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모텔 직원은 ‘지화자’의 위협에 못이겨 이은혜가 숙박하고 있는 방을 알려줬다.
“7층의 제일 오른쪽 방입니다. 713호에 한 달 전부터 숙박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유은영은 곧장 계단을 타고 올라가버렸다. 지화자는 그녀를 따라갈까 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현대 문명의 이기가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뭐하러 다리를 움직인단 말인가?
어쨌거나 두 사람은 7층에 도착했고.
“이은혜 씨! 현장 파견 부서 0팀의 지화자입니다. 방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시죠!”
유은영은 냅다 713호의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팀장님, 그렇게 하면 나올 사람도 안 나오겠어요. 왜 그렇게 급하게 구세요? 답지 않게.”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답답하단 말이에요!”
지화자의 힘을 사용해 이은혜가 있는 곳을 알아낸 순간부터 계속 이랬다.
지금 당장 그녀를 보지 않으면 속이 타들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지화자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그녀를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이 보이는 반응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랑 리아를 처음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였을 거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던 아이들은 냅다 가출을 감행해버렸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한 거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찾을 수가 없는 아이들 때문에 지화자는 골치 아파했고.
‘결국 심부름 센터를 찾아갔지.’
그때는 그녀 역시 어렸었다.
상사인 우종문에게 라이와 리아가 사라졌다고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겁이 살짝 났던 상황.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 어쨌거나 심부름 센터의 도움으로 지화자는 라이와 리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 아이들을 찾아준 심부름 센터의 직원이 바로 유은영와 같은 반응을 보였었더란다.
‘그때의 힘을 이용한 건가 보네.’
어쨌든 간에 유은영은 열심히 문을 두드려댔다.
“이은혜 씨! 좋은 말로 할 때 나오세요!”
그러니까 그렇게 굴면 나올 사람도 안 나온다니까?
지화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만요, 팀장님.”
지화자가 유은영을 옆으로 살짝 밀어내고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이은혜 씨, 안에 계십니까?”
문 안쪽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유은영’에게는 말이다.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속삭였다.
“안에 있어요. 인기척이 들린다고요.”
예민한 청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이은혜 씨,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S급 각성자이십니다. 아무리 당신이 기척을 숨긴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지화자는 친절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일로 찾아왔습니다. 게이트가 터진 것과 관련해서 이은혜 씨가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그 말에 우당탕!
방에서 소란이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저 아니에요!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요!”
칼단발의 앳되게 생긴 여자가 두 눈에 눈물을 매달고 외쳤다.
유은영이 이은혜를 보자마자 후, 숨을 내쉬었다. 답답하게 일던 속이 순식간에 진정됐기 때문이다.
지화자는 심드렁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알고 있는 게 있기는 한가 보네요?”
“그게……!”
이은혜가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쨌든 저는 모르는 일이니까 이만 가주세요.”
그렇게 그녀가 문을 닫으려는 찰나.
“이은혜 씨.”
유은영이 문 사이에 발을 넣어 버렸다.
“센터를 퇴사하면서 잊어버리셨나 보네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제가 간다고 가던 사람이었나요?”
이은혜가 파르르 떨었다.
지화자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화자 씨라면 이렇게 했을 테니까.’
그때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이은혜가 갑자기 주저앉아버렸다.
“으허허헝!”
세상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트리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얼떨떨한 얼굴을 보였다.
그러고는 지화자에게 입을 벙긋거리며 물었다.
‘도대체 이은혜 씨한테 지화자 씨는 어떤 존재였던 건가요?!’
이번에는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 * *
다행히도 이은혜는 금방 눈물을 그쳤다.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죄, 죄송해요.”
“알아서 다행이네요.”
유은영이 지화자의 옆구리를 콕 찌르고는 물었다.
“혹시 센터를 퇴사한 이유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이은혜의 두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왜?!
유은영이 얼빠진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가 파렴치한을 보는 것처럼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격하게 두 손을 휘저었다.
“그냥 물어본 거뿐이에요!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요!”
그러고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은혜 씨, 곤란한 질문이었던 것 같으면 답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로요!”
“아니요.”
이은혜가 눈물을 닦아내고는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오신 것 같으니까 말해드릴게요.”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알고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쨌거나 말해준다는데 사양할 생각 따위 없었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최대한 상냥하게 미소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네, 이은혜 씨. 힘든 결정이셨을 텐데 고마워요.”
말 한 번 잘한다 싶었다.
어쨌거나 이은혜는 작게 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먼저 제가 센터를 퇴사한 이유는 무서웠기 때문이에요.”
