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86화 (86/200)

제86화

12. 선물

조수현은 구순철의 치료를 받은 후 1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와 함께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까지 갈 정도의 상처는 아닙니다만.”

조수현이 그렇게 말했으나 ‘유은영’은 기어코 그를 보내버렸다.

“불꽃 독사자는 A-Index에 기록되지 않은 몬스터에요.”

그러니까 그 위험은 알 수 없다는 말.

“암만 B급의 몬스터라고 해도 주의해야해요. 그렇죠, 팀장님?”

묻는 말에 유은영은 어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조수현은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

라이와 리아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봐요.”

“그렇겠죠. 아무래도 늦은 시간에 게이트가 열렸으니까요. 무엇보다 애들이잖아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는 유은영밖에 없으나 지화자는 조심했다.

“팀장님께서도 잠깐 눈 좀 붙이세요. 출근하면 바로 보고서 작성해야할 테니까요.”

끔찍한 소리였다.

하지만 유은영은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곧 집에 도착하는데요, 뭐. 그보다 유은영 씨, 의외였어요.”

“뭐가요?”

“조수현 팀장님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요.”

“싫어해요.”

그 말에 유은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런 것 치고는 조수현 팀장님을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던데요?”

“출근한 후에 구순철 부장님께 눈 좀 봐달라고 하세요. 아무래도 삐신 것 같으니까요.”

얄밉게 말하는데는 선수다.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지화자가 그런 그녀를 흘긋거린 후 말을 이었다.

“조수현 팀장님께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저희 팀이 그 공백을 매꿔야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걱정하셨구나!”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 시각, 한국 종합 병원.

센터와 협력 관계인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조수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 *

“팀장님, 괜찮으세요?”

치료가 끝나자마자 1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인 지소연이 그에게 물었다.

“괜찮으니까 이만 퇴근하도록.”

“그렇지만…….”

우물쭈물거리는 그녀에게 조수현이 말했다.

“보다시피 상처는 모두 치료됐어. 불꽃 독사자에게 당한 독은 곧 해독될 테고. 그러니까 걱정 말고 이만 가도록 해.”

그럼에도 지소연은 걱정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에 조수현이 물었다.

“아침에 출근해야한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연차를 낼 생각이라면 사양이야.”

그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지소연은 짐을 챙겼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주세요!”

“그래.”

지소연이 병원을 나섰다.

조수현은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조수현 팀장님!”

지화자가 다급하게 달려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화자의 앞에서 다친 모습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제 상처에 그렇게 놀라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유, 유은영 씨! 상처 좀 봐주세요! 어서요!”

“안 그래도 그럴 거예요.”

더욱이 유은영까지.

두 사람 모두 자신을 향해 항상 날을 세우던 사람들이었다.

조수현이 부상을 입었던 손을 주먹 쥐었다 펼쳤다. 움직이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다.

힐러의, 아니.

힐러들의 적절한 조치 덕분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당연히 유은영도 포함됐다.

“힐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던 건가?

조수현이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처음 지화자가 전담 어시스트 힐러를 팀에 들였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또한 기뻤다.

그녀가 드디어…….

“조수현 팀장님.”

“아, 선생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조수현이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그를 찾아온 의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조수현 팀장님께서 부상을 입고 오셨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것 참 죄송합니다. 괜한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군요.”

“아니에요. 독이 온 몸에 퍼지지 않았어서 다행이죠.”

“독이 퍼지지 않았었다고요?”

“네.”

의사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는 싱긋 웃었다.

“실력있는 힐러가 근처에 있었었나 봐요? 힐을 암만 잘 다룬다고 해도 체내에서 독을 퍼지는 걸 막을 수 있는 힐러는 별로 없을 텐데 말이에요.”

조수현은 핵을 부수는 과정에서 외상과 내상을 모두 입었었다.

외상이야 구순철이 봐줬지만 내상은 아니었다.

아니, 아니라고 생각했다.

‘힐러들은 내상을 치료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고 했었지.’

외상이야 드러난 상처를 그대로 치료하면 됐지만 내상은 아니었다. 한 장기가 망가지면 연쇄적으로 다른 곳에 영향을 끼치니.

‘그것 때문에 내상을 치료하는 걸 많이 꺼려한다고 들었는데.’

조수현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구순철 부장님께서 그래 주신 건가? 아니, 그럴 분은 아니다. 그럼 소연이가?’

지소연 역시 아니라는 것을 조수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한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하나.

‘설마, 유은영이?’

그럴 리가 없었다.

그야, 유은영은 힐러라고 해도 F급이지 않은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조수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였다.

“조수현 팀장님?”

“아,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조수현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는 의사에게 물었다.

“이제 그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해독제 들어가고 있는 거 보이죠? 이거 모두 맞고 가면 돼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군요.”

“뭘요.”

의사가 눈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수현 씨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녀는 그 말을 남겨두고 응급실을 떠나버렸다.

조수현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현 씨?”

자신을 그렇게 친근하는 부르는 사람이 이 병원에 있었던가?

