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영웅호걸은 재빨랐다.
“지화자 팀장이 힘을 사용해서 이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이동하자고 한 건 영웅호걸 팀장님들이잖아요!”
유은영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에 영웅호걸이 사람 좋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동을 부탁하지는 않았지, 지 팀장.”
쌍둥이답게 말 한번 잘 맞춘다 싶었다. 유은영이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입을 벌릴 때.
“자자, 그만.”
업무를 보고 있던 우종문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서 저건 뭔가?”
우종문이 가리킨 것은 도저히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최 박사였다.
그 질문에 지화자가 대답했다.
“최 박사입니다.”
“최 박사?”
우종문의 눈이 동그래졌다. 곧, 그는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 미친 실험에 열광하더니 결국 저렇게 돼버렸군.”
쯧쯧, 혀를 차기 무섭게 최 박사가 정신을 차렸다.
“으… 으으…….”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던 그녀가 우종문의 부장실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고는 소리 질렀다.
“으아아악!!”
부장실이 떠나가라 외치는 비명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최 박사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악을 질러댔다.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아?! 아이들아, 내 귀여운 아이들아!”
리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아이를 유은영이 제 뒤로 보냈다. 라이는 진작 보호 중이었다.
최 박사는 유은영의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뭐하니? 엄마 말 들어야지! 저 못된 녀석들을 잡아먹어야지!!”
라이와 리아가 동시에 귀를 틀어막았다.
잡아먹어라.
그건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실패작이라 불리던 친구들을 저 마녀는 자신들에게 잡아먹어 없애라고 했었다.
라이와 리아가 공포에 질려 벌벌 떨던 그때.
“다 죽어가는 꼴로 시끄럽게 그만 굴지? 귀 아프거든.”
“맞아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데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세요? 귀 아프게.”
지화자와 유은영이 나섰다. 최 박사가 지화자를, 아니. 그녀의 모습을 한 유은영을 향해 침을 뱉어가며 외쳤다.
“지화자! 지화자아!!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아니었다면!!”
“아, 시끄럽네.”
딱.
손가락이 맞부딪침과 동시에 최 박사의 입에 불길이 일었다.
“――!”
그녀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최 박사에게 불을 붙인 신영웅이 싱긋 웃었다.
“우종문 부장님, 죄송합니다. 탄 내가 조금 나죠? 바로 환기 시킬게요. 야, 호걸.”
“네네, 창문 열겠습니다.”
후웅, 바람이 일었다. 곧 부장실의 모든 창문이 벌컥 열렸다.
시원한 공기가 사람들로 꽉 들어찬 답답한 부장실을 환기 시켰다.
그 사이 최 박사의 입에 붙었던 불길이 꺼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떨궜다.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 박사의 입은 화상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지화자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우종문에게 물었다.
“최 박사는 어떻게 할 겁니까?”
“일단, 지하로 데려다 놓지.”
그가 말하는 지하는 단순히 센터 내의 주차장이 아니었다.
센터의 가장 깊은 곳.
그곳을 센터의 사람들은 ‘지하’라고 불렀다.
우종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최 박사의 앞이었다.
우종문은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걸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곳에서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을 거라네, 최 박사.”
정신을 잃은 최 박사에게는 닿지 않을 목소리였다.
***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후, 갑작스럽게 우종문의 부장실로 이동됐던 사람들이 복도로 나왔다.
그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0팀도 있었다.
“지화자 팀장님! 태균 형님!”
센터에 남아 있던 0팀의 팀원들이 말이다. 후다닥, 그들에게 달려온 가하성이 호들갑을 떨었다.
“리아! 너 꼴이 왜 이래? 라이는 왜 그러고 있고!”
“하하, 하성 형님.”
하태균의 등에 업혀있던 라이가 힘없이 웃었다. 괜찮다는 듯이 말이다.
가하성이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0팀의 마지막 사람을 불렀다.
“유은영 씨는…….”
“보다시피 괜찮아요. 옷에 피가 조금 묻은 걸 빼면요.”
조금이 아닌데요.
가하성은 순간 그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뒀다. 어쨌든 그녀의 말대로 ‘유은영’은 무척이나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최 박사는요? 최 박사는 잡았습니까?”
“네, 잡았어요.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고요.”
“별거 없는 것 치고는 꽤 고전한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그녀의 몸으로 움직이고 있는 유은영은 움찔거렸다.
“뭐, 어쨌든 잡았으니 다행이죠.”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그 말을 뒤로 유은영이 말했다.
“일단 0팀으로 돌아가죠.”
“리아와 라이의 상처는요!”
“다 치료된 거 안 보이세요?”
지화자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클라라가 치료해줬거든요.”
“클라라……?”
“영웅호걸 팀장님네 전담 어시스트 힐러에요. 그 사람이 애들 상처 봐줬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가하성 씨.”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가하성이 버럭 소리 질렀다.
“물론, 유은영 씨의 말대로 애들 상처 모두 치료된 거 알겠어요. 하지만 애들 꼴이 엉망이잖아요! 특히나 라이!”
가하성이 검지를 들어 라이를 가리켰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태균 형님 등에 업혀있는데, 저걸 어떻게 걱정 안 합니까?”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녀석, 원래 이렇게 걱정이 많은 놈이었나?’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처음 0팀에 들어왔을 때 분명 그랬었다.
과거의 일을 잠시 떠올렸던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걱정하세요.”
“네?”
“걱정하시라구요. 저는 이만 0팀에 돌아가 볼 테니까요. 최 박사 일로 곧 바빠지지 않겠어요?”
가하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런 그를 향해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제가 서류는 또 기가 막히게 정리하잖아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지화자는 그 말을 끝으로 정말 0팀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 버렸다. 가하성은 멍하니 있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진짜,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도대체 왜 저딴 여자를 전담 어시스트 힐러로……!”
