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서도운 씨, 더 밟아요! 더!”
“안 그래도 열심히 밟고 있는 중입니다.”
서도운은 정말로 열심히 밟고 있는 중이었다. 제한 속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강원도 평창을 벗어나 열심히 센터로 달려가고 있을 때.
“으윽…….”
뒷좌석에 누워있던 서이안이 앓는 목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그 작은 소리를 들은 유은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서이안 씨, 정신 좀 들어요?”
쿨럭, 기침을 토해낸 서이안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백도진, 그 빌어먹을 새끼는?”
“놓쳤어요.”
“뭐?!”
서이안이 버럭 소리 질렀다.
“너무 큰소리 내지 마세요. 일단, 눈이나 좀 붙이세요.”
하지만 서이안은 순순히 유은영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인데?”
“센터요.”
“센터에는 왜?”
그 말에 서도운이 대답했다.
“길드장님께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길드원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센터로 가야죠.”
“내가 그랬다고?”
“네, 정신을 잃기 전에 그랬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쩌다 백도진 길드장님께 붙잡혀 그런 꼴을 당하고 있던 겁니까?”
서이안이 입을 다물었다. 그에 유은영이 말했다.
“서이안 씨, 어차피 센터에 협조 요청을 한 이상 백도진 길드장님과 있었던 일에 대해 알려주셔야 해요.”
그 말에 서이안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내가 언제 너희한테 협조 요청을 했다고 그래? 그런 적 없거든? 그런 기억도 없고!”
“저희가 했습니다.”
서도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서이안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다가 빼액 소리 질렀다.
“센터에 협조 요청은 왜 한 거야?! 내가 어련히 알아서 돌아갈 텐데!”
“백도진 길드장님께 꼴사나운 모습으로 붙잡혀 있던 분께서 잘도 말하시는군요.”
서이안이 입을 다물었다. 서도운은 그런 그를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길드장님께서 일주일이 넘도록 행방이 불분명해졌는데 어떻게 합니까? 손가락 빨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릴까요?”
맞는 말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서이안이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백도진, 그 자식이 지유화 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주겠다고 했거든.”
서도운이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유화 님께서는 5년도 전에 돌아가신 분 아닙니까?”
“그래, 네 옆에 있는 지화자 팀장님께서 손수 하늘나라로 보내주셨지.”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고, 서이안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백도진은 네크로맨서야. 지유화 님의 혼을 붙잡고 있는 건가 해서 급하게 달려갔지.”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와 대화를 나누게 해주겠다는 그런 헛소리를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에 서도운이 물었다.
“그런데 방 안의 포스터는 왜 떼어 가셨던 겁니까?”
“백도진, 그 망할 새끼가 그걸 원했으니까!”
유은영과 서도운이 그 말에 입을 다물고는 생각했다.
‘바보.’
서이안도 바보였고, 그 포스터를 원한 백도진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흠, 서도운이 헛기침을 하고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보다 길드장님, 지화자 팀장님께 감사 인사나 하십시오.”
“뭐? 내가 왜?”
“센터의 협조 아래, 지화자 팀장님께서 나서지 않았다면 길드장님께서는 그대로 백도진 길드장님의 밥이 되셨을 테니까요.”
“누가 그 자식의 밥이 됐을 거래? 아니거든?!”
“그럼, 제가 본 꼴은 뭡니까?”
날카로운 질문에 서이안이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그는 분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분할만도 했다.
서이안, 그는 백도진과 상성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래도 그런 자식,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서이안은 그를 찾아간 거였다.
서이안이 분한 마음에 이를 으득 갈자 유은영이 웃는 낯으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자자, 그보다 서이안 길드장님은 눈 좀 붙이고 계세요. 곧 센터에 도착하니까요.”
“됐어, 이제 멀쩡하거든.”
멀쩡하기는 개뿔.
서이안의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다. 그 흰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피는 또 어떻고.
어쨌든 간에 백도진이 그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으나, 서이안은 빈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서이안은 유은영이 암만 말해도 두 눈 붙이고 휴식을 취할 남자가 아니었다.
더더욱 ‘지화자’가 하는 말이 아닌가? 스콜피언의 독주께서 들을 리가 없었다.
결국, 유은영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서이안 씨.”
“왜?”
“죄송해요.”
무기를 들어 서이안의 명치 부근을 빠르게 찔렀다.
“컥……!”
서이안이 갑작스러운 통증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곧 시야가 새까맣게 점철됐다.
“지, 화자!”
그것을 마지막으로 서이안은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서도운이 잡고 있던 핸들을 놓고 짝짝, 손뼉을 쳤다.
“훌륭하십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상태로 몸만 살짝 틀어 뒷좌석에 있던 서이안을 완벽하게 기절시키다니!
서도운의 칭찬에 유은영이 헤실거렸다.
“고마워요. 서도운 씨의 운전 실력도 최고예요.”
핸들을 놓은 상태로 완벽하게 주행 중이라니!
유은영의 칭찬이 서도운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죽이 아주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은영의 낯빛은 곧 어두워졌다.
“지화자!!”
유은영은 충분히 백도진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안 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화자 씨였다면…….’
백도진, 그를 죽였을 테다.
백도진이 행한 행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은영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야. 나는 지화자 씨가 아니니까.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 하지만, 그 사람…….’
