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60화 (60/200)

제60화

“사람 귀찮게 곱게 죽을 것이지! 망할 오랑우탄 같으니라고!”

유은영의 입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에는 꽤 험한 목소리였다.

또한 오랑우탄이라고 하기에는 모양새가 좀 그런 B급의 몬스터였지만, 어쨌든 유은영은 훔바바를 오랑우탄이라고 지칭하기로 했다.

세상 귀찮게 하는 엄마의 아들과 똑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히 비겁하게 도망쳤겠다?’

절로 이가 갈렸다.

더욱이 동료들과 자신을 또 한 번 이렇게 갈라놓다니!

‘용서할 수 없어.’

지화자가 라이와 리아와 함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 그 둘과 함께 있어도 문제였다.

라이와 리아는 게이트 공략 경험이 이번이 처음인 아이들.

그래, 아이들이었다.

유은영은 라이와 리아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걸 최대한 막고 싶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보호를 받는 것이 마땅한 법.

라이와 리아가 아무리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고 유은영은 생각했다.

‘지화자 씨를 가하성 씨나 하태균 씨한테 맡기는 거였는데! 아니, 그랬으면 다른 식으로 곤란해졌을지도 몰라.’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유은영은 크게 심호흡했다.

“좋아.”

유은영이 머리를 깨끗하게 비우고는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지화자 씨라면 이런 상황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적 있겠지.”

비슷한 기억이라도 좋다.

유은영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이 몸, ‘지화자’의 기억을 회고하기 위해서였다.

최 박사를 상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힘을 다루면 될 거다. 지화자, 그녀에게 주어진 성언(聖言)을 떠올리면서…….

곧, 천천히 유은영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검은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때, ‘지화자’가 대처했던 일을 발견한 탓이다.

유은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곧, 그녀의 목소리는 하나의 푸른 시스템 창으로 나타났다.

[20■X년, 3월 24일의 결투를 회고한다.]

나타났던 푸른 시스템 창이 사라짐과 동시에 유은영은 쥐고 있던 봉을 땅에 꽂았다.

우웅―!

광활한 정원으로 ‘지화자’의 몸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퍼져나갔다.

유은영은 두 눈을 꼭 감았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검은 눈이 번쩍 떠졌다.

“찾았다.”

타앗―!

유은영은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곧, 그녀가 도착한 곳은.

“유은영 씨!”

지화자와 0팀의 팀원들이 있는 곳이었다.

***

“언니……?”

지화자가 멍하니 입술을 움직였다가 황급히 말을 고쳤다.

“지화자 팀장님! 훔바바는 처치했습니까?”

“그랬다면 게이트가 닫혔겠죠? 그보다 유은영 씨가 A-Index에 기록해 놓은 것들 확인했어요.”

유은영이 말을 이었다.

“훔바바가 게이트의 핵을 보유 및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요?”

그 말에 지화자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걸 아시는 분이 그 망할 오랑우탄을 놓치면 어떻게 합니까?”

지화자 씨도 훔바바를 ‘오랑우탄’이라고 부르네.

유은영은 작게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고서 말했다.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 이쪽으로 왔죠. 여러분께 무슨 문제라도 생겼을까 봐요.”

그 말에 지화자를 제외한 0팀의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님, 우리 걱정한 거예요?”

“맞아, 지화자야. 우리 걱정했던 거야?”

라이와 리아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에 처음 떨어졌을 때처럼 뿔뿔이 흩어진 상태면 어쩌나 했거든요. 다행히도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이렇게 모여 있는 걸 보니까요.”

그 말에 가하성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서로 헤어졌었어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했지만, 곧 모두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가하성의 말을 뒤이어 하태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그러지 않았다면 유은영은 손수 팀원들을 찾아다녔을 거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지화자가 혼자가 아닌 팀원들의 보호 아래에 있다는 것.

“좋아요, 다들 무사한 걸 확인 했으니까 저는 제 일을 하러 가볼게요.”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 빌어먹을 오랑우탄, 혼자서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물은 사람은 지화자였다.

유은영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지화자, 그녀는 언제나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을 거다. 팀원들의 걱정이나 도움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굴면서 말이다.

분명 그랬을 지화자가 저런 걱정이라니.

‘내가 못미더워서겠지.’

그런 게 전혀 아니었지만,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웃는 낯으로 말했다.

“네, 혼자서 처치할 수 있어요. 그 자식,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끼면 모습을 숨기거나 하는 것 같던데.”

타악!

유은영이 ‘지화자’의 무기를 손에 고쳐 쥐고선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시간도 없이 몰아붙이면 될 것 같더라고요.”

아니면 지구 끝까지라도, 아니. 이 게이트의 끝까지라도 쫓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모두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딴 빌어먹을 게이트, 빠르게 공략하고 퇴근하자고요.”

유은영은 그 말을 끝으로,

타앗!

땅을 박차며 허공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다시금 허공을 박차 날아갔다.

지화자는 허공을 박차며 내달리는 그녀를 보며 멍하니 읊조렸다.

“아주 자기 몸이네.”

그 소리를 라이와 리아가 듣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한 거냐는 듯 쳐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에 지화자는 투박하게 라이와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유은영의 검은 두 눈이 하얗게 반짝였다. 곧, 그녀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흘렸다.

“찾았다.”

