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망했네.”
“네?”
멍하니 결투 현장을 보고 있던 가하성이 ‘유은영’이 내뱉은 소리에 그녀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망했다고요.”
그것도 아주 단단히 망해버렸다.
“저 녀석, 자신이 받은 데미지를 그만큼 돌려주는 타입인가봐요. 저런 경우는 한번에 목숨을 끊거나 그래야하는데.”
‘지화자’는 그러지 못했다.
지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지화자가 지는 거야?”
“지화자 누님이 진 다고요?!”
리아의 말에 라이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빼액 소리 질렀다.
남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지화자가 말했다.
“지지는 않을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하태균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지화자 팀장님이잖아요.”
누군가 그녀의 대답을 들었다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했을 테다.
하지만 0팀은 달랐다.
“하긴, 지 팀장님이라면 알아서 저 녀석을 처리하겠죠.”
“유은영 씨의 말대로 때려눕힐 게 분명합니다.”
하태균이 가하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엿다.
“맞아! 지화자야, 때려눕혀!”
“맞아요, 지화자 누님! 저런 자식 때려눕혀 버려요!”
지화자가 하나같이 유은영을 응원하는 0팀을 보고는 픽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상황이 갈수록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지화자’는 로렌치니 윌던의 장난감이라도 된 것처럼 이리 구르고 또한 저리 굴렀다.
먼지가 자욱하게 있는 결투 현장을 내려다보며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언니. 저런 싸가지 없는 새끼, 처리할 수 있잖아?’
유은영이라면 할 수 있다.
지화자는 그렇게 생각했고, 또한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확신은 얼마가지 못해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지화자야!”
“지화자 누님!”
그녀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것에 지화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윌던 기업의 후계자, 로렌치니 윌던.
암만 S급 각성자라고 해도 자신에게 비할 바가 못 될 각정자다.
그래, 분명 그럴텐데.
‘왜 저렇게 맥을 못 추려!’
지화자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두 손을 꽉 주먹쥐었다.
자신의 몸이 로렌치니 윌던에 의해 힘없이 무너지는 꼴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보다 그 몸 안에 들어있는 유은영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지 몰라 속이 탔다.
그리고 지금 속이 타고 있는 건.
“은영아!”
지화자뿐만이 아니었다.
***
유승민은 당장에라도 앉고 있는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였다.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의자에 풀칠이라도 되어있는 건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로렌치니 윌던의 파트너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마리사라고 했던가?’
똑 부려져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심성은 꽤 유약한지, 그녀는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결투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이미 다잡은 사냥감을 좋을대로 유린하고 있는 포식자.
로렌치니 윌던은 지금 그것을 ‘지화자’에게 행하고 있었다.
“은영아! 유은영!”
그 몸 안에 자신의 동생이 들어가 있는데 말이다.
유승민이 두 눈을 까뒤집을 듯이 성난 목소리를 내뱉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당장 그만둬!! 내 동생 가지고 노는 거, 당장 그만 두라고! 이 개새끼야!!”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로렌치니 윌던에게 닿지 못했다.
그러지 못하게 유승민의 주위로 방어막이 쳐져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유승민은 의자에 앉아 꼼짝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얼마나 발광을 하고 있는지는 로렌치지 윌던에게 똑똑히 보였다.
그렇기에 그는 쿨럭거리며 피를 토해내고 있는 ‘지화자’에게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야, 대한민국의 랭킹 1위님. 네 파트너와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일 뿐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애틋한 사이인가봐?”
“뭐……?”
유은영이 로렌치니 윌던에게 얻어 맞은 복부를 부여 잡고는 유승민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오빠!’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유승민의 앞에서 이렇게 얻어맞고 있는 꼴이라니.
더욱이 유승민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지화자 씨도 보고 있겠지.’
나중에 얼마나 잔소리를 들을지, 유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웃어?”
그것이 로렌치니 윌던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퍼억!
로렌치니 윌던이 강하게 ‘지화자’의 턱을 걷어차 올렸다.
“……!”
한순간 시야가 검게 칠해진 유은영이 비명을 지르지 않고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화자는 분명 말했다.
자신은 보조 특성의 성향상, 고통을 쉽게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아니잖아요!’
유은영은 지금 이 자리에 지화자가 있다면 그녀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로렌치니 윌던의 공격이야 읽기 쉬웠다.
그는 무식하게 무기를 휘둘러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어디로 어느 곳을 향해 공격을 가할지 보기 뻔했으나 이상하게 피해지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반격을 가하려고 하면 속의 장기가 비틀어지는 고통이 안에서 끌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이유를, 유은영은 쉽게 짐작했다.
‘로렌치니 윌던이 부여받은 성언!’
받은대로 되돌려줘라.
무슨 말인가 했더니, 공격을 당한 만큼의 데미지를 똑같이 상대방에게 가하는 소리였나 보다.
‘설마가 사람잡는 다더니!’
그의 성언이 이렇게 효과를 발휘할 줄 몰랐다.
유은영이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 잡고나 관자놀이 부근을 부여 잡았다.
로렌치니 윌던은 피투성이의 꼴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오, 턱을 가격했는데 용케 기절을 안 했어? 그럼, 이건 어떨까?”
