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50화 (50/200)

제50화

리아와 라이.

0팀의 팀원으로 조금씩 활약을 시작한 두 사람은 새벽에도 밝게 두 눈을 빛 내고 있는 중이었다.

불 꺼진 건물 옥상 위에서 다리를 흔들며 말이다.

“지금쯤 하성이 오빠랑 유은영은 게이트 공략하러 들어갔겠네?”

“아직 아니야. 그쪽은 새벽 4시 31분이라고 했으니까 우리보다 1분 더 늦을 거야.”

“그렇구나아.”

리아가 목소리의 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라이에게 물었다.

“오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였더라?”

“여기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 나하선이란 여자가 나타나면 줄로 묶으라고 했지.”

“맞아, 그랬지.”

“그리고 그 줄에 독성은 묻히지 말라고 했어.”

“맞아, 지화자가 그랬었지.”

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울상을 지었다.

“태균 오빠,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라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화자 누님께서 이건 연극이라고 했잖아.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면 태균 형님이 다칠 일 따위 없을 거야.”

“으음, 그렇지만 나는 연극이 뭔지 잘 모르겠는걸? 하지만 어쨌든 그거지? 서로 짜 맞춘 거!”

“그렇지.”

리아의 말이 기특하다는 듯 라이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지화자 누님께서 같이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는 중이잖아. 그쵸, 누님?”

―네, 맞아요.

리아와 라이의 귀에는 인이어가 착용된 상태였다. 들려온 목소리에 리아가 활짝 웃었다. 라이 역시 웃는 낯이었다.

―잘 부탁할게요, 두 분.

“네에!”

라이와 리아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 시각, 유은영은 아이들의 대답에 흐뭇해하고 있었다. 비록, 새벽에 근무를 시켜버려 죄책감을 느끼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야, 지화자. 네가 언제부터 너희 팀원들한테 그렇게 친절했냐?”

“그러는 서이안 씨께서는 뭐가 걱정돼서 이렇게 나온 건지 모르겠네?”

“나야……!”

서이안이 목소리를 높였다가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너희한테 빚진 게 있으니까 그것 좀 확실하게 갚으려고 나왔지. 내가 말했잖아? 서도운, 그 자식. 더럽게 연기 못하는 자식이라고.”

그러니 자신의 길드원 때문에 일을 망치면 안 되지 않겠냐면서 서이안이 툴툴거렸다.

그에 유은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왜 웃는 거야?”

“은혜 갚은 까치란 말은 들어봤어도 은혜 갚은 여우란 말은 처음인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나를 여우로 비유한 거야? 이 서이안을? 감히 나를?”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야, 지화자!”

“쉿.”

유은영이 서이안의 입을 막았다.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은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거 알지?”

그 나긋한 목소리에 서이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짓씹고는 유은영을 옆으로 밀어냈다.

“어디 한번 같이 봐. 서도운, 그 자식이 잘하는지 봐야겠어.”

“그러시던가.”

유은영은 사실 펼쳐질 연극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을 쏟고 있는 곳은 오직 하나.

‘나하진.’

유은영이 다수의 CCTV를 면밀하게 살펴보며 그녀로 추정되는 여자를 찾았다.

0팀의 팀장께서 그러고 있을 때.

“다, 당신은 스콜피언의 서도운? 당신께서 이, 이곳에 무슨 일입니까?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하태균이 통행이 금지된 어두운 골목길, 서도운과 맞닥뜨렸다.

무대의 막이 오른 거다.

***

서도운과 맞닥뜨린 하태균이 꿀꺽 침을 삼켰다. 서도운, 그의 뒤로 풍기고 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긴장하지 말자, 이건 그냥 연기일 뿐이니까.’

괜히 긴장했다가 임무를 망치면 안 됐다.

암만 연극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다고 해도, 이건 결국 제 동료의 약혼녀를 잡고자 하는 행위였으니까.

