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지화자는 유은영과 함께 저녁이 되어서야 센터로 출발했다.
물론, 유승민도 함께였다.
전남지부 측에서 내일 출발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유은영이 그 제안을 거절해버렸다.
그들 중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유은영이다.
그런 그녀가 서울로 돌아가자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센터로 돌아가는 길.
지화자와 유은영은 서로 말이 없었다.
지화자는 앞만 보며 운전만 했고, 유은영은 빠르게 사라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유승민만 좌불안석이었다.
지화자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 거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곤 물었다.
“휴게소 들릴까?”
“네?”
“화장실이 급하신 것 같아서.”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유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하겠습니다.”
이대로 서울까지 가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유승민이 차에서 내렸다.
“저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유은영도 그 뒤를 따라 내렸다.
지화자는 남매가 화장실 안으로 사라진 걸 확인한 후에야 차에서 내렸다.
“후우.”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차를 몰았지만, 사실 그녀 역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평소라면 ‘그냥 전남지부에 신세 좀 지고 내일 출발하면 안 됐냐’라고 툴툴거렸을 유은영이다.
애초에 평소의 그녀라면 전남지부 측의 제안을 거절할 리도 없었다.
‘많이 화났겠지.’
지화자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을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뭐야, 벌써 왔어?”
유승민이 돌아왔다.
“큰 거일 줄 알았더니.”
놀리는 목소리에 유승민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장난이야.”
“압니다.”
유승민이 표정을 푼 후 물었다.
“은영이랑 무슨 일 있었습니까?”
“딱히?”
“은영이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유승민이 지화자의 차에 기대곤 다시금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 있으셨죠?”
지화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가 그에게 되물었다.
“유승민 씨, 언니의 성언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네, 압니다. 남을 상처입힐수록 성장시키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물으려던 유승민이 입을 다물었다.
“설마.”
“그래. 언니가 알아버렸어.”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우영 팀장을 죽이면서 등급이 올라간 모양이더라고.”
“네?!”
유승민이 놀라 외쳤다.
“상대를 죽이는 것도 포함됐단 말입니까?”
“응.”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죽여봤으니까.”
유승민은 순간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죽여봤다고? 사람을?
“은영이의 몸으로요?”
“그래.”
유승민이 경악했다.
“도대체 누구를요?!”
“백도진.”
익숙한 이름이 지화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백도진.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라 불리었던 넘버(Number)의 주인이었던 자.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은영이의 몸으로 도대체 어떻게 백도진 씨를 죽였단 말입니까?!”
“유승민 씨, 목소리 좀 낮춰.”
지화자가 주의를 줬다.
안 그래도 휴게소에 들른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유승민이 지화자의 주의에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그녀를 쳐다봤다.
자신의 질문에 어서 대답해달라는 듯 말이다. 그에 지화자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언니가 백도진을 반쯤 죽여났었거든. 그래서 잡기 쉬웠어.”
참고로 시체는 야산에 묻어났다면서 지화자가 중얼거렸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유승민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화자가 동생의 몸으로 사고를 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인이라니!
“괜찮아. 위에서 죽이라고 한 놈이였어.”
‘잡지 못할 거면’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말이다.
“당신이 백도진 씨를 죽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요?”
“일단은 유승민 씨뿐.”
그것 참 다행인 일이었다.
“은영이는 아직 모르죠?”
“응. 하지만 곧 알려줘야할 것 같네.”
“절대로 알려주지 마십시오!”
유승민이 빼액 소리 질렀다.
“우리 은영이가 얼마나 유약한데! 뒷목이라도 잡고 넘어가면 어떻게 하려고요!”
“언니를 그렇게 보는 건 유승민 씨 뿐일 거야.”
지화자가 픽 웃었다.
“두 사람, 차에 안 타고 뭐하고 있어요?”
유은영이 돌아온 건 그때였다.
“아, 은영아.”
유승민이 눈치좋게 그녀의 관심을 돌렸다.
