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화자가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눈에 담겼다.
그리고 그 아래.
아무도 없는 옥상 난간이 보였다. 지화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우종문이 추락했다.
저 위에서.
“119는?!”
“오는데 시간이 걸린데요!”
“그럼, 아무나 간호 관리 부서의 힐러 좀 불러와! 이대로 있다가는 부장님이 죽겠다고!”
다급한 목소리에 지화자가 정신 차렸다.
간호 관리 부서의 사람들은 아직 출근 전일 거다. 구순철 부장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이혜나도 출근하기 전일 거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지화자가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갔다.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있는 우종문이 보였다. 지화자는 입술 안쪽을 꾹 깨물고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렇게 힐을 사용하려는 찰나.
“당신 뭡니까?!”
누군가 그녀의 손을 막았다.
“저는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입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0팀의 힐러라면…….”
“그 폐급 힐러?”
폐급 힐러.
그 말에 지화자를 막았던 남자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리 비켜요! 괜히 건드렸다가 일 치르지 말고!”
“그럴 일 없으니까 비켜주시죠? 부장님,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우종문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나빠 보였다.
뒤통수가 깨지기라도 한 건지, 피가 계속해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지화자가 황급히 그에게 힐을 시전하며 말했다.
“할일 없으신 분들은 옥상 좀 확인해 주세요. 우종문 부장님께서 뛰어내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그를 해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
“아, 그렇지, 참!”
지화자를 가로막은 남자가 모여있던 직원들 몇몇과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늦을 거라던 119가 도착했다.
지화자는 그제야 힐을 멈췄다.
얼마나 집중해서 우종문을 치료했는지,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절여 있었다.
어쨌거나 우종문은 구급차에 실려 센터를 떠났다. 그리고 때마침.
“유은영 씨!”
‘지화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반겼다.
“지화자 팀장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 피는 또 뭐고요!”
유은영이 우종문을 치료할 때 묻은 피를 옷에 닦고는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옥상에서 떨어지셨어요.”
“네? 우장문 부장님이요?”
“네, 저 위에서요.”
유은영이 옥상을 쳐다보고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럴 리가…….”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가 유은영을 진정시켰다.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괜찮으실 거예요.”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우종문 부장님이 왜요? 왜 옥상에서 뛰어내리신 건데요?”
“그건 몰라요.”
지화자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다른 분들이 조사하러 가셨으니까 곧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보다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유은영 옆의 유승민을 보며 말이다.
“저희 오빠랑은 언제 만난 거죠? 오빠는 또 언제 센터에 온 거고.”
“아, 그게.”
“우종문 부장님과 이야기 나눌 게 있었거든. 게이트 터진 것과 관련해서.”
유승민이 유은영을 대신해 대꾸했다.
“그런데 우종문 부장님께서 저렇게 되시다니…….”
유승민이 짧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나는 이만 돌아가봐야 할 것 같네.”
“잘 생각했어.”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외부인은 빠지는 게 좋지. 잘가, 오빠.”
‘오빠’란 소리에 유승민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뻔뻔하기도 하셔라.’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동생의 흉내를 내는 모습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유승민은 활짝 웃으며 ‘유은영’의 인사에 화답했다.
“응, 은영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유승민이 지화자를 지나쳐 가며 속삭였다.
“아무래도 내 힘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그를 쳐다봤다. 유승민은 그 시선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님, 그럼 수고하십시오. 센터가 많이 어수선해질 것 같은데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고요.”
자신의 동생을 쳐다보며 말이다.
유은영은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유승민이 떠난 후, 지화자가 곧장 유은영에게 물었다.
“유승민이랑은 왜 같이 있었던 거야?”
“우종문 부장님이랑 이야기 끝내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거든요. 어쩌다보니 같이 지하에 내려가게 됐는데.”
헙!
유은영이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소곤거렸다.
“언니가 지하에 내려간 건 진작 알고 있었어.”
“어, 어떻게요?”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
“내가 언니를 몰라? 보나마나 이은혜가 걱정돼서 지하에 내려간 거겠지.”
유은영이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정말이에요?”
“뭐가?”
“우종문 부장님께서 뛰어 내리신 거요!”
유은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지화자에게 물었다.
지화자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이야. 하지만 몰라.”
