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18. 트라우마 (trauma)
정신계 공격을 막는 방법.
언뜻 보면 장황해 보이지만, 그 방법은 사실 쉬웠다.
“이게 뭐예요?”
“일주일 내로 일어날 타임 브레이커 유형 게이트 정보요.”
“그러니까 이걸 왜 저한테 주는 거예요? 서울에서 일어날 게이트가 아닌 것 같은데.”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어서 하나 고르기나 하세요. 참고로 모두 정신계 특화 몬스터가 나타날 예정입니다.”
바로 실전.
실전만큼 좋은 게 없었다.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지화자가 내민 것을 확인했다. 그때, 커다란 손이 그녀가 보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아갔다.
“음, 보자. B급은 안 돼요. 어떤 위험이 도사릴 줄 알고요? C급 역시 안 돼요. D급은 몬스터 개체 수가 많이 나올 확률이 있다네요? 지화자 팀장님 피곤하시면 안 되니까 얘도 안 되고…….”
“오빠,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지화자 팀장님 혼자 고르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도움 좀 주려고.”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유승민은 알아 본 바, 게이트 공략 경험이 전무 했다. 당연히 랭킹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
“오빠가 뭘 안다고 그래?”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놈은 빠지도록 해라.
지화자가 유승민한테서 자신이 정리한 것들을 빼앗고는 말했다.
“B급으로 가시죠.”
“그러니까 제가 왜요?”
“지화자 팀장님 앞으로 온 협력 요청서니까요. 이것들 모두 다요.”
유은영이 입을 쩍 벌렸다.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잖아요?”
“그거야 제가 알아서 잘 처리 중이었으니까요.”
“아하.”
가 아니라.
“그게 정말이에요?!”
“네.”
“아니, 그런 걸 왜 말 안 해주셨어요?”
“그거야 지화자 팀장님께서 모두 자신이 공략해보겠다고 나설까봐 그랬죠.”
“지화자 팀장님이요?”
가하성이 놀라 물었다.
지화자한테 게이트 공략 협조 요청이 자주 오는 거야 알고 있었다.
그야, 그녀는 랭킹 1위.
더욱이 게이트 단독 공략 경험도 존재했다. 유은영과 함께였다고 하지마는.
어쨌거나 가하성은 놀랐다.
“유은영 씨, 가만 보면 우리 팀장님을 너무 좋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당장에라도 그를 향해 한소리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유은영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쨌든, 유은영 씨! 지금까지 잘 처리 중이다가 왜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생각을 좀 환기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우종문 부장님 때문에 걱정이 많으실 것 아니에요.”
제가요?
유은영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우종문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이 필요할 만큼 그를 걱정하고 있느냐면…….
‘아니지.’
유은영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때, 지화자가 그녀를 불렀다.
“팀장님.”
“네.”
“팀장님께서는 우종문 부장님께서 거둬주셨잖아요.”
그랬단 말이야?
몰랐던 사실이다.
가하성과 하태균의 반응을 보니 지화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때문에 유은영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 뭐. 그렇죠.”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며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지화자가 말했다.
“지유화 씨를 죽인 후 방황하는 팀장님을 붙잡아 준 사람도 우종문 부장님이셨죠.”
하하, 그랬군요.
유은영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이 웃기게도 무척 처연하게 보였다.
적어도 하태균의 눈에는 그랬다.
“팀장님!”
하태균은 ‘지화자’의 과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센터에 입사하기 전, 지유화를 죽인 후의 그때를 말이다.
그는 다짜고짜 ‘지화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 하태균 씨?”
“죄송합니다! 팀장님께서 힘들어하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아… 하하……!”
유은영이 두 눈을 데굴 굴렀다. 그 와중에 리아와 라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화자, 최근 잠을 잘 못 잤어.”
“맞아요. 지화자 누님 맨날 밤늦게 주무시고 그랬어요.”
그거야 새해에 일어났던 난리가 아직 정리가 덜 돼서 그랬던 거다.
유은영이 울지 못해 웃는 낯으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도와달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화자는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쐐기를 박아 버렸다.
“그럼, 팀장님. 전남 순천에서 열릴 B급 게이트 공략에 참가하겠다고 연락할게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함께 갈 거니까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유은영은 지화자를 향해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때였다.
“은영아, 나도 갈래.”
유은영도 지화자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유승민을 쳐다봤다.
유승민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나, 사실 게이트 공략 경험이 없거든.”