“이번 게이트, 상부에 어떻게 보고할 생각인지 이야기 중이였어. 그렇죠,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이 미심쩍다는 듯 두 사람을 쳐다봤지만 곧 수긍한다는 듯 말했다.
“하긴, 이번 게이트는 우종문 부장님이 아닌 국장님께 직접적으로 보고를 드려야할 테니까요.”
힘내세요, 지화자 씨.
유은영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지화자는 그런 식으로 느꼈다.
그렇기에 지화자는 물었다.
“도와줄래?”
“싫어요.”
유은영이 단호하게 거부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지화자가 유승민을 쳐다봤다.
“저도 싫습니다.”
“누가 뭐래?”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유은영의 기분이 생각보다 나빠 보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 * *
지화자의 차는 밤이 깊어진 후에야 서울에 도착했다.
그녀는 택시가 많이 다니는 곳에 먼저 유승민을 내려줬다.
“자, 내려.”
“여기는 제가 살고있는 동네가 아닙니다만?”
“알아. 유승민 씨가 사는 동네는 택시 타고 알아서 잘 들어가기를 바랄게.”
유승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내리라면 내려.”
“잠시만요!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는 직접 유승민을 차에서 끌어내렸다. 친절하게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태워주기까지 했다.
“그럼, 내일 봐.”
“지화자 팀장님!”
유승민이 뒤늦게 정신을 챙긴 뒤 애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택시는 떠나버렸다.
지화자는 만족스럽게 웃은 후 차에 올라탔다.
“지화자 씨, 나이스.”
유은영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지화자가 멍하니 그녀를 보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으세요?”
“아니, 그냥.”
지화자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한테 화나 있을 줄 알았거든.”
“지금도 화났어요.”
유은영이 차갑게 말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설명할 준비 하세요.”
“뭐를?”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 아니죠?”
유은영이 두 눈을 샐쭉하게 뜨며 지화자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지만 어떡하지? 언니 먼저 집에 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화자 씨는요?”
“잠시 센터에.”
“보고서 작성하려고요? 그런 거라면 저도 같이 가요.”
지화자와 단둘이서 나눌 이야기도 많았고 말이다. 말했듯, 유은영은 여전히 그녀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으니.
하지만 지화자는 고개를 저었다.
“전남지부장이랑 이야기 좀 나누려고 그래.”
“전화로 하시면 되잖아요.”
“나도 전화로 하고 싶은데, 그 인간이 화상 채팅을 선호하는 양반이라서 어쩔 수 없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착했다.
지화자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오늘 많이 무리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요.”
무리한 건 지화자도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걱정어린 시선에 지화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 걱정은 말고 언니 걱정이나 해. 그리고 혹시 몸 안 좋아지면 불러.”
“네?”
“허벅지 말이야. 거기 말고 다친 곳도 많잖아?”
“아…….”
유은영이 머쓱하게 웃었다.
지화자가 걱정해줄 줄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찼다.
“언니가 알아서 치료했다지만 상처가 덧날 수도 있잖아?”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보다 어서 내리기나 해.”
“네네.”
재촉하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차에서 내렸다.
“저, 지화자 씨.”
“응?”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없기는.”
지화자가 픽 웃었다.
“그럼, 나중에 봐. 피곤하면 먼저 자고.”
“안 잘 거예요.”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은영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화자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시던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차를 몰며 사라졌다.
유은영은 지화자가 사라진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얼굴을 와락 구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혼자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지화자는 왜 자신에게 제 성언이 가진 힘을 숨겼던 걸까? 도대체 그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고.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이 지화자였어도 그랬을 거란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은영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돌아오면 물어보자.”
자신이 제멋대로 결론을 지은 질문들에 대해서.
하지만 유은영은 몰랐다.
지화자가 몇 날 며칠 자리를 비울 것이란 것을. 그 시간 동안 서로 몸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것 또한.
그녀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