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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18화 (118/200)

제118화

“으… 으아아아……!”

이은혜가 머리를 부여 잡았다.

‘우종문’이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해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유화는 그녀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서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온갖 기자재가 쌓여있는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걸음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그녀가 사라졌다. 그 직후 유은영이 튀어나와 다급하게 목소리를 내질렀다.

“은혜 씨!”

* * *

“은혜 씨! 정신차려 보세요! 이은혜 씨!”

퉁! 투웅!

분명 이은혜를 가둬두고 있던 유리 감옥은 사라졌었다.

그런데 왜?

“이은혜 씨!”

우종문이 사라지자마자 유리 감옥이 다시 나타난 거란 말인가!

“은영아.”

“오빠, 분명 유리 감옥을 해제하는 장치가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것 좀 찾아줘!”

이은혜의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끌어쥐고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꼴이 꼭 넋을 빼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은혜 씨! 제 말 들려요? 정신 차리세요!”

유은영은 버튼을 꾹 누르고는 몇 번이고 이은혜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유은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으아아악!”

다짜고짜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기 시작한 거다.

유은영이 놀라 외쳤다.

“은혜 씨, 뭐하는 짓이에요?! 그만둬요! 이은혜 씨!”

이은혜는 그만두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사죄하듯 고개를 위로 올리며 두 손을 싹싹 빌어댔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박는 것 멈추지 않았다.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유리 감옥을 부숴 이은혜를 꺼내야할 것 같았다.

“유은영!”

유승민이 동생을 막아섰다.

“진정해.”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이다 구겨진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진정해?”

“은영아.”

“저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진정하냐고!”

우종문과의 대면 이후 이은혜가 망가져버렸다.

‘분명 힘을 사용한 거겠지.’

우종문이 가지고 있는 힘은 상대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마음껏 주무르는 것.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상관 없었다. 과거에 매몰되는 순간 현재는 어떻게든 잊기 마련이었으므로.

유은영이 숨을 들이마시고 무기를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그만둬.”

“오빠!”

유승민이 유은영의 손을 잡았다.

유은영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그에게 으르렁거렸다.

“이 손 놔.”

“못 놔.”

유승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늦었어, 은영아.”

유은영이 헛숨을 들이삼켰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이은혜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거야?”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이며 유승민에게 물었다.

“아니지? 아니지, 오빠?”

“응, 아니야.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거야.”

“뭐……?”

유은영이 멍하니 물었다.

유승민은 살짝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의 힘이 원래 그래. 상대가 현재를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

유승민의 말이 이어질수록 유은영의 얼굴은 형편없이 구겨졌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왜.”

그런 걸까?

‘내가 이은혜 씨를 돕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그런 이유로 이런 짓을 벌인 거라면 용서할 수 없었다.

유은영이 두 손을 꽉 주먹 쥘 때.

“우종문 부장님께서 그러신 거 아니야.”

유승민이 입을 열었다.

유은영이 미간을 좁히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종문 부장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니?”

두 눈으로 본 게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유승민이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흘긋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우종문 부장님의 안에 누군가 들어가 있었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듣게 말해.”

“너와 지화자 팀장님이 서로 몸이 바뀐 것처럼 우종문 부장님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유은영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정말이야?”

“응, 하지만 너랑은 달라.”

유은영이 눈가를 찡그렸다. 유승민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게, 우종문 부장님도 같이 보였거든.”

“…그러니까 우종문 부장님의 몸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부장님께서도 함께 있다는 말인 거지?”

“응.”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 일이 가능해?”

“너랑 지화자 팀장님을 보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일 리 있는 말이었다.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우종문 부장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군지 알아?”

“응, 알아. 하지만…….”

유승민이 우물쭈물거렸다.

“내가 제대로 본 건지 모르겠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괜찮으니까 말해줘.”

유은영이 간절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빠가 그랬잖아.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볼 수 있다고. 오빠가 본 게 내가 원하는 거야. 그러니까 어서 말해줘.”

이은혜를 저렇게 만든 게 우종문의 뜻이 아니라고 하면.

‘붙잡아야 해.’

그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붙잡아야 했다.

그 순간 유은영은 떠올렸다.

“누군가 한 달 동안 제 몸을 빌려 마음대로 사용한 느낌이었어요. 이상하죠?”

이은혜가 울먹이며 했던 말을.

유은영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유승민을 쳐다봤다.

