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오싹―!
유은영이 갑작스럽게 이는 소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팀장님? 혹시 다치셨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유은영이 걱정하지 말라며 가하성을 향해 웃어 보였다. 가하성이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독종 라그마하를 잡는 과정에서 독에 중독되신 거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가하성 씨가 나를 걱정해주다니! 언제나 걱정한 적 없다고 툴툴거리지 않으셨나?!
유은영이 감격에 젖은 눈으로 가하성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가하성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그렇게 봅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은영이 코 밑을 쓱 닦고는 말했다.
“그보다 가하성 씨, 고아원에 다녀 오세요.”
“…그래도 됩니까?”
“네.”
“걱정되시잖아요.”
그 말에 가하성이 말했다.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천천히 다녀오세요.”
S급 몬스터, 독종 라그마하는 숨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용암에 온 몸이 녹아버렸으니 당연했다.
유은영이 멀어지는 가하성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몬스터의 사체로 시선을 돌렸다.
“으으.”
우종문과 함께 먹었던 저녁이 모두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기도 같이 녹아버려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유은영은 진작 구역질을 했을 거다.
“어쨌든 끝났네.”
여전히 몬스터들은 사방에서 날뛰고 있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독종 라그마하보다 더한 몬스터는 없을 테니까, 뭐.”
나머지는 다른 분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주겠지?
유은영은 그래주기를 바랐다.
“새해 첫날부터 게이트가 터지고 말다니.”
액뗌 한 번 거하게 하고 가는 느낌이었다.
‘좋게 생각하자.’
유은영이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독종 라그마하의 기세에 짓눌러 숨어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마리도 놓치지 말고 처리하도록 하자.’
혹시라도 놓쳤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라이와 리아를 탄생시킨 최 박사.
그녀와 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또 있을지 모를 일이었으니.
‘아, 생각해 보니.’
유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최 박사와 같은 인간들은 게이트가 심심찮게 터지고는 했던 과거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었다.
‘지금 엄청 좋아하고 있겠네.’
유은영이 혀를 찼다.
부디 이 일로 연초부터 바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안 그래도 바쁠 텐데!’
업무가 가중되는 건 피하고 싶은 유은영이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숨어 있던 몬스터들을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버렸다.
“후우.”
한바탕 살육전이 벌어진 거리는 곳곳이 엉망이었다.
“여기는 모두 정리된 것 같은데, 쉬어도 되려나?”
쉬기는 개뿔, 유은여은 다른 팀을 도와주러 움직여야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화자 씨한테 가자. 다른 팀은 알아서 잘하겠지.”
다른 팀보다 월등히 사람이 적은 0팀이 걱정이었다. 유은영이 그렇게 등을 돌릴 때였다.
“여기 있었군, 지화자 팀장.”
“부장님?”
지화자가 우종문과 함께 나타났다.
“유은영 씨도 같이 오셨네요?”
“네, 감사하게도 부장님께서 지원을 오셔서요.”
“비록, 상황이 거의 정리됐을 때 와서 도움이 전혀 안 됐지만 말이네.”
“아닙니다, 부장님.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그랬다면 다행이군.”
“저건 독종 라그마하군. 지화자 팀장, 혼자서 잡은 건가?”
“아니요. 가하성 씨와 함께 잡은 겁니다. 저 혼자서는 못 잡았을 겁니다.”
이 자리에 가하성이 있었다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유은영을 쳐다봤을 거다.
독종 라그마하는 유은영, 그녀 혼자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어쨌거나 우종문은 ‘지화자’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대단하군. 지화자 팀장이 있어서 다행이야.”
“별 말씀을요. 다른 분들도 빠르게 움직여주신 덕분입니다.”
그 말에 우종문이 싱긋 웃었다.
“그보다 이곳은 모두 정리된 것 같군.”
“네, 숨어있던 몬스터들까지 모두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유은영’이 있는 곳에 힘을 보태러 가려고 했다면서 유은영이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지만요.”
“이렇게 된 거, 조수현 팀장이 있는 곳으로 가게나. 꽤 고전하고 있는 것 같더군.”
하필이면 조수현 팀장님이야?!
마음 같아서는 자기가 굳이 갈 필요가 있겠냐면서 너스레를 떨고 싶었지만.
“네, 부장님.”
까라면 까는 게 직장인인지라,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조수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종문이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
“팀장님! 뒤로 물러나야합니다!”
“수가 너무 많아요!”
D급의 슬라임 개체라면 모를까, 조수현의 팀이 상대하고 있는 건 A급의 뿔난 땅두더지들이었다.
공격하려면 땅으로 숨고, 태세를 정비하려면 땅을 뚫고 나와 귀찮게 구는 탓에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조수현이 이를 갈았다.
할 수만 있다면 도로에 주먹을 꽂아 땅두더지들을 모두 바깥으로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주변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너무 컸다.
건물에 사람이 없다면 몰라, 하필 조수현이 있는 곳은 상권이 즐비한 거리였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건물에 숨어 있다는 말씀.
