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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8화 (38/200)

제38화

어쨌거나 그렇게 도착한 집.

현관문을 뚫고 나올 정도로 커다란 라이와 리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라이랑 리아 녀석, 걱정한 것보다 상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게요? 다행이다. 우울해하고 있을까봐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 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뻔했네요.”

“그러게,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왜 사자고 한 거야?”

“이거 라이랑 리아 또래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유은영과 지화자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둘의 앞에 보인 광경은.

“읏차! 라이, 리아! 어때?!”

“와하하! 형님, 최고예요!”

“태균 오빠, 최고! 완전 재밌어! 하성이 오빠, 우리 잘 찍고 있어? 잘 찍고 있어야 해!”

“그래, 잘 찍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라이와 리아를 비롯해, 하태균과 가하성이 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하태균의 양팔에 매달려 있던 라이와 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누님이다!”

“어디? 어? 정말 지화자네?!”

라이와 리아가 하태균한테서 내려와선 유은영에게 달려왔다. 유은영은 두 사람을 반길 생각도 못 하고 어버버거렸다.

툭,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담고 있던 상자는 바닥에 떨어졌다.

“라, 라이 씨, 리아 씨.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아, 그게 말입니다.”

하태균이 멋쩍게 웃었다.

“오늘 좀 얘네한테 힘든 하루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태균 형님이 지 팀장님 퇴근할 때까지만 애들 좀 봐주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러고 있었죠.”

“지화자 팀장님이 함부로 집에 들어오는 거 싫어하는 것 압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돼서…….”

하태균이 절절매며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 그때였다.

“그런데, 지 팀장님.”

가하성이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고는 무심하게 물었다.

“뒤에 유은영 씨는 뭐예요?”

하하, X됐다.

서로 가까이 지내면 닮는다더니, 지화자로부터 욕설을 배운 유은영이었다.

***

어쩌지? 어쩌면 좋지?

유은영은 두 눈을 데굴 굴렀다. 그녀 뒤의 지화자는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으로 라이와 리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라면 자신이 유은영과 함께 퇴근할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 왜 저 두 사람과 함께 있는 거야?!’

지화자의 시선 속에 담긴 말을 어떻게 읽었는지, 라이와 리아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결국, 수습은 지화자의 몫이었다. 유은영은 공황에 빠진 것 같으니 말이다.

“그게, 지화자 씨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요. 설마 하태균 씨와 가하성 씨가 함께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리를 피해줬으면 한다는 소리.

가하성은 기가 막히게 그 말을 알아듣고는 뻘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그렇군요. 이것 참 죄송합니다. 그럼, 지화자 팀장님. 저희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가하성이었다. 가하성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선 유은영이 떨어뜨린 상자를 주워 들었다.

“이거 아이스크림 케이크죠?”

“네? 네, 그렇기는한데.”

“0팀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다 같이 먹는 게 어때요?”

별로일 것 같은데요.

유은영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말을 겨우 집어삼키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뒤통수가 뚫릴 것처럼 날 선 시선이 느껴졌다. 유은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어떻게든 지화자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이와 리아는 밝은 얼굴로 후다닥 유은영에게 달려왔다.

“아이스크림 케이크요?”

“나 먹어본 적 없어!”

“저두요!”

유은영에게 달려온 라이와 리아가 그녀에게 매달렸다.

“지화자 누님!”

“지화자야!”

다 같이 먹자는 듯,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아이들의 모습에 유은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래요, 같이 먹어요.”

나중에 지화자 씨한테 한 소리 듣게 될 테지만 알 게 뭔가요! 지금이 중요한 것을!

그때, 가하성이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께서는 팀장님과 무슨 할 일이 있어서 온 거래요?”

“가하성 씨는 알 필요 없는 일로 왔죠.”

지화자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가하성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는 찰나.

“하하, 유은영 씨. 하성이랑 그러고 있지 말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먹죠.”

하태균이 두 사람을 말렸다.