게이트의 한구석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가 보였다.

훔바바였다.

유은영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허공을 박찼다.

자신이 이렇게 날아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뭐, 지화자 씨였다면 아주 쉽게 하늘을 날아다녔겠지.’

애초에 처음부터 하늘 위로 올라 보스 몬스터부터 처리할 생각을 했을 거다.

‘그래, 지화자 씨였다면 그랬을 거야.’

하지만 몇 번이고 생각해도, 자신은 ‘지화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고, 또한 움직이고 있는 거였다.

지화자라는 사람의 힘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말이다.

곧, 그녀의 눈에 빠르게 달리고 있는 몬스터가 포착됐다.

“훔바바!”

유은영이 버럭 소리 지르고는 쥐고 있던 봉을 훔바바를 향해 내던졌다.

정확히 명중이었다.

―크윽……!

분명, 하나였던 무기가 네 개로 쪼개져 훔바바의 각 팔과 다리에 꽂혔다.

타앗, 가볍게 땅에 착지한 유은영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어디, 이번에도 도망쳐보지그래요?”

―한낱… 인간 따위가…….

“네네, 이렇게 훔바바 씨를 잡아버렸네요?”

유은영이 가볍게 손뼉을 치고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말했다.

“제 손에 죽기 싫다면 게이트의 핵을 내놓으세요. 그것만 부수면 되거든요.”

훔바바는 말없이 성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유은영의 손에 그녀가 내던졌던 것과 같은 봉이 쥐어졌다. 훔바바의 양팔과 양다리에 꽂혀있는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유은영은 느긋하게 몬스터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훔바바 씨를 처리해야겠죠.”

―네가 감히…….

훔바바가 짐승이 울부짖듯 성난 목소리를 냈다.

―나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훔바바가 팔과 다리에 꽂혀있던 것들을 무식하게 뽑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곳곳에서 붉은 눈들이 보였다.

이름 모를 원숭이 형태를 취한 몬스터들의 것이었다.

유은영은 픽 웃었다.

“네, 아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화르륵, 유은영을 중심으로 하여 불길이 치솟았다. 일어난 불길은 곧 숲을 삼켜버릴 듯 거대한 화마로 변했다.

―우끼긱! 우끼!

―우끼기익!

훔바바 주위로 모여든 몬스터들이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훔바바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사라지는 제 부하들을 보며 멍청한 얼굴을 보였다.

눈앞의 여자는 호시탐탐 제 구역을 노리는 드래곤들과도 같이 악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자비도 없는 여자.

―이런… 빌어먹을……!

훔바바가 거대한 손톱을 유은영을 향해 휘둘렀다.

이미 겪었던 공격인지라 아주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 유은영이 살짝 몸을 비틀고는 쥐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화르륵, 일어난 불길이 훔바바를 감쌌다.

―크아악……!

훔바바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하…! 하하……!

훔바바의 비명은 곧 유은영을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로 변했다.

몬스터가 유은영을 약 올리듯 말했다.

―나의 비늘은… 드래곤의 것보다 강하다……!

“아, 그래요? 그럼, 드래곤의 비늘보다 강한 훔바바 씨의 것을.”

타앗! 빠르게 몸을 움직인 유은영이 쥐고 있던 봉을 가볍게 휘둘러 정확히 훔바바의 어깨 부근을 꿰뚫었다.

“이렇게 뚫어야겠네요?”

―크… 헉……!

격하게 밀려오는 고통에 훔바바가 이를 갈았다.

유은영은 몬스터를 향해 물었다.

“이번에도 도망칠 생각인가요?”

―도망이… 아니다……!

훔바바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

하여튼 말은 잘해요.

‘우리 부장님같네.’

유은영이 말하는 부장은 간호 관리 부서의 부장이었다.

훔바바는 자신의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여자를 보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는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곧장 모습을 숨겼다. 아니, 자신의 숲을 이용해 여자와 거리를 벌렸다.

―죽인다… 이 상처를 회복한 후에는, 꼭……!

“죽이겠다고요?!”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훔바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유은영은 그에 씨익 웃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허공을 딛고 있던 발이 아래로 추락했다. 추락한 몸은 곧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아니, 땅이 아니라.

―크허억……!

훔바바의 등을 밟으며 앉았다.

땅에 곧장 처박힌 훔바바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유은영을 노려봤다. 유은영은 ‘지화자’의 얼굴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쥐고 있던 무기를 들었다.

“당신을 처리할 거라고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훔바바의 심장 부근을 향해 봉을 꽂았다.

그녀의 무기는 드래곤보다 두껍다던 비늘을 잘만 꿰뚫었다.

훔바바는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곧, 몬스터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와 함께 나타난 시스템 창.

[축하합니다.]

[서울 관악구 관악로 1번지에 생성된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 B급의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훔바바의 심장이 바로 게이트를 이루고 있는 핵이었던 모양이다.

“후우…….”

유은영이 작게 숨을 내쉬며 시스템 창을 바라봤다.

도대체 몇 번째 보는 시스템 창일까?

그리고 이 시스템 창을 도대체 몇 번이나 더 봐야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유은영은 사라지는 게이트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지화자가와 몸이 바뀌었을 때 자신이 이렇게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이제…….’

유은영이 ‘지화자’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픽 웃었다.

지화자의 몸이 완전히 자신의 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지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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