“무서웠다니요?”
지화자가 물었다.
이은혜는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한 달간의… 그러니까 퇴사하기 한 달 전의 일이 안개 속에 잠긴 것처럼 희미했거든요…….”
이은혜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누군가 한 달 동안 제 몸을 빌려 마음대로 사용한 느낌이었어요. 이상하죠?”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검사는 받아봤나요?”
상대의 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성언을 보유한 자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었으니.
지화자의 물음에 이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이상도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겁에 질려 센터를 퇴사한 거라고 했다.
“저는 시스템 통제 부서의 직원이잖아요.”
시스템 통제 부서는 기술 관리 부서와 함께 A-Index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 달간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어요.”
이은혜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업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 한 달 동안 업무는 모두 완벽하게 처리되어 있었거든요.”
“완벽하게요?”
“네…….”
이은혜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보고를 누락한 것이 있을지도요.”
“이은혜 씨는 서울 전체의 게이트 예상 정보를 관리하는 분이니까요.”
“네에, 에?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세요?”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화자 팀장님한테 들었어요.”
이은혜가 ‘지화자’를 쳐다보고는 울먹였다.
“죄송해요…….”
이은혜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제 게이트가 터진 것을 알고 곧장 센터에 찾아가려고 했어요.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징계를 받을 것이 두려워 결국 찾아가지 못했다면서 이은혜가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유은영이 황급히 그녀를 달랬다.
“이은혜 씨, 진정하세요. 어제의 일이 이은혜 씨 때문에 일어난 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다 알고 찾아오신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유은영이 말을 덧붙였다.
“물론, 김정남 부장님께서는 이은혜 씨를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요.”
이은혜가 코를 훌쩍였다.
“부장님께서 저를 의심하고 계신다니…….”
“의심일 뿐이에요.”
“하지만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 의심으로 그치지는 않겠죠.”
지화자가 유은영의 말을 이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센터로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은혜 씨?”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은혜가 눈가를 세게 닦아내곤 말했다.
“갈게요.”
“잘 생각했어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 * *
저녁 7시를 넘긴 시간.
사무실로 돌아온 유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은혜 씨가 순순히 따라와 줘서 다행이에요.”
이은혜는 지금 각 부서의 부장들 앞에서 퇴사하기 한 달 전의 일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걸까요?”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묻는 말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은혜가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잖아?”
의도적으로 A-Index를 조작한 후 기억이 안 난다니 뭐니 그러는 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에 유은영이 말했다.
“그거야 곧 알게 되겠죠.”
이은혜가 거짓말은 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외부에서 각성자를 데리고 왔다.
“그보다 리아 씨랑 라이 씨는 어디 갔을까요?”
“하태균이 저녁 먹이고 돌려 보낸대. 메시지 보내놨더라고.”
“아하.”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헤실거리며 물었다.
“저희도 저녁 먹으러 갈까요?”
지화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저녁 먹을 시간에 서류나 처리하도록 하세요, 팀장님.”
유은영이 금붕어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그 얼굴에 지화자가 질색했다.
“언니.”
“알겠어요.”
유은영이 입술을 집어넣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지화자가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반만 넘겨.”
“네?”
“도와줄 테니까 반만 넘기라고. 싫으면 말고.”
싫을 리가 없었다.
유은영이 환하게 웃으며 지화자에게 서류의 반을 넘겼다.
지화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류 보는 게 그렇게 싫나?’
어쨌든 간에 지화자는 유은영을 도와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퇴근이 늦어지는 건 싫었으니 말이다.
“있잖아요, 지화자 씨.”
유은영이 말을 건 건 그때였다.
“왜.”
지화자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이은혜 씨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정말 누가 그런 걸까요?”
“글쎄? 하지만 센터의 사람이 그랬을 거야.”
“네?”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지화자를 쳐다봤다. 서류를 보고 있던 지화자가 유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은혜가 그랬잖아. 기억이 희미한 한 달 동안 완벽하게 업무가 처리되어 있었다고.”
“그게 왜요?”
“이은혜는 일을 더럽게 못하거든. 하루에 한 번은 꼭 실수했던 사람이 바로 이은혜야.”
그렇게 말하면서 지화자는 비딱하게 웃었다.
“실수투성이의 사람이 서울 전체의 게이트를 관리한다니, 다들 낙하산인 거 아니냐고 얼마나 수군거렸는지 몰라.”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달 동안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니.
그것도 센터 내 어렵기로 소문난 시스템 통제 부서의 일을 말이다.
“이상하지 않아?”
유은영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