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3화 (33/200)

제33화

그런데 넘어진 사람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지화자를 따라 내린 유은영이 쓰러진 사람을 조심스럽게 흔들어보고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 어떻게 봐도 죽은 것 같은데요? 진짜 안 친 거 맞아요?”

“안 쳤다니까요? 죽은 척하는 거겠죠.”

지화자는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때, 영웅호걸이 때맞춰 나타났다.

“야! 지화자!”

“지 팀장!”

지화자와 유은영의 앞에 착지한 영웅호걸이 휘파람을 불었다.

“뭐야, 벌써 잡았어?”

“그냥 죽인 것 같은데? 유은영 씨, 못 볼 꼴을 봤네요.”

저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유은영 씨, 아니. 지화자 씨인데요.

유은영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꾹 삼키고는 지화자를 살폈다. 그녀의 낯빛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아니야.”

“응? 뭐라고?”

“최 박사가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신영웅이 얼굴을 찌푸리는 찰나.

“아하하! 잘도 알아차렸네요!”

6층 정도 되는 건물 위에서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머리칼을 휘날리며 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최 박사였다.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잖아?!’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료로만 봤던 최 박사는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였기 때문이다.

유은영이 최 박사의 등장에 놀라고 있는 사이, 넘어져 있던 남자는 신음을 토해냈다.

“크… 으윽…….”

그 소리에 유은영이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의, 의사! 아니, 힐러! 유은영 씨, 어서 힐 좀!”

유은영은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안마밖에 없다는 걸 그 순간 깜빡 잊고 말았다.

지화자가 자신을 향해 힐(Heal)을 외쳐대는 유은영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볼 때였다.

“크아아악!”

쓰러져있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영웅호걸이 발 빠르게 물러났고, 유은영이 지화자의 목덜미를 잡고서 그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크윽, 아, 아아악!”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와 동시에 등에서 4쌍의 다리가 돋아났다.

“거미……?”

유은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화자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빌어먹을! 저 미친 새끼가 8년 동안 아주 재미난 짓을 벌이고 있었던 모양이야.”

지화자가 이를 으득 갈고는 입을 열었다.

“지화자 씨,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최 박사를 쫓으세요.”

“네?! 제가 어떻게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지화자가 소리 지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영웅호걸, 저 자식들이 있잖아? 내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하태균도 있고 말이야.”

“이런 말 하면 실례지만, 하태균 씨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요?”

하태균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화자는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쫓아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보다는 라이랑 리아를 더 걱정하라고?”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라이와 리아의 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박사!”

“이 마녀!”

라이와 리아가 살기 어린 눈으로 최 박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최 박사는 아이들의 등장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 얘들아! 살아 있었니?!”

최 박사가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거기서 딱 기다려.”

리아의 말을 뒤이어 라이가 입을 열었다.

“죽여버릴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건물을 타고 최 박사를 향해 돌진했다. 최 박사는 웃음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라이 씨! 리아 씨!”

붙잡을 새도 없이 벌어진 일에 유은영이 당황했다. 그런 그녀를 지화자가 붙잡고는 말했다.

“언니, 침착하고 내 말대로 해. 저 녀석들이 최 박사를 정말 죽여버리기 전에.”

유은영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가 말했다.

“다치지 마세요.”

“언니야말로 다치지 마.”

지화자가 픽 웃었다.

“내 몸, 소중하게 여겨 달라고?”

“제가 할 소리거든요?”

유은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영웅호걸 씨!”

갑작스럽게 몬스터로 변모한 인간을 어떻게 처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신영웅과 신호걸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유은영 씨랑 하태균 씨를 부탁할게요!”

그 말에 신영웅과 신호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호걸. 들었어? 지화자가 자기네 팀원들을 걱정했어.”

“그러게, 나도 들었어. 천하의 지 팀장이 부탁이라니.”

신영웅이 키득거렸다.

“이것 참, 열심히 해야겠는걸?”

화르륵, 그의 주위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품에 감추고 있던 권총을 꺼냈다.

