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54화 (54/200)

제54화

언제 잠이 들었을까?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유은영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곧 놀라 소리 질렀다.

“지화자 씨?!”

“쉿.”

지화자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유은영을 조용히 시켰다.

유은영이 두 눈을 데굴 굴렀다.

하태균이 여전히 진정제를 맞고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유은영이 졸린 눈을 비비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저 언제 잠들었어요?”

“몰라. 암만 기다려도 출근을 안 해서 병원에 왔더니 아주 쿨쿨 자고 있던데?”

“아, 이런.”

유은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라이랑 리아는요?”

“출근했지. 가하성이 애들 보고 있을 거야. 지금쯤 아주 정신없을걸?”

“왜요?”

“애들 돌보랴, 3팀과 4팀에 보고서 정리해서 보내느랴 말이지. 거기다 내 몫도 맡기고 왔거든.”

지화자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그녀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나하진 씨는 어떻게 됐나요?”

유은영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죽은 사람한테 관심이 왜 그렇게 많아?”

유은영이 우물쭈물 말했다.

“마지막에 미심쩍은 말을 남겼으니까요. 그러니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죠.”

맞는 말이기는 했다.

지화자가 쯧, 혀를 차고는 알려줬다.

“우종문 부장이 나혜선 팀장이랑 함께 조사 중.”

“나혜선 팀장님은 왜요?”

“걔가 죽은 사람 머리도 헤집을 수 있거든. 우종문 부장 옆에서 고생 꽤나 하고 있을 거야.”

그러면서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지화자였다.

“즐거워 보이네요.”

“남의 고통은 나의 행복이란 말이 있잖아?”

“그런 말 처음 들어보는데요?”

“지금부터라도 알았으면 됐어.”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유은영은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하태균을 쳐다봤다.

“하태균 씨는 여전히 주무시고 계시네요.”

“의사 말로는 오늘 하루 입원시키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더라.”

“그렇다면 입원시켜야죠.”

유은영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지화자가 중얼거렸다.

“의외네.”

“뭐가요?”

“나는 언니도 입원하고 싶다고 징징거릴 줄 알았거든.”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징징이로.”

누구보고 징징이라는 거야?!

유은영이 뿔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피식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출근할 거지?”

“저 출근시키려고 데리러 온 거 아니에요?”

“정답.”

지화자가 씨익 웃었다.

“갑시다, 지화자 팀장님. 팀장님께서 결재할 서류를 비롯하여 우종문 부장님께 올릴 보고도 한가득이라서요.”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유은영이 질색했다. 지화자는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작전 수행하면서 무너진 건물이 몇 채인지 알아?”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 우종문 부장한테 가서 직접 듣는 게 좋을 거야.”

꿀꺽, 유은영이 침을 삼켰다.

“지화자 씨, 저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입원하면 안 될까요?”

“응, 안 돼.”

지화자가 병실 문을 열며 활짝 웃었다.

“사람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아니에요. 특히나 랭킹 1위이신 지화자 팀장님은 더더욱이요.”

저 사람이!

“자기는 한 입으로 맨날 두말하면서!”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그보다 환자가 자고있는 병실에서 조용히 해야지, 언니.”

암만 생각해도 얄미운 사람이었다. 유은영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뒤돌아보았다.

악몽에 끙끙 앓던 하태균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지화자 씨.”

“왜.”

“혹시, 하태균 씨의 동료분들이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알아서 뭐 하려고?”

“글쎄요…….”

유은영이 머쓱하게 웃었다.

“하태균 씨 몰래 약속한 게 있는데, 먼저 찾아가서 인사 좀 드리고 싶어서요.”

지화자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 내던지듯 말했다.

“파견 갔다가 불의의 사고에 휘말려 죽은 군인들이 어디에 묻히겠어?”

“아…….”

유은영이 깨달은 듯한 얼굴을 보이고는 말했다.

“지화자 씨, 저 오전 반차 좀 내도 될까요?”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지화자가 픽 웃었다.

“팀장님 마음대로 하시죠.”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휙 몸을 돌렸다. 유은영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다른 곳은 서울 동작구 동작동 271-18번지의 국립 서울 현충원.

