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서도운 씨나 하태균 씨의 상처는 비교적 가벼워요. 조금 안정만 취하면 될 정도예요. 하지만…….”
부스스한 꼴로 급히 달려온 스콜피언 측의 힐러가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여기서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드릴게요.”
“고마워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 몸의 진짜 주인인 지화자의 낯빛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유은영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유은영 씨, 저 괜찮아요.”
“잘도 괜찮다고 하시네요. 오른쪽 팔이 완전 괴사 직전으로 보이는데 말이에요.”
그거야 지화자 씨가 함부로 뼈를 맞춘답시고 나서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라는 말을 유은영은 꾹 참았다.
스콜피언 측의 힐러가 떠난 후, 지화자가 살벌하게 물었다.
“하태균이야?”
“네?”
“하태균 구하려다가 이렇게 된 거냐고.”
자신이 이렇게 살기 어린 눈을 보일 수도 있다니!
유은영은 감탄하는 한편,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이다.
“네, 하태균 씨를 구하려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나하진 씨께서 하태균 씨의 힘을 멋대로 폭주시키게 만들었거든요.”
그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날카롭게 목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왜.”
“하태균 씨를 죽이지 않고 구했냐고요?”
묻는 말에 지화자가 멍한 얼굴을 보였다가 곧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암만 언니라고 해도 강제로 폭주당한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텐데?”
“네, 알아요.”
유은영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지화자’ 씨가 아니니까요. 제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 것뿐이에요.”
싱긋 웃으며 말한 목소리에 지화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입을 다문 그녀에게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부탁을 건넸다.
“그보다 지화자 씨, 나하진 씨를 맡겨도 될까요?”
“어차피 죽은 여자를 왜 맡겨? 가족한테 인계하면 될 것을.”
“가족이 없는 분이더라고요.”
그녀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적힌 서류를 확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하태균 씨가 폭주해서 죽였던 동료인 김지하 씨가 나하진 씨께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그토록 분노하며 하태균을 죽이겠다고 한 거였다.
“뭐, 그것보다 나하진 씨께서 죽기 전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셔서요.”
“무슨 말?”
“분명, 각성자일 텐데 부여받은 성언이 없다고 해서요. 그러니까 나하진 씨를 라이랑 리아와 함께 좀 맡길게요.”
지화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으나 곧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알겠어요.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병원에 가보도록 하세요. 타이밍 좋게도 우종문 부장님께서 오신 것 같으니까요.”
“네?”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과 동시에 지화자가 몸을 일으키며 우종문을 반겼다.
“우종문 부장님, 상황 설명은 제가 할 테니 지화자 팀장님과 하태균 씨는 병원으로 옮겨주시죠.”
기척도 없이 다가온 우종문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래도 상황이 꽤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구급차를 호출해났다네.”
그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다. 유은영은 정신을 잃은 하태균과 함께 그 위에 올라탔다.
“상황은 저와 서이안 길드장님이 함께 정리할 테니 걱정말고 치료 받고 오세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구급차의 문을 닫아 버렸다. 유은영은 멍하니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태균을 살피고 있던 구급대원이 지화자에게 물었다.
“지화자 님, 괜찮으십니까?”
“네? 아, 저는 괜찮아요.”
지화자가 억지로 으스러진 팔을 맞출 때야 아팠지, 지금은 어떤 고통도 없었다.
오히려.
“저를 죽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했죠? 소용 없을 거예요, 그거.”
나하진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통할 정도로 가슴 아팠다.
유은영은 입술 안쪽을 꾹 깨물며 우는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
‘유은영’은 멀어지는 구급차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때, 우종문이 그녀 옆에 서서는 말했따.
“지화자 팀장은 괜찮을 거라네. 몸 하나는 튼튼한 친구거든.”
“네, 잘 압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고 고통에 또 강한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는 지화자 팀장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전해 들었나?”
우종문이 탐색하듯 ‘유은영’을 보며 말했다.
“3팀과 4팀의 게이트 공략이 조금 전에 막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네가 여기 있어서 꽤 놀랐다네.”
“지화자 팀장님께서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과 비슷하게 선지자와 관련해 작전을 수행할 거란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 공략이 끝나자마자 이곳을 찾아왔다며 지화자가 말했다.
그에 우종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하게 신원이 파악된 선지자를 잡아보겠다며 보고를 올린 것을 보았지. 뭐, 그 선지자께서는 이미 죽은 것 같지만 말이네.”
우종문의 시선이 흰 천에 덮인 나하진에게로 향했다. 지화자 역시 그와 함께 나하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저 선지자가 각성자가 아님에도 그 힘을 사용했다고요.”
“그게 정말인가?”
“네, 관련해서 조사를 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은 없다고 했으니 바로 조사에 들어가도 괜찮을 겁니다.”
“그것 참 괜찮군.”
가족이 있으면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귀찮아졌다. 하지만 가족이 없다면 일은 쉽게 풀렸다.
