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91화 (91/200)

제91화

[‘용사’로서 이교도들을 처치하십시오.]

[300/300]

퀘스트가 끝났다.

이교도들은 모두 죽었고,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풀러났다.

몇몇 죽기는 했지만, 게이트에 휘말린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죽은 건, 이교도들에게 처음부터 붙잡혀있던 아비누스의 국민들뿐.

유은영은 그들을 보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오후 4시 37분! 게이트 공략됐습니다! 게이트 난이도는 B급으로 기록됐어요!”

“부상자 있습니까?! 아, 저희는 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이혜나 팀장님! 여기 부상자요!”

현실로 돌아왔다.

―S급 각성자 ‘지화자’와 … D급 각성자 ‘유은영’의 이름이 A-Index에 기록되었습니다.―

유은영이 작게 입술을 벌렸다.

자신이 정말 D급 각성자가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실감이 됐다.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유은영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그녀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유은영이 처음 그녀를 마주쳤을 때와 똑같이 세상만사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달라진 거라면.

“기술 관리 부서 새끼들…….”

“네?”

“크흠, 기술 관리 부서에서 나온 사람들 어디 있나요?”

유은영의 영향으로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게 됐다는 점.

센터의 직원이 황급히 지화자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아, 저기 있습니다.”

지화자가 곧장 기술 관리 부서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지화자 팀장님 저도…….”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지화자는 거절했다.

“유은영 씨께서는 이혜나 팀장님께 치료받도록 하세요.”

“네?”

묻는 말에 지화자가 머리 부근을 툭툭 건드렸다.

“다쳤잖아요.”

“아…….”

괜찮은데.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그 사이 지화자는 기술 관리 부서의 사람들을 갈구러 떠나버렸다.

유은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유화일 리가 없어.”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에야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이지만 유은영은 오히려 그 때문에 지화자가 걱정됐다.

“유은영 씨.”

“아, 가하성 씨!”

유은영의 시선이 지화자에게서 돌려졌다.

“지화자 팀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릴 테니 가보세요. 애들한테 선물주러 가야죠.”

“네? 그걸 어떻게…….”

아참, 그 사실을 아는 건 ‘지화자’지?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화자 팀장님이랑 같이 있을 때 들었어요.”

“팀장님께서 그걸 말해주셨다고요?”

가하성이 놀란 눈으로 기술 관리 부서 사람들의 발목을 차례차례 까고 있는 지화자를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을 5년 가까이 봐왔지만 정말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서요. 최근에는 더더욱이요.”

무슨 소리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은영에게 가하성이 고개를 살짝 꾸벅거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은영 씨께서도 어서 치료 받으러 가세요.”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그녀와는 다르게 가하성의 얼굴은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가하성 씨?”

유은영이 뭐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치료 잘 받고 푹 쉬세요.”

“네, 가하성 씨.”

그렇게 가하성을 보내자마자 리아가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유은영아! 하성이 오빠, 갔어?”

“네, 리아 씨.”

“지화자는?”

“저기요.”

지화자가 도대체 어떻게 갈구고 있는지, 기술 관리 부서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죽을상이었다.

리아가 입술을 오므렸다.

“지화자가 저렇게 화난 거 처음 봐.”

“그런가요?”

지화자가 화내는 모습이야 몇 번이고 본 적 있는 유은영이었다.

“원래 저렇게 화내는 사람은 유은영이었잖아.”

“제가 언제요!”

유은영은 억울해하면서 머리를 어루만졌다.

“머리는 왜 만져?! 만지지 마!”

“조금 불편해서요.”

유은영이 배시시 웃었다.

“저 많이 다친 것처럼 보여요?”

“당연하지!”

리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에 힐러 있어! 치료받으러 가자! 오빠도 치료받으러 갔어!”

“저도 힐러인데…….”

“힐러지만 폐급이잖아!”

맞는 말이었다.

‘아니, 이제 틀린 말이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유은영은 F급에서 벗어났다.

그보다.

“라이 씨도 다쳤어요?”

“응! 못된 놈들이 거미줄에 묶인 채로 오빠한테 달려들었거든!”

그 말에 유은영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라이와 리아의 거미줄에는 독이 흐르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적을 처치하는 데 무자비했을 거다.

그런 거미줄에 당했다니!

“많이 다쳤어요?”

“아니! 애초에 우리 독은 우리한테 잘 안 통해! 살짝 화상만 입고 그치지!”

“어쨌든 다친 거잖아요!”

유은영이 리아를 데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껏 차려입은 이혜나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유은영과 이혜나의 눈이 마주쳤다.

“유은영 씨!”

이혜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살갑게 인사하는 목소리에 이혜나가 움찔거렸다.

“팀장님?”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은영 씨도 게이트에 휘말렸던 거야?!”

“네, 어쩌다 보니요.”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쇼핑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화자 팀장님께 붙잡혀서 리아 씨랑 라이 씨를 봐주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게이트에 휘말려 버렸다면서 유은영이 헤실거렸다.

“웃음이 나와? 다치기는 왜 다친 거야?!”

이혜나 팀장님이 나를 걱정해주다니!

유은영이 ‘우리 팀장님께서 죽을 때가 다 되신 건가’라고 걱정을 하려는 찰나.