유은영은 평생 이곳에 방문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가족 중에 국가 유공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자신은 폐급 힐러였다.

암만 국가 행사가 열려도 센터에서 말단 업무나 처리할 운명이었던 F급 힐러.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는 거다.

‘그런 내가 현충원에 오다니.’

어쨌거나 유은영은 어렵게 낸 시간을 최대한 귀중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급하게 온 터라 국화꽃 한 송이 준비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하태균의 동료들이 묻혀있는 곳을 찾아갔다.

헤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녀는 그들이 묻혀있는 곳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김지하.

그의 이름 앞에 선 유은영이 왼팔을 틀어 뺨을 긁었다.

“어, 음.”

막상 찾아왔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어떤 말을 건네도 이상하게 보일 꼴이지 않은가?

‘죽은 사람에게 말을 걸다니.’

마치, 네크로맨서인 백도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일부러 살려 보냈지만, 부상의 정도가 워낙 심각해 생사를 알 수가 없는 그였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숨을 들이마신 후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물론, 대답이 들려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난데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다.

“뭐하냐?”

“으악! 깜짝아!”

유은영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제게 말을 건 남자를 쳐다봤다.

“서, 서이안?”

“뭘 귀신 본 것처럼 놀라?”

“그야, 서, 아니. 네가 여기에서 나타날 줄 몰랐으니까!”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인데, 지화자?”

“내가 먼저 물었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대답해라?”

“그렇지.”

유은영이 말귀 참 잘 알아듣는다며 서이안을 칭찬했다. 서이안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쨌든 대답했다.

‘지화자’가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이 맞았으니까.

“아버지 보러 왔어.”

“아버지?”

“그래.”

서이안이 피곤한 낯으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빌어먹을 누구 씨와 함께 벌인 작전 덕분에 돈이 훅훅 나가게 됐거든.”

서이안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유은영은 서이안이 말한 ‘빌어먹을 누구 씨’가 자신임을 알기에 조용히 있기로 했다.

아니,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크흠, 흠, 아버지가 여기 묻혀있다니 자랑스럽겠네?”

“자랑스럽기는 개뿔.”

서이안이 불퉁하게 말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생각도 않고 무턱대고 사람들 구하다 죽어버린 사람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래도…….”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서이안이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물었다.

“지화자, 얼마 전부터 든 의문인데 너 진짜 지화자 맞지?”

“서이안 길드장님께서는 눈앞의 내가 가짜로 보이나 봐? 왜, 얼굴이라도 만지게 해줄까?”

“으, 끔찍한 소리 하지 말지?”

서이안이 질색하고는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너, 10년 전에 백화점 붕괴 사건 기억하지?”

10년 전에 일어났던 백화점 붕괴 사고라면 하나뿐이었다.

더 완즈 인 더 서울.

자신의 아버지를 앗아가고, 저를 10년 동안 뇌사 상태로 빠지게 만들었던 사고.

서이안은 유은영의 굳은 얼굴을 알아채지 못하고 재잘거렸다.

“우리 아버지, 그때 돌아가셨어. 그러고 보니 내가 지유화 님 존경하게 된 때도 그때네. 지유화 님 아니었으면…….”

사고의 피해가 더 컸을 거란 말을, 유은영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이안은 유은영을 흘긋거리고는 말을 돌렸다.

“뭐, 됐어. 네 앞에서 지유화 님 이야기 꺼내봤자 기분만 잡치지. 그보다 너는 여기 무슨 볼일이야? 네가 지유화 님을 찾아왔을 리는 없을 테고.”

지화자 씨의 언니분도 여기 묻혀 계시나 보구나? 하긴,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각성자라고 하지 않았나?

‘뭐, 이곳에 묻혀있는 게 당연하겠지.’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태균 씨 동료분들 좀 보러 왔어.”

“그럼 그렇지. 네가 지유화 님을 보러 왔을 리가 없지.”

서이안이 그렇게 비아냥거리고는 물었다.

“오른쪽 팔은 괜찮냐?”