그것을 한낱 힐러가 알고 있을 줄이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우리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우종문이 소리 없이 웃고는 입을 열었다.
“유은영, 자네는 분명 힐러라고 했지?”
“네, 부장님. 간호 관리 부서의 F급 힐러였습니다. 지금은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지만요.”
정석이나 다름 없는 대답이었다.
지화자는 그 말을 끝으로 우종문에게 고개를 꾸벅인 후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라이와 리아를 제게 맡겨서요.”
“그래, 아이들은 이만 잘 시간이지. 라이, 리아.”
우종문의 등장과 함께 우물쭈물 눈치를 보고 있던 라이와 리아가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왔다.
“할아버지.”
라이와 리아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지화자 누님은 괜찮아요?”
“맞아, 지화자는 괜찮아?”
묻는 말에 우종문이 인자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괜찮을 거다. 너희도 알지 않느냐? 너희를 구한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라이와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지화자는 괜히 멋쩍어져 목 언저리를 긁었다.
“자, 그러니까 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거라.”
“네에.”
라이와 리아가 지화자의 곁에 찰싹 붙었다. 우종문은 흐뭇하게 웃고는 스콜피언의 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서이안 길드장, 자네는 지화자 팀장에게 협력해 함께 작전을 수행했지?”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상황을 듣고 싶다만 괜찮을지?”
“당연히 괜찮죠.”
사실 괜찮지 않았다.
우종문의 말솜씨는 뱀과도 같이 교활했다.
자칫 잘못하면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은 이 일대에 대한 보상을 스콜피언 측이 모두 짊어지게 되리라.
‘그렇게 돼서는 안 돼. 절대로.’
서이안이 꿀꺽 침을 삼켰다.
우종문은 인자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고 곧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그들을 물끄러미 보다 라이와 리아를 데리고 아수라장이 된 거리를 빠져나왔다.
“와아, 해 떴다!”
“그러게? 해 떴네.”
리아의 말에 라이가 길게 하품했다. 아이들의 말대로 해가 뜨고 있었다.
새벽의 끝, 찾아온 아침이 너무나도 눈부셔 지화자는 살짝 눈을 감았다.
***
새벽이 지나고 날이 밝은 이른 아침. 유은영은 센터와 협력 관계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화자 씨께서 라이 씨랑 리아 씨를 잘 챙겨 주셨을까? 우종문 부장님께는 잘 이야기를 해줬겠지? 서도운 씨는 괜찮으려나?’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
“치료 다 끝났습니다.”
그녀의 치료가 끝났다. 유은영이 깁스를 한 오른쪽 팔을 흘긋거리고는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 인사에 그녀를 치료한 의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나 봅니다. 설마, 감사 인사를 듣게 될 줄이야.”
하하,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고는 물었다.
“하태균 씨는 어떤가요?”
“멀쩡합니다. 악몽을 꾸고 있는지 계속 끙끙 앓아대서 진정제 좀 놔줬지만요.”
의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유은영에게 경고했다.
“당분간 오른쪽 팔은 움직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차피 못 움직이게 꽁꽁 싸매주셨잖아요?”
“지화자 팀장님이라면 언제든 풀고 움직일 걸 아니까 이러죠. 그보다 언제봐도 대단하십니다.”
“뭐가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기절했을 부상에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 말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의사는 S급 몸뚱이는 역시 뭔가 다르다면서 말을 덧붙였다.
“뭐,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오십시오. 추가로 힐을 받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함부로 오른쪽 팔을 움직이지 말라면서 의사는 유은영에게 신신당부했다.
그 걱정에 유은영이 웃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하태균 씨는 지금 어디 계시나요? 얼굴 좀 보고 가고 싶은데.”
“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의사가 직접 유은영을 하태균이 있는 자리로 안내해줬다.
의사의 말대로 하태균은 진정제를 맞고 자는 중이었다. 그 몰골이 꼭 기절한 곰처럼 보여 웃음이 나왔다.
“하태균 씨.”
유은영이 간이 의자를 끌고와 그 옆에 앉고선 말했다.
“저는 말이에요. 사실 하태균 씨를 처음 봤을 때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절한 탓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인데도 유은영은 말했다.
“그야, 센터랑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를 뛰어서 출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요.”
유은영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곧,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뛰어서 출근할 만도 했겠다 싶네요.”
하태균은 분명 제 손으로 동료들을 모두 죽인 후, 0팀에 소속된 이후부터 줄곧 악몽에 시달렸을 거다.
그리고 그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달렸을 게 분명했다.
얼마나 걸리든, 뛰다가 혹여라도 넘어져 다치든. 그는 지난날의 악몽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렸을 것이다.
줄곧 간호 관리 부서에 있었다면 영영 몰랐을 사실.
‘애초에 하태균 씨가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겠지.’
그렇게 자신이 모르는 사연들이 이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아마 셀 수 없이 많겠지.
유은영이 가만히 잠든 하태균을 쳐다봤다.
‘지화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입은 부상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는 곤히 잠든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