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02화 (102/200)

제102화

지화자가 새해 첫날부터 갑작스럽게 유은영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이유.

그건 지난밤에 있었던 유은영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원래대로 돌아가도 0팀에 계속 남아 있어도 돼요?”

고급 술집은 새해를 맞이해 한껏 들뜬 랭커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렇기에 유은영의 취기 어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있던 서이안은 서도운이 데리고 가버렸고 말이다.

그 때문에 지화자는 편하게 말했었다.

“남아있어도 돼. 언니는 우리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니까.”

“그렇지만요.”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한탄을 하듯 말했다.

“저는 다른 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 분들보다 쓸모가 없잖아요.”

“누가 그래?”

“그냥 제가 생각하는 거예요.”

유은영은 힘없이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폐급이었던 제가 D급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 너무 과분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제대로 다룰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잘 다뤘잖아.”

“로렌치니 윌던 씨와 있었던 결투 때에 있었던 일이요?”

“그래.”

“그때 무슨 정신으로 지화자 씨께 힐을 사용했느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또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원래대로 돌아가도,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지화자는 그 말에 결심했다.

유은영이 가진 힘을, 자신이 이 몸에 있는한 크게 키워야겠다고 말이다.

유은영이 부담스러워해도 상관 없다.

암만 자신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힘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화자는 유은영을 몰아 붙이기로 결심했다.

타앙―!

유은영을 향해 날아간 총알이 반으로 쪼개졌다. 유은영은 곧장 땅을 박찼다.

후욱!

지화자의 앞에 순식간에 나타난 유은영이 봉을 휘둘렀다.

아니, 그러지 못하고 멈췄다.

그 순간을 놓칠 리가 없는 지화자였다. 그녀는 유은영의 복부를 그대로 차버렸다.

S급 몸뚱이에 큰 타격을 입힐 수는 없었지만 유은영이 빈틈을 보이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철컥, 탄창을 간 지화자가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유은영의 무릎이 꺾였다.

“아윽!”

총알이 발목을 관통했다. 유은영이 고통을 참으며 이를 드러냈다.

“지화자 씨…!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는 분명히 말했어.”

어떻게 보면 스스로의 몸을 상처 입힌 거나 마찬가지인데 지화자는 태연했다.

“진심을 다해 나를 상대하거나, 아님. 도망치거나.”

지화자가 다시 총구를 들었다.

유은영은 짧게 혀를 차고는 봉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타앙―!

총성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 유은영은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화자는 그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총알이 몇 번이고 유은영을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내 움직임을 쫓고 있는 거지?’

E급 각성자, 그것도 힐러가 S급인 이 몸을 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그녀가 지금 부상을 당했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지화자가 온갖 아이템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화자가 온 몸에 두르고 있는 아이템은 유은영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기능이 부여되어 있는 아이템이었다.

효과는 너프.

상대방에게 온갖 저주를 걸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거였다.

그 덕분에 지화자는 어렵지 않게 유은영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자신의 몸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봐온 지화자였다.

탕, 타앙―!

유은영의 무릎이 한 번 더 꺾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지화자가 다가가서는 말했다.

“지금, 또 죽었어.”

유은영이 입술을 짓씹고는 몸을 움직였다.

우당탕!

지화자의 위로 올라탄 유은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지화자 씨도 지금 한 번 죽었어요.”

“그래, 무승부네.”

지화자가 픽 웃고는 발을 들어 가랑이 사이를 차버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유은영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지화자는 태평하게 옷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무승부에서 나의 승리가 됐네.”

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저 인간이 진짜!’

유은영이 두 눈에 눈물을 글어그렁 매달고는 힘겹게 일어났다.

“이제 진짜 안 봐줄 거예요.”

“제발 그래 달라니까?”

철컥, 지화자가 또 한 번 탄창을 갈았다.

유은영을 상대하면서 능력치가 좀 올랐다. 이대로 몇 번 공방을 주고 받으면 금방 D급을 벗어나 C급이 될 수 있을 터.

지화자가 ‘지화자’를 향해 총구를 들고는.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 노린 것은 손목. 유은영이 무기를 놓치게끔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디 갔지?’

지화자는 유은영을 놓치고 말았다. 유은영은 지화자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잡았다!”

유은영이 뒤에서 지화자를 덮치고는 그녀의 팔다리를 온 몸을 이용해 눌렀다.

“어때요? 움직이지 못하겠죠? 잘도 저를 공격했겠다?!”

“그래도 팔다리는 안 날렸잖아?”

“날리면 안 되죠!”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지화자를 놓아줬다.

“이제 다 끝났죠? 어서 치료나 해줘요.”

“폐급한테 뭘 바라는 거야?”

“폐급이 아니라 D급이잖아요!”

유은영이 씩씩거렸다. 지화자는 픽 웃고는 힐을 시전했다.