“괜히 나대다가 다쳤지?! 하여튼 은영 씨는 그게 문제야! 주제도 모르고 설친다는 거!”

그럼 그렇지, 이혜나가 자신을 걱정해줄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아줌마는 뭔데 우리 유은영한테 지랄이야?!”

“뭐? 지, 지랄?”

이혜나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리아를 쳐다봤다. 리아는 씩씩거리며 할 말 못 할 말 모두 내뱉었다.

“뭘 봐?! 힐러면 힐러답게 어서 치료나 하도록 해! 유은영 다친 거 안 보여?! 아줌마 벌써 노안 온 거야? 그런데 힐러는 노안 못 고치나?”

이혜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리아! 그런 말 하면 못 써!”

“오빠!”

라이가 리아를 엄하게 타일렀다.

“나 치료해준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서 사과해!”

“싫어!”

리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저 아줌마가 유은영한테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고 했단 말이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다는 거니?!”

“그랬잖아!”

리아가 빼액 소리 지르는 순간.

“왜 이렇게 시끄러워?”

지화자가 기술 관리 부서 사람들을 갈구는 걸 끝내고 돌아왔다.

“지화자야!”

리아가 그녀에게 한달음에 달려가서는 재잘거렸다.

“저 아줌마가 유은영 안 치료해주고 지랄하고 있어!”

“지랄…….”

지화자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이혜나에게 물었다.

“우리 유은영 씨께서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네? 아, 아니요.”

이혜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은영 씨도 게이트에 휘말렸을 줄은 몰라서요. 걱정되는 마음에 한소리 했는데 그게 아이 귀에 안 좋게 들렸나 봐요.”

리아가 두 뺨을 부풀렸다.

“거짓말이야! 유은영한테 주제도 모르고 나대다가 다쳤다면서 엄청 꼽줬어!”

“아니에요!”

이혜나가 다급하게 두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려고 했지만.

“아하, 그렇군요.”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지화자가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혜나 팀장님, 유은영 씨께서는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입니다. 더 이상 당신네 소속이 아니란 말이죠.”

성큼, 이혜나에게 다가간 지화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 팀원, 함부로 대하시지 마십시오. 마지막 경고입니다. 한 번만 더 유은영 씨께 지랄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이혜나의 코트를 털어주며 말했다.

“제가 친히 간호 관리 부서를 한 번 찾아가도록 하죠.”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이혜나가 지레 겁을 먹고 내는 소리였다.

지화자는 비웃음을 한 번 보여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유은영 씨, 갑시다.”

“네? 하지만 아직 치료를 받지 못 했는데…….”

“저런 인간한테 치료받고 싶으신가 봐요?”

언제는 이혜나 팀장님한테 치료받으라고 했으면서!

유은영이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하지만 지화자의 말대로 이혜나한테 치료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유은영은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피도 멈췄고, 상처에 딱지도 앉았으니까.’

그러니까 굳이 힐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는 거다. 그때, 지화자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유은영에게 말했다.

“잠깐만 여기 앉아있어요. 라이, 리아. 유은영 씨께서 어디 가지 않나 잘 보고 있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저런 당부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라이와 리아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네엡!”

“응!”

곧, 자리를 떠났던 지화자가 돌아왔다.

“그건 왜 가지고 왔어요?”

간호 관리 부서 측의 사람들한테서 얻어온 소독약과 솜을 들고 말이다.

지화자가 솜에 소독약을 묻히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머리에 묻은 피는 닦아야 할 거 아니에요? 아님, 이대로 돌아다니려고요?”

“그건 아니지만…….”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깜빡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D급.

자신의 뒤바뀐 등급을 말이다.

유은영이 그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지화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뭐가요?”

뭐긴 뭐야!

“제가……!”

쉿, 지화자가 유은영의 목소리를 막았다.

“나중에 설명해줄게요.”

역시 자신이 무슨 질문을 하는 건지 알았었나 보다.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리아와 라이가 재잘거렸다.

“뭐야, 뭔데? 우리한테도 알려줘! 무슨 일인데?”

“맞아요! 무슨 일인데요?”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아야야야!”

라이의 상처 부근에 소독약을 잔뜩 묻혀줬다.

암만 이혜나에게 힐을 받았다고 해도 완전히 상처가 치료된 건 아니었기에.

“아프잖아요!”

라이는 눈물을 살짝 맺힌 얼굴로 빼액 소리 질렀다.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 어른들 이야기에 관심 가지지 말고.”

우우!

리아와 라이가 야유를 보냈다.

“지화자, 꼰대됐어!”

“맞아! 꼰대됐어! 지화자 누님! 상냥한 누님으로 돌아와 줘요!”

지화자는 콧방귀만 꼈다.

“유은영 씨, 대충 닦았어요. 이제 어떻게 할래요?”

“네?”

“이대로 집에 돌아갈까요, 아님. 쇼핑 계속 할래요?”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았다.

지화자와 언제 몸이 또 바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게이트에 휘말리지 않았었나?

타임 브레이커 유형이 아닌 시나리오 게이트에 휘말린 거라고 해도 여러모로 공략하는 것이 힘들었던 게이트였다.

심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지화자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지화자 씨께서는 나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신 것 같지만.’

어쨌든 지화자도 유은영도 피로가 많이 쌓인 건 분명했다.

“저는…….”

유은영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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