유승민은 고민하는 듯 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본 사람은.”

***

“유은영아, 유은영아. 지화자 왜 이렇게 안 와?”

“설마 퇴근한 건 아니겠죠?”

리아와 라이의 물음에 지화자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부장님과의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 것뿐일 거야.”

“정말?”

“정말로요?”

“그래, 정말로.”

지화자가 그렇게 대답할 때였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하태균과 가하성이 출근했다.

리아와 라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반겼다.

“태균 오빠, 하성이 오빠!”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이 녀석들아. 좋은 아침이다. 어제는 잘 들어갔냐?”

“응!”

“네!”

하태균이 활기차게 대답하는 리아와 라이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는 지화자에게 인사했다.

“유은영 씨도 좋은 아침입니다.”

지화자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가하성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지화자 팀장님은요?”

“우종문 부장님께서 호출하셔서요. 지금 한창 이야기 중일 거예요.”

“부장님께서 무슨 일로 호출을 하셨대요?”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나중에 팀장님께 물어보세요. 저는 모르는 일이니까.”

사실 우종문이 무슨 일로 유은영을 부른 건지 대충 예상이 갔다.

‘이은혜의 일 때문이겠지.’

우종문이라면 유은영이 그녀를 돕고자 나섰다는 것을 알 터.

‘정말 오지랖만 넓어서는.’

지화자가 가볍게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은영아, 어디 가려고?”

“어디가요, 은영 누님?”

리아와 라이가 지화자에게 찰싹 들러붙었다. 지화자가 아이들을 떼어내고는 말했다.

“로비에. 음료 좀 사오려고.”

“나는 초코 프라페!”

“저는 바닐라 라떼요!”

“누가 사준대?”

지화자가 뾰족하게 대꾸하고는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였다.

“오, 유은영 양.”

“부장님?”

지화자는 우종문을 맞딱드렸다.

“이런, 깜빡하고 층을 누르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야.”

“아…….”

지화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우종문을 쳐다봤다.

‘언니랑은 이야기가 끝났나?’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겠지.

‘그럼, 이 언니는 도대체 어디로 간거야?’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지화자는 금방 찾았다.

‘이은혜를 만나러 갔구나!’

하여튼! 남 걱정할 시간에 제 걱정이나 할 것이지!

지화자가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겨우 펴고는 우종문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나중에 타도록 하겠습니다. 올라가세요.”

“그거 고맙군.”

우종문이 싱긋 웃고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는 부장실이 있는 층을 지나 본부장실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장은 출근 안 했을 텐데?’

센터의 국장인 나화진은 특별한 일이 없는한 출근하지 않았다.

‘아님,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출근한 건가?’

어찌됐뜬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라며 지화자는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대로 로비로 내려간 그녀는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초코 프라페랑 바닐라 라떼 하나도 부탁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고민하다 리아와 라이가 부탁한 음료도 주문했다.

지화자는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입구 쪽을 바라봤다. 피곤한 낯으로 출근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였다.

“피곤할 만도 하지.”

게이트가 터진지 일주일도 안 된 시간.

몰려든 서류에 다들 날밤을 지새우고 있을 터였다. 자신이야, 뭐. 밤을 새는 것이 일상이라 아무 무리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F급, 아니. D급 몸뚱이라 그런지 계속 하품이 나오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화자가 ‘유은영’의 상태를 확인했다.

‘C급까지 남은 능력치는 18%.’

사람 한 명만 잡아다가 족치면 금방 C급이 될 수 있었다.

‘오늘 언니 좀 괴롭혀볼까?’

라고 생각할 때였다.

“282번 손님! 주문하신 딸기 바나나 쥬스, 초코 프라페, 바닐라 라떼 나왔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음료가 나왔다.

지화자가 캐리어에 담긴 것들을 손에 쥘 때였다.

쿠웅―!

무언가 땅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으아악!”

출근하던 직원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지화자가 미간을 좁히고는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119! 누가 빨리 119 좀 불러!”

“부장님! 우종문 부장님!!”

우종문을 발견했다.

***

“죄송해요, 우종문 부장님.”

센터의 옥상 위.

지유화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실 거 아니에요?”

그건 곤란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한숨 푹 주무세요.”

이왕이면 영영 자도 좋고.

지유화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유은영’이 옥상 위를 쳐다봤을 때, 그녀는 진작 모습을 감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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