로렌치니 윌던이 순식간에 유은영의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컥……!”
단번에 유은영의 앞에 나타나 단번에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아무런 대비도 못한 그녀는 힘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쿨럭! 큭, 으.”
유은영이 떨어지는 잔해를 피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 로렌치니 윌던이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사이로 여유가 만만한 얼굴을 보였다.
“몸 하나는 정말 튼튼한가 보네? 계속 일어나는 걸 보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기절하겠다 싶으면 고통이 찾아와 유은영의 정신을 강제로 깨웠다.
‘진짜 못됐어.’
유은영은 로렌치니 윌던의 고약한 심정에 혀를 차며 입가를 닦아냈다.
손등에 묻은 피를 탈탈 털어낸 유은영이 봉을 고쳐 쥐었다.
‘어떻게 공략을 해야할까?’
유은영은 로렌치니 윌던을 공략 대상인 ‘게이트’로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 고약하고 성질 더러운 눈 앞의 각성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자.’
로렌치니 윌던은 자신이 가한 공격을 그대로 반사하는 몬스터다. 그 공격에 입은 데미지 역시 똑같이 자신에게 반사를 하고.
즉, 그 말은.
‘로렌치니 윌던은 일어서 있는 게 고작인 상태가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그의 모든 공격이 이렇게 쉽게 읽힐 수가 없었다.
로렌치니 윌던, 그는 분명 자신의 공격으로 큰 데미지를 입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유은영이 고쳐 잡은 봉을 가볍게 휘두르고는 땅을 박찼다.
‘감내한다.’
온 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유은영은 그 소리를 모두 무시하며 로렌치니 윌던을 향해 무기를 치켜들었다.
로렌치니 윌던이 순식간에 제 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그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웃어?’
로렌치니 윌던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 있었다.
유은영이 익히 보던 ‘지화자’의 비릿한 웃음과 닮은 것에 당황하는 찰나.
“큭!”
쿨럭, 피가 울컥 토해졌다.
폐부를 깊이 찌른 창에 호흡하기가 힘들어졌다.
로렌치니 윌던의 무기가 ‘지화자’의 몸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유은영의 두 눈이 떨렸다.
‘도대체 언제?’
그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읽기 쉬운 공격이었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졌다.
로렌치니 윌던이 유은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겠다는 듯 비릿하게 웃으며.
“있잖아, X만한 랭킹 1위님. 혹시 있잖아.”
창을 돌려 그녀의 가슴에서 빼 내었다.
“쿨럭……!”
유은영이 힘없이 쓰러졌다.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핏물이 계속 몇 번이고 울컥 토해졌다.
로렌치니 윌던은 그녀의 귓가에 소곤거리며 물었다.
“네가 겪고 있는 고통을 나도 똑같이 겪고 있을 거란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그랬다면 실망인데?”
유은영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로렌치니 윌던이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실망이라고! 다시 일어서봐! 어디 한번 그 재수없는 낯짝을 다시 들어올려 보라고!”
말을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그는 ‘지화자’의 복부를 걷어찼다.
유은영은 그때마다 피를 토해내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건, ‘지화자’가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니까.
‘하지만 이러다가 죽을거야.’
그래, 분명 죽고 말거다.
유은영은 새까맣게 칠해지는 시야에 가쁜 숨을 몰아내쉬다가 결국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로렌치니 윌던은 몇 번이고 그녀를 짓밟고 발로 찼다.
“은영아! 유은영!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만둬! 그만하라고!”
유승민이 악을 내질렀지만, 어차피 닿지 않는 목소리.
로렌치니 윌던은 마귀와도 같이 웃으며 그녀를 죽일 듯이 굴었다. 이 모든 광경을, 0팀의 모두가 바깥에서 보고 있었다.
“지, 지화자야.”
리아가 파들파들 떨다가 황급히 우종문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안 말려?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맞습니다, 부장님! 당장 이 싸움을 멈춰야합니다!”
가하성이 버럭 소리 질렀다. 하지만 우종문은 꼼짝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가하성 군, 이건 싸움이 아니라 신성한 ‘결투’라네.”
신성하고 자시고 자신의 팀장이 눈 앞에서 죽게 생겼다.
가하성이 빼액 소리 질렀다.
“부장님!”
이번에도 우종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결투는 상대방이 항복하거나 기절하지 않는 이상 중단되지 않는다네. 아, 결투가 중단되는 또 다른 상황이 있지.”
우종문이 싱긋 웃었다.
“지화자 팀장이 죽는 경우.”
가하성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태균은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그 순간 리아가 우종문을 향해 달려 들었다.
“할아버지, 지금 뭐라고 했어?! 지화자가 죽어? 누가 죽는다고 그러는 거야!”
“맞아요, 할아버지! 지화자 누님이 죽기는 왜 죽어요!”
라이도 우종문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달려 들었다.
“라이, 리아!”
하태균이 황급히 두 사람을 힘으로 말렸다.
“진정해! 지화자 팀장님이 설마 죽겠냐, 이 녀석들아!”
“하지만!”
리아가 빼액 소리를 지르는 순간이었다.
“유은영아!”
‘유은영’의 몸이 힘없이 쓰러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