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지화자는 유은영의 선물 중 가장 값비싼 백을 얻었다.
그렇게 한껏 즐겁게 센터에 출근하는 사이 게이트 생성 예정일이 성큼 다가왔다.
20■■년 11월 31일.
오후 3시 40분이 막 지나가는 무렵.
“후우, 도착했네요.”
유은영은 팀원들과 함께 한국의 명문대학교라고 불리는 S대학교에 도착했다.
유은영이 부쩍 추워진 날씨에 옷을 여미며 하태균에게 물었다.
“게이트 생성 예정 장소는 어디라고 했죠?”
“도서관이라고 들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야 합니다.”
“서둘러야겠네요.”
유은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서 센터에서 나온 직원들이 사람들을 통제 중인 게 보였다.
“우와, 지화자다!”
“어디? 와! 정말이네?!”
“지화자라면 그 사람이지? 지유화 님 죽인 살인자!”
곳곳에서 난리였다.
그 난리를 유은영은 애써 좋게 포장했다.
“암만 한국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대학교의 학생들이라고 해도 청춘은 청춘이네요.”
“도대체 어딜 봐서 저게 청춘이라는 거예요? 딱 봐도 팀장님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맞아요. 그리고 그 게시글에는 악플이 주렁주렁 달리겠죠. 팀장님을 욕하는 댓글이요.”
가하성의 말을 뒤이어 지화자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유은영은 멋쩍게 웃었다.
그때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화자 팀장님! 팀장님을 욕하는 녀석들은 제가 싹 다 잡아다가 두 번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훈련, 아니. 교육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태균이 우렁차게 외쳤다.
얼마나 큰 목소리였냐면, ‘지화자’를 찍어대던 학생들이 슬그머니 휴대폰을 내릴 정도였다.
유은영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하태균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하태균은 자신만 믿으라는 듯 팡팡! 근육 가득한 가슴을 두드렸다.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음,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태균이 사람 좋게 웃었다.
“지화자 누님! 저희도 누님 욕하는 사람들 다 혼내줄게요!”
“맞아, 혼내줄게!”
“얹혀사는 입장인데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아야죠!”
“맞아!”
맞기는 뭐가 맞아요!
라이와 리아의 말에 유은영은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마찬가지로 울지 못해 웃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게이트 생성 예정인 S대학교의 도서관에 도착했다.
“0팀, 도착했습니다!”
센터 내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주변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쳐지는 노란 안전띠와 함께 누군가 유은영에게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지화자 팀장님, 이번 게이트는 B급이지만 공략 제한 시간이 3시간으로 추정되는 만큼-”
“변수가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는 건 나도 알아.”
유은영이 지화자라도 된 것처럼 센터 직원의 말을 끊었다.
유은영에게 설명해주려던 직원이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0팀의 무사귀환을 바라겠습니다.”
“좋아.”
“네?”
“네 걱정이 무색하지 않도록 몸 성하게 무사 귀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유은영이 씨익 웃었다. 센터의 직원은 멍하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였다.
“게이트 생성됐습니다!”
그 말과 함께 유은영은 자신에게 게이트에 관해 알려 주려던 직원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고는 팀원들과 함께 생성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의 직원은 얼빠진 얼굴로 그녀가 사라진 곳을 쳐다봤다.
서서히 닫히는 게이트를.
센터의 직원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지화자 님께서 웃어주셨어!’
그리고 걱정말라며 격려 아닌 격려도 해줬다.
‘지화자 님께서 많이 변했다고 하시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다.
센터의 직원이 감격에 찬 얼굴로 그녀를 비롯한 0팀 모두의 무사 귀환을 바랄 때였다.
“이런, 0팀께서 이미 안으로 들어갔나 봅니다?”
“네? 네, 들어갔습니다만…….”
센터의 직원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를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청와대.
그 글자를 읽은 센터의 직원이 황급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센터의 현장 파견 부서에 속해있는…….”
