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하태균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유은영 씨. 지화자 팀장님과의 연락이 끊겼다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이 생겼다는 말이겠죠. 지화자 팀장님께서 연락을 일부러 끊었다면 몰라도, 이렇게 연락이 끊기는 일이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겠다고요!”
지화자가 하태균의 말을 끊고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괜찮아요. 지화자 팀장님께서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주세요. 부탁할게요.”
하태균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지화자를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눈치, 하태균은 결국 유은영의 몸을 하고있는 지화자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태균이 지화자를 안아 들고는 땅을 박차고 올랐다. 몸이 붕 떠오르자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유은영……!’
지화자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폐공장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너지는 철골들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붕 떴던 몸이 순식간에 추락했다. 하지만 하태균은 안전하게 땅에 착지했다.
지화자는 땅을 밟기 무섭게 아이의 울음소리부터 찾아갔다.
“리아!”
“유, 유은영?”
엉망진창의 몰골인 아이가 훌쩍이며 물었다. 지화자는 다급히 아이를 잡고는 물었다.
“유은영은!”
“유은영? 유은영은, 왜, 왜 찾는 건데? 유은영은 너잖아.”
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는 황급히 말을 고쳤다.
“지화자! 지화자 팀장님 말이야! 어디 있어?!”
“저기, 안에, 오, 오빠랑, 흑, 흐으윽.”
“뭐?”
활활 타오르는 폐공장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리아는 그곳을 가리키며 울었다.
“최 박사, 우리가 죽이려고 했어. 우리보고 친구들 계속 죽이라고 한 사람이니까. 못된 사람이니까. 그래서 죽이려고 했어. 지화자가 그랬단 말이야.”
내가 뭐라고 했는데?
지화자는 순간적으로 튀어 나갈 뻔했던 질문을 삼켰다. 리아는 훌쩍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구해 주면서, 크고 난 후에 우리 손으로 꼭 죽이라고,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래서 죽이려고 했는데.”
지화자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말을 끝마친 아이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아앙! 오빠 미워, 나 밖으로 던지고 지화자랑 같이! 흐아앙! 지화자도 미워! 우리보고, 우리 손으로 복수하라고 했으면서! 으앙!!”
지화자는 아이의 울음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제 손으로 지유화를 죽일 때도 이랬다.
온몸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식어버리는 듯한 감각.
지화자는 무너질 듯, 타오르고 있는 폐공장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유은영 씨! 안 됩니다!”
“이것 놔!”
지화자가 저를 붙잡은 하태균을 뿌리치고자 했다. 하지만 F급 몸이 A급 몸뚱이를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태균이 놓칠세라 지화자를 단단히 붙잡고는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무사하실 겁니다. 라이도 괜찮을 겁니다. 두 사람 다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불은 신영웅 팀장님께서 금방 꺼뜨릴 테니까…….”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지화자가 소리 질렀다. 그 외침에 하태균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화자는, 자신이 지금 ‘유은영’인 것도 잊고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지화자가 암만 랭킹 1위라고 해도 사람이야. 라이도, 그 녀석도.”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람이야.”
내뱉은 말 위로 유은영에게 들려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저 녀석들, 인간이 아니라고.”
온갖 실험을 통해 몬스터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된 아이들.
지화자는 라이와 리아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야, 열일곱. 언니인 지유화를 죽인 후 처음으로 구한 생명체였으니까.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구했다.
지화자는 그것이 제게 있어 악몽처럼 다가왔다. 그렇기에 라이와 리아를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우종문 부장이 내린 명령을 처리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여기며 아이들을 대했다.
하지만 지금의 지화자는, 그러니까 유은영은 달랐다.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관심이 많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직 어린 애들이니까요. 그리고 실험체였다면서요? 사랑받고 못 자랐을 게 분명하니까요.”
정답이었다. 라이와 리아는 사랑이란 걸 받지 못하고 자랐다.