***

“라이 씨, 리아 씨!”

건물 위로 올라온 유은영이 두 사람을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라이와 리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침착하자.’

지화자는 강하다. 현존하는 S급 각성자 중에서도 그녀와 맞붙을 수 있는 상대는 중국의 샤오링뿐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강한 각성자였다.

애초에 열셋뿐인 대한민국의 S급 각성자 중에서도 최정상에 있는 사람 아닌가?

유은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인덱스 오픈.”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지화자의 정보가 유은영의 눈앞에 펼쳐졌다.

-Name: 지화자(池話者)

-Birth: 20X1. 8. 17

-Local: 82_대한민국

-Rank: S급

-Number: 1st

대중이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이게 끝,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열람할 수 없었다.

유은영은 가하성과 연락을 시도했다.

“가하성 씨, 해킹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네? 해킹이라니요?

“제 정보 좀 해킹해주세요.”

―네?

“어서요! 급해요!”

원래라면 지금 유은영은 지화자의 몸에 들어가 있으니 대중에게 오픈되지 않는 지화자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었을 테였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유은영은 지화자의 정보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화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했지만.

‘까먹었어.’

유은영은 머리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곧 유은영의 눈앞에 푸른 창이 나타났다.

[각성자, ‘지화자’의 스테이터스를 모두 오픈합니다.]

-성언(聖言): 모든 것을 기억하라

-고유 특성: 회고록(回顧錄)

-보조 특성: 인내(忍耐), 견고(堅固), 예리한 감각

‘그래, 예리한 감각.’

처음 지화자의 몸에 빙의가 됐을 때 발달한 감각에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원하던 정보를 얻은 유은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기요, 팀장님? 센터의 전선을 더는 마비시킬 수 없어요!

“네, 이제 그만해도 돼요. 해킹해줘서 고마워요, 가하성 씨.”

가하성이 해킹에 능하다는 정보를 잊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유은영은 자신의 감각을 최고치로 올렸다.

미각과 시각, 청각과 촉각, 그리고 후각. 오감 중 유은영은 특히나 청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들었다.

“예쁜 우리 아가들, 드디어 엄마 손에 떨어졌구나!”

찾았다!

유은영이 단숨에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몸이 높이 떠오르자 저기 멀리 폐공장이 보였다.

‘저기 있구나!’

유은영이 허공을 계단처럼 딛고선 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머릿속에는 라이와 리아가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구해야 해.’

태어날 때부터 온갖 실험을 당한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나? 더욱이 박지완 형사란 자는 아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그 말고도 라이와 리아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거다.

‘지화자 씨가 그랬지. 라이 씨와 리아 씨는 인간이 아니라고.’

분명 그랬다.

하지만 유은영의 눈에 라이와 리아는 인간으로 보였다. 웃고 울며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인간.

라이와 리아는 실험체 따위가 아니었다.

‘제발 늦지 않기를!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꼭 늦으니까!’

유은영이 크게 숨을 들이켜 마시고는 두 눈을 번뜩였다. 곧,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기다란 봉이 폐공장을 향해 날아갔다.

탁,

옥상에 착지한 유은영은 곧장 폐공장을 향해 달렸다. 폐공장에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라이 씨, 리아 씨!”

유은영이 폐공장에 들어서며 둘을 찾았다.

“지화자야!”

리아가 달려나와 유은영의 품에 안겼다.

“리아 씨, 얼굴이 왜 이래요!”

아이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화상을 입은 얼굴에서 진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리아는 아프지도 않은지 울먹이며 더듬더듬 말했다.

“오빠가, 오빠가아!”

유은영이 황급히 라이를 찾았다. 다행히도 어렵지 않게 라이를 찾을 수 있었다.

“누, 님……!”

최 박사의 손에 붙잡혀 있는 라이가 보였다. 최 박사는 더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몰골이었다.

‘몬스터.’

