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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22화 (122/200)

제122화

국장실을 나온 유은영은 돌아가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지화자가 나오기를 계속 기다릴 뿐.

나화진의 비서들이 그녀의 눈치를 봤지만 유은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가 나왔다.

“저 기다리고 계셨어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님께서 괜한 트집이라도 잡았을까 싶어서요.”

“하긴, 국장님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걸음을 옮겼다. 유은영이 그녀의 곁에 따라 붙으며 물었다.

“국장님이랑 무슨 이야기 나누셨어요?”

“그냥, 어떻게 등급이 바뀌었느냐? 언제 바뀌었느냐, 그 이유를 아느냐…….”

지화자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곤 웃었다.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눴죠.”

“그렇군요.”

유은영이 지화자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은요?”

“멀쩡해요.”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상처를 냈던 손을 보여줬다.

“제가 힐로 치료하는 거 다 봤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네?”

“굳이 자기 몸에 상처 입히면서 힘을 증명하려고 들지 마라고요.”

지화자가 유은영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몸에 흉터라도 남을까봐?”

“지……!”

지화자를 부르려던 목소리가 멈췄다. 건너편에서 사람이 오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제 몸에 흉터는 얼마든지 남아도 돼요. 하지만 스스로 상처는 내지 마요.”

그 상처로 인해 고통받는 건 자신이 아니라 지화자니까.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알겠어요. 그보다 사무실에 자리 하나 만들어놓으세요.”

“무슨 자리요?”

“제 오빠가 올 자리요.”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싶어서다.

‘지화자 씨는 언니 한 분 밖에 없는데?’

그럼, 그녀가 말한 ‘오빠’는 누구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찾았다.

유은영이 경악했다.

“오빠요? 유, 유승민 씨?”

“네.”

지화자가 활짝 웃었다. 유은영은 한껏 구겨뜨린 얼굴로 물었다.

“그 인간이 센터에는 왜 와요? 청와대는 어쩌고?”

“제가 걱정돼서 그만 둘 거라고 하던데요?”

퍽이나!

“장난치지 마시고요! 유승민 씨한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예요?”

“별 이야기 안 했어요.”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냥 힘이 필요하다고 했죠. 아마 이번주 내로 올 것 같네요.”

유은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인간을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세요?”

“지유화.”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제 언니의 이름을 내뱉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듣는 귀가 없는 걸 확인한 지화자가 편하게 말을 놓았다.

“언니가 그랬잖아. 유승민이 지유화가 우종문 부장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걸 봤다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

“하지만 우종문 부장님은.”

“사경을 헤매고 계시지. 지유화는 당연히 그 전에 우종문 부장의 몸을 빠져나왔을 거고.”

그 말에 유은영이 물었다.

“지유화 씨가 다른 몸을 차지했을까봐 걱정하는 거군요?”

“그래.”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지유화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거든. 그 녀석한테 그런 힘이 있는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그런 그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유승민 뿐이었다.

“국장님께는 왜 솔직하게 말 안 하셨어요?”

“뭐를?”

“지유화 씨요.”

유은영이 말했다.

“지유화 씨가 살아 계신다고, 그 분이 우종문 부장님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되잖아요.”

그 증거는 유승민이 입증해 줄 터였다.

유은영의 말에 지화자가 웃었다.

“나화진이 잘도 믿겠다. 그 인간은 무능해.”

“네? 하지만 센터의 국장님이신데요?”

“국장이면 모두 유능한 줄 알아? 낙하산이라고 들어봤지?”

“네? 네.”

“나화진이 그런 인간이야.”

지화자가 나화진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물론, 듣는 귀가 없기에 그런 거였다.

“나화진은 초대 센터장의 손자거든. 그 영향이 미친 거지. 아니었다면 우종문 부장이 국장이 됐을 거야.”

“하긴, 우종문 부장님께서 그 자리에 더 잘 어울리기는 해요.”

나화진은 센터에 큰 애착이 없어 보였다. 당장, 제대로 출근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랬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만 센터에 출근해서 회의를 모집하지 않나?

