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히이익!
유은영이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유승민한테서 멀어졌다.
“미쳤어?!”
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유승민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화자 팀장님, 오랜만에 만난 사람한테 미쳤다니요?”
유은영이 이를 갈았다.
‘능글맞기는!’
마음 같아서는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유은영은 유승민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유승민 씨께서 센터에는 무슨 볼일인가요?”
“게이트 건으로 부장님과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싱긋 웃었다.
“그럼, 갈 길 가시기를.”
“그러고 싶지만 말입니다.”
유승민이 그녀를 붙잡았다.
“저희, 오랜만에 만나지 않았습니까? 잠깐 이야기 좀 나누죠.”
“나눌 이야기 없습니다.”
유은영이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그래봤자 유승민의 손바닥 안 이었다.
그는 유은영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빠.”
“응?”
“죽고 싶지?”
“아니?”
유승민이 능글맞게 웃었다.
“하지만 은영아. 오빠 좀 이해해줘.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랑 정답게 이야기 좀 나누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지화자 씨랑 나누지 그래?”
유은영이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지화자 씨가 나니까.”
그 말에 유승민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은영아, 나한테 동생은 너뿐이야.”
“그러시겠지.”
유은영이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목적지인 지하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유승민이 그녀의 뒤를 쫓았지만.
“어디까지 쫓아올 생각이야?! 부장님 만나러 왔다며!”
유은영이 그를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유승민이 필사적으로 동생의 손길을 뿌리치며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이랑은 나중에 이야기 나누면 돼!”
“우리 부장님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은영아, 네 부장님은 구순철 부장님이시잖아.”
“시끄러!”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결국 그녀는 유승민을 뿌리치는 걸 포기했다.
“방해나 하지 마.”
“물론이지.”
유승민이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보내며 웃었다.
“그런데 은영아. 지하에는 무슨 일이야?”
“내 이름 제대로 불러. 말투도 조심하고.”
유승민이 입술을 삐죽였다.
“지화자 팀장님, 지하에는 무슨 볼일이십니까?”
“궁금하면 그대로 돌아가시죠. 알려 줄 생각 없으니까.”
“그럼 조용히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말이라도 못하면!
유은영이 유승민을 노려보고는 휙 고개를 돌렸다. 유승민은 ‘지화자’의 뒤통수를 보며 헤실거렸다.
어쨌든 유은영은 이은혜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이은혜 씨.”
“지화자 팀장님!”
이은혜가 갇혀있는 유리 감옥 안에 도착했다.
“여, 여기는 어떻게…….”
“걱정돼서요.”
유은영이 버튼을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이은혜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곧 그녀는 훌쩍이며 말했다.
“제가 걱정돼서 찾아오셨다니! 그것도 천하의 지화자 팀장님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건가 봐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이은혜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에…….”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주셔도 돼요.”
그 말에 이은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먹였다.
“사실 안 괜찮아요.”
이은혜가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더듬었다.
“사, 사실 무서워요,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은혜 씨.”
“이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저는 꼼짝없이 유죄 판결을 받을 거예요. 그럼, 그렇게 되면…….”
눈물을 닦은 보람도 없이 이은혜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감옥으로 가겠죠! 세상에서 제일 악명 높은 감옥으로요!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빛을 못 보겠죠!”
그렇지는 않았다.
비록, 최소 30년 동안은 감옥에서 썩어나갈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은영은 알았다.
“진정해요. 제가 이은혜 씨의 무죄를 꼭 증명해낼 테니까요.”
이은혜한테는 죄가 없다는 것을.
“지화자 팀장님…….”
이은혜가 코를 훌쩍였다.
“감사해요. 정말로 감사해요. 저희 부장님도, 그리고 다른 부장님들도 저를 안 믿어주셨는데.”
이은혜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방긋 웃었다.
“설마 지화자 팀장님께서 저를 믿어주실지 몰랐어요.”
눈물범벅인 얼굴이었지만 보기 좋았다. 유은영은 옅게 미소를 그렸다.
믿음.
그건 간호 관리 부서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마다 유은영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기를 말이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이은혜 씨는 저랑 가장 친한 분이셨으니까요.”
“제가요?”
이은혜가 놀란 눈을 보였다.
“지화자 팀장님한테 매일 잔소리를 얻어들은 기억밖에 없는데.”
이은혜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유은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운 정이라도 들었다고 생각하세요.”
“헤헤, 그럴게요. 그보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신가요?”
“아, 이 분은.”
자신의 오빠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망할! 그러게 왜 따라와서는!’
우은영이 와락 얼굴을 구기고는 유승민을 소개했다.
“우종문 부장님의 손님이세요. 제가 센터를 견학시켜 주고있는 중이죠.”
“아하!”
이은혜가 가볍게 손뼉을 치고는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이랑 스캔들 나신 분이랑 닮으셔서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유승민도 썩은 쓰레기라도 먹은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이은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화자 팀장님?”
“크흠, 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제가 웬 오랑우탄이랑 스캔들 났던 거 용케 아시네요?”
‘웬 오랑우탄’인 유승민이 불퉁한 얼굴을 보였다. 물론 유은영은 그를 무시했다.