하지만 0팀의 일원이 된 이상, 게이트 공략에 자주 따라다녀야 하지 않느냐면서 유승민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경험 좀 해보려고. B급이면 그렇게 위험한 게이트도 아닌 것 같으니까.”
언제는 위험하다면서?
유은영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유승민을 쳐다봤다.
“그럼, 저희는 센터에 남아서 일 보고 있을게요.”
“하긴, B급이면 팀장님이 가신 순간 게임 끝이니까!”
“그리고 그쪽 인력도 있을 테니까요.”
가하성과 하태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저도요!”
“리아, 라이. 너희는 괜히 따라갈 생각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일 좀 배워.”
“히잉! 하성이 오빠 못됐어!”
리아가 뚱한 얼굴을 보였다.
어쨌든 간에 유은영은 전남 순천의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게 됐다.
“공략은 이틀 후에 있어요. 내일 오후에 내려가죠.”
유은영은 이게 무슨 일인 건가 싶었다.
***
‘유은영’은 센터 전남지부에게 ‘지화자’의 공략 참가 소식을 전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팀원들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갔다.
이번에는 유은영도 함께였다.
“유은영 씨, 정말 점심 안 드실 거예요?”
유은영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리 물었지만 지화자는 단호했다.
“밥 생각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이랑 먹고 오세요.”
이 몸의 오빠인 유승민도 걱정하지 않는데, 오지랖은 정말 넓다 싶었다.
어쨌든 간에 지화자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점심 시간을 빌려 가야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향한 곳은 한국 종합 병원.
바로 우종문이 입원해 있는 곳이었다.
“자주 오는 것 같네.”
작년부터 꾸준히 이곳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유은영과 몸이 바뀐 후부터 말이다.
“후우.”
지화자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병원에 들어섰다. 그녀는 익숙하게 우종문이 입원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오셨습니까?”
병실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화자는 가볍게 인사한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어요.”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우종문에게 다가선 그녀가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파아앗!
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지화자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미동 없는 우종문을 쳐다봤다.
“오, 왔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우종문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장님, 오셨습니까?”
나화진.
‘유은영’을 이곳으로 부른 장본인이었다. 나화진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급하게 불렀는데 와줘서 고맙군. 우종문 부장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해서 말이야. 구순철 부장이나 이혜나 팀장은 지금 외근 중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급하게 부르게 됐다면서 나화진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거라면 다른 힐러 분들을 불러도 될 텐데요.”
“뭐, 그렇지만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거든.”
나화진이 히죽거렸다.
“지화자 팀장과 가장 가까운 팀원이라고 들어서.”
“저는 처음 듣는 소리네요.”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그녀가 보이는 웃음에 나화진이 아래턱을 어루만지고는 말했다.
“유은영, 나이 서른. 작년, 지화자 팀장과 A-Index 오류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게이트에 휘말린 후 0팀의 전담 어시스트로 배정됨. 맞나?”
“네, 맞습니다.”
“그래, 그렇군.”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가 물끄러미 그를 보다 입을 열었다.
“제게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군요?”
나화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화자 팀장이 왜 자네 같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건가 했더니,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거였군?”
“제가 눈치가 좀 빠릅니다. 폐급이었잖아요? 실력 좋은 분들이 많은 센터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라도 좋았어야죠.”
“그건 그렇지.”
나화진이 마음에 든다는 듯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물었다.
“유은영, 자네. 나와 함께할 생각 없나?”
“네?”
“함께 손을 잡자는 말일세.”
나화잔이 두 눈을 번들거렸다.
“지유화라고 알지? 지화자 팀장이 죽여버린 이 나라의 랭킹 1위.”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곧 얼굴을 풀고서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네, 압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죽지 않았습니까?”
“그래, 죽었지. 빌어먹을 자네의 팀장한테 말이야.”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그래서요?”
“유화가 자네를 보고싶어 한다네.”
쿵!
심장이 아래로 추락하는 감각이 들었다.
지화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화진이 아연한 얼굴인 그녀를 보고는 말했다.
“믿기지 않겠지. 죽었다는 사람이 자네를 보고 싶어 한다고 이리 말하고 있으니. 하지만.”
나화진이 ‘유은영’의 어깨를 꽉 잡았다.
“유화는 살아 있다네.”
그리고 곧 돌아올 거야.
나지막하게 덧붙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나화진도 알고 있었다.
지유화가 살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