라진 것 같던데?”

“그쵸?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형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니.”

가하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어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유은영 씨 손을 들어주면서 저도 배려해 줬잖아요.”

“그래서 싫었어?”

“싫지는 않았고요. 그냥 이상하다고요.”

가하성이 뚱하게 말했다. 그때, 그의 두 눈에 반갑지 않은 누군가가 포착됐다.

가하성이 잘못 봤나 싶어 눈가를 찡그렸다.

“하성아?”

하태균이 가하성의 시선을 따라가고는 놀라 말했다.

“스콜피언의 길드장님이잖아? 저 인간이 여기는 왜…….”

“팀장님 만나러 온 거 아닐까요? 저 인간이 센터에 찾아오는 이유는 딱 하나뿐이잖아요.”

지화자에게 시비 걸러 오는 것.

가하성과 하태균이 잠깐 동안 서로를 쳐다봤다. 곧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스콜피언의 길드장이 지화자를 찾아올 때마다 좋은 꼴을 본 기억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주먹 다툼으로 사무실이 뒤엎어진 적도 있었다.

“서이안 길드장님! 잠시만요!!”

“서이안 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하성과 하태균이 다급하게 스콜피언의 길드장을 불렀지만 그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였다.

그 시간,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A동 로비의 커피숍에 가고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화자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냥 가하성이나 하태균한테 사 오라고 시키면 될 것을.”

“안 돼요. 커피 심부름이 얼마나 기분 나쁜데요! 지화자 씨도 알 거 아니에요?”

지화자가 간호 관리 부서에서의 일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확실히 기분 나쁘기는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스르륵, 열리는 문에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탑승하려고 했다.

하지만 선객이 있었다.

“아, 귀찮게 찾으러 갈 필요 없이 잘됐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스콜피언의 길드장이 비릿하게 웃으며 내렸다.

“오랜만이야, 지화자.”

곱슬기가 살짝 도는 붉은 머리칼, 형형하게 빛나는 금색 눈을 가진 다소 사납게 생긴 미남자가 인사했다.

유은영이 남자를 알아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이안 님?”

님? 얘가 지금 나한테 ‘님’자 소리를 붙인 건가?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유은영은 그런 남자를 보며 반갑게 외쳤다.

“스콜피언 길드장님 맞죠? 독주, 서이안!”

“맞기는 한데.”

스콜피언의 길드장.

독주, 서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너 지화자 맞아? 재수 없게 왜 그렇게 반가운 척을 하는 거야? 그보다 ‘님’이라니? 네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불렀다고 서이안 님이래?”

“아…….”

유은영이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는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무슨 일로 찾아왔대? 귀찮게 굴 생각이면 꺼져 줬으면 하는데, 서이안 씨.”

순식간에 달라진 태도.

서이안은 얘가 뭐 잘못 먹었나 싶은 얼굴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지화자는 눈가를 꾹 눌렀다.

‘내가 앓느니 죽지.’

유은영을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지화자는 서이안의 앞을 막고서 그에게 물었다.

“스콜피언의 길드장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신가요?”

“너는 또 뭐야?”

“이번에 0팀의 전담 어시스트가 된 유은영이라고 합니다.”

“전담 어시스트?”

서이안이 조소를 흘렸다.

“지화자, 네 팀에 전담 어시스트라니. 퇴물 다 됐나 보네?”

“뭐라는 거야? 퇴물은 자기면서 아주 지랄을 하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폐급 힐러의 겁 없는 말에 서이안이 멍하니 입을 뻐금거렸다.

“뭐……?”

“어머, 실수. 지화자 팀장님의 팬으로서 그런 헛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요. 저도 모르게 그만.”

누가 누구의 팬이라는 거예요!

유은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화자는 태연하게 서이안에게 물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잇값도 못 하고 지화자 팀장님께 시비 걸러 오신 건 아니죠?”

서이안의 나이 스물아홉.

서이안은 순간 발끈할 뻔했으나 곧 마음을 다스리고는 명령조로 말했다.

“지화자, 이번에 뜬 시나리오 게이트 관련으로 명단 받았지? 좋게 말할 때 우리 스콜피언 길드를 우선으로 뽑아.”

유은영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공략 대장님께서 못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이번에 우리 길드에서 A급 각성자 한 명 영입한 거 알지?”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 녀석한테 실전 경험 좀 시켜 주고 싶은데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걔는 우리들이 책임지고 지킬 생각이니까 우리를 무조건 우선으로. 알아들었지?”

“뭐라는 거야.”

이번에도 말한 건 지화자였다.

“헛소리도 정도껏… 읍!”

