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0화 (30/200)

제30화

“좋은 생각이라니요?!

유은영이 상대가 제 상사인 것도 잊고 소리 질러 물었다. 우종문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라이와 리아, 두 녀석만 두는 게 마음이 쓰였다네.”

그렇게 마음이 쓰였으면 부장님의 집에 애들을 데리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유은영은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그 덕분에 아주 다행히도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 지화자 팀장. 라이와 리아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네? 그… 최 박사에 관한 건?”

“그것 역시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그럼, 수고하도록.”

유은영은 난생처음으로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지화자는 아예 얼굴로 한껏 욕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우종문은 박지완과는 이야기를 잘 끝냈다면서 센터에서 이야기 나누자는 인사를 끝으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

“…어떻게 하죠, 유은영 씨?”

“글쎄요.”

지화자가 아래턱을 만지작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센터에 돌아갈까요. 부장님께서 박지완 형사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잘 끝냈는지 들어 봐야 할 테니까요.”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대로 퇴근할까 했는데.”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어서 타세요.”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속삭였다.

“라이와 리아, 저 녀석들이랑 같이 퇴근할 생각이었어?”

“아, 맞다.”

라이와 리아는 어떻게든 자신들과 함께 지낼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절대로 안 돼!’

같이 지냈다가는 서로의 몸이 바뀐 것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터.

유은영은 센터에서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고 지화자의 차에 올라탔다.

“라이, 리아도 어서 타요.”

“네엡!”

“네엥!”

라이와 리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지화자는 이번에도 경찰이 사방팔방 깔려 있는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면허가 없는 유은영의 몸으로 핸들을 잡았다.

부우웅, 지화자는 그대로 경찰서를 빠져나가 센터로 향했다.

라이와 리아가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유은영은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모습에 픽 웃고는 지화자를 불렀다.

“유은영 씨.”

지화자가 왜 부르냐는 듯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 씨는 저희 센터에 내려주고 퇴근하셔도 돼요. 어차피 오후 반차 냈잖아요?”

“그거 도로 물리도록 하죠. 집에 돌아가서 푹 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불청객이 두 명이나 찾아올 것 같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지화자가 말한 ‘불청객’이란 라이와 리아를 말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유은영의 입장에서도 불청객이었다.

“라이 씨, 리아 씨.”

유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 아니. 제집에 정말 가고 싶어요? 살기 불편할 텐데요?”

“괜찮아요!”

“맞아, 괜찮아! 쥐 죽은 듯이 얌전히 있을게!”

그런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서요.

유은영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이 현재 지화자가 함께 살고 있는 건, 센터 내 그 누구도 알지 못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센터 소속의, 그것도 같은 0팀의 팀원 두 명이 함께 살게 될 거라니.

‘절대로 안 돼!’

라이와 리아가 자신과 지화자가 함께 살고 있다는 소문을 센터에 퍼뜨릴 사람들은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유은영은 라이와 리아가 지화자의 집을 어떻게 하면 포기하려나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건.

“라이 씨, 리아 씨. 저희 집에 바퀴벌레 나와요.”

지화자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유은영을 노려봤다. 유은영은 애써 그 시선을 모른 척 무시했다. 라이와 리아는 밝은 얼굴로 외쳤다.

“괜찮아요! 세S코 불러 드릴게요! 아니면 리아랑 같이 잡아서 먹을게요!”

“잡아먹기는 뭘 먹어요!”

유은영이 경악하며 외쳤다.

‘아무래도 라이 씨랑 리아 씨는 지화자 씨의 집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어쩌면 좋담?

유은영이 쥐가 날 정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화자야.”

리아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유은영을 부른 건 그때였다.

“네?”

“나랑 오빠가 싫어?”

“그건 아닌데요…….”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리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빠랑 그냥 공원 화장실 가서 자면 되니까.”

유은영은 눈물에 약했다. 어린아이의 눈물에는 더더욱 약했다.

라이도 리아도 어린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지만, 어쨌든 유은영의 기준이에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에이, 안 싫어요! 같이 집으로 가요! 일단, 센터에 가서 오랜만에 팀원들한테 인사하고요. 어때요, 리아 씨? 괜찮죠?”

“응, 괜찮아!”

결국 유은영은 라이와 리아와의 동거를 허락하고 말았다.

“잠깐만요, 지화자 팀장님!”

끼이익,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지화자가 얼굴을 와락 구기고는 유은영에게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누구 마음대로 라이와 리아의 동거를 정합니까?”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으음, 제 마음대로요?”

지화자가 유은영을 향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한 거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가 무엇이라 한 마디를 더 내뱉으려는 찰나, 빵빵! 어서 출발하라는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고는 다시 차를 몰았다.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라이와 리아가 지화자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저 아줌마는 왜 화를 내고 그러지? 어차피 누님 집인데.”

“그냥 우리가 마음에 안 드나 봐. 저 아줌마 못됐어.”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지화자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 그렇게 도착한 센터.

“라이, 리아!”

“우와아! 태균 형님!”

“태균 오빠다!”

라이와 리아는 그간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게 거짓말처럼 하태균을 향해 달려갔다.

라이와 리아는 그대로 하태균의 양쪽 팔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가하성이 그 모습에 픽 웃고는 유은영에게 물었다.

“팀장님, 왜 갑자기 외근을 하나 했더니 저 녀석들 찾으러 갔었나 보군요.”

“네에, 뭐.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유은영 씨는 무슨 일로 다시 센터에 돌아왔습니까? 오후 연차 냈으면서.”

“그거 도로 물리기로 했어요. 할 일이 있어서.”

“네?”