“인사는 됐습니다.”
남자, 유승민이 싱긋 웃었다.
“S대학교에 온 김에 지화자 팀장님께 인사라도 하고 가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네요.”
아쉬워라.
유승민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네? 넵! 유승민 님께서도 수고하십시오!”
청와대.
그곳은 센터의 부장이나 되어야 문을 두드릴 수 있을 만큼 높디높은 곳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이 나라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앉아있는 곳이니.
‘도대체 그 남자는 누구지?’
‘청와대’란 글자만 보고 황급히 인사를 하느라 뭐 하는 사람인지는 파악하지 못한 직원이었다.
어쨌거나 유승민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
유승민이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을 때, B급 게이트 공략에 나선 유은영은.
“오, 여기는…….”
“정글이네요. 그리고 게이트에 입장하는 것과 동시에 팀원들이랑 헤어진 것 같고요.”
가하성과 함께 팀원들과 떨어진 상태였다.
“저기, 무전은요?”
가하성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무전이 됐으면 진작 라이 씨랑 리아 씨가 떠들어댔겠지.’
이곳이 어디고, 다들 어디 있냐면서 한창 시끄럽게 떠들어댔을 거다.
“이럴 때는 바깥이랑 소통할 수 없는 게 참 아쉽네요.”
“그건 그렇죠.”
게이트 내부에서 A-Index를 일부 사용할 수는 있지만, 완전한 소통은 어려운 곳이 바로 이곳.
게이트였다.
가하성이 유은영의 말에 아쉽다는 듯 주위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게이트 내부랑 바깥이랑 소통만 할 수 있다면, 공략 이후 귀찮게 보고서를 쓴다거나 그런 일은 안 해도 되니까요.”
그런 뜻으로 바깥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유은영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녀가 바깥과 소통이 되기를 바란 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죠? 팀원들부터 찾을까요?”
“그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가하성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곧 탄창을 갈고는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자마자 곳곳에서 붉은 눈들이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우끼! 우끼끼!
―우끼끼!
충종의 몬스터가 나타날 거라고 하더니, 개뿔.
가하성이 한껏 얼굴을 구기고는 말했다.
“팀장님, 팀원들은 나중에 찾고 먼저 몬스터 처치부터 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동의해요.”
타앗!
유은영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쥐고 있던 봉을 크게 휘두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각.
“우와아! 태균 오빠, 게이트는 원래 이렇게 숲이 울창해?”
“이곳은 숲이라기보다는 정글인 것 같은데?”
“정글이 뭔데?”
“정글이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지만, 그걸 눈앞의 작은 아이에게 말했다가는 다시 한번 더 질문이 들어올 게 뻔했다.
정글이랑 숲이랑 다른 점이 뭐냐고 말이다.
그렇기에 하태균은 리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리아, 너희 오빠 어디 있는지 알겠니?”
“라이 오빠?”
“그래.”
“오빠는 저기 있는데?”
리아가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넝쿨에 몸이 묶여 있는 라이가 있었다.
“라이!”
하태균이 놀라 달려갔다.
“구해달라고 하지, 뭐 하고 있던 거야?!”
“하하, 그게 태균 형님을 부르려고 했는데 리아랑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서요.”
즐겁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아이의 질문에 쩔쩔매고 있었다면 몰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라이를 넝쿨 속에서 구해준 하태균은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뿐.
사람의 인기척이라고 할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태균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라이, 리아. 지화자 팀장님이나 하성이, 그리고 유은영 씨가 어디 있는지 알겠니?”
“아니요, 모르겠어요.”
“맞아, 전혀 모르겠어.”
라이와 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거미 친구들이 있다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두 눈을 데굴 굴릴 때.
―우끼기! 끼기!
―우끼이! 우끼기!
하나같이 붉은 눈을 한 원숭이 떼가 나타났다.
말이 원숭이지, 몬스터들이었다.
