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유은영이 돌아온 건 점심이 지난 무렵에서였다.
“지화자 누님!”
“지화자야!”
라이와 리아가 후다닥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깁스를 한 오른팔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 그거 안 아파?”
“이거요?”
“응!”
리아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유은영의 오른팔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아이의 시선에 씨익 웃었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가하성 씨는 새벽에 있었던 게이트 공략 잘 끝내고 오셨나요?”
“네? 네, 뭐, 다치지 않고 돌아왔는데…….”
가하성이 고민하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잡으러 간다던 선지자는 비각성자였다고 알고 있는데.”
“아, 그게.”
유은영이 무엇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지화자가 말했다.
“하태균 씨의 힘이 폭주했다고 하더라고요.”
“유은영 씨!”
“아, 비밀이었나요?”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은 와락 얼굴을 구겼고, 가하성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태균 형님의 힘이 폭주했었다고요? 도대체 어쩌다가요?”
“잡으러 갔던 선지자가 아무래도 각성자였던 모양이더라고요.”
나하진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지화자도 알고있는 바.
하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가하성에게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A-Index가 가끔 자잘하게 오류를 내잖아요? 그것 때문에 정보가 제대로 업데이트 되지 않았나 보더라고요.”
“그런……!”
가하성이 지화자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가하성 씨? 어디 가시려고요?”
“기술 관리 부서에 좀 다녀오려고요. 유은영 씨, 게이트 관련해서는 보고서 정리 다 끝냈으니까 확인 부탁해요.”
“네, 영웅호걸 팀장님들께도 제가 제출하고 올게요.”
지화자가 맘껏 다녀오라면서 그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잠깐만요, 가하성 씨!”
유은영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였다. 라이와 리아가 두 눈을 데굴 굴리고는 가하성의 뒤를 따라 뛰쳐나갔다.
“우리도 다녀올게요!”
“맞아! 다녀올게!”
“라이 씨! 리아 씨!”
남매를 막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렇게 유은영과 지화자, 단 둘만이 남은 사무실.
“지화자 씨! 어쩌려고 그런 말을 했어요?!”
“내가 뭐?”
“A-Index의 오류로 나하진 씨의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니 뭐니 그런 소리 왜 했냐구요! 아닌 거 알잖아요?”
“응, 알지.”
태연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유은영이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듯이 물었다.
“가하성 씨가 애꿎은 기술 관리 부서 사람들 잡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신 거예요?”
“잡으라고 그렇게 말한 거야.”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기술 관리 부서 녀석들은 한 번씩 뒤집어 엎어줘야 하거든. 그보다, 유은영 씨.”
지화자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유은영에게 건넸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한 끼도 안 먹었지? 이거 먹고 약 먹어.”
“죽은 감사히 받겠는데, 약은 왜요? 그렇게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지 않아도 먹어. 그러다 내 오른쪽 팔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언니가 책임질 거야?”
당연히 책임질 생각 따위 없었다.
결국, 유은영은 입술을 삐죽이며 지화자가 사온 죽을 잠자코 받아먹었다.
***
하태균은 하루하고도 이틀은 더 지난 후에 퇴원했다.
그리고 그는 유은영의 손에 이끌려 동료들이 묻혀있는 현충원으로 향하게 됐다.
“우와, 여기는 어디에요?”
“맞아! 여기는 어디야?”
“현충원. 너희 여기서는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해, 알겠지?”
“네, 하성 형님!”
“네에! 하성이 오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0팀의 모든 식구들과 함께 말이다.
당연히 ‘유은영’도 함께였다.
“유은영 씨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가하성의 질문에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세요?”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여서요. 착각이라면 죄송하고요.”
그 말에 지화자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보였다.
당장에라도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순간, 유은영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자, 오랜만에 다 같이 나들이 나왔다고 생각하자고요.”
그에 가하성이 뾰족하게 말했다.
“이렇게 0팀의 모두가 움직인 건 처음인데요, 지 팀장님?”
유은영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때, 유은영과 함께 가장 앞장서서 걷고 있는 하태균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지화자 팀장님. 저 때문에 이렇게 하실 필요는 없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바쁘신 분께 폐를.”
“전혀 끼치지 않았으니까 등 좀 펴세요!”
쫘악!
유은영이 하태균의 등을 매섭게 쳤다. 힘을 뺐다고 하나 S급의 손맛이었다.
하태균은 비명이 나올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어쨌거나 하태균은 0팀의 모두와 함께 자신의 동료들이 묻혀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그래.”
가하성의 질문에 하태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느릿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염치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다들.”
그 말을 끝으로 하태균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하태균을 따라 고개 숙이며 팀원의 전 동료들을 향해 예를 갖췄다.
그들이 고개를 든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죽음 후에 안식이 찾아온다고 하더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아래의 현충원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하태균의 전 동료들에게 인사를 끝마친 0팀의 모두가 현충원을 나섰다.
그러나 유은영이 우뚝 멈춰서선 팀원들을 먼저 보냈다.
“먼저 들어가서 일 좀 보고 있으세요.”
“아, 지 팀장님 오늘 붕대 푸는 날이죠?”
“네, 유은영 씨와 함께 오후에는 돌아가도록 할게요.”
그 말에 하태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보니 유은영 씨가 안 보이는군요.”
“나 어디 갔는지 알아!”
리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기, 저쪽으로 가던데?”
작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여러 공을 세운 각성자들이 묻혀있는 곳이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리아 씨, 그럼, 다들 센터에서 봐요. 하태균 씨는 그만 뚝 그치고요.”
“저, 저, 안 울었습니다!”
“네, 눈물부터 닦고 말해주세요.”
하태균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황급히 눈물을 닦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키득거렸다.