가하성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가하성 씨는 몰라도 되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딱, 선을 긋는 지화자의 목소리에 그는 험상궂게 얼굴을 구기며 그녀한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둘 사이에 있던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

“하, 하하. 그럼 저는 이만 부장님 좀 만나고 올게요. 유은영 씨, 같이 가실래요?”

“네.”

지화자가 기다렸다는 듯 유은영을 따라 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뭐야?”

지화자가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리아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리아, 이거 놔.”

“싫어.”

리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나랑 오빠도 따라가면 안 돼? 아니면 아줌마는 여기 있어.”

“내가 왜.”

“나랑 오빠가 센터에 온 거 알면 마귀 같은 아줌마랑 지랄 맞은 아저씨들이 우리 구경하러 올 게 뻔하단 말이야.”

그 소리에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마귀 같은 아줌마랑 지랄 맞은 아저씨들이 누구예요?”

“2팀의 나혜선 팀장님과 3팀과 4팀의 영웅호걸 팀장님이요.”

“아아.”

아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편하게 느껴질 만한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가하성과 하태균이 쉽게 막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런데 애들 눈에 지화자 씨는 그 사람들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로 보이나 보네.’

아이들의 눈은 속일 수 없다고 하더니, 암만 F급 몸뚱이에 빙의되어 있는 랭킹 1위라고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노련미가 라이와 리아의 눈에 보이나 보다.

유은영이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 라이랑 리아와 함께 있도록 하세요.”

“네?”

지화자가 진심이냐는 듯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진심 100%라는 눈빛으로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잠깐만요,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은 지화자가 붙잡기 전에 냉큼 문을 닫아 버렸다.

탁, 닫힌 문에 지화자는 이를 으득 갈았다. 그때, 리아가 지화자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뭐야?”

“지화자 괜찮아?”

“보면 몰라? 안 괜찮…….”

지화자는 뒤늦게 리아가 물은 ‘지화자’가 자신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지화자 팀장님이라면 괜찮아. 봐서 알 거 아니야?”

“그치마안.”

리아가 우물거렸다.

“지화자는 저렇게 친절하지 않단 말이야. 상냥하지도 않고. 우리 생각해 준 적도 없는데.”

“맞아요.”

라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화자 누님, 우리랑 같이 살 때 한 번도 웃어 준 적 없는데.”

“맞아! 그런데 갑자기 웃는 게 헤퍼졌어.”

“헤퍼졌다니…….”

지화자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곧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건 그렇지. 웃는 게 좀 헤프지.”

자신이 아니라, 유은영. F급 힐러가 말이다. 픽 웃는 지화자에게 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웃는 게 헤프네?”

“얘가 못 하는 말이 없네.”

지화자가 리아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아야! 오빠! 쟤가 나 때렸어!”

“내 동생 때리지 마요!”

흥, 지화자는 코웃음 쳤다. 가하성과 하태균은 0팀이 참으로 오랜만에 시끌벅적해졌다는 생각에 남몰래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그 시간.

***

“뭔 일 없지? 괜찮지?”

유은영은 닫은 문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지화자가 문을 열고자 난리를 피우지는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화자는 그 정도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휴우.”

유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곧장 부장실로 향했다.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마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부장님.”

“그래, 지화자 팀장. 어서 오게. 박지완 형사의 일로 찾아왔을 것 같은데 아닌가?”

“맞습니다.”

우종문이 편한 자리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서서 듣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용건만 듣고 나가 보겠다는 뜻. 우종문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안 그래도 바쁜 것 같으니 용건만 빠르게 전하도록 하지. 먼저 라이와 리아는 연쇄 살인 사건의 누명을 벗게 되었다네. 일단은 말이지.”

“그 말은, 아직 경찰의 의심은 계속되는 중이란 겁니까?”

“그렇네. 자네가 잡았다는 충종의 몬스터가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제대로 추적을 해 줘야 할 것 같네.”

“최 박사의 행방을 뒤쫓으면서 말이죠.”

“역시, 지 팀장.”

우종문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하나를 말하면 둘을 알아서 좋군.”

저는 좋지 않은데요.

유은영이 울지 못해 웃었다.

‘어찌 됐든 라이 씨와 리아 씨의 무죄는 밝혀진 것 같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있었다.

‘부장님께서 내린 임무를 수행할 동안 게이트가 터지지 않기를 바라야겠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게이트까지 터져 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게 분명했다.

‘에휴, 내 팔자야.’

유은영이 속으로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덕분에 라이 씨와 리아 씨의 일이 일단락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니 지 팀장께서 계속 신경 써 주게.”

“네, 부장님.”

유은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우종문에게 인사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잠깐, 지화자 팀장.”

우종문이 유은영을 붙잡았다.

“라이와 리아를 잘 부탁하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는데요.

라이와 리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은영이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지화자의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장님. 라이와 리아는 제가 책임지고 잘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화자가 들었다면 웃기는 소리를 다 한다며 코웃음을 쳤을 말이었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우종문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는 부장실을 나왔다. 그녀는 곧장 0팀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마음 같아서는 로비에 내려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원샷하고 싶었지만…….

‘마귀 같은 아줌마와 지랄 맞은 아저씨들이 구경 올 거라고 했지?’

라이와 리아가 걱정됐다.

아이들이 괜히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닐 거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우리 속에 갇힌 짐승처럼 구경거리가 됐을 테지.

‘지화자 씨가 말하기를 라이 씨와 리아 씨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현장 파견 부서의 다른 팀장들 역시 알고 있을 사실일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유은영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다다른 0팀의 사무실.

“아아악! 항복, 항보오옥!”

유은영은 사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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