철저하게 실험체로 다뤄진 아이들을 보호하게 됐을 때, 자신이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귀찮아.’
또한 그 둘의 존재가 성가셨다.
저 역시 ‘지유화’란 인간에게 밀려 가족의 사랑 따위 단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자신이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한단 말인가?
가르칠 수 있는 건 기본적인 식사 예절이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 그리고.
“너희 손으로 복수해.”
“복수?”
“그래, 너희를 그렇게 만든 최 박사.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까 크고 나서 복수하라고.”
아이에게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말았다.
“살아있으면 복수하고, 죽었으면 그 시체를 찾아서 갈가리 찢어버려. 아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 힘으로 녹여버려. 형체도 남김없이.”
나, 정말 최악의 인간이었구나?
지화자의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그녀를 말리던 하태균은 움찔거렸다.
지화자가 보이고있는 미소가, 게이트를 공략할 때마다 ‘지화자’가 보이던 것과 똑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괴감과 자조적인 웃음이 한데 어우러진 미소.
하태균은 그 웃음이 왜 ‘유은영’한테서 보이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폐공장을 삼켰던 불이 영웅호걸의 힘에 꺼졌다. 지화자는 단숨에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유은영!”
아니, 정신 차리자. 유은영은 지금 자신의 몸을 하고 있다. 황급히 이성을 챙긴 지화자가 애타게 유은영을 찾았다.
“지화자! 지화자 팀장님!”
“저 여기 있어요.”
가까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불에 타 죽는 줄 알았네요. 소방차라도 왔어요? 물이 뿌려진 것 같지는 않은데?”
농담이라고 던지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화자는 픽 웃었다.
“신영웅의 힘이야. 신호걸도 거들었지.”
“그래요? 영웅호걸 팀장님들께 나중에 감사하다고 해야겠네요.”
“다친 곳은?”
“보다시피 멀쩡해요. 지화자 씨는 멀쩡한 것 같고, 리아 씨는요? 다친 곳 없어요?”
“다친 곳이야 많은데, 괜찮아. 3팀과 4팀의 전담 힐러가 봐줄 테니까. 걱정되면 이혜나라도 불러서 상처 좀 봐달라고 할게.”
“네, 그렇게 해주세요. 라이 씨가 좀 심하게 다쳤거든요.”
유은영의 품에는 라이가 안겨 있었다. 목 부근에 크게 화상을 입은 것이 상처가 꽤 깊어 보였다.
그때, 감겨 있던 라이의 두 눈이 떠졌다.
“…지화자 누님?”
라이의 시선이 향한 곳은 유은영이었다. 지화자는 불린 이름을 정정하지 않았다.
라이는 파들파들 입술을 떨며 그녀에게 물었다.
“최 박사는요? 그 마녀는 어떻게 됐어요?”
지화자의 시선이 유은영의 뒤로 향했다. 최 박사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여러 개의 봉(棒)에 찔린 채 발버둥 치고 있었다.
거미줄로 입이 틀어막힌 채로 말이다. 지화자가 그 모습을 빤히 보며 말했다.
“…. 죽었어.”
“아아, 그래요? 아깝다.”
“뭐가?”
“제 손으로 죽이려고 했는데. 지화자 누님이, 누님이 도와줬잖아요. 내 손으로 그래야 했는데.”
“왜, 지화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네.”
라이가 쌕쌕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누님이 가르쳐줬잖아요. 복수는 자기 손으로 해야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큰 다음에…….”
“했어, 복수. 그러니까 좀 자.”
지화자가 손을 들어 라이의 눈을 덮어줬다. 유은영이 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아니요, 그냥 지화자 씨도 사람 좀 됐구나 싶어서요.”
“언니, 기어오른다?”
유은영이 씨익 웃을 때였다.
“오빠! 라이 오빠아!”
리아가 말끔해진 얼굴로 안쪽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뒤를 하태균이 쫓았다.
