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거칠게 기침을 토해내는 목소리에 리아가 일어나고 말았다.
“우움, 유은영아,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시끄러?”
리아는 졸린 눈을 비비며 오물조물 입술을 우물거렸다. 한창 먹는 꿈을 꾸고 있다 깨기에 그랬다.
그랬었는데.
“히이익!”
리아가 ‘유은영’의 성난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거렸다.
“유, 유은영아, 괜찮아?”
“응? 괜찮아, 아주 괜찮지.”
지화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리아는 그 모습에서 ‘마녀’를 떠올리고는 꿀꺽 침ㅇ르 삼켰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마녀가 아닌 ‘유은영’이었다.
아닌 척, 자신과 제 오빠를 챙겨주고 있는 사람.
‘유은영’은 리아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다정하게 말했다.
“리아, 방에 잠시 좀 들어가 있어 줄래? 지화자 씨랑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할 것 같네.”
리아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지화자가 스마트폰을 손에 꽉 쥐며 일어났다. ‘유은영’의 몸이 아닌, 자신의 몸이었다면 힘 조절을 못 해 박살이 나고 말았을 테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
어쨌거나 지화자는 곧장 유은영이 자고있는 방으로 쳐들었다.
쾅! 열린 문에도 유은영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 씨?”
미동도 없다.
“지화자 팀장님?”
역시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는 유은영이었다.
지화자의 이마에 핏줄이 단단히 섰다. 그녀는 곧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야! 일어나!!”
“꺄악! 뭐, 뭐에요?!”
유은영이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튕겨나오듯 일어나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지화자가 영혼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오, 기습적인 상황에서 무기를 꺼내들다니 아주 훌륭해.”
“훌륭하고 자시고 무슨 일이에요?! 출근까지 아직 시간 남지 않았어요? 아닌가?”
“출근까지 아직 시간 남았지.”
2시간 남짓 남은 시간.
하지만 오늘은 일찍 출근을 준비해야했다.
멀쩡한 차를 사정이 있어 S대학교에 두고 온 탓이었다.
센터가 있는 곳까지는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됐지만, 사람들 이목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지화자는 꺼려했다.
그에 유은영은 사람들을 피해 일찍 집을 나서자고 했고, 지화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는데.
“읽어봐.”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유은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뉴스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지화자에게도 꽃이 핀다? 어제 저녁, 센터의 협력 병원인 △병원 앞에서 밀회를 포착…….”
유은영이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지화자 씨, 사귀어요?!”
“멍청아! 네 이야기잖아!”
지화자가 유은영의, 아니. 제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는 말했다.
“내가 정답게 남매 싸움하라고 했지, 스캔들 터지게 사랑 싸움하라고 했어?!”
“사랑 싸움이라니!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맞은 곳을 문지르며 얼빵하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해요?”
“엎어야지.”
“어디를요?”
묻는 말에 지화자가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화면을 짚었다.
“에브리데이 뉴스?”
“그래.”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마침, 센터 근처에 본사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출근 전에 엎으러 가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엎기는 뭘 엎어요?!”
“그럼, 네 오빠와의 스캔들 인정 하자고? 미쳤어?! 절대 안 돼!!”
“저도 인정할 생각은 없거든요! 그냥 좋게좋게 가자는 거죠!”
하지만 유은영의 생각은 출근과 동시에 부서지게 됐다.
“어머, 지화자 팀장! 지화자 팀장에게도 드디어 꽃이 폈다며? 축하해, 지 팀장?”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온 2팀의 팀장부터.
“이야! 지화자, 대단해? 병원 앞에서 아주 대범하게 남친 멱살을 붙들어 잡고, 크으!”
“지 팀장이 대범한 면이 없잖아 있지.”
3팀과 4팀의 영웅호걸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하합니다, 지 팀장님.”
상대하기 제일 껄끄러운 1팀의 조수현까지.
유은영과 함께 축하하는 말들을 모두 들은 지화자는 0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지화자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리아와 라이는 눈치를 보다 유은영의 옷자락을 꼭꼭 잡아 당기며 물었다.
“지화자야, 왜 유은영의 상태가 저렇게 나쁜거야?”
“맞아요, 지화자 누님. 은영 누님 상태가 엄청 나빠보이는데요?”
“하하, 그러게요.”
유은영이 영혼없이 리아와 라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라이와 리아는 두 눈을 데굴 굴리고는 먼저 출근해 있던 가하성에게 조르르 달려갔다.
“하성이 오빠, 지화자 상태도 이상해.”
“맞아, 지화자 누님의 상태도 많이 이상해요.”
“그럴 수밖에.”
가하성이 무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엎으러 갈 줄 알았더니?’
자신의 팀장이 당장 내일 죽을 사람처럼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난데없는 스캔들 기사에도 저런 식으로 조용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화자 팀장님! 팀장님께 사랑이 찾아왔다는 게 정말입니까!!”
벌컥,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오는 하태균의 목소리에 가하성은 자신의 팀장이 결코 조용히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은영 씨.”
“네, 지화자 팀장님.”
“에브리데이 뉴스의 본사 위치, 알아낼 수 있나요?”
“당연히 진작 알아냈죠.”
“갑시다.”
“좋아요.”
유은영과 지화자가 사이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하성을 비롯해서 라이와 리아, 세 사람이 말릴 틈도 없이 말이다.
0팀의 사무실 문을 있는 힘껏 열어 젖혔던 하태균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 팀장님, 뉴스 봤는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무 일도 아니에요.”
