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후우…….”
사무실을 나온 지화자가 이마를 짚었다. 손에 닿은 온기가 뜨끈한 것을 넘어 뜨거웠다.
“망할.”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아무래도 F급의 몸뚱이에게 S급 게이트 공략은 버거웠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온몸에 열이 올라 결국 사무실을 나온 지화자였다.
‘내려가서 아이스티라도 한 잔 마셔야겠네.’
아이스티가 아니라 그냥 차를 마셔야 하건만, 지화자는 시원하게 목을 축이면 열이 어련히 알아서 내려갈 거라고 생각했다.
“유은영 씨?”
아픈 와중에 보기 싫은 인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화자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1팀 팀장, 조수현.
아침 일찍 출근한 조수현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지화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비틀거렸다. 조수현이 그런 그녀를 황급히 부축하며 말했다.
“S급 시나리오 게이트에서 무리를 하셨나 봅니다. 지 팀장님께 말씀드린 후 오늘은 연차를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괜찮아요.”
지화자가 작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팔을 붙잡고 있는 남자의 손을 거칠게 쳐내면서 말이다. 그 순간, 머리가 피잉 돌았다.
‘어?’
시야가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몸이 급격하게 허물어졌다.
“유은영 씨?”
조수현이 힘없이 쓰러지는 그녀를 붙잡았다.
지화자는 당장에라도 조수현을 향해 저리 꺼지라고 외치고 싶었지마는.
‘시발.’
점점 의식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조수현 앞에서 꼴사납게 정신을 잃는 건 싫은데.’
하지만 지화자는 잠시 두 눈을 감기로 했다. 스르륵, 감기는 여자의 눈에 조수현이 놀라 그녀를 불렀다.
“유은영 씨!”
조수현의 외침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유은영이 소란을 듣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두 눈에 담긴 건.
“지화자 씨……?”
제 몸이 쓰러져 있는 광경.
유은영이 멍하니 지화자의 이름을 읊조렸다가 황급히 외쳤다.
“유은영 씨!”
왜일까?
내뱉은 이름이 왜인지 모르게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 잘못이야.
유은영은 침대 옆 간이 의자에 앉아 자책 중이었다.
침대 위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여자는 랭킹 1위의 S급 각성자인 지화자였다.
다만, 할 줄 아는 것이 기가 막힌 안마밖에 없는 F급 몸뚱이에 빙의된 상태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화자 씨가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 전에 내가 알아서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지화자가 쓰러질 일은 없었을 거다.
‘한심해.’
유은영이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 중일 때였다.
“으음…….”
“지화자 씨? 정신이 들어요?!”
“언니?”
지화자가 눈을 떴다.
지화자는 다소 몽롱한 눈을 움직였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뭐야, 나 어떻게 된 거야?”
사방이 온통 희게 칠해진 벽으로 보아 이곳은 의무실이었다. 지화자의 물음에 유은영이 그녀에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쓰러졌었어요. 기억 안 나세요?”
벌컥벌컥, 유은영이 건넨 물을 깔끔하게 비운 지화자가 눈가를 찡그렸다.
“조수현, 그 망할 자식을 마지막으로 본 것 같은데…….”
그다음의 기억이 희미했다.
지화자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중얼거렸다.
“그래, 쓰러졌었구나?”
“뭘 그렇게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거예요?”
“신기하니까.”
지화자가 생글 웃었다.
“각성자가 된 이후로 앓아 본 적이 없거든. 이렇게 쓰러져 본 적은 더더욱 없고.”
지화자는 정말로 생경한 경험을 했다는 듯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녀를 걱정한 유은영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나오는 걸 어떻게 해?”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손등에 꽂혀 있는 주삿바늘을 빼고자 했다.
“어엇?! 그거 빼지 마요! 더 누워 있어요!”
유은영이 기겁했다.
“나 괜찮으니까 그렇게 병자 취급하지 말아 줄래, 언니?”
“병자 취급하는 거 아니에요! 괜히 움직였다가 제 몸에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아하, 그러니까 나를 걱정한 게 아니라 언니의 몸을 걱정한 거란 거지?”
“그렇죠.”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당장에라도 손등의 주삿바늘을 뺄 것처럼 굴었다.
“일어날래.”
“누워 있으라니까요?!”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의 어깨를 눌렀다. 그 힘에 지화자의 몸이 힘없이 기울어졌다.
“……!”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지화자가 이렇게 순순히 넘어갈 줄 몰랐기 때문이다.
유은영이 차지하고 있는 몸이 S급 각성자의 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F급 몸뚱이에 빙의된 상태인 지화자는 한껏 얼굴을 찌푸렸다.
“안 비켜?”
“네! 안 비킬 거예요!”
“비키는 게 좋을 텐데?”
“좋은 것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요, 지화자 씨.”
“까불지, 유은영 씨?”
그렇게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일 때였다.
“지 팀장님? 유은영 씨 일어났어요?”
“네? 아, 네!”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 이혜나가 얼굴을 보였다.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의, 아니. 제 몸에서 손을 떼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 상태 좀 봐줄 수 있을까요, 이혜나 팀장님?”
