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지화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당신들 중 한 쪽이 죽으면, 다른 한 쪽도 죽는단 말입니다!”
그 말에 의문을 표할 시간따위 없었다. 당장, 게이트의 등급이 S급으로 변경되지 않았나?
“빌어먹을.”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공략 도중에 등급이 바뀌다니.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게이트 공략이 끝나자마자 기술 관리 부서를 비롯한 시스템 통제 부서의 멱살을 잡으러 가야겠다.
철컥.
지화자가 탄창을 갈고는 유은영이 향한 곳으로 뛰어갔다.
“유은영!”
다급한 목소리가 멋대로 튀어나갔다.
전투가 한창 이뤄지고 있어야할 텐데,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은 탓이다.
상대는 정신계 공격형 몬스터.
B급이라면 그 공격에 당하기 전,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 대항했을 거다.
하지만 S급이라면 다르다.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몬스터의 공격에 당했을 확률이 높다.
‘아직 몸이 안 바뀐 걸 보면 목숨에 이상은 없는 것 같지만.’
혹시 모른다.
유승민은 자신들이 죽는 걸 봤다고 했다. 미래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라고는 하지만.
“언니!”
그 미래대로 흘러간다면?
‘절대로 안 될 소리지.’
지화자가 유은영을 따라잡았다.
다그닥, 다그닥!
유은영은 말발굽 소리를 내고 있는 몬스터들 사이에 우뚝하게 서있었다.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이다.
타앙!
지화자가 몬스터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그녀가 가지고 온 총은 암만 S급 몬스터라고 해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였다.
―우우!
―우우우!
―우우!
불청객의 등장에 몬스터들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화자가 미간을 좁히며 계속해서 총을 쏘아댔다.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지만 A-Index를 검색해 정보를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유은영을 구하는 일이다.
도대체 어떤 환각을 보고 있는 건지, 그녀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유은영 씨.”
지화자가 몬스터들을 몰아내며 유은영을 불렀다.
유은영은 대답이 없었다.
“언니!”
지화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유은영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미동도 없었다.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대게 환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거나, 외부의 자극으로 깨어나는 것.
‘어쩔 수 없지.’
지화자가 ‘지화자’의 발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화자야, 내 동생.”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그녀에게 환각을 펼치기 시작한 거다.
지화자가 이를 악 물었다.
이대로 당하면 안 된다. 하다못해 유은영의 정신을 깨워야했다.
그래야 하는데.
“화자야.”
지화자는 결국 유은영의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이마의 땀을 훔쳐갔다.
“우리 딸, 오래 기다렸어?”
문득 들리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고개를 돌렸다.
“아빠……?”
수 년 전에 백화점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멋쩍게 웃는 낯으로 서있었다.
“진짜 아빠야?”
“그럼, 진짜 아빠지.”
유은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백화점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유은영은 보았다.
[더 완즈 인 더 서울]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백화점.
…이라고 불렸던 곳의 이름을.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변명하듯 말을 쏟아냈다.
“빨리 오려고 했는데 차가 막히지 뭐니? 늦어서 미안해, 우리 딸.”
유은영은 황망했다.
저 말을, 언제인가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백화점이 붕괴되던 날.
오랜만에 부녀끼리 쇼핑을 하기로 했건만, 유은영의 아버지는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그에 아버지는 사과했다.
저 말과 똑같이.
유은영이 파르르 떨며 말했다.
“나, 나가야 해.”
“응?”
“나가야한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은영아, 갑자기 왜 그러니?”
“설명할 시간 없어. 나가야 해!”
곧 백화점이 붕괴될 거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건물 파편에 깔리고 말겠지.
싫다, 싫어.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고 해도 싫었다.
“아빠, 빨리!”
유은영이 황급히 제 아버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아빠?”
유은영의 손에는 주름진 남자의 손만 남아 있었다.
“아… 아빠…….”
그 손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안 돼.”
유은영이 파르르 떨다 곧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부르는 목소리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유은영은 목청이 터져라 몇 번이고 제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유은영이 비명을 토해내듯 울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남겨진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서 말이다.
“유은영!”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것은 그때였다. 유은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지화자 씨……?”
지화자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정신 차려. 이대로 과거에 매몰될 생각이야?”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제야 깨달은 거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은 꿈도 현실도 아닌 그저 과거일 뿐이란 것을.
뚝, 뚝.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은영이 쥐고 있던 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그녀의 아버지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고 건물에 깔려 죽음을 맞이했었다.
“언니.”
지화자가 유은영과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여기에 계속 있고 싶어?”
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광경을 보여줬다면 몰라, 이곳에 계속 있고 싶지 않았다.
“깨어나고 싶어요.”
“그래야지.”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일어나면 조금 아플 거야.”
“왜요?”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유은영의 손을 꼭 끌어쥐었다.
“그야, 언니 정신 차리게 하려고 조금 거친 방법을 썼으니까.”
“네?”
유은영이 멍하니 묻는 것과 동시에 환한 빛이 터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은영은 당황했다. 하지만 지화자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지화자 씨!”
유은영이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걱정마, 언니.”
지화자가 차분하게 말하며 입을 열었다.
“20XX년, 3월 27일의 전투를 회고한다.”
그 말과 함께 빛이 두 사람을 집어 삼켰다.
***
“허억!”
유은영이 발작하듯 몸을 튕기며 깨어났다.
“일어났어?”
심드렁하게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화자가 서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질끈 묶은 채로 서있는 지화자가 말이다. 유은영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이다 앓는 목소리를 냈다.
“윽… 지화자 씨…….”
허벅지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다리 한쪽이 피로 흥건했다.
그녀에게 지화자가 말했다.
“어서 치료하는 게 좋을 거야. 잘못하면 과다 출혈로 죽을 걸?”
“네?!”
유은영이 놀라 외쳤다.
“어쩔 수 없었어. 잘못하면 나도 당할뻔 했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허벅지를 이렇게 너덜하게 만들면 어쩐단 말인가!
유은영이 황급히 힐을 시전했다.
허벅지의 상처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피가 천천히 멈췄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감각이 없어요.”
그리고 너무 아팠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앞에 서서는 말했다.
“언니 힘으로는 그정도가 최선이니까. 그보다 움직일 수 있겠어?”
“아니요.”
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 옆에 총 있지?”
“네.”
“그거 가지고 전투 좀 거들어.”
“네?”
“전투 좀 거들어 달라고.”
지화자가 무기를 가볍게 휘둘러 잡고서는 말했다.
“저 녀석들한테 한 방 먹이고 싶지 않아? 언니한테 그딴 걸 보여줬는데.”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벙긋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 먹이고 싶지 않냐고?
당연히 한 방 먹이고 싶었다.
“네, 알겠어요.”
유은영은 몬스터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도울게요.”
“좋아.”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빠르게 끝내자. 나도 저 망할 몬스터들 때문에 오랜만에 엄청 불쾌한 경험을 했으니까.”
지화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말대로 그녀가 몸을 담고 있었던 유은영의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범벅이었다.
유은영이 눈가를 세게 비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그닥, 다그닥―!
마트료시카를 닮은 몬스터들이 말발굽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주위를 애워싸기 시작했다.
타앙!
유은영이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타앗!
지화자가 그들을 향해 땅을 박차며 무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화르륵,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불꽃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