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89화 (89/200)

제89화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동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을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유은영과 가하성을 안내해준 기사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걸음을 돌렸다.

“잠깐만요.”

유은영이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교도들을 모두 처리해드릴게요.”

기사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곧 사라졌다.

기사의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가하성이 말했다.

“그런 말은 왜 하신 거예요?”

“마음이 좀 편해질까 싶어서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입구는 하나뿐이겠죠?”

“그렇겠죠.”

가하성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을 들고 다니세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지금만 해도 그랬다.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날에 갑자기 일어난 게이트라니.

철컥, 가하성이 탄창을 갈고는 입을 열었다.

“입구 쪽에 있는 녀석들은 제가 처리할게요. 팀장님께서는 먼저 안으로 진입해주세요.”

“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교도들은 총 여섯.

유은영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하성 씨,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하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가하성이 총구를 들었고.

타앙―!

총성이 울렸다.

유은영이 곧장 땅을 박찼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유은영이 소란을 가로질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교도들이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탕―!

또 한 번 울린 총성에 이교도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유은영은 그대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고요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멈춰라! 가까이 다가오면 이 녀석을 죽여버리겠다!”

“꺄아악! 사, 살려주세요!”

이교도에게 붙잡힌 여자가 벌벌 떨며 유은영에게 빌었다.

여자는 이세계의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입을 리가 없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유은영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 꿇어라! 두 손은 뒤로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이 여자를 죽여버리겠다!”

결국 유은영은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땅에 놓았다.

여자가 암만 이세계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힘이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러니까 유은영이 지켜야할 대상에 들어간다는 소리.

‘어쩔 수 없지.’

유은영이 그대로 무릎을 꿇으려는 찰나.

[‘용사’로서 이교도들을 처치하십시오.]

[6/300]

‘0’이었던 숫자가 ‘6’으로 늘어났다. 가하성이 입구 쪽의 이교도들을 모두 처치한 거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유은영이 바닥에 놓았던 봉을 이교도를 향해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이교도가 인질로 잡고 있던 여자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윽! 이 쥐새끼 같은 녀석이!”

유은영은 여자를 구출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교도가 문제였다.

내던진 무기에는 살기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교도는 그녀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질을 신경 쓰느라 너무 조심했어!’

지화자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

유은영이 엎치락뒤치락 이교도와 뒤엉켰다.

승부는 금방 결정났다.

“아아악!”

S급 각성자, 지화자.

그녀의 몸에 들어가 있는 유은영은 어렵지 않게 이교도를 제압했다.

타앙―!

총성이 울린 건 그때였다.

머리를 관통당한 이교도의 몸이 축 늘어졌다.

“팀장님, 뭐하세요?”

“가하성 씨……!”

유은영이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요!”

“아니요. 죽여야 해요. 그래야 숫자가 올라가더라고요.”

가하성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어쩜 저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이교도들을 죽이지 않으면 게이트를 공략할 수 없다.

그때 인질로 잡혀있던 여자가 그들에게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

“동굴 안쪽에 갇혀 있어요! 어서 사람들 좀 구해주세요! 다들 제물로 바쳐지기 일보직전이에요!”

제물이라니?

그에 관해 물어볼 새도 없이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람들이 모두 죽고 말 거예요! 마녀에게 바쳐지고 말 거라고요!”

여자는 벌벌 떨며 흐느꼈다. 유은영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알겠어요. 저희만 믿으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가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요. 당신은 어서 동굴을 나가도록 하세요.”

유은영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황급히 동굴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은영은 가하성과 함께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하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저희가 온 걸 알았을 텐데 적들이 나오지를 않네요.”

“제물을 바치느라 정신이 없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서둘러야겠네요. 제물 중에는 게이트에 휘말린 일반인들도 있을 테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가하성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팀장님?”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해 멈췄다.

동굴 벽면에 걸려있는 초상화 한 점 때문이었다.

“어……?”

초상화 속의 여인은, 자신의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 * *

“…지유화?”

지화자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벽면에 걸려있는 초상화의 얼굴이 지유화와 꼭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본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눈을 비비거나 할 필요도 없이 눈앞에 있는 그림 속 여자는 지유화가 분명했기에.

“저기 있다! 제물을 잡아라!”

뒤쪽에서 광기에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지화자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손을 리아가 잡았다.

“유은영아! 뭐해?! 어서 우리 오빠 찾으러 가야지! 이러다 붙잡히고 말 거라고!”

리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리아.”

“응?”

“저 녀석들을 붙잡아줘.”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이니까 무시하자고 했잖아?”

“생각이 바뀌었어.”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붙잡아줘. 물어볼 게 있으니까.”

“순 제멋대로야!”

리아가 불퉁하게 말하며 손가락 끝에서 거미줄을 펼쳤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꺄악!”

