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04화 (104/200)

제104화

14. 우종문

유은영이 룸으로 돌아온 후, 저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는 거다.

유은영도 지화자도 내면으로는 울지 못해 웃고 있었다.

어쨌거나 우종문과의 저녁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부장님.”

“그래. 지화자 팀장도 조심히 들거가게나. 유은영 양도 조심히 들어가고. 오늘 즐거웠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지화자와 유은영이 웃는 낯으로 우종문을 배웅해줬다.

그렇게 그가 떠나자마자.

“으으, 체한 것 같아요.”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지화자가 웃는 낯을 지우고는 물었다.

“잘만 먹더니?”

“잘만 먹는 척 했던 거죠.”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그보다 우종문 부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저녁 먹는 내내 안색이 너무 나쁘더라고요.”

“누가? 내가?”

“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좀 받는다고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우종문 부장님께서 지화자 씨께 꼽이라도 준건가 했잖아요.”

“내가 꼽준다고 기죽을 사람이야?”

“그건 아니지만요.”

지화자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별 일 없었어.”

“정말로요?”

“응.”

그렇게 대답하면서 지화자가 당부했다.

“하지만 언니. 원래의 몸을 되찾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우종문 부장님요?”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유은영이 키득거렸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조심할 거예요. 우종문 부장님,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별로라서요.”

“그렇다니 다행이고.”

“그보다 저희,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거겠죠?”

그 말에 지화자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 거야. 아니, 그렇게 돼야만 해.”

단호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벙찐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왜? 그 몸으로 계속 살고 싶어졌어?”

“설마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저는 그저 지화자 씨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거 처음 들어서요.”

“내가 언제 언니한테 유하게 군 적 있던가?”

“그건 아니지만요.”

유은영이 우물거렸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지화자 씨께서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데 별 관심이 없는 것처첨 보였거든요.”

그러면서 유은영은 말했다.

“처음에야 ‘이럴 수는 없어! 안 돼!’라고 격하게 현실을 부정하는 느낌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 상태도 괜찮은 거 아닐까?’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물론,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면서 유은영이 멋쩍게 웃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 주세요.”

“…그래.”

지화자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유은영이 설마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지화자는 내심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거다.

자신과 유은영.

둘 중 한 명이 가사 상태에 빠질 만큼 위험한 상태가 되면 원래의 몸을 일시적으로 되찾는다.

…라는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않았더라면 지화자는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 거라며 현실에 순응했을 거다.

“후훗, 저도 이상하죠? 지화자 씨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니.”

“이상한 거 알아서 다행이네.”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유은영이 자신을 완전히 꿰뚫어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후우.”

우종문이 한숨을 푹 내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27층, 꼭대기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데 한참 걸리겠군.’

우종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센터에서 지화자와 유은영을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유은영에 대해 따로 조사를 하던 와중에 그녀를 보게 되다니.

하지만 그 다음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종문은 유은영에 대한 조사를 모두 마친 후, 그녀가 있는 체력 단련실에 찾아갔다.

“아직 있었군. 다행이네.”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우종문은 두 사람이 체력 단련실에 계속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장실에서는 센터 내 시설물의 실시간 이용 현황을 손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유은영을 찾아간 우종문은 저녁을 대접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지화자에게도 말이다.

아마 두 사람에게는 꽤 고역이었을 시간일 거다.

‘하지만 원하던 정보를 반뜸 얻었으니.’

우종문은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유은영으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두 가지 얻어냈다.

첫 번재, D급이라 표기되어 있던 등급은 오류가 아니다. 두 번째, 유은영은 자신의 등급이 바뀐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등급이 변경된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차차 알게 되겠지.’

만약, 유은영의 등급이 또 오른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좋았다.

지화자의 곁에 우수한 힐러가 붙어있는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띵―!

꼭대기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이제야 내려왔다. 우종문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요!”

여자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우종문이 열림 버튼을 꾹 눌러 여자가 탈 수 있게끔 해줬다.

“감사합니다.”

우종문이 고개를 까닥거리고는 13층을 눌렀다. 그때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던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옆집 분이셨군요!”

“오? 옆집은 비어 있었을 텐데 새로 이사를 오셨나 봅니다?”

우종문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네, 며칠 전에 이사왔어요.”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거든요.”

한국 병원이라면 우종문도 잘 아는 곳이었다.

그 병원은 센터와 협력 관계에 있는 병원이었으니까.

우종문이 싱긋 웃었다.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마음껏 도울 수 있어서 기쁠 뿐이에요.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요.”

“금방 일취월장할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신다니 기쁘네요. 감사해요.”