“용케 각 부서의 부장님들께서 조용히 따르시네요?”

“국장이니까.”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낙하산으로 올라간 자리라고 해도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거겠지.”

암만 부장이라고 해도 국장 보다는 아래에 있었다.

그들 역시 까라면 까야했다.

“정말 바보 같아.”

그 말이 나화진을 향한 말인지, 아님 각 부서의 부장들을 향한 말인지 모르겠다.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낮게 가라앉혔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국장님이 되셨다면 어땠을까요?”

“죽었을 거야.”

“네?”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

“지유화가 괜히 우종문을 의식 불명 상태로 만들었겠어?”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우종문이 국장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걸? 지유화가 이곳, 센터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종문이라면 자신의 앞을 모두 막았을 테니.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시각, 청와대.

유승민은 두 손을 꽉 주먹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중이었다.

***

“이게, 도대체.”

유승민이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물었다.

“선배, 이 기록이 잘못됐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어.”

유승민의 선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가 보고 있는 서류는 사실만 기록해둔 거야. 애초에 증거가 명확한 사실들만 기록되도록 만들어진 서류거든, 그거.”

초창기 각성자가 만들었다면서 선배가 재잘댔다.

“원래 함부로 볼 수 없는 기록들인데, 너는 영광인 줄 알아 임마. 지화자 씨 아니었으면 이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어.”

으쓱대는 그에게 유승민이 물었다.

“혹시, 이 기록을 누군가 수정을 했을 가능성은.”

“그 또한 없어.”

그 말에 유승민이 입술 안쪽을 잘근 깨물었다.

유승민은 지화자가 떠난 뒤, 곧장 기록실에 방문했다.

“그 빌어먹을 언니가 생전에 일으켰던 만행을 청와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뭐라고요?”

“모르면 찾아보도록 해.”

지유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유화.

그녀는 대한민국의 모두가 사랑했던 각성자였다.

재난이라 불릴 수 있는 상황에서 언제나 활약하며 사람들을 도우던 그녀는, 모두가 인정했던 대한민국의 랭킹 1위였다.

그런 그녀가 저지른 만행이라니?

유승민은 지화자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생각하면서도 그녀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가 바로 유승민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더 완즈 인 더 서울’ 보고서]

자신의 아버지를 앗아가고, 제 하나뿐인 동생을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던 백화점 붕괴 사고.

그래, 사건이 아니라 사고다.

범인이 명확하지 않은 사고.

그런데 사고가 아니었다.

[지유화는 ‘더 완즈 인 더 서울’의 붕괴로 매몰됐던 수많은 시민을 구했지만 … 그녀는 분명 백화점이 붕괴되기 전, ‘더 완즈 인 더 서울’을 방문했다.

그러나 지유화는 센터의 구조대와 함께 나타났으며 … 백화점에 있던 그녀가 어떻게 센터의 구조대와 나타난 건지 의문이다.]

보고서는 ‘더 완즈 인 더 서울’을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규명하고 있었다.

그것도 범인이 명확한 사건으로.

“선배.”

“응?”

유승민이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지유화 씨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좋은 사람이었지?”

“그렇죠?”

유승민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야, 유은영은 지유화에 의해 구조됐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제 소중한 동생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떴을 거다.

그런데.

‘지유화 씨가, 백화점을 붕괴시켰다고?’

유승민이 입술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선배, 지유화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나요?”

“응.”

유승미의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대답에 유승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에게 이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선배 또한 알고 있는 거다.

지유화가 수많은 사상자를 낸 붕괴 사고를 일으킨 범인이라는 것을.

그런데, 도대체 왜!

왜.

“이 기록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죠?”

유승민의 선배가 그가 들고 있는 서류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왜겠어? 평화를 위해서였지.”

평화?

유승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선배.”

“응?”

“저 청와대 그만두겠습니다.”

“뭐?”

놀라 묻는 목소리에 유승민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평화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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