“네?”
“아무 일도 아니라고요.”
유은영이 방긋 웃으며 하태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고는 0팀의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어제 공략 관련해서 보고서 작성이나 하고 계세요. 알겠죠?”
유은영이 상큼하게 웃고는 지화자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센터의 곳곳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 가운데에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었으니.
“아하하하! 야, 지화자! 너 연애한다며?! 진짜냐? 어떻게 너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날 수 있지?!”
스콜피언의 독주, 서이안이었다.
“그리고.”
서이안이 성큼 ‘지화자’에게 다가와서는 두 눈을 부라렸다.
“네가 어떻게 남을 좋아할 수가 있지? 응?”
마치, 네가 양심이란 게 존재하냐고 묻는 듯한 목소리였다.
유은영이 불쾌하다는 듯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고, 지화자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그를, ‘지화자’로부터 끌어낸 사람은 서이안의 먼 친척이자 스콜피언의 돌격 1팀의 팀장인 서도운이었다.
“죄송합니다, 지화자 팀장님. 길드장님께서 꼭 센터에 들리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모셔왔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유은영이 인자하게 말했다.
“마침 잘왔어, 서이안.”
“뭐?”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디를?”
“당연히 이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낸 에브리데이 뉴스를 쳐부수러 가는 거죠.”
묻는 말에 대답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자, 그럼 가자.”
유은영이 서이안의 의견은 제대로 묻지도 않고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잠깐! 누가 간다고……!”
그러냐는 서이안의 말을, 유은영이 막았다.
“서이안 씨, 꼴사납게 어느 S급 각성자한테 붙잡혔던 적이 있었지? 그거 크게 화제가 되지 않게 해줬던 사람이 누구더라?”
어느 S급 각성자라고 하면, 생사불명인 백도진을 말했다.
유은영이 서이안에게 있어 흑역사나 다름 없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그건! 우리 길드원들이 대처를 워낙에 잘해서!”
“아니지, 아니야.”
유은영이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우리 서이안 씨를 빠르게 구해냈기 때문이잖아? 아니야?”
서이안의 입이 일자로 다물어졌다. 그 모습에 유은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협조 좀 부탁할게?”
유은영이 ‘지화자’의 얼굴로 싱긋 웃었다. 서이안이 제일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
“그러니까 사진에 찍혔던 남자는 재수 없는 폐급 힐러의 오빠라는 작자라고?”
재수 없는 폐급 힐러, 유은영이 서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쟤도 같이 따라가는 거란 말이지.”
유은영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지화자를 흘긋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서이안이 김이 샜다는 듯 말했다.
“그래, 네가 연애는 무슨 연애야. 지유화 님이었다면 몰라도 너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아주 그냥.”
“눈이 삔 거죠.”
지화자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조수석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서이안이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겠어?”
서이안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싸가지란 건 존재하지도 않지, 그렇다고 겸손이 있는 것도 아니야.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날만 세우고 있으니.”
쯧쯧, 서이안의 혀 차는 소리에 유은영이 뾰족하게 두 눈을 뜨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가시에 찔러 보고 싶은가 봐, 서이안 씨?”
서이안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곧, 그는 헛기침을 터트리며 말문을 텄다.
“크흠, 흠. 그래서 에브리데이 뉴스인가 뭔지 하는 곳에 쳐들어가서 어떻게 할 건데?”
“기사 정정을 요구해야지.”
“죽어도 그건 못하겠다고 하면?”
“뒤엎어야죠.”
지화자가 말했다.
“감히 누구랑 누구를 엮어? 무엇보다 확인도 안 된 사실을 그렇게 내보내다니.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야.”
살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지화자의 모습에 서이안이 멍하니 유은영에게 물었다.
“너희 폐급 힐러, 오빠 사랑이 엄청난 모양이야?”
“미쳤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왜 네가 지랄이야?”
“네가 지랄맞은 소리를 하니까 이러지!”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지르는 순간이었다.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 씨. 도착했습니다. 저기 5층 건물이 에브리데이 뉴스의 사무실이랍니다.”
“감사해요, 서도운 씨.”
유은영이 기다렸다는 듯 차에서 내렸다. 지화자도 안전띠를 풀곤 곧장 내렸다.
그리고.
“길드장님께서도 가실 겁니까?”
“응, 어떤 간 큰 녀석이 그런 기사를 적었는지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무엇보다 재미난 구경을 놓칠 내가 아니거든.”
“네에, 뭐. 어련하시겠습니까?”
서도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을 보일 때였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쿵! 무언가 서이안의 차 위로 떨어졌다. 그 무언가는.
“사, 사람?”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피떡이 되어 있는 사람.
유은영도, 지화자도, 그리고 서이안도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층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 사람, 각성자거든요. 그것도 B급 각성자.”
B급 각성자 정도면 5층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문제는.
“내 차!”
국내 다섯 대뿐인 서이안의 차가 박살이 나버렸다는 거다. 완전히 박살난 건 아니고, 상판이 살짝 찌그러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이안은 풀썩 쓰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애애!”
서이안이 비명을 내지르든 말든 그건 유은영과 지화자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은영이 위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가.
“오, 읍!”
지화자의 손에 입이 막혔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입을 막고는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아아, 은영아.”
유승민이 싱긋 웃었다.
“살짝 손 좀 봐주고 있는 중이야. 내가 감히 지화자 팀장님과 사랑을 한다니.”
유승민은 ‘유은영’을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시선으로 노려보며 씩 웃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