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6화 (36/200)

제36화

유은영이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지화자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을 때.

“하여튼 짜증 나요.”

“하성아.”

“애들만 아니었으면 담배 한 갑 벌써 다 피웠을걸요?”

가하성은 담배 대신 의무실에서 얻은 금연 사탕을 입에 물고 구시렁대는 중이었다.

“지화자 팀장님게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유은영, 그 여자를 왜 데리고 온 거죠?”

“우리 팀에도 전담 어시스트 힐러가 데리고 온 거라고 했잖냐?”

“그건 알아요! 하지만 폐급을 데리고 오다니요!!”

가하성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안마 실력은 아주 기가 막힌 것 같았지만요.”

기만 막혔을까? 잘못했다면 뭉친 어깨 근육이 풀리다 못해 끊어지고 말았을 거다.

“어쨌든 저는 그 여자, 마음에 안 들어요. 애들이 엉망진창인 몰골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라니! 지화자 팀장님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유은영이 그 말을 들었더라면 자신은 그런 사람 아니라며 항변을 했을 거다.

물론, 생각으로만 그랬을 거란 말이었다.

그렇게 가하성이 유은영을 욕하고 덩달아 지화자를 한껏 욕할 때였다.

“그만 욕해!”

“리아?”

리아가 씩씩거리며 의무실에서 나왔다.

“지화자도 유은영도 나랑 라이 오빠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힘내줬는데! 하성이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날 짜증이야!”

“야, 리아. 내가 언제 맨날 짜증을 부렸다고…….”

“지금도 부리고 있잖아!”

리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그만할 말이 없어진 가하성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며 말을 돌렸다.

“라이는?”

“오빠는 자고 있어. 많이 피곤했나 봐.”

“그럴 만도 하지. 너도 네 오빠 옆에서 자는 게 어때?”

“싫어.”

리아가 고개를 젓고는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나, 마녀 만나러 가고 싶어.”

가하성과 하태균이 얼굴을 굳혔다. 리아가 말하는 ‘마녀’가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최 박사, 본명 ‘최하연’.

하태균이 어색하게 웃으며 리아를 말렸다.

“리아, 마녀는 지금 우종문 부장님이랑 함께 있을 거다. 아무리 너라도 지금 만나러 가는 건.”

“힘들어도 갈래! 가고 싶어!”

하태균은 어린아이한테 약했다. 것도 자그마한 생물에게 특히나 약한 남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리아를 번쩍 안아 목마를 태우고는 말했다.

“그래, 가자! 우리 리아가 가고 싶다는데 어디든 데려다줘야지!”

“아니, 형님! 그러면 안 되죠! 그리고 팀장님 허락 없이는 지하에 못 내려가는 거 몰라요?!”

“허락이야 받으면 되지!”

“아, 좀!”

가하성이 다급히 하태균을 붙잡았다. 최 박사는 우종문이 직접 심문중에 있을 게 분명했다.

센터가 세워지기 전, 곳곳에서 게이트가 열리던 그 불안정한 시대를 갈망하고 있는 미치광이들은 최 박사 말고도 여럿 있었다.

‘그 사람들 모두 지유화 님을 이어 지화자 팀장님이 정리했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잡초였다. 암만 뿌리 뽑아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잡초.

우종문은 그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최 박사를 심문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 행위를 방해하겠다니!

‘절대로 안 될 소리지!’

무엇보다 지하는 각 부서의 부장과 팀장님들만이 내려갈 수 있는 곳.

예외적으로 동행인을 둘 수 있다고 하나 지화자가 그들의 동행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태균 형님, 진정해요! 리아, 너도 생각이란 걸 좀 해! 마녀는 나중에 만나면 되잖아!”

“나중에 만나면 죽어 있을 거잖아! 죽은 사람이랑 대화를 하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 바보, 세상에 존재했다. 중국의 랭킹 1위가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하성은 굳이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지 않았다. 대신 필사적으로 두 사람을 말렸다.

“어쨌든, 안 돼! 못 가!”

가하성이 누군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던 그때.

“지금 뭐하고 있는 짓이죠?”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눈빛하고는.’

지화자가 쯧, 혀를 찼다. 그리고 가하성의 날 선 시선은 유은영도 느낀 지라 그녀는 말했다.