조수현이 외쳤다.
“물러나지는 않는다! 다들 태세를 갖춰 녀석들을 해치워!”
땅 아래에 숨어 있는 녀석들을 무슨 수로 해치운단 말인가?
더군다나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 무기를 찔러 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수현 팀장님.”
‘지화자’가 지원을 온 건 그 순간이었다.
“고전 중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었군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내려주고는 말했다.
“몬스터들은요?”
묻는 말에 조수현이 황급히 말을 쏟아냈다.
“A급의 뿔난 땅두더지 녀석들입니다. 아스팔트 도로 아래로 몸을 숨겼다가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어서 애를 먹고 있는 중입니다.”
“피해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누가보면 ‘지화자’가 갑, 조수현이 을로 보이는 구도였다.
그때 ‘유은영’이 말했다.
“조수현 팀장님이라면 그냥 땅바닥에 주먹을 내리치면 될 텐데요.”
그럼 알아서 몬스터들이 기어 나올 터.
그 말에 조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너무 큽니다. 사람들이 없다면 몰라, 안에 대피해 있어서요.”
“흐음.”
지화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유은영에게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 빠르게 끝내죠?”
“네.”
원하는 바였다.
유은영이 주변을 살폈다. 조수현의 말대로 건물에 몸을 피한 사람들이 다수 보였다.
독종 라그마하를 상대했을 때처럼 샤오링의 힘을 꺼내올 수는 없었다.
대신 유용한 힘이 하나 있었다.
롱유에.
3년 전, 지화자가 맞붙은 적 있다는 각성자의 힘.
유은영의 두 눈이 낮게 가라앉는 찰나.
―꺄앙!
―꺙?
―꺙꺙!
아스팔트 도로 아래서 1팀을 귀찮게 하던 뿔난 땅두더지들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롱유에라는 분이 가지고 있는 힘은 악의나 적의를 드러낼수록 강해지는 것.’
덕분에 뿔난 땅두더지들을 쉽게 붙잡아 올릴 수 있었다.
“처리는 맡겨도 되겠죠?”
멍하니 있던 조수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조수현이 손짓하자 1팀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꺄앙!
―꺙꺙!
몇몇 개체가 땅 아래로 숨으려고 했지만 조수현의 손에 붙잡혀 숨이 끊어지게 되었다.
“후우.”
조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지화자 팀장님. 곤란해질뻔 했는데 덕분에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우종문 부장님께서 도우러 가라고 해서 온 것뿐이니까요.”
“우종문 부장님께서도 현장에 와 계십니까?”
“네.”
모르고 계셨나?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연락이 된 줄 알았는데.’
그래서 우종문이 조수현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았던 게 아닌가?
‘뭐, 어쨌든 상황은 정리됐으니까 좋게 생각하자.’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그럼, 뒷정리는 부탁하겠습니다. 유은영 씨, 가죠?”
“네.”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하태균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절절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개 구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여자 어디 있어?! 네 동료지? 당장 앞에 데리고 와!”
지화자에게 삿대질을 했던 중년 여성이 또 진상짓을 벌이고 있었다.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찼다.
“왜 그러세요?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은 아니고, 시민들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살짝 트러블이 있었거든. 그것 가지고 트집자고 있는 거야.”
“아하.”
그렇다면야.
유은여이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제 팀원한테 무슨 일입니까?”
중년 여성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가.
“지, 지화자?”
“네, 그렇습니다만?”
‘지화자’의 얼굴에 꿀꺽 침을 삼켰다.
센터 내에서 그녀는 개차반같은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센터 밖에서 ‘지화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명예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혈육을 죽여버린 랭킹 1위.
그녀의 눈 밖에 나면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진다고 하던가?
하태균에게 꼬장을 부리던 중년 여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하하. 그게, 그, 고맙다는 인사를 조금 하고 싶어서요.”
“그렇다는군요, 유은영 씨.”
유은영의 말에 지화자가 방긋 웃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중년 여성이 속이 탄다는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는 나불거리려면 어디 한 번 해보란 듯이 여성을 향해 비웃음을 보였다.
“어억!”
중년 여성이 뒷목을 잡았다.
“뭐하고 있는가?”
“우종문 부장님.”
우종문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유은영이 그를 향해 가볍게 목례하고는 말햇다.
“안 그래도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나원, 내가 그저 그런 늙은이인 줄 아는가?”
아니요. 속에 구렁이 한 마리 키우고 계시는 분이란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내뱉을 수는 없어 유은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보다 상황 종료네.”
“네?”
“강남구 일대의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했다는군. 다들 수고했네.”
유은영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면서 말했다.
“부장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인사를 듣기에는 아직 이르다네.”
“네?”
“국장님께서 긴급 회의를 열겠다는군.”
긴급 회의?
유은영이 두 눈을 끔뻑였다. 우종문은 그런 그녀를 보며 웃었다.
“모든 부서의 팀장급 이상 직원들은 필참이네.”
유은영이 망하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