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지화자는 부르는 목소리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네 언니 반만 닮으면 안 돼?”
“그러게 왜 저런 애를 낳아서.”
경멸 섞인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 사이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동생.”
지유화의 목소리였다.
“그러게 왜 태어나서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든거야?”
빼앗으려 든 적 없다.
지화자가 귀를 틀어 막았다.
“시끄러.”
귀를 막았음에도 소용 없었다.
“우리 동생, 그거 아니? 나는 네가 정말 싫었어.”
지유화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고막을 파고 들었다.
“하지만 이제 좋아. 네 존재로 나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빌어먹을.
지화자가 입술을 짓씹는 순간.
“우리 동생.”
지화자가 헛숨을 들이삼켰다.
제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 때문이다.
지화자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지유화……?”
지유화가 얄궂게 웃고 있었다.
지화자가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리다 황급히 봉을 휘둘렀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지유화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 하하.”
지화자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정신 차리자.’
암만 지유화가 살아 있다고 해도 그녀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환상을 본 게 분명하다.
빌어먹을 문어 대가리의 정신계 공격에 당해서 환상을 본 게 틀림없다.
그래야만 했다.
“왜?”
들리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흠칫 몸을 떨고는 고개를 들었다.
지유화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 동생, 내가 왜 환상이라고 생각해?”
지화자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거짓말.”
정말, 지유화가 게이트에 들어왔다고? 어떻게?
‘설마.’
정우영의 팀원들 중 한 명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이곳에 올 줄 알고?’
그렇다면 정말 끔찍했다.
지화자가 얼굴을 구기고선 다시 한번 더 봉을 휘둘렀다.
“지유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제 언니를 부르면서 말이다.
화르륵!
조금 전보다 불꽃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지유화의 모습은 다시 사라졌다.
지화자가 가쁘게 숨을 몰아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까르르.
듣기 싫은 웃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시끄러!”
지화자가 버럭 소리 질렀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타는 듯한 갈증이 찾아왔다 싶은 순간, 속이 더부룩해졌다.
참을 수 없는 한기에 몸이 벌벌 떨리기도 했고 견딜 수 없는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가장 싫은 존재가 제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는 랭커는 없을 터.
지화자가 목을 부여잡았다.
“유화만으로 충분했는데, 도대체 왜 둘째를 가지자고 한 거예요?”
“저런 애가 나올 줄 알았으면 그런 말 안 했지!”
시끄럽다.
정말 시끄럽다.
부모란 작자가 싸우는 목소리도, 그 소리 사이로 들리는 지유화의 웃음 소리도 모두 듣기 싫었다.
‘어떻게 하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간단했다.
죽으면 된다.
“우리 동생, 그냥 죽지 그러니?”
어릴 적부터 듣던 말 아닌가?
지화자가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주위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불꽃은 이내 지화자를 휘감았다.
그녀를 태워버릴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안 돼요, 지화자 씨!”
불기둥을 뚫고서 누군가 그녀를 강하게 밀쳤다.
지화자는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윽…….”
그녀가 앓는 목소리를 내며 눈가를 찡그리는 순간.
“미쳤어요?!”
지화자를 밀쳤던 여자가 그녀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두 눈에 담기는 얼굴에 지화자가 멍하니 물었다.
“언니?”
지유화를 부르는 말이 아니었다.
유은영.
그녀가 엉망이 된 얼굴로 저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유은영이 버럭 소리 질렀다.
“이제야 저를 알아보시네요! 진짜, 누구 죽일 일 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유은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 문어한테 당하셨어요! 나 참, 랭킹 1위라고 엄청나게 으스대시더니만!”
“내가 언제?!”
“항상 그러셨거든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보다 정신 좀 차리셨어요?”
안 차렸다고 하면 뺨이라도 칠 기세였다.
지화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정신 못 차린 것 같으면 지화자 씨 허벅지에 총을 쏘려고 했거든요.”
지화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언니, 원래 이렇게 폭력적이었던가?”