상처를 심하게 입었다.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죽을까? 죽지는 않겠지?’
유은영이 시무룩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입술을 우물거릴 때였다.
“지화자 길드장님? 곧 센터에 도착합니다.”
“아…! 네……!”
드디어 센터로 돌아왔다.
***
“헉, 허억…….”
폐허나 다름없는 곳, 한때는 온갖 각성자들이 드나들던 ‘넘버(Number)’의 길드가 있던 장소.
백도진은 피투성이의 몰골로 그곳에 나타났다.
“유화야, 지유화.”
백도진이 몸을 질질 끌면서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꼭, 다시 살려줄게. 조금만 기다려, 유화야.”
지유화는 죽은 후, 화장을 한 터라 몸이 없었다.
그렇기에 백도진은 그녀의 몸을 만들어주고자 온갖 노숙자 등을 짐승처럼 사냥했었다.
지유화, 그녀에게 몸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리고 백도진은 정말 생전 그녀의 모습을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마지막! 그녀와 똑같은 S급 각성자를 이용해 혼을 불러 오는 일만 남았었는데!
“빌어먹을 지화자……!”
지유화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성한 행위를 방해했다.
백도진이 분한 마음에 까드득, 이를 갈 때였다.
“역시, 여기 있었네.”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란 백도진이 고개를 돌렸다.
심한 상처로 인해 순간 시야가 흔들린 백도진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 지화자?”
“그렇게 보여?”
지화자가, 아니. ‘유은영’이 싱긋 웃는 낯으로 그에게 물었다. 백도진이 멍하니 입술을 뻐금거리다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네년은 누구냐?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
“그야, 지유화 때문에 싫어도 자주 왔던 곳이니까 말이지.”
백도진이 얼굴을 구겼다.
지유화와 친분이 있던 사람 중, 눈앞의 여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화자는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우리 언니도 참, 마무리가 너무 약하단 말이야?”
지화자가 총을 꺼내 들었다.
웬만한 각성자는 만질 수 없는 센터 내의 대 몬서트 용 특수 총이었다.
S급 아이템 못지않은 위력을 가진 것을 ‘지화자’의 이름을 이용해 지니고 온 그녀가 싱긋 웃었다.
“사람들은 가끔 착각해.”
“뭐?”
“무작정 다친 녀석을 치료해주면, 그 녀석이 은혜를 갚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고. 아님, 죽이지 않고 놓아주면 다시는 기어오르지 않을 거라는 착각.”
백도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위험하다.’
눈앞의 여자가 제게 위험한 인물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백도진이 가쁜 숨을 내쉬며 사령들을 불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지화자에게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센터를 탈탈 털어 가지고 온 S급 이상의 아이템들 덕분이었다. 더욱이 눈앞의 남자는 유은영으로 인해 온갖 상처를 입은 남자였다.
그것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신체 어딘가 불구가 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남자.
불구만 될까? 목숨까지 위험해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지화자는 말한 거다.
우리 유은영 씨께서는 마무리가 참 약하다고 말이다. 어쨌거나 지화자는 웃는 낯으로 탄창을 갈며 그에게 다가갔다.
“기껏 치료해주고 살려준 은혜도 모르고 제 목을 물어뜯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지.”
“자, 잠깐……!”
눈앞의 여자에게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백도진이 다급히 두 손을 들었다.
항복의 의미였다.
하지만, 지화자는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백도진.”
이름을 불린 사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 말이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를 향해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날, 나는 너를 죽이지 못한 게 아니라. 그러지 않은 거야.”
“뭐……?”
백도진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그야, 눈앞의 여자가 자신과 만난 적 있는 것처럼 굴고 있지않는가!
하지만 지화자는 백도진의 멍한 물음을 못 들은 척,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나를 거둬준 부장에게 골치 아픈 일을 하나 더 던져주고 싶지는 않았거든. 뭐, 지금은 다르지만.”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옥에서 지유화에게 안부나 전해줘.”
타앙-!
백도진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그가 부리던 온갖 사령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지화자는 태평했다.
역시나 센터에서 탈탈 털어온 S급 아이템들 덕분이었다. 지화자가 숨이 끊어진 백도진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릴 때.
[성언(聖言)의 효과로 고유 특성 ‘안녕(安寧)’과 보조 특성 ‘힐(Heal)’의 능력치가 100% 향상되었습니다.]
[A-Index가 각성자 ‘유은영’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유은영’의 정보가 새롭게 업데이트됐다.
-Name: 유은영(劉隱映)
-Birth: 20X1. 12. 26
-Local: 82_대한민국
-Rank: E급
-Number: unknown
유은영의 성언(聖言),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을 떠올린 지화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유은영 씨, 이제 폐급소리 듣지 않게 됐네?”
어쩌다 보니 남의 능력치를 향상시켜 주게 생겼다.
그래도 어쩌랴?
자신이 아는 유은영은 절대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백도진 이 자식을 안 죽이고 놓아준 거겠지.”
그러니 어떻게 해?
철컥, 지화자가 다시 백도진을 향해 총을 들었다. 그는 S급 각성자, 그중에서도 네크로맨서로 유명한 작자였다.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괜히 사령으로 남아 우리 불쌍한 언니 괴롭히지 않도록.
타앙-!
다시 한번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에서 총성이 울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