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69화 (69/200)

제69화

유은영은 한참 동안이나 유승민을 때린 후 말했다.

“어서 로렌치니 윌던, 그 자식에 대한 정보 내놔.”

그 말에 유승민이 훌쩍였다.

“우리 은영이… 착했던 은영이가 점점 지화자 팀장님을 닮아가는 것 같아…….”

“당연하지! 지금의 나는 지화자 팀장님이니까!”

맞는 말이었지만 서글펐다.

하지만 어쩌랴?

유승민은 유은영을 위해 로렌치니 윌던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말해주기 시작했다.

“로렌치니 윌던, 나이 스물…….”

“몇 살인지 안 궁금해. 그보다 20대라니 노안이네.”

유은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로렌치니 윌던이 부여받은 성언 및 가지고 있는 특성들. 모두 알아냈지?”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여받은 성언, 받은 대로 되돌려줘라.”

“대충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겠네.”

내나 ‘얻어맞은 만큼 그대로 갚아줘라’라는 말과 비슷하겠지.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유승민에게 물었다.

“특성은?”

“고유 특성은 거울, 보조 특성은 견고와 인내.”

“지화자 씨랑 보조 특성이 일부 겹치네?”

지화자가 말하기로는 견고와 인내, 그 특성으로 어떤 부상을 입든 어지간하면 버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 심한 부상을 입은 적이 없어 잘 느끼지 못했지만.’

아마 이번 싸움은 다르리라.

유승민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동생에게 경고했다.

“아마 힘든 싸움이 될 거야.”

그 말은 즉, 최대한 빠르게 싸움을 끝내는 것이 좋다는 말이었다. 유은영은 조용히 그 말에 동의하고는 유승민에게 물었다.

“고유 특성인 ‘거울’은 무슨 힘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남의 힘을 그대로 흉내 내는 거라고 봐.”

“그렇지? 지화자 씨가 그런 녀석을 상대해 본 적이 있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유승민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유은영은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몰라도 괜찮아. 상대해보면 알 수 있겠지.”

만약, 로렌치니 윌던과 비슷한 상대와 싸운 기억이 ‘지화자’의 기억에 남아있다면 수월하게 싸울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러지않다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상대라면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상대를 하면 잘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라고 유은영이 생각할 때였다.

“은영아.”

“응?”

유승민이 그녀의 상념을 깨웠다.

“사실 나는 네가 로렌치니 윌던 씨와 싸우지 말았으면 해.”

“왜?”

묻는 말에 유승민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입을 다물었다.

‘왜기는 왜야, 네가 걱정돼서 그러지. 그리고 네가 내가 아는 은영이가 아니게 될까 봐 그러지.’

유승민은 튀어나오려는 무수한 걱정의 말을 꿀꺽 집어삼키고는 말했다.

“각성자 간의 결투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야.”

“알아, 싸워봐서 알아.”

“뭐?”

유승민이 놀란 눈을 보였다. 유은영은 태연하게 물었다.

“백도진 씨라고 알아?”

“당연히 알지.”

백도진, 그는 지금은 해체된 대한민국 제 1의 길드라고 불렸던 넘버(Number)의 길드장이었다.

길드의 주춧돌 역할을 하던 지유화의 죽음 이후로 모습을 감춰 자살했다니 폐인이 됐다니 뭐니 소문만 무성한 자였는데.

“그 사람을 네가 어떻게 알아?”

“싸워본 적이 있으니까.”

“뭐?!”

유승민이 빼액 소리 질렀다.

“백도진 씨랑 싸웠다고?! 언제, 어디에서!”

다그치며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고, 인적 드문 산에서 싸웠었어.”

“도대체 왜?”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어서 그랬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 뭐였기에 그 사람이랑 싸워?!”

유은영이 곤란하다는 듯 난처하게 뺨을 긁적였다.

자신이 스콜피언 측의 요청으로 서이안을 구하는 데 이런저런 일을 겪은 것은 대외적으로 비밀이었기에 유은영은 유승민에게 빼액 소리 질렀다.

“오빠는 몰라도 돼! 그렇게 궁금하면 우리 부장님께 직접 물어봐! 나는 못 가르쳐줘!”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아니, 모르겠는데?”

유은영이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순진무구하게 말했다. 유승민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우종문은 뱀 같은 남자였다. 길고 기다란 혀로 남을 요리조리 구워삶는 것이 그의 특기이자 자랑이었다.

오죽하면 청와대 측에서 기피하는 대상이 센터의 국장도 아닌, 우종문 부장이라는 소리가 파다할 정도였다.

“그래서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백도진은 어떻게 됐는데?”

“보면 몰라? 당연히 괜찮지. 그리고 백도진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 생사불명이야.”

생사불명이라니.

’하긴, 우리 은영이가 누구처럼 타인의 목숨을 쉽게 빼앗는 성격은 아니지.‘

유승민이 ’지화자‘를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유은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오빠, 이 몸은 지화자 씨의 몸이야. 내 몸이 아니라고.”

“그래도 지금은 네 몸이나 다름없잖아.”

그 말에 유은영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유승민의 말대로, 자신이 암만 지화자가 아니라고 해도 지금 이 몸은. ’지화자‘의 몸은 제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었다.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황급히 말했다.

“어쨌든, 걱정 마. 어차피 로렌치니 윌던과의 결투는 피할 수 없어. 부장님도, 그리고 엘리자베스 윌던 씨께서도 끝마친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뒤집겠어?”