그래, 그녀는 게이트에서 볼 법한 몬스터로 변모해있었다. 관자놀이에 유은영이 던진 봉이 꽂혀 있는 모습이 보기 끔찍했다.

하지만 유은영이 내던졌던 봉은 최 박사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는지,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이를 드러내며 소리 질렀다.

“너구나, 또 너야!”

유은영이 리아를 보호하며 최 박사를 노려봤다.

“네가 또 나를 망치러 왔어! 이 빌어먹을 년!”

최 박사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라이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녀의 손에 붙잡힌 목이 화상을 입으며 희게 변하고 있었다.

유은영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최 박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악을 내질렀다.

“지유화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년이 왜 이렇게 나를 방해하는 거야! 왜 자꾸 설쳐대는 거냐고!”

지유화, 그건 지화자가 죽인 혈육의 이름이었다.

전(前) 랭킹 1위, 지화자와는 다르게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각성자.

‘지유화란 이름을 꺼내는 건, 지화자 씨가 동요할 거라 생각해서 그러는 거겠지.’

그리고 정말 ‘지화자’였다면 동요했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지화자는 ‘유은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최 박사를 향해 날렸던 봉을 순식간에 제 손에 다시 쥐고선 말했다.

“어쩌라고.”

지화자처럼, 비틀린 웃음을 보이면서 말이다.

***

“후하, 겨우 죽였네.”

“영웅, 센터에 샘플로 들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태워버리면 어떻게 해?”

“하지만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으면 분명 누구 하나 죽었을걸?”

몬스터로 변모했던 인간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지화자는 시체를 보며 무심하게 생각했다.

‘이래서야 신원도 파악할 수 없겠군. 뭐, 어디 노숙자 하나 붙잡아서 실험을 한 거겠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신영웅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지, 유은영 씨?”

신영웅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말이다. 지화자는 유은영의 얼굴로 미소를 그렸다.

“네, 덕분에 살았어요. 고마워요, 신영웅 팀장님.”

사실, 고맙기는 개뿔이었다.

‘옷 다 버렸네.’

지화자가 입고 있던 옷에 튄 핏물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세탁을 한다고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버려야겠네. 언니가 난리 칠 것 같은데.’

하지만 뭐 어쩌랴? 몬스터의 피가 묻은 옷을 보란 듯이 입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인데.

‘하나 사 주지 뭐.’

지화자는 태연하게 그리 생각하며 영웅호걸이 퇴치한 몬스터를 살폈다.

그러니까 사람이었던 몬스터를 말이다.

영웅호걸 중 한 명, 신영웅이 일으킨 불꽃에 튄 것이 손등에 맞아 화상을 입었지만 지화자는 제 상처에 신경 쓰지 않았다.

“유은영 씨, 괜히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독이나 그런 게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괜찮아요, 저 힐러잖아요.”

하태균은 순간 힐러라고 해도 F급이지 않냐고, 그렇게 말할 뻔했다.

‘조심해야지.’

하태균에게 있어 유은영이란 존재는 참으로 신기한 존재였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세상만사 귀찮듯이 구는 지화자에게 끊임없이 다가가고 있는 여자이지 않나?

‘뭐, 지화자 팀장님께서도 많이 바뀌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하태균에게는 어려운 상사였다.

―태균 형님, 들려요? 태균 형님!

가하성의 다급한 연락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래, 하성아. 잘 들린다. 무슨 일이냐?”

―지화자 팀장님과 연락이 끊겼어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근처에 영웅호걸 팀장님들 계세요?

가하성의 다급한 목소리는 영웅호걸에게 아주 잘 들렸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하태균에게 말했다.

“위치 부르라고 해.”

“나참, 우리 지 팀장님은 혼자 뛰어가서는 뭐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네.”

곧 가하성이 지화자와의 연락이 끊긴 곳의 위치를 알려줬다.

영웅호걸이 기지개를 쭉 켜고는 단숨에 사라졌다. 하태균이 둘을 따라가고자 할 때.

“저도 데리고 가요.”

“유은영 씨?”

지화자가 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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