이은혜는 유은영의 질문에 헤실거렸다.
“신문은 매일 꼬박꼬박 챙겨봤거든요.”
그렇게라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고 싶었다면서 이은혜가 말을 이었다.
“그래봤자 이제 끝이겠지만요.”
또 우울 모드에 빠지려고 한다.
유은영이 황급히 이은혜의 기분을 달래주고자 입을 열었다.
“이은혜 씨! 기운 내세요! 제가 꼭 이은혜 씨의 억울함을 밝혀 내겠다니까요?”
“네에… 정말 고마워요…….”
이은혜가 기운 없이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지화자 팀장님, 누군가 지하에 내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승민의 말에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왜요?”
“그거야 모르죠. 하지만 우종문 부장님인 것 같은데요?”
유승민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위를 쳐다봤다. 유은영은 멍하니 두 눈을 끔벅이다 경악했다.
“안 돼!”
“네?”
“우종문 부장님께서 제가 이곳에 내려왔다는 걸 알면 분명 트집을 잡을 거예요!”
안 그래도 아침부터 시달리고 온 몸이다.
‘어떻게 하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한 곳뿐.
유은영이 머리를 붙잡을 때였다.
“숨죠?”
“여기 숨을만한 곳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많은데요, 뭘.”
유승민이 활짝 웃고는 ‘지화자’의 손을 잡았다.
“이은혜 씨, 저희가 이곳에 온 건 비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 물론이죠!”
이은혜가 허겁지겁 대답했다.
“팀장님, 여기로.”
“아, 넵!”
유은영이 얼떨결에 유승민을 따라 몸을 숨겼다.
유리 감옥에서 조금 떨어진 곳, 온갖 기자재가 쌓여있는 어두운 공간 안에 말이다.
유은영이 몸을 말아 넣으며 놀란 눈을 보였다.
“이곳에 숨을 공간이 있는 건 어떻게 안거야?”
“비밀.”
능청맞은 대답에 유은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크흠, 유승민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사실은 보여서 그랬어.”
“뭐?”
“보였다고.”
유승민이 미소를 그렸다.
“너랑 지화자 팀장님을 본 것처럼 보여서 그런 것뿐이야.”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끔벅거리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빠는 참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보다, 쉿.”
유승민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오셨어.”
* * *
이은혜가 갇혀있는 유리 감옥 앞에 선 우종문이 웃는 낯으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간밤에 편하게 지냈나?”
이은혜는 아무 말 없이 우종문을 노려보기만 했다.
“편하게 지내지 못했나 보군.”
“덕분에요.”
이은혜가 그제야 대답했다.
날 선 목소리에 우종문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그러게 왜 그랬나?”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모르기는.”
우종문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A-Index를 해킹하지 않았나? 그 덕분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이은혜가 빼액 소리 질렀다.
“우종문 부장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란 것을! 저는 절대로 A-Index를 멋대로 조작하지 않았어요!”
이은혜는 부장들이 데리고 온 외부 각성자의 앞에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퇴사하기 한 달 전의 기억이 흐릿하다는 것과 그 때문에 두려워 퇴사했다는 것.
그리고 A-Index의 조작 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누가 그런 거란 말인가?”
“그, 그건…….”
이은혜가 우물쭈물거렸다.
“어쨌든 저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에요! 원하신다면 제 머릿속을 마음대로 휘저으셔도 돼요!”
“그런가?”
그 말과 함께 우종문이 유리 감옥을 사라지게끔 만들었다.
성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이은혜가 겁에 질린 얼굴을 보였다.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네. 내가 정말로 이은혜 양의 머리를 곤죽으로 만들 거라 생각하는가?”
우종문이 이은혜의 앞에 서서는 웃었다.
“나도 알고 있다네. 이은혜 양이 범인이 아니란 것을.”
“그런데 왜!”
“왜 이은혜 양을 범인으로 모는 것이냐고?”
이은혜가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종문이 그녀를 향해 키득거렸다.
“그래야 내가 들키지 않을 테니까.”
“네……?”
이은혜가 멍하니 물었다. 하지만 우종문은 대답 대신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게 센터는 왜 퇴사한 거야, 은혜 씨? 센터에서 퇴사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다, 당신 누구야?”
이은혜가 잔뜩 당황한 얼굴로 우종문에게 물었다. 눈앞의 남자는 우종문이 아니었다.
겉은 우종문이었으나 그 속.
알맹이는 우종문이 아니었다.
이은혜의 물음에 우종문이 두 눈을 번들거렸다.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줘야지?”
이은혜는 파들파들 떨며 입술을 달싹였다.
“무, 무서워서.”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은혜의 두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그런 그녀에게 우종문이 상냥하게 다시금 물었다.
“뭐가? 내가 네 몸에 들어있을 때의 기억이 희미해서?”
이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종문은, 아니.
“귀여워라.”
지유화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고작 그런 거에 겁을 먹어서 어쩌려고 그래? 응?”
이은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짐승의 먹잇감이 된 것처럼 파들파들 떨 뿐이었다.
“은혜 씨.”
지유화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다정하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