우종문이 혼자서 뛰어내린 건지, 아님. 누군가 그를 옥상에서 밀쳤는지 말이다.
그에 유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네?”
주변은 우종문의 일로 소란스러웠고, 그 때문에 ‘지화자’와 ‘유은영’의 대화에 집중하는 귀는 없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조심하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 그게.”
유은영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달싹였다. 지화자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되나,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래?”
묻는 말에 유은영이 조십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 씨.”
“응?
“지유화 씨는 죽었죠?”
난데없이 들린 이름에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대답부터 해주세요.”
유은영이 다시금 물었다.
“지유화 씨는, 정말 죽은 게 맞죠?”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유화는 죽었어.”
“살아있을 가능성은요?”
“없어.”
“만약 살아있다면요?”
지화자가 우뚝 멈춰서서는.
“언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마치 짐승이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유은영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오빠가 지유화 씨를 봤어요.”
“뭐?”
“우종문 부장님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지유화 씨를 봤다고요.”
지화자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다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지유화가 우종문 부장의 안에 들어가 있었다니! 그게 말이 돼?”
다행히도 그녀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에 묻혔다. 유은영이 씩씩거리고 있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저희가 서로 몸이 바뀐 건 말이 되고요?”
지화자가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 씨, 혹시 지유화 씨가 죽기 전에 아이템을 획득했다거나 그런 적은 없나요? 불완전한 영혼석 같은 아이템이요!”
“없어.”
내뱉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유화는 게이트 공략에서 얻은 아이템을 모두 센터에 헌납했어.”
단 한 번도 자신이 가진 적 없다면서 지화자가 말을 덧붙였다.
“언니, 유승민이 지유화를 봤다고 했지?”
“네.”
“좋아.”
지화자가 휙 몸을 돌렸다.
“어디가요?”
“네 오빠 만나러.”
“잠깐만요!”
유은영이 다급히 지화자를 붙잡았다.
“지금 상황에서 센터를 나가겠다고요?! 안 돼요!”
우종문이 어쩌다 옥상에서 떨어졌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센터를 나가겠다니?
자칫 잘못하면 억울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화자는 막무가내였다.
“언니가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애초에 내가 우종문 부장을 치료했는걸? 그런데 내가 범인으로 몰리다니.”
“혹시 모를 일이잖아요. 그것도 아님, 제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고요.”
“언니가 왜?”
“우종문 부장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저니까요.”
유은영이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는 말했다.
“정확히는 지유화 씨지만요.”
“지유화는……!”
죽었다.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화자가 까드득 이를 갈고는 말했다.
“어쨌든, 제대로 말해봐. 지유화는, 아니. 우종문은 부장실에서 마지막으로 본 거 아니야?”
“아니에요.”
유은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에서 만났어요. 지유화 씨는 저를 못 본 것 같지만요.”
그러면서 유은영이 말했다.
“지유화 씨가 이은혜 씨께 우종문 부장님의 힘을 사용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때문에.”
“이은혜는 망가졌겠군.”
유은영이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는 이마를 짚었다.
우종문이 옥상에서 떨어진 것만으로도 머리 아픈데, 그의 몸 안에 사실은 지유화가 들어가 있었단다.
더욱이 추락하기 전에 지하에서 이은혜에게 힘을 사용했다니.
‘도대체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화자는 복잡한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했다.
‘차근차근 정리해보자.’
지유화가 정말로 살아있다고 치자. 그녀는 우종문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고, 이은혜를 만나 그녀에게 그의 힘을 사용했다.
이유가 뭘까?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그 순간 떠오른 건 이은혜였다.
하루 한 번은 꼭 실수하던 그녀가 퇴사하기 한 달 전은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이은혜는 그때의 기억이 흐릿하다고 했어.’
자신의 몸을 누군가 조종한 것 같다고도 했었다.
그렇지만 검사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왔었고 이은혜는 혹시 모를 일에 센터를 퇴사했다.
‘검사를 받을 때에 이은혜는 제정신이었겠지.’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말.
지화자가 두 눈을 번뜩였다.
“언니, 미안해.”
“네?”
“아무래도 유승민 씨를 만나러 가야할 것 같아.”
지화자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지… 유은영 씨……!”
유은영이 뒤늦게 지화자를 불렀지만, 그녀는 이미 택시를 잡고 센터를 떠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