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26화 (126/200)

제126화

전남 순천까지는 금방이었다.

사실 금방은 아니었다. 최대한 달려 4시간만에 도착한 거다.

오는 길 내내 유은영은 지화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기분이 굉장히 저조해보였던 탓이다.

잠깐 휴게소에 들렸을 때도 지화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리기로 예정된 순천 드라마세트장에 도착한 유은영은 한숨을 삼키며 지화자를 보았다.

“지화자 팀장님.”

“아, 네.”

“제 동생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세요?”

“그게.”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유승민이 옆구리를 살짝 찌르고는 물었다.

“뭔가 이상하지?”

“응?”

“지화자 씨 말이야.”

주변에 듣는 귀가 없음을 확인한 유승민이 입을 열었다.

“어제 점심 이후로 줄곧 저 상태인 것 같아.”

“왜 그러는지 알겠어?”

“몰라.”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미래든 과거든 뭐든 모두 볼 수 있지만 사람의 감정은 쉽게 볼 수가 없거든.”

“쓸모 없어.”

쿠궁!

유승민이 충격을 먹은 얼굴로 제 동생을 쳐다봤다. 당연히 유은영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그때, 전남지부의 직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지화자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샌터 전남지부 현장 파견 부서 2팀을 이끌고 있는 정우영이라고 합니다!”

정우영.

현재 전남지부 현장 파견 부서에서 가장 능력치가 높은 사람.

군기가 바짝 든 인사에 유은영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지화자라고 합니다. 이번 B급 게이트 공략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저희야 말로 영광입니다!”

정우영이 다급히 말했다.

“설마 지화자 팀장님께서 정말 저희를 도와주시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0팀의 두 분과 함께 말입니다!”

그 말에 유은영이 함께 온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이쪽은 유은영 씨와 유승민 씨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넵!”

정우영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먼저 알고 계시겠지만 게이트의 예상 등급은 B급입니다. 다만, 그 안의 몬스터들이 꽤 성가실 것으로 예상돼서요.”

그래서 ‘지화자’를 불렀다면서 정우영이 말했다.

“A-Index에 따르면 게이트 내 몬스터들은 모두 정신계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저희 팀에 그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길드에게 협조 요청을 보내자니 그건 그것대로 또 어렵다고 했다.

“저희 지부장님께서 길드의 손을 빌리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전남지부의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거군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순천으로 내려오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어쨌거나 지화자의 말에 정우영이 움찔거렸다.

“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알잖아요?”

지화자가 뾰족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작년 전남지부 현장 파견 부서의 순직자는 총 다섯 명, 부상자 역시 스무 명에 달하죠.”

“그건.”

“A급 게이트 공략때문이란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모두 1팀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었죠?”

정우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설마, 전남지부의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줄 몰랐다.

지화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정말 게이트 공략만 하러 오신 줄 아셨나요?”

그런 것 아니었나요?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말했다.

“이건 감사의 목적도 있습니다. 알아두도록 하세요.”

“아…….”

정우영이 복잡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꽤 기가 죽은 것처럼 보였다.

유은영은 지화자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감사라니요? 저는 못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냥 해본 이야기야.”

“네?”

묻는 말에 지화자가 말했다.

“언니한테 일을 다 맡기고 늘어질까봐 그런 거라고. 1팀에 사상자가 생길 때마다 저 녀석이 함께였거든.”

그것이 괜히 께름칙해서 그런 거라며 지화자가 심드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화자 씨……!”

유은영이 감격에 젖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 씨께서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세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을걸?”

어쨌거나 PM 13:00.

“게이트 오픈됐습니다!”

게이트가 열렸다.

***

게이트는 길이 하나로만 나있는 긴 동굴 유형은 타임 브레이커. 공략 제한 시간은 3시간으로 꽤 긴 축에 속했다.

선두에 서서 게이트를 둘러보고 있던 유은영이 돌연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게이트에 휘말렸던 때가 생각나네요.”

“바퀴벌레 나왔던 던전이요?”

“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민다는 얼굴로 유은영이 입이 열었다.

“두 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에요.”

뭐, 그 덕분에 이렇게 지화자와 몸이 바뀌게 되었지마는.

그때, 유승민이 동생의 걱정을 덜어줬다.

“걱정마세요, 지화자 팀장님. 이 게이트에서 나타날 몬스터들은 충종(蟲腫)이 아니라고 알고 있거든요.”

“오, 게이트에 대해 조사하셨나 보네요?”

“물론이죠.”