“리아 씨,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대요?”

억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해보고자 건넨 말이었다. 유은영의 걱정 어린 물음에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그런데 지화자야, 나 옷 갈아입고 싶은데.”

“안 그래도 갈아입을 옷 좀 가지고 왔어요.”

“우와! 정말? 집에는 언제 다녀왔대?”

“힘 좀 써봤죠.”

성언(聖言), 모든 것을 기억하라.

유은영은 모두를 우종문의 부장실로 이동시켰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한번 더 그 힘을 사용했다.

그 힘, 마음대로 사용한다면서 지화자에게 잔소리 좀 얻어먹었지만 말이다.

“자, 어서 갈아입고 오세요.”

“응, 고마워!”

리아가 옷을 받아 들고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은영이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곤 하태균에게 물었다.

“라이 씨는요?”

“안에서 자고 있습니다. 긴장이 풀린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디 사는 누구는 애들 괜찮다면서 그랬으니, 참.”

가하성이 비아냥거렸다. 그런 그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하태균이 말했다.

“하성아, 유은영 씨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걸 거다.”

아닐 텐데요.

유은영은 치밀어 올랐던 말을 애써 집어삼켰다.

지화자는 리아와 라이의 상태에 별 관심이 없었을 거다. 유은영의 생각은 그랬다.

“그래도 팀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네?”

“리아 좀 말려주세요. 마녀를, 그러니까 최 박사 만나러 가고 싶다고 아주 난리에요.”

“최 박사를 왜요?”

그렇게 물은 사람은 지화자였다. 유은영의 몸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질문에 가하성이 미간을 좁혔다.

“유은영 씨가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은 아닙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 말해 주시죠.”

파지직,

지화자와 가하성 사이에서 불꽃 어린 시선이 튀었다.

얼떨결에 그 둘 사이에 끼게 된 하태균과 유은영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지화자와 가하성의 소리 없는 신경전을 중단시킨 건 옷을 갈아입고 나온 리아였다.

“마녀한테 사과받고 싶어서 그랬어.”

“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험악하게 구겨진 그녀의 모습에 리아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나랑 오빠한테 왜 그랬는지. 내 친구들한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어.”

“그걸 묻는다고 그 새끼가 가르쳐줄 것 같아?”

“유은영 씨, 애 앞에서 욕하지 마세요.”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를 타박하고는 부드럽게 목소리를 냈다.

“리아 씨, 최 박사는 ‘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에요.”

“나도 그런 인간이잖아.”

“네?”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리아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나, 나도 오빠도 ‘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아니잖아. 지화자가 처음 우리한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때, 이것저것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많이 들었어.”

리아가 유은영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고.”

그 말에 유은영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인간이에요!”

리아가 화들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였다. 유은영은 아이가 놀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리아 씨도, 라이 씨도 울고 웃을 줄 아는 인간이라고요! 감정과 이성이 있는, 그런 인간이요!”

유은영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리아 씨랑 라이 씨를 보고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해요.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복도에 순식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유은영은 괜히 뻘쭘해졌다.

‘너무 흥분했나?’

하지만 리아는 격하게 감동을 받은 얼굴로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지화자야, 고마워.”

작은 아이가 저보다 몇 배는 큰 어른을 꼭 끌어안았다. 유은영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할 것 없어요. 하지만 최 박사를 만나러 가는 건 안 돼요. 사과를 듣고 싶다면 제가 대신 듣고 올게요. 괜찮죠?”

“우웅.”

리아가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하성 씨, 하태균 씨. 리아랑 라이를 맡겨도 괜찮을까요? 오늘 일은 저와 유은영 씨가 대충 처리해놓을게요.”

지화자가 놀란 눈을 보였다.

‘내가 왜?’

라고 묻는 듯한 시선에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우리는 한 몸이잖아요.’

그 뜻이 담긴 미소였다. 지화자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가하성과 하태균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라이 깨어나는 대로 퇴근하겠습니다. 라이랑 리아, 지금 팀장님네 집에서 살고 있죠?”

“네, 리아 씨. 집 비밀번호 외웠죠?”

“응! 나 똑똑해! 안 잊었어!”

“네네, 좋아요.”

유은영은 마지막으로 리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몸을 돌렸다.

자신의 몸을 하고있는 지화자와 함께 말이다.