“D급의 힘으로는 상처를 지혈하고 상처를 조금 낫게 하는 게 최선이야.”

“할 줄 아는 게 기가 막힌 안마 뿐이었던 시절 보다는 낫네요.”

맞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상처가 어느정도 치료된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에 가요.”

“가기는 어디를 가?”

지화자가 씨익 웃으며 탄창을 갈았다.

“계속 해야지.”

“지화자 씨……!”

유은영은 진심으로 지화자를 한 대 치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건 상상으로만 그치게 됐다.

“음? 누가 있나 했더니 지화자 팀장과 유은영 양이었군.”

갑작스럽게 단련실에 등장한 사람 때문이었다.

***

“우종문 부장님……?”

유은영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우종문 부장님.”

지화자는 고개를 꾸벅거렸다.

“부장님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센터 좀 둘러보고 있었다네.”

그러다가 단련실에 누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렇게 찾아왔다면서 우종문이 말했다.

“새해 아침부터 기운 차군. 아주 좋아.”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이 지화자로 인해 입은 상처는 보이지 않나 보다.

“그보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나?”

뭐하고 있어냐면 말해주는 게 인지 상정!

…이었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야, 솔직하게 털어놓는 순간 우종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기 때문이다.

우종문이라면 자신이 가진 힘에 크게 흥미를 보이며 지화자가 하려는 일을 전적으로 지원해줄 게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S급 힐러가 탄생할 수도 있다지 않나?

“우종문한테 가장 중요한 건 ‘평화’야. 그리고 나는 평화를 유지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지.”

사람을 도구취급하는 그한테서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직접 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지화자가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 싸우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싸우는 방법?”

“네. 정확히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방법이겠네요.”

지화자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시작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F급이잖아요. 제대로 힐을 할 줄 모르니, 이렇게라도 팀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흐음.”

우종문이 미소를 그렸다.

“우리 지 팀장이 팀원들은 참 잘 만났어.”

“부장님 덕분입니다.”

유은영이 눈치좋게 우종문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래.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괜히 방해하면 안 되지.”

우종문이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돌렸다.

“그래도 두 사람 다 적당히 하게나. 새해 첫날부터 피를 보는 건 좋지 않으니.”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내가 지화자 씨한테 상처를 입은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저렇게 말하고 나가버린다고?

유은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화자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종문은 언니가 입은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걸거야.”

“총알이 양발목을 관통했었는데요?!”

“그렇지만 내가 치료해줬잖아.”

유은영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쨌거나 방해꾼도 사라졌겠다. 다시 시작하자.”

“잠시만요!”

“그런 거 없어.”

지화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다시금 울린 총성과 함께 유은영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지화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줬다.

그녀의 공격을 그대로 맞거나, 피하거나, 아님 제압하거나.

두 사람의 공방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유은영이 바닥에 드러눕고는 숨을 바쁘게 몰아 내쉬며 물었다.

“지화자 씨는 지치지도 않으세요?”

“나야, 뭐. 언니처럼 그렇게 돌아다니지 않았으니까.”

지화자가 한 일이라고는 자리에 멈춰서서 유은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니면 그녀에게 제압당하거나.

아쉽게도 등급이 오르지는 않았다. C급까지 남은 능력치는 겨우 18%.

지화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유은영에게 넌지시 물었다.

“언니, 아직 움직일 수 있지?”

“그렇기는 하지만 지화자 씨한테 어울러줄 힘은 없어요.”

지화자가 입술을 씰룩였다.

“나는 그렇게 안 나약한데.”

“저는 나약해요!”

나약하기만 할까? 가녀리기 그지 없는 힐러였다.

그래, 그랬다는 거다.

“그보다 지화자 씨, 저 궁금한 게 생겼어요.”

“뭔데?”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제 등급이 오른 것을 모르는 걸까요?”

“모르니까 저러고 있는 거겠지.”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원래 센터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많이 없어. 그리고 원래 등급이란 게 바뀔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면 공략자들의 정보가 뜨잖아요.”

“그걸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저는 확인하는데요.”

“그건 언니가 특이한 거야.”

지화자는 유은영에게 언제 챙겨왔는지 모를 물을 따라주고는 말을 이었다.

“대부분은 게이트를 공략하는데 얼마나 걸렸는지만 확인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니까.”

“공략자들은요?”

“길드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닌 이상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정보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군요.”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덕분에 자신의 등급이 바뀌었다는 것을 우종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유은영이 천장을 보며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화자 씨.”

“또, 뭐.”

“제가 가진 힘은 특별한 거겠죠?”

“그래.”

지화자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제라서 진가를 발휘하는 게 어디야?”

다행이라면서 그녀는 웃었다.

“다행인걸까요…….”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성장하는 힘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꺼름칙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힐러이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해서 힘을 얻게 되다니.

‘싫다, 싫어.’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아직 있었군. 다행이네.”

우종문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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