“지화자 팀장님이라면 충분히 뒤집을 텐데.”

“오빠가 모르는 게 있는데.”

유은영이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님도 위에서 까라면 까는 공무원이야.”

그건, 자신과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

엘리자베스 윌던의 첫 번째 일정이 끝났다.

유은영은 유승민이 데려다주겠다는 것을 거절한 후, 택시를 잡아 타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괜히 같이 움직였다가 또 스캔들이라도 나면 곤란했으니까.

그렇게 유은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아.”

“오, 왔어?”

지화자가 반갑게 그녀를 반겼다.

편하게 자신을 반기는 지화자의 모습에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이랑 리아 없어요?”

“아니, 있어. 그런데 둘 다 오늘 피곤했는지 빨리 자러 들어갔거든. 자고있는 거 확인 했으니까 편하게 대해.”

“저는 이렇게 존댓말하는 게 편한 거 알면서.”

“그건 그렇지.”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유은영이 물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그래? 기술 관리 부서를 엎은 게 티가 나나 보네?”

“네?”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서 어땠어?”

“엘리자베스 윌던 씨의 경호 임무요? 완전 편했어요.”

“그치?”

지화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나한테 고마워해야해. 내가 귀빈의 편한 경호를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지랄을 떨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 테니까.”

“오빠한테서 언니가 웬 일본인한테 쓰나미의 공포를 보여줬다는 건 들었어요.”

“아하, 사토 유즈르 말이구나?”

지화자가 기억 난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지진이랑 쓰나미를 일상적으로 겪는 녀석이 간이 많이 작더라고. 그냥 바닷물만 넘쳐 흐르게 했는데 쫄아서는 도망치는 꼴이 얼마나 웃기던지!”

“바닷물을 도대체 얼마나 넘쳐 흐르게 했는데요?”

“그냥…….”

지화자가 미간을 살짝 좁혀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광안대교를 덮칠만큼? 그래도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어. 겁만 주려고 그랬던 거라.”

그 말에 유은영이 멍하니 그녀에게 물었다.

“지화자 씨, 혹시 괴물이에요?”

“안타깝게도 사람. 그보다 로렌치니 윌던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왔어?”

“네, 오빠가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알려줬어요.”

“일단 싸가지는 나만큼 없을 테고, 나 못지않은 성격 파탄자겠지. 그치?”

“어떻게 알았어요?”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화자는 맞췄다는 기쁨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야,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 아닌 이상 나한테 결투를 신청할 리 없으니까.”

“로렌치니 윌던 씨께서 직접 결투를 신청한 게 아닌데요.”

결투는 엘리자베스 윌던과 우종문이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지화자는 말했다.

“어쨌거나 로렌치니 윌던이 동의했기에 결투가 벌어지게 된 거잖아? 그러니까 그 녀석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지.”

그렇게 되는 건가?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로렌치니 윌던 씨의 성언은 뭐래?”

“아, ‘받은대로 되돌려줘라’라고 하더군요.”

“받은대로 되돌려줘라…….”

지화자가 아래턱을 어루만지고는 말했다.

“네가 그 자식을 공격하면 그 자식이 그만큼 네게 공격을 가할 게 뻔할 것 같네. 아님, 그만큼 너프를 당하거나.”

“싸움을 길게 끌고가면 안 되겠네요.”

“맞아, 언니. 꽤 똑똑해졌네?”

“저 원래 똑독하거든요?”

“네네, 그러시겠죠.”

지화자가 놀리는 듯 말하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특성들은?”

“고유 특성은 거울, 보조 특성은 견고와 인내로 지화자 씨께서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았어요.”

“흐음.”

“왜요?”

“고유 특성이 걸려서.”

로렌치니 윌던의 고유 특성은, 거울.

“언니, 로렌치니 윌던의 고유 특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으음, 흉내내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지화자는 유은영과 다르게 새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그녀에게 물었다.

“지화자 씨는 저와 다르게 생각하나 보네요?”

“나도 흉내내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공격을 반사하거나 그런 힘을 가진 특성이면 어쩌나 싶어서.”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 씨의 생각이 로렌치이 윌던 씨께서 부여받은 성언을 생각하면 맞아떨어지는 것 같네요.”

“어쨌든 중요한 건 하나야.”

“뭔데요?”

“언니가 ‘지화자’로 이기는 거.”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두 눈을 빛냈다.

“그냥 이기면 안 돼. 아주 잘근잘근 짓밟아줘야해. 알겠지?”

“네?”

굳이, 그래야 하나요?

유은영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로렌치니 윌던이 생각보다 강한 건 물론, 엘리자베스 윌던의 두 번째 일정이 끝난 후의 펼쳐질 경기에서.

―로렌치니 윌던 씨와 지화자 씨께서는 서로의 파트너 분과 함께 입장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망할 혈육과 함께 나란히 팔짱을 끼고 입장을 하게 될 줄 말이다.

이게 무슨 중세 시기 사교 파티장도 아니고, 왜 파트너를 대동해서 결투장에 입장하라는 건데!

유은영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에 반해 유승민은.

“지화자 팀장님, 이렇게 하니 정말 정답지 않나요?”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유승민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주먹을, 유은영은 가까스로 막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지화자도 신고 있던 구두를 유승민을 향해 집어 던지려는 것을 꾹 참는 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