유은영이 지화자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서이안에게 말했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 줄래, 서이안 씨? 나는 딱히 댁네 길드의 편의를 봐줄 생각이 없거든.”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서이안이 비딱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뽑히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랭킹 2위, S급 각성자 서이안. 그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전력이었으니.

아무리 이번 시나리오 게이트가 머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랬다.

‘그리고 서이안 씨는 스콜피언 길드를 세우기 전, 외국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다고 들었어.’

대중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

서이안은 어떤 상황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것에 굉장히 능통한 사람이었다.

유은영이 고민에 잠긴 와중에 서이안이 히죽거렸다.

“시나리오 유형은 서로 간의 협력과 협동이 중요한 거 알지, 지화자? 순순히 내 말을 들어주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협박이었다.

시나리오 게이트 공략을 무사히 마치고 싶다면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협박.

유은영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서이안을 노려봤다. 지화자는 불쾌하다는 듯이 서이안을 째려봤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건 그 순간이었다.

“서이안 님! 팀장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튀어나왔다. 그 둘의 모습에 서이안이 짧게 혀를 찼다.

“네 똘마니들 왔네. 그럼, 내 말잘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지화자 팀장.”

서이안이 유은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정확히는, 지화자의 몸에 들어가 있는 유은영을 말이다.

그런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서이안은 가하성과 하태균이 타고 온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렇게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였다.

“서이안!”

지화자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문을 다시 열었다.

“뭐야?”

서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지화자는 그런 그를 보며 히죽거렸다.

“당신이 암만 랭킹 2위의 난 놈이라고 해도 이번 시나리오 게이트 공략에는 참가할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당신 이름, 지화자 팀장님이 뺄 거거든.”

누구 마음대로요?

유은영이 당황하여 지화자를 쳐다봤다. 서이안 역시 마찬가지.

서이안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유은영의 몸에 들어가 있는 지화자를 말이다.

지화자는 씨익 웃고선 누르고 있던 버튼에서 손을 뗐다.

“당신 없이도 우리한테는 랭킹 1위의 지화자 팀장님이 계시니까 말이야. 그럼, 잘 가. 그리고 그 못생긴 얼굴 좀 센터에 그만 들이밀고.”

“뭐, 저런 싸가지가! 야! 네가 나를 언제 봤다고……!”

스르륵, 문이 닫혔다. 다시 문이 열리면 어쩌나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곧장 로비를 향해 내려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벙쪄 있던 유은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지화… 읍!”

“지화자 팀장님, 잠시 저랑 이야기 좀 나누시죠.”

지화자는 유은영의 입을 틀어막은 채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지화자의 비밀 장소였다.

지화자는 그곳에 도착한 후에야 유은영을 놓아주었다.

“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아니, 그보다! 지화자 씨, 미쳤어요? 서이안 씨를 뺀다고요? 누가요, 제가요?!”

“응.”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유은영은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시나리오 게이트 공략 경험 없는 거 알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무턱대고 뺀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제가 이번 공략 망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안 망쳐.”

“네?”

“안 망칠 거라고.”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언니는 스스로를 좀 믿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지화자의 손가락 끝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우리한테는 랭킹 1위인 지화자 팀장님이 계시다고.”

유은영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물론, 자신이 들어와 있는 몸의 주인이 한국의 랭킹 1위인 지화자의 몸이기는 했다.

그렇기는 했지마는.

“믿어, 언니.”

믿기는 뭘 믿어!

유은영은 울상을 지었다.

***

서울 여의도 한복판.

가장 높은 건물에 위치한 스콜피언 길드, 저녁이 지난 무렵 서이안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보스, 센터 쪽에서 이번 주 일요일에 열릴 게이트 공략 참가자 명단을 보냈습니다.”

“그래? 어떻게 꾸려졌대?”

센터에서 돌아온 후, 잔뜩 뿔이 나 있던 서이안이 물었다.

“그게…….”

서이안의 보좌관이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 말하기 껄끄럽다는 듯한 태도. 그에 서이안이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어디 한 번 줘 봐.”

보좌관은 서이안에게 센터 쪽에서 보내온 명단을 넘기고는 곧장 그에게서 물러났다.

서이안이 곧 분노할 거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명단을 살피던 서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어디 있어?”

두 눈을 씻고 살펴봐도 자신의 이름 석 자는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스콜피언 길드의 구성원은 세 명뿐.

S급 게이트는 보통 스무 명 이상 꾸려지니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서이안이 기대한 숫자는 아니었다.

그 셋 중에 이번에 데려온 루키가 포함되어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가장 중요한 본인이 없다는 것.

“미친, 지화자!!”

어디선가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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