“물론이죠.”
이혜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잔뜩 오만한 얼굴로 반말을 찍찍 내뱉더니, 그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뭐, 존댓말이 듣기 좋지마는.’
저보다 한참 어리면서 싹수없이 굴던 그때보다는 훨씬 더 보기도 듣기도 좋았다.
어쨌거나 이혜나는 지화자의 몸을 하고있는 유은영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다.
“유은영 씨, 폐급이면 폐급답게 굴었어야지! 암만 0팀의 어시스트가 됐다고 해도 그렇지! 게이트 공략에 들어가서 설치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이렇게 탈이 나지!”
저를 놀리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화자가 실소를 흘린 후 말했다.
“게이트 공략에 처음 참가하는 거니까요. 너무 의욕을 앞세웠나 봐요.”
“어휴.”
이혜나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유은영을 살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이혜나가 말했다.
“지 팀장님, 유은영 씨는 괜찮아요. 애초에 피로가 누적돼서 쓰러졌던 거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아, 그렇군요.”
유은영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유은영 씨, 지금 뭐 해?”
“괜찮다면서요.”
그러니까 일어나서 업무를 보러 갈 생각이라는 거였다. 이혜나가 놀라 외쳤다.
“미쳤어?! 그러다 또 쓰러져서 지 팀장님 귀찮게 하려고!”
이혜나의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네가 쓰러지면 지화자가 또 자신을 부르지 않겠느냐? 그러니 잠자코 누워 있으라 등등 말이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지화자가 아니었다.
지화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혜나를 쳐다봤다.
이혜나에게는 닿지 않은 시선, 대신 유은영이 지화자의 곱지 않은 눈빛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 누워 계시죠?”
그 말에 지화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지화자 팀장님,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으니까 조금 더 쉬도록 하세요. 이혜나 팀장님, 유은영 씨 살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지 팀장님.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래도 지 팀장님께 감사 인사를 들으니까 기분 좋네요.”
이혜나가 너스레를 떨고는 걸음을 돌렸다. 유은영 역시 지화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쉬세요. 지화자 씨.”
유은영은 찌푸려진 제 얼굴을 못 본 척 무시하며 의무실을 나왔다.
“후우.”
의무실을 빠져나온 유은영은 곧장 지친 숨을 내쉬었다.
‘고집불통.’
유은영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지화자를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그녀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팀장님, 유은영 씨는 깨어났어요?”
“아, 가하성 씨.”
0팀의 팀원인 가하성이었다.
유은영이 가하성을 반기며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는 깨어났어요.”
“왜 쓰러진 거래요?”
“피로가 쌓여서 그런 거라고 하네요. 유은영 씨 보러 오신 거라면 들어가 보세요.”
“아, 그건 아니고…….”
가하성이 우물쭈물거렸다. 지화자의 존댓말이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이미지 변신 중인가 보지.’
가하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은영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줬다.
“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부장님께서요?”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네, 급한 일이라고 최대한 빨리 찾아왔으면 한다고 했어요.”
어느 직장인이든 상관의 호출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급한 일이니 최대한 빨리 찾아오란다.
“…어제 있었던 S급 시나리오 게이트 관련으로 부르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요.”
가하성이 가볍게 유은영의 말을 끊어 냈다. 유은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깨지는 건 아니겠지?’
유은영은 찌푸려지려는 얼굴을 애써 펴며 웃었다.
“네, 알려 줘서 고마워요.”
***
유은영은 마음 같아서는 부장의 호출을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할 직장인이었다.
그건 지화자의 몸이든 원래의 제 몸이든 변하지 않는 사실. 그렇게 유은영은 부장실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겨우 당도했다.
부장실 앞에 선 유은영이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부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끼익, 유은영이 문을 열자마자 우종문이 그녀를 반겼다.
“지화장 팀장, 왔는가?”
“네, 부장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유은영이 퍽 익숙하게 지화자를 흉내 내며 우종문에게 물었다.
“일단 앉게.”
우종문이 지화자에게 자리를 권한 후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에 어시스트로 배정된 힐러 분께서 쓰러지셨다지?”
“네,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 것뿐이라고 하더군요. 조금 전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것참 다행이군.”
우종문이 인자하게 웃었다.
“부장님, 유은영 씨의 일로 부르신 겁니까?”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네.”
다른 것?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종문은 어색하게 웃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 혹시 라이 군과 리아 양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나?”
“네?”
유은영은 당황스러웠다.
‘라이’와 ‘리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 출근하지 않는 0팀의 팀원들이었지?’
유은영이 놀란 건, 단지 그 이름을 무척이나 오랜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습니다.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봅니다.”
자신이 지화자에게 들은 두 사람의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으며, 두 사람이 아주 우애가 좋다는 것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본 적이 없으니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겼지. 그것도 아주 큰 일이.”
우종문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화자 팀장, 라이 군과 리아 양이 지금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거론되고 있다네.”
“네……?”
0팀의 일원이면서 일은 내팽개치고 있는 라이와 리아라는 사람이, 지금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네엣?!”
유은영은 놀라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