유승민이 동생을 보며 웃었다.

“지화자 팀장님을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드려야하니까요.”

“지랄을.”

유승민이 두 눈을 치켜뜨고서 ‘유은영’을 노려봤다.

“아, 미안. 들렸어?”

“당연히 들렸지.”

유승민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오빠는 눈만큼이나 귀가 좋거든.”

“그건 또 몰랐던 사실이네.”

지화자가 히죽거렸다.

“두 사람 다 그만하죠?”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그들을 말렸다.

“지금 게이트 공략 중인 거 잊지 말라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계시는데!”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정우영과 그의 팀원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없는 사람들처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이, 어떻게 그래요?”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에 정우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정말 친절하신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엄청 무섭고.”

“싸가지가 없다고들 알려져있죠.”

“네, 그랬, 아니요!”

정우영이 황급히 유승민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때.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그것을 유은영이 환기시켰다.

“하하! 사실인 걸요, 뭘? 그보다 몬스터가 보이지 않네요? 지금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하나?”

라고 말하던 순간.

다그닥―!

말이 땅을 굴리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유은영이 무기를 꺼내들고서 경계했다.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보이지가않는다.

“유승민 씨.”

유은영의 부름에 유승민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앞쪽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말은 아니에요.”

분명, 말소리였는데?

유은영이 유승민을쳐다봤다.

그는 두 눈에 힘을 주고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앞쪽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마트료시카같은 모습이에요. 하나가 아니라 여럿. 아!”

유승민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지화자가 소리 질러 외쳤다.

“팀장님! 위요!”

쿠르릉!

동굴의 천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지,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 씨, 유승민 씨! 다들 괜찮으십니까?!”

뒤쪽에 있던 정우영이 다급하게 그들을 불렀다.

천장이 무너져내리면서 바닥도 함께 무너졌던 것인지 그들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 팀장님! 어쩌죠?”

정우영이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곳을 내려다봤다.

“누구, 던질만한 거 없어?”

“여기요.”

황급히 부하한테서 돌을 받아든 정우영이 아래로 떨어뜨렸다.

팅!

꽤 깊이가 있는 모양인지, 소리는 한참 후에야 들려왔다.

이 정도 높이라면 암만 지화자라고 해도 큰 부상을 입었을 터.

“구하러 내려갈까요?”

“아니.”

정우영이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 그리고 지화자 씨의 팀원인 유승민 씨께서 말한 게 있잖냐.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그럼에도 팀원들은 걱정된다는 눈치였다.

그에 정우영이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은 한국의 랭킹 1위시다. 그리고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을 가지신 분이지.”

그랬다.

지화자는 S급 각성자이자 한국의 랭킹 1위였다.

“괜찮으실테니 걱정말고, 우리는 게이트의 핵을 부수는데 집중한다.”

“넵!”

정우영의 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 뒤로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다행이다!’

끌어올린 입꼬리의 끝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작년 전남지부 현장 파견 부서의 순직자는 총 다섯 명, 부상자 역시 스무 명에 달하죠.”

“그건.”

“A급 게이트 공략때문이란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모두 1팀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었죠?”

감사의 목적은 개뿔, 지화자도 그녀가 데리고 온 똘마니들도 모두 다 알고 온 거다.

자신이 게이트에서 1팀을 한 명씩 위험에 빠뜨렸었다는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했는데!’

신께서 자신을 도운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몬스터가 눈 앞에 나타났다.

다그닥!

몬스터는 유승민의 말대로 마트료시카와 같은 모양새였다. 다만, 무표정의 얼굴이 머리 부분에 그려져 있었다.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놈들인가?”

“아니요. 새로운 개체인 것 같습니다.”

정우영이 혀를 찼다.

“작년부터 새로운 개체의 몬스터들이 왜 이렇게 자주 출몰하는 거야? 어쨌든,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저 몬스터는 정신계 공격을 가지고 있을…….”

말을 하다 말고 그가 어디 고장난 기계처럼 삐그덕거렸다.

“팀장님?”

그의 팀원이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으, 으아아악!”

정우영이 비명을 내질렀다.

추위와 더위, 답담함과 가려움, 속이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드는 구역질.

‘고통’이라 말할 수 있는 감각들이 정우영을 감탄했다.

그뿐이랴?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삶에서의 부끄러운 일과 온갖 창피한 일. 그리고 괴로웠던 일들이 그의 머리를 한순간에 지배했다.

참다 못한 정우영은 검을 꺼내 들었고.

푸욱!

자신을 찔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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