“내 상태를 걱정해 주다니, 이것 참 감동인데.”

“걱정은 무슨, 누가 누구를 걱정했다고!”

서이안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몸을 돌렸다.

“아무튼 나는 간다. 너도 볼일 끝났으면 빨리 센터로 돌아가지 그래? 새벽에 있었던 일로 처리할 일이 한 가득일 텐데.”

목소리의 끝에서 비웃음이 느껴졌다. 유은영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서이안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완전히 떠난 후에야 유은영은 마음 편하게 김지하를 비롯한 하태균의 동료들에게 인사할 수 있었다.

“아, 죄송해요. 불청객 때문에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유은영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지화자입니다. 하태균 씨가 소속되어 있는 0팀의 팀장이죠.”

유은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어색하게 경례했다.

세계 각지를 여행 중인 오랑우탄이 보여줬던 동작을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유은영의 입가에 씁쓸하게 미소가 그려졌다.

***

“하성 형님.”

“하성 오빠.”

분명, 오전 반차를 냈건만 0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있던 가하성이 피곤한 낯을 들었다.

“지화자 누님은 어디다 버려두고 유은영 누님만 돌아온 걸까요?”

“맞아, 지화자는 어디에 버려두고 혼자 온 걸까?”

라이와 리아, 두 사람의 질문에 가하성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보다 너희는……!”

목소리를 높였던 가하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이와 리아, 두 남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있었던 작전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니, 그림으로 그려서 제출하지를 않나?

그렇다고 그 작전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에 대한 보상 금액을 더더욱 계산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가하성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 그냥 퇴근하지 그래?”

그 말에 라이와 리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맞아, 싫어!”

남매의 대답에 가하성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유은영을 불렀다.

“유은영 씨, 지 팀장님 부상이 얼마나 심하면 혼자 돌아오셨어요? 지 팀장님이 지금 봐야할 서류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게요.”

“네?”

묻는 말에 지화자가 말했다.

“나중에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갔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가하성 씨는 딱히 알 필요 없는 소리예요. 그보다 3팀과 4팀에 넘길 보고서는 정리 다 됐어요?”

“아직요. 유은영 씨는요?”

“저야 진작 끝냈죠. 한 일이 별로 없었잖아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새벽에 있었던 C급 게이트 공략 건을.

그녀는 말한 것처럼 공략에 있어 한 일이 별로 없었다.

그저 영웅호걸과 그들의 팀원들이 수많은 몬스터를 처치하는 걸 지켜볼뿐.

‘아, 그냥 보고 있기만 했던 건 아니었지?’

실수였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으나 신영웅이 담당하고 있던 몬스터가 저를 향해 달려들었었다.

급히 총을 꺼내들기도 전에 가하성이 그것을 처치해줬더라지.

그리고 신영웅은.

“어라? 미안, 유은영 씨. 내가 이런 실수를 다 해버렸네?”

새벽에 있었던 게이트 공략 건을 떠올린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마음에 안 드는 자식.’

분명, 일부러 그 몬스터를 놓친 게 분명했다.

이 몸이 ‘유은영’의 몸이 아닌 자신의 몸이었다면 장난하냐면서 바로 멱살을 잡았겠지만.

‘암만 생각해도 이 몸은 너무 연약하단 말이지.’

폐급 몸뚱이에서는 벗어났다.

‘아닌가?’

E급으로 각성 등급이 올라갔다고 해도 신체 능력치는 그대로였다.

‘운동이라도 해서 체력을 길러야 되려나?’

원래대로 몸이 돌아오면 도대체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생각인지 걱정이 됐다.

아니, 잠깐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거지?’

유은영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든 자신의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남의 걱정을 이렇게 한단 말인가!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지화자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성이 오빠, 유은영 이상해. 막 혼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저거 괜찮은 거야?”

“맞아요, 하성이 형. 유은영 누님 이상한데 힐러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하성이 넋이 나간 듯한 지화자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가 바로 그 힐러잖아, 이 바보들아.”

가하성이 피곤한 낯으로 보고서 정리를 끝냈다.

퇴근하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