그들을 잡으려고 달려오던 이교도들이 거미줄에 묶여버렸다.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지금에라도 우리를 풀어주면 고통 없이 죽여주도록 하마. 마녀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 아느냐?”

“그렇게 영광스러운 일이면 너희가 제물이 돼야지.”

지화자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저 여자가 너희가 말한 ‘마녀’인가?”

“마녀‘님’이시다!”

어쨌거나 마녀가 맞다는 말.

“좋아. 그럼 한 가지 더 물어볼게.”

“누가 말해준다고 하더냐!”

“말해주게 될 거야.”

지화자가 리아에게 눈짓했다.

그녀가 가진 힘을 모두 내보이라는 뜻이었다.

리아가 지화자의 명령을 알아듣고는 이교도들을 묶고 있는 거미줄에 독을 풀기 시작했다.

치이익―!

이교도들의 살갗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꺄아악!”

고통에 젖은 목소리가 곧 동굴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화자가 리아를 멈추게 하고는 다시금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마녀는 도대체 누구지? 언제 만난 거야? 가지고 있는 힘은? 너희는 뭐 때문에 저 여자를 숭배하고 있는 거지?”

이교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퉤!

지화자에게 침을 뱉을 뿐.

지화자가 뺨에 묻은 침을 닦아 내고는 픽 웃었다.

“리아, 눈 감고 있어.”

리아가 우물쭈물하다 두 눈을 꼭 감았다.

“귀도 막고.”

리아는 지화자의 말을 잘 따랐다. 두 귀 역시 꼭 막은 거다.

지화자는 그대로 주먹을 들었다.

퍽! 퍼억!

이교도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뭉개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각성자라면 ‘유은영’의 주먹 따위 쉽게 막아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성언(聖言)의 효과로 고유 특성 ‘안녕(安寧)’과 보조 특성 ‘힐(Heal)’의 능력치가 15% 향상되었습니다.]

[성언(聖言)의 효과로 고유 특성 ‘안녕(安寧)’과 보조 특성 ‘힐(Heal)’의 능력치가 30% 향상되었습니다.]

이교도들을 때려눕힐 때마다 능력치가 향상되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멈추지 않았다.

한 명만 남을 때까지 묵묵하게 주먹을 휘두를 뿐.

이윽곧 그녀의 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성언(聖言)의 효과로 고유 특성 ‘안녕(安寧)’과 보조 특성 ‘힐(Heal)’의 능력치가 100% 향상되었습니다.]

[A-Index가 각성자 ‘유은영’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유은영’의 정보가 바뀌었다.

지화자가 앞머리를 쓸어올린 후 말했다.

“마지막으로 너만 남았네.”

“미친년……!”

“미친년은 너희가 섬기고 있는 저 마녀라는 년이고.”

지화자가 피묻은 손을 탈탈 털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저 마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

“크흐, 흐하하하!”

홀로 남은 이교도가 키득거리며 으르렁거렸다.

“마녀님께서 너를 죽이실 거다.”

지랄하네.

지화자가 홀로 남은 이교도의 멱살을 잡아 들었을 때.

퍼억!

뒤통수에 통증이 느껴졌다.

‘어?’

머리가 핑글 돌았다. 몸이 기울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유은영아!”

그녀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리아의 목소리였다.

* * *

“으음…….”

유은영이 앓는 목소리를 내며 두 눈을 떴다.

“유은영아! 괜찮아?!”

“리, 리아 씨?”

유은영이 당황하여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은 분명 초상화 앞에 멈춰서 있었다. 지유화로 보이는 여자의 그림 앞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당황할 새도 없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윽… 머리야……!”

“유은영아!”

리아가 울먹였다.

“괜찮아? 미안해! 머리 위에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

“사, 사람이라니요?”

“쟤!”

리아가 코를 훌쩍거리며 주검이 되어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걱정마. 내가 죽였어.”

“리아 씨……!”

유은영이 앓는 소리를 냈다.

“유은영아, 왜 그래? 내가 뭐 잘못 했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에요. 그보다 제가 지금 뭐하고 있었죠?”

“나보고 저 사람들 다 잡으라고 하더니 갑자기 마녀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잖아. 기억 안 나?”

“네? 아, 그게. 머리를 다치면서 잠깐 기억이 날아가서요.”

유은영은 일단 힐을 사용했다.

치료는 못하겠지만 지혈을 할 수 있겠지.

“어……?”

그런데 지혈이 되고 있었다.

그뿐이랴?

상처도 아물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유은영이 황급히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자신의 정보를 열람했다.

-Name: 유은영(劉隱映)

-Birth: 20X1. 12. 26

-Local: 82_대한민국

-Rank: D급

-Number: Unknown

모든 정보가 그대로였다.

단 하나, 등급만 제외하고.

“…내가 D급이라고?”

폐급이었던 내가 D급?

유은영의 턱이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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