지화자와 가하성은 그의 만류로 신경전을 마쳤다. 그렇게 0팀의 모든 사람이 삼삼오오 지화자의 거실에 모이게 됐다.

“유은영 씨, 아이스크림 좀 드셔 보시죠. 여기, 이게 참 맛있습니다. 한 입 하시죠.”

“죄송하지만 제가 민트를 싫어해서요.”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화자 팀장님께서도 민트를…….”

싫어했다. 싫어했는데.

“자, 잘 드시고 계시군요.”

“그러게요.”

가하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하태균의 말에 동의했다.

유은영은 지화자를 비롯한 0팀의 눈치를 살피고는 먹고 있던 민트 초코를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원래 사람은 크면서 입맛이 바뀐다잖아요? 어제 먹은 음식을 오늘 싫어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에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언니.

지화자는 유은영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태균은 사람 좋게 웃으며 대꾸해줬다.

“아아, 그렇군요.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하하.”

저 멍청이는 뭘 몰랐다고 넘기는 거고!

지화자는 골치가 아파졌다.

라이와 리아는 그저 이 상황이 즐거웠다.

“맛있어!”

“맞아, 맛있어요!”

라이가 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베어 물었다.

열일곱 살이라고 하기에는 체구가 큰 몸집이었지만,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아이들이었다.

“많이 먹어요, 다음에도 사 줄 테니까요.”

물론, 그 돈은 지화자의 카드에서 나가는 거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지화자 물끄러미 유은영을 쳐다봤다.

당연히 유은영은 그 시선을 무시하며 라이와 리아에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건넸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니. 아마도 처음이었을 0팀의 화기애애한 시간이 끝났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은영 씨,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네, 걱정 감사해요.”

지화자가 전혀 감사하지 않은 얼굴로 그리 말했다.

곧, 하태균과 가하성이 떠났고.

“라이, 리아.”

지화자가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남매를 불렀다. 라이와 리아가 그녀의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지화자는 매섭게 두 아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지화자 씨의 동거인이라는 거 비밀이라고 했을 텐데?”

“그, 그게…….”

라이가 우물쭈물거렸다.

“그치만 무서웠단 말이에요.”

“맞아! 무서웠어! 지화자의 집은 엄청 넓지만 삭막하잖아!”

“우리 집이 삭막하다고?”

지화자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다. 라이와 리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자신들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지화자랑 유은영은 같이 사니까 우리 집이라고 한 거겠지!’

‘맞아 맞아,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겠지!’

라고 말이다.

지화자는 뺨을 긁적이며 집 내부를 둘러봤다. 냉장고든 TV든 뭐든 있을 건 다 있었다.

“지화자 팀장님도 라이랑 리아랑 똑같이 생각합니까?”

“네?”

“우리 집이 삭막하냐고요.”

의외의 질문에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으며 말했다.

“혼자나 둘만 있을 때는 그렇게 느껴져요. 하지만, 이렇게.”

유은영이 지화자의 몸으로 라이와 리아를 양팔로 껴안으며 입을 열었다.

“넷이 다 같이 있으면 그렇게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는걸요? 그쵸? 라이 씨, 리아 씨?”

“네에!”

라이와 리아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지화자는 멍하니 있다가 실소를 흘렸다.

라이와 리아, 두 아이 모두 오늘 최 박사를 만난 것 치고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다행이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지화자는 단 한 번도 상대에게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유은영 씨랑 계속 붙어 있어서 그런가?’

지화자는 눈앞에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후우,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워진 밤에 하태균이 웃는 낯으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다행이지, 하성아? 지화자 팀장님께서 그렇게 화가 나신 것 같지 않아 보여서.”

가하성은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

“하성아?”

“네? 아, 잠깐 다른 생각 한다고 못 들었어요. 뭐라고 했어요?”

“지화자 팀장님께서 우리가 집에 있는 거로 크게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어.”

