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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46화 (46/200)

제46화

언제봐도 들어가기 꺼려지는 곳.

현장 파견 부서의 부장실 앞에 선 유은영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가볍게 노크했다.

“우종문 부장님, 지화자입니다.”

“들어오게.”

허락과 동시에 유은영은 부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서류를 보고 있던 우종문이 인자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스콜피언의 서이안 길드장을 아주 훌륭하게 구해냈다지?”

“네, 그렇습니다.”

“백도진 길드장은 어떻게 됐나?”

유은영이 잠깐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놓쳤습니다.”

“죽이지는 않았단 말이군.”

“네.”

그 말에 우종문이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지화자 팀장.”

“네, 부장님.”

“그 자는 한참 전에 이성을 잃은 작자라네. 자네라면 감정에 몸을 맡긴 S급 각성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이건 질책이었다.

이미 죽었어야 할 개복치를 살려 보낸 것에 대한 질책.

유은영은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가 말했다.

“다음번에는 놓치지 않고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겠네. 선지자들 관련해서는 조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가?”

“네, 보내주신 자료 중 한 명의 신원을 파악해 곧 조사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가하성과 유은영이 3팀과 4팀의 게이트 공략에 함께 움직이게 됐다지?”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유은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말했다.

“네, 3팀과 4팀의 요청으로 두 사람을 지원 보내게 됐습니다.”

“그렇군.”

우종문이 툭툭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사람이 부족하면 말하게.”

“아닙니다. 0팀은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라이와 리아가 업무에 힘을 보태겠다고 열심히라서 말입니다.”

“그 녀석들이?”

우종문이 놀란 눈을 보였다가 이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몸이 성장한 만큼 정신도 성장한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우종문의 시선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좋은 보호자를 둬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 말에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어쨌든 알겠네. 자네 덕분에 스콜피언이 우리 센터에 빚을 지게 됐군.”

“나중에 제대로 갚을 수 있도록 이용 바랍니다.”

“암, 그래야지.”

우종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가보게.”

“네, 부장님.”

숨 막힐 듯 몸을 꽉 죄던 시간이 끝났다.

“후우…….”

암만 생각해도, 간호 관리부서의 부장님과는 분위기도 포스도 영 다르단 말이야.

유은영이 그렇게 생각하며 퇴근을 위해 0팀의 사무실로 향할 때였다.

“하태균 씨?”

커다란 곰이 축 늘어진 채 발을 질질 끌며 복도를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태균 씨!”

유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불렀다. 하태균이 화들짝 놀란 듯 움찔 몸을 돌고는 고개를 돌렸다.

“티, 팀장님.”

하태균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음.”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지금 우는 거 아니죠?”

묻는 말에 하태균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 어어…….”

우는 사람을 달래는데 뭐가 최고더라?

‘술이지.’

퇴근 시간은 이미 진작 넘겼고, 유은영은 허허, 웃으며 하태균의 등을 토닥거려줬다.

***

“자, 한 잔 받으세요.”

유은영이 하태균과 한 잔 즐기러 온 곳은 센터 근처의 사람 없는 포장마차였다.

“가, 감사합니다, 팀장님…….”

하태균이 어색하게 유은영으로부터 술을 받았다.

“자, 첫 잔은 원 샷인 거 알죠?”

“네? 넵, 알겠습니다.”

하태균이 단번에 술을 삼켰다. 유은영도 마찬가지였다.

‘음……?’

유은영이 빈 소주잔을 살폈다. 술이 쓰지는 않고 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화자 씨는 술을 잘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오랜만에 마셔보는 단 맛의 술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러지 않은지, 인상을 잔뜩 쓰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유은영은 그의 빈 잔에 한 번 더 술을 따라주고는 입을 열었다.

“음, 나하진 씨랑은.”

“아는 사이였습니다. 지하랑 꽤 친해서 서로 인사도 나눴거든요.”

“그랬군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죽여 버렸으니, 얼마나 제가 원망스럽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하태균의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떨렸다.

“하태균 씨, 진정하세요. 나하진 씨께서 정말 선지자인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팀장님께서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나하진 씨는 선지자가 맞습니다.”

“그래도 아닐 수도 있어요.”

유은영이 침착하라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선지자들은 보통 과학자들이나 각성자들이라고 하죠. 하지만 나하진 씨는 과학자도, 각성자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일반인이란 말이었다.

“자료가 뭔가 잘못된 걸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나하진 씨, 신원만 확인 됐지 다른 건 확인되지 않았잖아요.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하태균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 번 알아보도록 해요. 나하진 씨가 정말 선지자인지 아닌지를요.”

“네…….”

하태균이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유은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팀장님께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실 줄 몰랐습니다.”

“에이, 팀원이 우울해하고 있는 걸 어떻게 못 본 척 지나가요?”

자주 지나갔었는데 말입니다?

하태균은 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그 대신 술을 삼켰다.

한 잔에서 두 잔, 두 잔에서 세잔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태균의 주량은 그게 끝이었다.

“저는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폭주할 줄 몰랐습니다…….”

늘어지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군도 게이트 공략에 투입될 때가 있다고 하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게이트 공략 도중에 힘이 폭주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힘이 왜 폭주했던 거지?

유은영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 하태균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팀은 파견을 자주 나갔었습니다. 센터가 설립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로 말이죠.”

하태균이 빈 잔에 술을 따르고는 그것을 단번에 삼켰다. 유은영이 말릴 틈도 없이 말이다.

크으, 쓴맛에 하태균이 부르르 몸을 떨고는 말했다.

“그곳에서 열리는 게이트를 공략하며 파견 근무를 하던 도중에 말입니다. 그 나라에서 하필 전쟁이 나고 말았지 뭡니까?”

“전쟁이요?”