그리고 신영웅과 신호걸도 휘파람을 불며 폐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야, 아주 난리도 아니네. 지화자. 최 박사, 저 인간 살아있는 거 맞지?”
“네, 살아 있어요. 그런데 신영웅 팀장님의 눈에는 저게 사람으로 보이나 보네요.”
신영웅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인간이었잖아? 뭐, 지금은 아니지만. 서울 전역에서 일어나던 연쇄 살인범의 별칭이 ‘아라크네’라고 하던가? 그 모습에 딱 맞는 모습이네.”
경찰이 꼭꼭 숨기던 정보는 센터에 퍼질 대로 퍼진 모양인가 보다. 신호걸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바깥을 향해 외쳤다.
“클라라, 여기 와서 라이의 상처도 좀 봐줄래?”
“네, 팀장님.”
바깥에서 리아의 상처를 보고 있던 3팀과 4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가 폐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유은영 씨? 여기서 보네요?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가 됐다는 말은 들었는데…….”
클라라가 라이에게 가다 말고 지화자를 향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쓸모가 없나 봐요. 신호걸 팀장님께서 0팀의 팀원분 상처를 제게 맡기는 걸 보면요.”
인사라기보다는 독설에 가까운 말이었다. 지화자는 픽 웃었다.
“네, 제가 쓸모가 별로 없어서요. 그런데 말이죠.”
성큼, 클라라에게 다가선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는 말했다.
“0팀에서 뜻밖의 재능을 찾았지 뭐예요?”
클라라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는 찰나, 철컥. 명치 부근에 닿는 쇠붙이가 느껴졌다.
“무, 무슨……!”
“쉿.”
지화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제가 아무래도 힐러보다는 딜러에 소질이 있지 뭐예요? 제가 얼마나 총을 잘 쏘는지 시험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시험해보고 싶지 않았다. 클라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클라라, 어서 와서 치료 좀 해달라니까?”
“네? 아, 넵! 죄송해요!”
클라라가 황급히 자리를 비켰다. 지화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라이를 살피러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향해 비웃음을 보였다.
신영웅은 신호걸과 함께 장식품마냥 벽에 내걸린 최 박사를 보며 고민 중이었다.
“이 녀석, 센터로 어떻게 끌고 가지?”
“지화자 팀장, 이용할 수 있는 힘 없어?”
“네?”
클라라가 라이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보고 있던 유은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둘을 쳐다봤다.
신영웅이 그에 말했다.
“너랑 싸웠던 각성자들 힘은 얼마든지 다룰 수 있잖아?”
“제가요?”
“응? 응, 네가요.”
유은영이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목 언저리를 긁적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알아서 해보라는 뜻이었다.
‘지화자 씨!’
유은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신영웅이 한 말은 사실인 모양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막대기를 이용해서 힘을 쓰는 것밖에 모르는데.’
유은영은 지화자가 가진 힘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성언(聖言): 모든 것을 기억하라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을 기억하라, 그건 혹시 어쩌면…….’
유은영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곧, 여러 기억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게이트에서 ‘지화자’가 몬스터와 싸웠던 기억을 비롯하여 여러 각성자, 소위 ‘랭커’라 불리는 자들과 싸웠던 기억들이 말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 중에는.
‘찾았다.’
공간계, 그중에서도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각성자와 싸웠던 기억이 있었다.
유은영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동시에 바람이 일며 순식간에 풍경이 뒤바뀌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야야! 지화자! 야! 갑자기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이동시키면 어떻게 해?!”
“오빠는? 라이 오빠는 어디 있어?! 오빠, 괜찮아?”
“클라라, 나 손 좀 봐줄래? 손목이 나간 것 같은데.”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말았다.
“크흠, 흠.”
그것도 현장 파견 부서의 부장, 우종문의 부장실 안에서 말이다.
“혹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게 설명해 줄 사람 있는가?”
온화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