단, 한 명.
이 자리에 없는 지화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유은영은 0팀의 모두를 보내고 지화자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그녀는 금방 지화자를 찾을 수 있었따.
“지화자 씨.”
“뭐야, 언니. 나 스토킹했어?”
“같은 여자 스토킹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유은영이 뚱하게 말했다.
“리아 씨가 가르쳐주셨어요. 이쪽으로 갔다고요.”
그러고는 물었다.
“지유화 씨의 묘에요?”
“응.”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전국민에게 사랑받으신 덕분에 이렇게 현충원에도 묻히고 정말 자랑스럽다니까?”
어딘지 날이 선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대로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위스키를 지유화의 묘비 위에 들이부었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지유화가 좋아하던 술이야. 나는 엄청 독해서 싫어했지만.”
위스키를 모두 묘비 위에 뿌려준 지화자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볼 일 다 끝났으면 가자. 붕대 풀러 가야지.”
그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여 유은영이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 씨.”
“왜?”
“지화자 씨도 죽으면 여기 묻히겠죠?”
지화자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다가 픽 웃으며 물었다.
“유은영 씨, 혹시 나 죽었으면 좋겠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저를 어떻게 보시고!”
“물로.”
그렇게 보고 있을 줄 알았지!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 모습에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자신의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말라는, 그런 소리는 이제 지겨워진 모양이었다.
***
어쨌거나 유은영은 붕대를 풀고 지화자와 함께 사이 좋게 센터에 들어섰다.
그러나 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은영아!”
지화자는 자신과, 그러니까 ‘유은영’과 너무나도 닮은 인상의 남자의 모습에 놀란 눈을 보였다.
“오빠?!”
라고 외친 유은영도 마찬가지.
‘유은영’에게 두 팔 벌려 달려오던 남자가 유은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아, 그게, 저.”
유은영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황급히 변명을 생각해냈다.
“유은영 씨께 이야기 많이 들어서요. 세계 여행 중이라고 들었는데 잠시 귀국한 모양이네요?”
“아하, 은영이 상사시군요! 잠시 귀국한 게 아니라 아예 귀국을 했답니다.”
“네? 왜요?”
유은영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유은영의 친오빠, 유승민이 잔뜩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돌아다닐만큼 돌아다녔거든요. 그래서 귀국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네, 라고 말할뻔한 것을 지화자가 가까스로 유은영의 입을 틀어막으며 저지했다.
“하, 하하, 오랜만이야, 오빠.”
시발, 내 입에서 ‘오빠’ 소리도 다 나오네.
지화자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지화자 팀장님, 죄송하지만 오빠랑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겠어요?”
이 언니가 뭐라는 거야!
“당연히 괜찮죠! 오빠, 그럼 가자. 사람 없는 곳에서 잠시 이야기 좀 나누자고,:
“응? 아, 응.”
유승민은 지화자의 손에 힘없이 이끌려갔다. 그렇게 센터의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유승민이 동생에게 물었다.
“현장 파견 부서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로 갔다고 하더니, 지화자 팀장님네로 간거야?”
“응, 어쩌다보니.”
“지화자 팀장님 밑으로 갔다니.”
안쓰럽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에 지화자는 심드렁한 얼굴을 보였다. 곧, 앞담을 듣겠거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유승민의 잔소리만 들었다.
“그나저나 유은영, 엄마 연락은 왜 그렇게 안 받은 거야? 전화는 무시하고, 가끔 잘 있다고 문자만 보낸다고 얼마나 걱정 중이신 줄 알아?”
“그, 그래? 미안하다고 전해줘. 일이 바빠서 그랬어.”
“은영아.”
유승민이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왜 이렇게 무뚝뚝해졌어?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래?”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지화자는 눈앞의 남자의 울상에 질색할 뻔했다. 자고로 남매든 형제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게 기본이지 않나?
‘아닌가? 언니는 사이가 좋았나? 하지만 이름을 오랑우탄이라고 저장해놨으면서?’
혹시 모른다. 애정 어린 호칭일 수도. 그렇기에 지화자는 유은영의 얼굴로 방긋 웃었다.
“미안, 오빠.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날을 좀 세웠나봐.”
“하긴, 현장 파견 부서 일이 좀 많이 힘들기로 유명하지. 그런 곳에 우리 연약한 은영이가 전담 어시스트 힐러로 불러갔다니.”
유승민이 가슴 아프다는 듯이 울먹이며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도 참 너무하시지. 우리 은영이가 재주가 참 좋기는 하지만 그런 험한 곳에 데려가다니!”
“하, 하하.”
말로만 듣던 시스콤을 이렇게 보네, 이렇게 봐.
지화자가 영혼없이 웃을 때.
“아, 그보다 선물이야.”
“선물?”
“응, 내가 문자 보냈었잖아. 답이 없어서 그냥 둘 다 사왔어.”
그 순간 지화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있었다.
[오랑우탄] : 은영아, 나 한 달 뒤에 귀국해.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샤낼이든 루이는똥이든 말만 해. 다 사가지고 갈게.
그 ‘오랑우탄’이 눈 앞의 남자였던 건가? 지화자가 당황해할 때, 유승민이 그녀에게 선물을 한가득 건넸다.
“자, 여기.”
얼떨결에 선물을 받아든 지화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선물을 확인했다.
유승민은 그런 동생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은영이한테 전달 좀 부탁할게요, 지화자 팀장님?”
선물을 확인하던 손이 멈췄다.
“그게, 동생 생각하면서 사온 거라서 말이에요. 지화자 팀장님께 주기에는 좀 그렇네요.”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 놀란 눈을 보였다. 그 모습에 눈앞의 남자는 싱긋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