“네,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살던 아이들이 계속 눈에 밟혀서 말입니다.”

하태균이 허탈하게 웃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살고 있는 그 마을에 곧 게이트가 열릴 거라지 뭡니까?”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뒤로 이어졌다.

“그래서 저는 본부에 필사적으로 요청했습니다. 제발, 철수시기를 조금만 늦춰달라고요.”

공략되지 못한 게이트는 터지는 거 알고 있잖습니까?

덧붙여 말하는 목소리에 유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본부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팀원들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결국, 저 역시 포기하고 귀국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하태균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물이 젖은 목소리를 냈다.

“철수하기 직전, 마을에 폭격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울부짖기 시작했죠. 그럼에도 우리 팀은 귀국을 서둘렀습니다. 당장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태균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환멸이 났습니다. 파견 근무 동안 저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잘 해줬는데, 명령을 우선으로 하는 그들에게 화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하태균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우, 하태균이 숨을 내뱉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제 손에 팔 하나가 들려있더군요.”

하태균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지하의 팔이었습니다.”

하태균은 그대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나하진 씨의 약혼자, 저와 가장 친한 동료이기도 했던 김지하의 팔이었단 말입니다.”

하태균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유은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장님, 저는 부장님의 배려로 이렇게 0팀에 소속되어 임무 수행 중에 있습니다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 있어도 되는지, 정말 모르겠단 말입니다.”

명령 불복종에 같은 동료를 살해까지 한 그가 어떻게 0팀에 있나 했더니.

‘우종문 부장님께서 배려해주셨던 거구나?’

새삼스레 우종문이 센터를 비롯해서 온갖 곳에 그 입김이 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팀장님 앞에서 이 무슨 추태인지.”

하태균이 뚝뚝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고는 사람 좋게 웃으며 유은영에게 물었다.

“잠시, 담배 좀 한 대 피고 와도 되겠습니까?”

“네? 네, 물론이죠. 다녀오세요.”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태균이 고개를 꾸벅인 후 비틀거리며 포장마차를 나섰다. 유은영은 빈자리를 가만히 보다가 손을 들었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추가요.”

하태균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술을 마시는 둥, 마는 둥했던 유은영이 병을 땄다.

그렇게 빈 잔에 술을 채울 때.

“지 팀장님?”

“가하성 씨?”

유은영이 놀란 눈으로 가하성을 쳐다봤다.

“으하하! 하성이, 이 녀석이 마침 딱 근처를 지나가고 있길래 불렀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유은영이 안쓰럽다는 얼굴로 가하성을 쳐다봤다. 가하성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어쩌다 보니 두 명으로 시작하던 술자리가 세 명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하태균 씨, 완전 뻗어버렸네요.”

“태균 형님은 술을 잘 못하시거든요.”

하태균이 완전히 뻗어버렸다는 거다.

“태균 형님은 제가 알아서 챙겨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가하성 씨가?”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하태균은 가하성의 2배, 아니. 3배는 차이가 날법한 남자였다. 그러니까 체격 차이가 엄청나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가하성이 하태균을 챙겨 갈 거라니?

‘그게 가능한가?’

가하성이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팀장님, 저 이렇게 보여도 힘셉니다. 태균 형님을 끌고 갈 정도는 된단 말입니다.”

“아하, 네.”

그렇게 믿도록 할게요.

유은영이 뒷말을 삼키며 싱긋 웃었다. 가하성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말했다.

“팀장님과 이렇게 술자리라니, 이런 날도 오네요.”

비아냥거리는 말에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 역시 현장 파견 부서의 각성자들과 술을 기울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유은영 씨와 함께 있지 않으시네요? 언제나 항상 둘이서 꼭 붙어다니더니.”

“그, 그렇게 보였나요?”

“네, 수년간 함께한 팀원들보다 그분과 더 친하게 지내셨죠.”

날이 선 목소리에 유은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래도 그분 덕분에 팀장님께서 많이 바뀌신 것 같으니…….”

가하성이 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말했다.

“그래도 저는 마음에 안 듭니다.”

“네? 뭐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하죠. 저는 유은영 씨가 저희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인 것에 대해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순간.

“야, 인마! 하성아!”

“형님?”

하태균이 가하성의 등을 후려치고는 빼액 소리 질렀다.

“같은 팀원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 유은영 씨도 이제 어엿한 0팀의 동료야! 그것도 우리 지화자 팀장님께서 손수 모시고 온 분!”

가하성이 얼떨떨한 얼굴을 보였다. 하태균은 그런 그를 향해 빽빽 계속해서 외쳤다.

“조금 싸가지 없게 굴고! 조금 인정머리 없게 굴어도 받아들이란 말이야! 알겠냐, 짜샤?!”

얼떨결에 조금 싸가지 없고 인정머리도 없게 된 유은영이 남몰래 술을 홀짝였다.

S급 각성자의 몸뚱이라 그런지, 암만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알겠냐고, 하성아?!”

“네? 넵.”

“알겠으면 사과해!”

“유, 유은영 씨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데요?”

“그래도 사과해! 자, 지화자 팀장님이 유은영 씨라고 생각하고 사과해, 인마!”

유은영은 말없이 미소를 그렸다.

‘술에 취해 개가 되면 저렇게 무섭구나.’

왈왈 짖거나 사람 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유은영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하태균은 있는 힘껏 주정을 부렸다.

“따라 해! 죄송합니다, 유은영 씨. 유은영 씨가 암만 싸가지 없고 인정머리 없어도 당신은 0팀의 팀원입니다! 자, 가하성! 어서 따라 하도록!”

“네에… 죄송합니다, 유은영 씨. 유은영 씨가 암만 싸가지 없고 인정머리 없어도 당신은 0팀의 팀원입니다…….”

지화자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유은영은 울지 못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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