“누구 덕분에요. 그보다 어떻게 좀 해봐요.”
“뭐를?”
“저 문어요.”
지화자가 고개를 들었다.
수십, 수백 개의 눈을 빛내고 있는 글레시스 옥토가 보였다.
지화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 빌어먹을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넋이 나가버렸다.
‘꼴사납게.’
지화자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린 후 몸을 일으켰다.
“유승민 씨는?”
“지화자 씨처럼 정신 못 차리는 것 같아서 기절시켰어요.”
“언니가?”
“네.”
참고로 지화자와 함께 있던 남자 역시 정신을 못 차려서 기절시켰다고 유은영이 말했다.
“진짜 언니가?”
“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이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화자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보다 언니는 왜 멀쩡한 거야?”
“정신을 놓을 것 같을 때마다 몸에 상처를 냈으니까요.”
“뭐?”
“괜찮아요. 저 힐러잖아요.”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화자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다 죄책감 어린 얼굴을 구겨버렸다.
“정말 미안해.”
“네?”
“내가 멍청하게 저 문어 대가리 못 잡아서 그렇게 된 거잖아.”
지화자가 사납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물었다.
“그리고 그거, 내가 그런 거지?”
유은영의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아마, 자신이 그녀를 지유화로 착각하면서 공격을 해버려서 생긴 상처겠지.
유은영이 상처를 어루만지고는 픽 웃었다.
“네, 맞아요. 제가 지유화 씨랑 많이 닮은 모양이더라고요.”
“설마.”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언니가 지유화보다 몇 배는 더 예뻐.”
“빈말이라도 좋네요.”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지화자는 마음대로 생각하라면서 글레시스 옥토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몬스터는 수백에 이르는 눈을 움직여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것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지화자가 비틀거렸다. 지유화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울렸기 때문이다.
지화자는 무너지지 않았다.
“타코야끼로 만들어주마.”
이를 악물며 살기 어린 목소리를 내기만 했다.
화르륵.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불꽃이 지화자의 주위로 일어났다.
글레시스 오토가 가진 수백의 눈이 동시에 움직이는 순간.
타앗!
지화자가 땅을 박찼다.
몬스터가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때.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으며 글레시스 옥토의 여덟 다리를 단번에 잘라냈다.
물론, 순식간에 재생됐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화자는 글레시스 옥토가 여덟 다리를 재생시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몬스터의 품을 파고들었다.
글레시스 옥토가 그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수백에 이르는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지화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
글레시스 옥토가 크게 당황한 듯 눈을 여러 차례 깜빡거렸다.
“왜?”
그런 몬스터를 향해 지화자가 비아냥거렸다.
“내가 등신같이 이번에도 네 공격에 당할 줄 알았어?”
그렇게 되면 랭킹 1위란 자리를 내줘야할 거다.
빌어먹을 서이안에게 말이다.
‘그럴 수야 없지.’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잘가라.”
불꽃이 글레시스 옥토를 휘감아버렸다.
―……!!
글레시스 옥토가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까맣게 타버린 몬스터가 ‘쿵’하고 쓰러졌다.
드디어 끝난 거다.
“하.”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구시렁거렸다.
“순순히 죽어줄 것이지. 몬스터 새끼가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더욱이 꼴사나운 모습을 유은영한테 보이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타버린 시체를 아예 재로 만들고 싶었지만 지화자는 참았다.
지금은 핵을 찾아야할 때니까.
게이트의 핵이야 진작 찾았던 터라 지화자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파삭!
지화자가 망설임 없이 핵을 부서뜨렸다.
[축하합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비례골길 24에 생성된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 S급의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게이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모르게 유은영이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지화작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국가 넘버, 82.
전남 순천시 비례골길 24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완료.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S급.
Time Limit: 240분.
Atack Time: 203분 47초.
S급 각성자 ‘지화자’와 … C급 각성자 ‘유은영’의 이름이 A-Index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