여자가 싱긋 웃었다. 우종문 역시 인자하게 웃어 주고는 위를 흘긋거렸다.

5층.

13층에 도착하려면 멀었다.

‘한참 걸리는 것 같군.’

우종문이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을 때다.

“정말 부장님께서는 한결같으시네요. 그때나 지금에나.”

“……예?”

난데없이 친한척 구는 여자의 목소리에 우종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자는 우종문을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부장님.”

“…누구십니까?”

“아, 못 알아보시겠구나?”

여자가 그럴만도 하다면서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주무르기 시작했다.

곧, 여자의 얼굴이 바뀌었다.

“어때요? 이제 알아보시겠나요?”

“……!”

우종문이 헛숨을 들이마셨다.

“유화!”

“네, 부장님.”

여자가, 아니.

“유화예요. 지유화.”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우종문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르 꺼내 들어 그녀를 겨눴다.

“네가 어떻게!”

“살아 있냐고요?”

지유화가 우종문의 말을 끊고는 미소를 그렸다.

“부장님께서 이렇게 저를 기억해주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죽겠어요?”

나긋한 목소리가 우종문의 귓가를 간질거렸다.

우종문은 당장에라도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듯이 굴며 물었다.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냐!”

“인사를 드리러 왔죠. 겸사겸사.”

지유화가 우종문을 향해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부장님 몸 좀 빌리고요.”

그 말과 동시에 우종문은 방아쇠를 당겼다.

위험하다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으음…? 어? 뭐지……?”

지유화는, 아니.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새 얼굴이 또 바뀐 여자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띠잉―!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네? 아, 네.”

여자가 얼떨결에 우종문에게 인사하고는 중얼거렸다.

“나 언제 집에 온 거지?”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종문 역시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쿵.

문이 닫혔다.

우종문이 어두컴컴한 실내를 보며 미소를 그렸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정확히는, 있었지만 모두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더 완즈 인 더 서울.

우종문의 가족은 모두 백화점 붕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후로 그는 줄곧 혼자 지냈다.

“어두컴컴해라.”

우종문이 불을 켰다.

아니, 지유화가 불을 켜고는 소파에 앉았다.

“어디 보자…….”

지유화가 슬며시 두 눈을 감았다. 이 몸의 주인인 우종문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번쩍 눈을 떴다.

“하, 하하! 아하하하!”

지유화가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리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우리 동생…….”

지유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행복해보이네?”

***

오싹―!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름이 온 몸에 돋았다. 유은영이 팔을 벅벅 문지르며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한기가 들어서요. 어디 창문이라도 열려 있나?”

유은영이 괜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보이는 거라고는 라이와 리아가 먹고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 뿐이었다.

그것들을 치우고 있던 지화자가 말했다.

“창문 다 닫혀 있는데요? 몸 안 좋은 거면 일찍 주무세요. 오늘 저한테 많이 얻어맞아서 온몸의 삭신이 쑤실 텐데 말이에요.”

“얻어 맞은 적 없거든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때 라이와 리아가 그 목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다.

“지화자야, 누구한테 얻어 맞았다고?”

“누님이 얻어 맞았다고요?!”

“라이, 리아.”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너희, 먹은 건 치워야지!”

“까먹었어.”

“맞아요, 까먹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지화자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으며 라이와 리아에게 쓰레기 봉투를 내밀었다.

“자, 나온 김에 치워.”

“싫어! 까미랑 놀거야!”

“저도 까망이랑 놀 거예요!”

지화자가 방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거미랑 놀 게 뭐가 있다고! 어서 안 치워?!”

리아랑 라이가 버둥거렸다.

“유은영 바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마!”

“저랑 리아는 지금 까미랑 까망이한테 한글 가르치느라 바쁘단 말이에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지화자가 리아와 라이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유은영은 그 광경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구경했다.

“지화자 팀장님! 그렇게 있지만 말고 애들한테 한소리 좀 해주세요! 점점 버릇없어지고 있잖아요!”

“애들은 원래 버릇없이 크는 거예요.”

저 망할 언니가?!

지화자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며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휙 고개를 돌렸다.

리아와 라이가 꽥꽥 소리 질러댔다.

“누가 버릇없다고 그래?! 유은영 바보!”

“저랑 리아가 얼마나 예의 바른데! 누님은 그것도 모르고!”

지화자는 이 녀석들이 말에 토를 달지 않으면 죽는 병에라도 걸린 건가 싶었다.

결국 지화자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그렇게 라이와 리아에게 등짝 스메싱을 날리려고 할 때.

삐이이―!

시끄러운 경고음이 귓가를 찔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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