“하성아!”
하태균이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자리에 ‘지화자’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하성의 말을 멈춰 세운 하태균이 엄하게 말했다.
“팀장님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결정하신 거겠지.”
“그리고 유은영의 말대로 우리 괜찮은걸?”
“맞아요, 하성 형님.”
하태균의 말을 뒤이어 리아와 라이가 밝게 말했다. 특히 라이가 웃는 낯으로 가하성의 걱정을 덜어줬다.
“제가 태균 형님 등에 업혀있었던 건,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런 거였으니까요.”
“너희…….”
가하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그의 어깨를 ‘지화자’가 가볍게 두드려줬다.
“가하성 씨, 그래도 정 걱정되면 라이와 리아를 의무실로 데려다주지 않겠어요? 하태균 씨도 함께 가도 돼요. 저는 0팀으로 가봐야 할 것 같거든요.”
그 말에 가하성이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그치, 리아?”
라이가 하태균의 등에서 내려오며 다급하게 말했다. 리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크게 고갯짓하는 리아를 향해 지화자가, 아니. 유은영이 미소를 그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두 사람 다 의무실에서 진찰을 받도록 하세요. 클라라 씨께서 어련히 알아서 치료해줬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알았죠?”
세입자는 집주인의 말을 들어야 하는 법.
결국, 라이와 리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가하성과 하태균과 함께 의무실로 향했다.
“라이, 리아. 가자. 라이는 걷기 힘들면 말하고.”
“하성 형님이 업어 주려고요? 하지만 형님은 저보다 체구가 작잖아요!”
“태균 형님이 알아서 업어 줄 테니까 말하라는 거잖아!”
네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멀어졌다.
‘라이 씨랑 리아 씨는 남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더니.’
0팀에도 그런다고 들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두 사람이 많이 바뀐 모양이다.
유은영은 자신의 팀원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0팀으로 향했다.
“유은영 씨, 아니. 지화자 씨.”
벌컥, 문을 열어젖힌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왜 그랬어요?”
“뭐가?”
“답지 않게 너무 날을 세웠잖아요. 그것도 팀원들한테요.”
묻는 말에 지화자가 아래턱을 어루만지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네?”
유은영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지화자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혹시, 언니의 몸을 통해 내가 무력한 인간이란 걸 몸소 깨달아서 그런 걸까?”
“아, 하하, 제 몸뚱이가 별로 쓸모가 없기는 하죠.”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장난이야, 언니.”
“네?”
“장난이라고.”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나는 말이야. 언니가 내 몸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아니, 그 누구도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런데 아니었네?”
지화자의 시선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제힘만큼은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그녀에게로.
“언니, 생각해 보니 우리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네에?!”
유은영이 놀라 소리 질렀다.
“미쳤어요?!”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다니. 언니, 나 상처받았어.”
“장난도 적당히 쳐야죠!”
심장 떨어질 뻔 했다며 오두방정을 떠는 모습에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손등을 들어 입가를 가리면서 말이다. 그 순간 유은영은 보았다.
“이거 뭐예요?”
“응?”
유은영이 지화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신영웅이 일으킨 불꽃에 튄 것에 맞아 생긴 화상 자국이었다.
“화상 입은 거죠? 언제 입은 거예요? 아니, 그 전에 왜 말을 안 했어요!”
“그야, 가벼운 상처니까.”
“이게 뭐가 가벼운 상처에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클라라 언니한테 상처 좀 봐달라고 말하죠! 안 말하고 뭐했던 거예요?”
“기싸움?”
“네?”
“언니는 알 거 없어. 그보다 그렇게 심각한 상처 아니니까 너무 호들갑 떨지 마.”
“어떻게 호들갑을 안 떨어요! 그거 내 몸인데!”
“아하, 그랬지?”
지화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얼마 가지 않아 지워졌다.
“그리고 지화자 씨도 아팠을 거 아니에요!”
“뭐?”
“지화자 씨가 지금 이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니까 저희 몸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처 따위 하나도 아프지 않았을 테지만…….”
유은영이 속상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지화자 씨는 지금 제 몸이잖아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아님 어쩌면 그보다 더 약할 수도 있을 F급 몸뚱어리.”
그랬다.
지화자는 F급, 그러니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몸뚱이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유은영이 지화자의 상처를 꼼꼼하게 살피며 물었다.
“안 아팠어요?”
지화자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그제야 그녀는, 화상을 입은 그때 따가웠다는 느낌을 받은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자신이 느낀 ‘고통’은 그런 것과는 결이 달랐으니.
그래서 지화자는 말했다.
“응, 안 아팠어.”
“거짓말하시기는!”
“거짓말 아닌데?”
“어쨌든 손이나 줘봐요! 다행히 여기 화상 연고 있네요.”
유은영이 화상 연고를 들고 와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지화자 씨, 설마 가하성 씨가 지화자 씨의 상처는 보지 못하고 애들만 챙겨서 그렇게 날을 세웠던 건 아니죠?”
“뭐? 내가 어린아이인 줄 알아? 절대 아니거든?”
“네네, 그렇게 믿을게요.”
“언니, 내가 가진 힘 좀 잘 다루게 됐다고 점점 기어오르는 것 같아. 내 착각이겠지?”
“물론이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좀 하지. 어쨌거나 지화자는 픽 웃었다. 그게 유은영을 신경을 거슬러버리고 말았지만.
“웃지 마요. 지금 제 소중한 몸에 상처를 냈는데 웃음이 나와요?”
유은영이, 상처를 입은 손등에 호호 입김을 불어주며 화상 연고를 발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보지 못했다. 지화자의 입가에 걸린 의미 모를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