하태균이 주먹 쥔 두 손을 소리 나게 맞부딪치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거미 친구들은 없는 것 같네?”
“그런 것 같네요.”
“아쉬워라.”
리아가 뚱하게 말하고는 두 손을 활짝 펼쳤다.
“거미 친구들 있었으면 지화자도 유은영도 그리고 하성이 오빠도 금방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가 펼친 열 손가락 끝으로 거미줄이 꿈틀거리며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태균 오빠, 단련실에서 연습했던 것처럼 가면 돼?”
“그래.”
“좋았어.”
리아가 씨익 웃었다. 하태균은 아이가 보이는 미소에서 지화자를 엿보았다.
지화자가 적들을 향해 보여주는 마귀와도 같은 웃음을 말이다.
‘닮으면 안 되는데.’
하태균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이, 리아는 아주 손쉽게 달려드는 원숭이 무리를 처치하기 시작했다.
***
쿵! 쿠웅!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흙먼지와 들려오는 굉음에 여자가 중얼거렸다.
“아주 다들 난리네.”
여자는 나무줄기로 묶인 감옥 안에 있었다. 그녀는 심드렁한 얼굴로 제 옆에 앉아있는 생명체에게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거대한 몸집의 생명체는 말이 없었다. 여자는 대답 따위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재잘거렸다.
“그거 알아? 우리 유은영 씨의 오라버니께서 ‘오랑우탄’이라고 저장되어 있거든.”
여자의 정체는 지화자였다.
“얼굴도 성격도 오랑우탄이랑 많이 다른데, 너를 보니 왜 그렇게 저장되어 있는지 알겠어.”
그 말에 지화자의 옆에 정좌로 앉아있던 몬스터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오,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나는… 한낱 짐승이 아니다, 가련한 인간아…….
“내 눈에는 짐승으로 보이는데?”
그것도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몸이신 오랑우탄.
동물원도 아니면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하신 분께 지화자는 지금 잡혀 있는 상태였다.
‘뭐, 오랑우탄이라고 부르기에는 머리 위에 들소의 뿔이 돋아 있고, 온몸이 가시로 덮여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랑우탄과 닮은 모습이기는 했다.
지화자는 나무줄기로 엮인 감옥 안에서 끊임없이 커다란 몸집의 몬스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 ‘오랑우탄’이 짐승인 걸 어떻게 알아? 더욱이 말을 할 줄 알다니? 말하는 놈들은 드래곤이나 그런 용종(龍種) 녀석들 뿐일 줄 알았는데 말이지.”
―나는… 그들보다 뛰어나다…….
그들?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두 눈을 번뜩였다.
‘게이트가 안의 몬스터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잘하면 알아낼 수 있겠는걸?’
지화자는 자신을 사로잡은 몬스터를 향해 물었다.
“드래곤을 만나본 적 있나 봐?”
―당연한 것을… 묻는군…….
대화를 나누기에는 상대방의 말이 무척이나 어눌하고 느렸지만 지화자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어디에서 만났는데? 이곳에 드래곤이라도 있어?”
―그 녀석들은… 감히…….
“감히?”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한다……. 이곳은… 나의 영역……. 내가 수호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후우,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답 한번 듣는데 참 오래 걸린다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화자는 계속해서 물었다. 정보란 것은,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게 이득이니까.
“그래? 그럼 드래곤들의 영역은 어디 있는데?”
―알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지화자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을 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은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그 녀석들은… 언제나…… 호시탐탐… 우리 모두의…… 영역을… 얻으려고 하고있는… 아주 못된 녀석들이다…….
“아아, 그러셔? 그래서 네 이름은 뭔데?”
지화자는 진작 자신을 붙잡은 몬스터의 정보를 A-Index를 통해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몬스터의 정보는 A-Index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지화자의 물음에 몬스터가 입을 열었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나는…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이곳, 밀린의 왕…….
타잔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