그러나 하태균은 순간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죽으면, 나하선 씨가 암만 선지자라고 해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자신들한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자신의 목숨값으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정보.

하태균의 머릿속에 위험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순간.

“하태균 씨.”

“아, 넵!”

서도운이 연기를 시작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하태균의 앞에 당도해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른쪽으로 공격할 겁니다.”

하태균이 흠칫 놀라고는 왼쪽으로 몸을 피했다. 후웅, 서도운의 손에 쥐어진 기다란 창이 허공을 베었다.

하태균은 가까스로 그의 공격을 피한 척,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의뢰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의뢰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가! 설마 저를 죽여달라거나 그런 의뢰가 들어왔단 말씀입니까?”

“네, 맞습니다.”

서도운의 담담한 목소리에 하태균이 딱딱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저를 해치면, 지화자 팀장님께서 가만히 계실 것 같습니까?”

누가 봐도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게 분명한 상황이었으나, 그 상황에서도 서도운은 흔들림 없이 연기를 이어나갔다.

“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분이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거라고 저희 길드장님께서 그러더군요.”

“그, 그런……!”

누가 본다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연극이라면서 욕할 터였다. 하지만 이 골목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태균과 서도운뿐이었다.

“그러니까 미안합니다. 너무 원망은 하지 마십시오.”

서도운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땅을 박찼다. 다시 한 번 하태균의 앞에 당도한 그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하태균 씨, 당신도 저를 공격하는 척은 하셔야죠.”

“아!”

하태균이 뒤늦게 몸을 움직였다.

“으랴압!”

기합과 함께 그는 서도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그 위로 우뚝 선 건물도 금방에라도 무너질 듯 쩌적 금이 갔다.

서도운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태균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저기. 죄송합니다, 서도운 씨. 힘 조절을 했어야 하는데, 게이트 바깥에서 힘을 사용하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서 그만.”

“아닙니다. 먼저 공격하라고 한 건 저이지 않습니까?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들이 무대 위에 오른 연기자들이란 걸 까맣게 잊은 두 사람이었다.

그 순간 하태균이 착용 중이던 작은 인이어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하태균! 적당히 공격해야지! 우리 애 죽일 일 있냐?

―하태균 씨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그러지 말지?

―뭐? 지금 말 다했어?!

서이안과 유은영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인이어로 들려오는 두 사람의 성난 목소리들에 하태균이 멋쩍게 웃는 찰나.

“역시 하태균 씨, 센터 내에서 힘으로 당할 자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군요.”

서도운이 갑작스럽게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하태균이 벙찐 얼굴을 보이다가 그 역시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센터 내에서 저를 힘으로 누를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데 그러십니까? 하지만 서도운 씨라면 힘으로 누를 수 있을 것 같군요.”

“어디 한번 그래보시죠.”

타앗-!

두 사람이 진심으로 싸울 듯, 불 꺼진 골목길에서 맞붙었다.

***

쾅-! 콰앙-!

먼 곳으로부터 폭음이 들려왔다. 하태균이 서도운과 맞부딪치고 있는 소리였다.

‘망했다.’

유은영이 이마를 짚었다. 우종문 부장에게 오늘 새벽에 벌일 작전에 대해 설명은 했지만, 저렇게 큰 소란이라니.

‘내일 100% 우종문 부장님께 불러가겠지?’

그러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의 소란이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유은영이 입을 열었다.

“라이, 리아. 나하진 씨로 추정되는 분은 아직 찾지 못했나요?”

충종의 거미형 개체의 유전자를 통해 태어난 라이와 리아는 감각이 S급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뿐이랴?

거미는 보통 시력이 나쁘다는데, 라이와 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아직 찾지 못했어요.

―주변에 들리는 소리는 태균이 오빠가 서도운인지 뭔지랑 싸우는 소리뿐이야!

리아의 말에 서도운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야! 꼬맹이! 서도운인지 뭔지라니! 지금 말 다했어?”