“아아, 그것참 다행이었죠. 지 팀장님께서 저희 보자마자 어떤 쌍욕을 박으시려나 싶었는데 말이에요.”

그 말에 하태균이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하성아, 너도 이제 슬슬 인정하지 그러냐?”

“뭐를요?”

“지화자 팀장님께서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 말에 가하성이 불퉁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 변덕 좀 부리고 있는 걸 거예요. 금방 원래의 팀장님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보다 태균 형님,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말이냐?”

“유은영 씨요.”

“유은영 씨가 왜?”

묻는 말에 가하성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님네 처음 들어갔을 때 못 보던 구두가 있었잖아요.”

“그런 게 있었다고?”

“네, 못 보셨어요?”

“못 봤는데?”

하태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에 가하성이 이마를 짚었다.

‘맞다, 태균 형님. 남들 신경 안 쓰기로는 지 팀장님 못지않았지!’

하태균은 지화자는 다르게 ‘좋은 쪽’으로 남들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가하성은 말했다.

“현관에 있던 그 구두, 왜인지 모르게 익숙해서요.”

분명, 어디선가 봤던 구두였다. 무엇보다 지화자가 구두라니.

‘몬스터나 범죄자 머리 찍어 내릴 용도로 산 게 아니라면 절대 있을 리가 없는 거지.’

하지만 하태균은 정말 현관에 있던 구두를 못 본 듯 가하성에게 물었다.

“그러냐?”

“네, 설마…….”

가하성이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가 따악, 손가락을 맞부딪치며 입을 열었다.

“지 팀장님이랑 동거 중인 사람이 라이랑 리아 말고 한 명 더 있는 건 아니겠죠?”

“에이, 그럴 리가 있겠냐?”

하긴, 지화자는 집에 누군가를 들이는 걸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라이와 리아를 맡은 건 단순히 예전에 두 사람을 맡은 전적이 있기 때문일 뿐.

“그보다 하성아, 우리는 오랜만에 2차나 즐기러 가자! 내일이면 최 박사 일로 엄청 바빠질 텐데 시간 있을 때 즐겨야지 않겠냐?!”

“형님은 운동하시는 분이 그렇게 술을 드시고 싶으세요?”

“운동으로 빼면 되니까 괜찮아!”

“네네, 그러시겠죠. 그보다 좀 놔주세요. 한 대 피게.”

가하성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이들 앞에서 피지 못해 얼마나 좀이 쑤시던지.

그는 곧장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유은영 씨, 거기서 뭐해요?”

“가하성 씨랑 하태균 씨 가는 거 구경 중이에요.”

그런 걸 왜 구경중이냐고 물으려던 유은영은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는 만에 하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그보다 우리는 대화 좀 할까요? 라이, 리아. 너희는 양치하고 그만 자러 들어가.”

“우리도 지화자랑 유은영이 나눌 대화, 같이 들으면 안 돼?”

“안 돼.”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라이와 리아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양치하러 갔다. 3분, 정확하게 양치 시간을 지킨 라이와 리아가 지화자와 유은영에게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지화자도 유은영도 잘 자.”

곧, 아이들의 방문이 닫혔다.

순식간에 잠에든 듯 조용해진 집 안에 지화자의, 정확히는 ‘유은영’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울렸다.

“애들도 자러 들어갔으니 이제 대화 좀 해볼까?”

“라이 씨랑 리아 씨가 자러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던 거예요?”

“쟤들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거든.”

그 말에 유은영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최 박사에 관한 이야기군요.”

“그렇지. 그리고 유은영 씨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좀 들려주려고 해.”

“네?”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화자 씨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가르쳐줬잖아요.”

“그런데 딱 하나, 가르쳐주지 않은 게 있거든.”

“그런 게 있어요?”

“응, 나랑 언니가 몸이 바뀌어 있을 동안에 최 박사 같은 녀석이 설마 나올까 싶어서 안 가르쳐줬거든.”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최 박사가.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인간이 아무래도 나온 것 같다.

지화자가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선지자라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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