“저기요, 지화자 팀장님. 0팀에 가장 늦게 들어온 신입과 함께 일하겠다니요.”

“하지만 유은영 씨가 우종문 부장님의 부장실을 나오자마자 그랬잖아요? 일 좀 처리하러 가보겠다고요.”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유은영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처리하러 가보자고요, 그 일을요.”

“무슨 일?”

“리아 씨랑 약속한 일이요.”

그 말에 지화자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최 박사가 순순히 그 녀석들한테 사과할 것 같아? 사과는 개뿔, 걔들을 내놓으라고 온갖 난리를 칠걸?”

“그래도 상관없어요.”

유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미쳤는지, 센터가 세워지기 전의 그때를 왜 그렇게 그리워하고 재현하고자 하는지도 좀 듣고 싶고요.”

지화자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언니 마음대로 해. 하지만 우종문 부장께서 지하에 내려와도 좋다고 했던가?”

“그거야 가서 허락받으면 될 일이죠.”

“우종문 부장은 지금 지하에 있을 텐데?”

“그러니까 지하로 내려가야죠.”

그 말에 지화자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 언니 성격이 원래 저렇게 대책 없었나?’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왜 저렇게 사람이 바뀐 거지?’

지화자는 자신 탓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얼떨결에 유은영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됐다.

지하는 오직 각 부서의 부장과 팀장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외적으로, 동행인을 둘 수 있었지마는.

“설마 내가 동행인의 자격으로 지하에 출입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지화자가 인생 참 오래 보고 살 일이라면서 중얼거렸다. 유은영은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지하는 어떤 곳이에요? 이혜나 팀장님께서 지하를 다녀올 때마다 맨날 반차 냈거든요.”

“글쎄, 언니한테는 조금 비위가 상하는 곳?”

“네?”

“보면 알아.”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지하에 도착한 거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윽……!”

유은영이 코를 틀어막았다.

“피비린내가 왜 이렇게 심해요?”

“언니, 내가 센터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줬을 텐데 까먹었어?”

“네.”

고민도 않고 답하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도대체 내가 부여받은 ‘성언(聖言)’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지화자가 쯧 혀를 차고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센터의 지하는 일종의 취조실이라고 보면 돼.”

“취조실이요?”

“그래, 어느 정도 고문이 가해져도 상관없는 취조실.”

지화자가 앞서 걸어 나가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죄수를 인간 이하로 취급해도 괜찮은 곳이란 말이지.”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우종문 부장은 저기 있네. 가서 이야기 나누고 와.”

그 말에 유은영이 정신을 차리곤 물었다.

“지화자 씨는 안 가세요?”

“저 인간이 힘을 사용하고 있을 때는 폐급 몸뚱이로는 가까이 갈 수 없거든.”

계속 폐급거리네. 폐급 맞지만.

유은영이 뚱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혼자서 다녀올게요.”

그렇게 유은영은 우종문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는 최 박사가 두 눈이 풀린 채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딱히 고문을 가한 흔적은 안 보이는데?’

유은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지화자! 내가 너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지?!”

“그, 그게, 배가 고파서.”

“밥 줬잖아!”

유은영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자신의 눈앞에서 영화가 펼쳐지듯, 과거의 장면이 재현되고 있었다. ‘지화자’의 과거가 말이다.

“엄마, 화자한테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유화야!”

지화자는 정반대의 인상을 지닌 여자아이가 싱긋 웃으며 제 엄마를 말렸다.

지화자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제 첫째 딸의 말에 재잘거렸다.

“우리 유화는 참 착하기도 하지. 어떻게 저런 년을 네 동생이랍시고 낳았는지 모르겠다니까!”

“에이, 그렇게 말하면 화자가 상처받잖아요.”

지유화.

그녀의 동생이었던 지화자가 죽여버린 전(前) 랭킹 1위의, 만인의 사랑을 받던 각성자.

어릴 적 모습인 그녀의 두 눈이 자신에게로, 아니.

‘지화자’에게로 향했다.

“저는 화자가 제 동생이라서 정말 좋은걸요?”

유은영은 보았다.

자신을 향해, 아니. ‘지화자’를 향해 싱긋 웃고 있는 지유화의 꺼림칙한 미소를.

그 미소에서 동생에 대한 사랑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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