―지화자야, 이상한 사람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

―맞아요, 조용히 해달라고 해주세요.

사이좋은 남매의 투덜거림에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들었지, 서이안?”

“빌어먹을 꼬맹이들이!”

서이안이 욕설을 내뱉었다.

“어째, 너희 팀원 애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냐?”

“가하성이랑 하태균은 나름대로 예의를 차린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걔들 제외하고 어떻게 하나같이 재수가 없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잖아? 편하게 생각해.”

“하여튼, 지화자. 더럽게 재수 없다니까?”

“칭찬 고마워.”

유은영이 방긋 웃었다.

서이안과 조수현, 둘의 앞에서는 여지없이 ‘지화자’를 흉내내는 유은영은 최근 들어 그녀를 흉내내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처음 몸이 바뀌었을 때만 해도 막막했었는데.’

자신이 이렇게 ‘지화자’를 완벽하게 흉내내고 그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지화자 씨는 나보다 더 이 힘을 잘 다루겠지.’

그야, 몸의 주인이니 당연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막이 오른 무대에 집중할 때였다.

‘나하진 씨라면 분명 나타날 줄 알았는데.’

유은영이 빠르게 눈을 굴리며 CCTV를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하태균과 서도운의 격렬한 싸움뿐.

그 근처로 접근하는 사람 따위 보이지 않았다.

‘잘못 생각한 건가?’

하지만 이대로 무대의 막을 내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연극을 진행할 수도 없는데.’

초조한 마음이 그렇게 커져갈 때였다.

―지화자 누님, 주변 모두 통제한 것 맞죠?

“네, 맞아요. 왜 그러세요?”

―접근하는 사람을 한 명 발견했어요. 지금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옥상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이 주위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가는 것 같아.

유은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 가능한가요?”

―여자예요!

“고마워요, 두 분.”

유은영이 씨익 웃었다.

하태균과 서도운이 싸우고 있는 구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통제 중이라고 하나, 노란 안전띠만 쳐 놓은 지화자였다.

그런데 그걸 뚫고 들어온 사람이라니.

‘나하진 씨일 경우가 높겠지.’

아님, 겁을 상실한 BJ거나 그런 걸 테다. 경찰일 리는 없었다.

센터에서 새벽에 중요한 작전이 있을 테니, 관련 신고 전화는 모두 무시하라고 공문을 보내났을 테니까.

‘뭐, 생각보다 서도운 씨와 하태균 씨께서 진심으로 연기에 임하셔서 내일 부장님께 조금 깨질 것 같지만 말이지.’

어쨌든 간에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낼 것 같다. 유은영이 싱글벙글 웃을 때였다.

“뭐야, 지화자. 꼬맹이들이 하는 말 못 들었어?”

“들었어.”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려고?”

“그래야지.”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원래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나서는 법이잖아?”

“주인공이라니 웃기시네. 항상 지유화 님의 그림자 노릇하던 분께서 참 많이 컸다니까?”

지유화.

서이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유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서이안이 잔뜩 당황한 탓이다.

“야, 그…….”

“사과라면 됐어.”

지화자였다면 그의 멱살을 잡았거나 그랬을 거다. ‘지유화’란 이름은 그녀에게 있어 건드리면 안 되는 역린이나 다름없었으니.

하지만 ‘지화자’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유은영이었다.

지화자와 몸이 바뀌기 전, 사내 왕따를 당하던 폐급 힐러 유은영.

그녀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우리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내 속을 긁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일일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

서이안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당장에라도 주먹이 날아들거나 살기가 쏟아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유은영은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관심이 없는 얼굴로 CCTV를 확인했다.

“뭔가 이상한데.”

하태균과 서도운.

한껏 전투를 벌이는 척, 열심히 연기 중이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뭐지?’

유은영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싸움을 살폈다.

그리고 그때.

“하태균 씨!”

흩뿌려지는 피에 유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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