그보다.

“오랜만에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았다니……?”

조수현은 의사와 초면이었다.

그런데 자신과 언제 만났다고 그런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조수현은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몇 번 만날 일도 없는 의사의 정체를 의심해서 뭘 한단 말인가?

지금은 다른 일에 집중해야할 때였다.

‘유은영.’

조수현은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를 떠올리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 그를 보며 웃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 * *

“라이, 리아. 도착했어. 일어나.”

“흐아아암……!”

리아가 길게 하품하고는 말했다.

“유은영아, 나 꿈꿨어.”

“무슨 꿈?”

“웬 할아버지가 나랑 오빠한테 선물주는 꿈.”

그 말에 지화자가 멈칫했다. 유은영도 움찔거렸다. 그러고보니 내일은 크리스마스였다.

유은영이 지화자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지화자 씨, 라이 씨랑 리아 씨 선물 챙겨준 적 있어요?’

‘없는데.’

‘왜요?!’

‘왜기는 왜야. 챙겨줄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쟤들 크리스마스가 뭔지 모를걸?’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되는 두 사람이었다.

그때, 라이가 말했다.

“리아, 나 그 할아버지 누구인지 알 것 같아.”

“누군데?”

“산타 할아버지!”

라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태균 형님이 그랬어. 매년 12월 25일에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한테 선물을 준다고!”

“정말?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선물 받아본 적 없잖아! 선물을 받는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준 것뿐이었는데?”

할아버지란 우종문을 말했다.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착한 아이들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봐.”

“아하! 그런데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나랑 오빠를 착한 아이들로 본 거구나?”

“그렇지!”

“우와, 좋다! 그럼 내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려고 찾아 오겠네?”

리아와 라이가 활짝 웃었다.

아이들과는 다르게 유은영과 지화자는 죽을 맛이었다.

유은영이 다시 지화자에게 소리 없이 물었다.

‘어떡하죠, 지화자 씨?’

‘무시해.’

‘그럼, 리아 씨랑 라이 씨가 실망하실 텐데요?’

‘실망하라고 해.’

유은영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다.

당연히 지화자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말했다.

“라이, 리아. 쓸데 없는소리하지 말고 내려. 집에 안 갈 거야?”

“갈 거야!”

“갈 거예요!”

라이와 리아가 사이좋게 차에서 내렸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도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로 재잘거렸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유은영이었다.

결국, 라이와 리아가 자러 방에 들어간 후 그녀는 지화자에게 선전포고했다.

“제가 산타 할아버지가 되겠어요! 라이 씨랑 리아 씨한테 선물을 주겠다고요!”

“언니, 드디어 미쳤구나?”

“안 미쳤으니까 협조해주세요.”

“협조는 개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말했다.

“협조해 주지 않으면 내일 2팀의 나혜선 팀장님한테 남자 만나고 싶으니 소개팅 주선해달라고 할 거예요.”

“나 독신주의자야!”

“저는 아니거든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말했다.

“어차피 원래 몸으로 언제 돌아갈지 모르잖아요? 랭킹 1위의 몸으로 남자들 좀 만나보죠.”

“남자들이 만나주기는 한대?”

“지화자 씨, 뭘 모르네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지화자 씨가 암만 인성 파탄자에…….”

친언니인 지유화를 죽인 살인자.

유은영이 그 사실을 깨달리고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아무튼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돌아간다고요?”

“말이나 못하면.”

“그럼, 협조해주는 걸로 알게요?”

지화자가 유은영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많이 컸네.’

감히 자신한테 협박을 한다니.

하지만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쾌하다고 할까?

그렇기에 지화자는 유은영에게 물었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라이 씨랑 리아 씨께 가지고 싶은 선물 없는지 물어봐주셨으면 해요.”

“그냥 아무거나 사주면 되잖아?”

“안 돼요! 지화자 씨는 도대체 크리스마스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아본 적 없어요?”

“응.”

의외의 대답에 유은영이 말을 더듬거렸다.

“어, 어쨌든 지화자 씨만 믿을게요! 알겠죠?”

“몰라.”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잔다.”

유은영이 부루퉁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유은영은 알았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지화자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란 걸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맞이한 다음날.

보고서 작성으로 바쁜 와중에도 지화자는 라이와 리아가 원하는 선물을 알아왔다.

점심 시간을 틈타 유은영과 만난 지화자가 그녀에게 알려줬다.

“거미가 가지고 싶대.”

“거미요?”

“그래. 친구가 있었으면 한다나봐.”

“그럼, 학교를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쟤들이 학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랬다.

라이와 리아는 몬스터의 유전자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

실험체였던 그들이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언니 부탁 들어줬어. 나머지는 알아서 해.”

“잠깐만요!”

유은영이 다급하게 지화자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뭐가?”

“라이 씨랑 리아 씨가 거미를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게, 집에서 키워도 괜찮은지…….”

“괜찮아.”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키운 적 있거든.”

그렇게 말하는 지화자의 목소리는 왜인지 모르게 쓸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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