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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36화 (136/200)

제136화

센터에 도착한 지화자는 사무실로 곧장 올라갔다.

“가하성?”

“팀장님?”

불이 꺼져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지화자가 놀라 물었다.

“뭐야, 퇴근 안 했어?”

“네?”

가하성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에 지화자가 한소리 하려다가 문제점을 깨달았다.

‘반말.’

유은영과 몸이 바뀐 뒤로 ‘지화자’는 계속 존댓말을 사용해왔다.

상냥하고 친절한 ‘지화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얼굴을 구기며 상냥하게 물었다.

“야근 중이셨나보네요?”

“네, 뭐. 알아볼 것도 있어서요.”

가하성이 마우스를 달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팀장님은 무슨 일이세요? 내일 쯤이야 돌아올 줄 알았더니.”

“그럴 생각이었는데 유은영 씨가 올라가자고 해서요.”

“유은영 씨가요?”

“네.”

그 대답에 가하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긴, B급 게이트 였으니까요. 굳이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셨나보네요.”

그건 아닐 거다.

자신들이 공략한 게이트는 S급 게이트였으니까.

하지만 지화자는 구태여 설명해주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언제 퇴근하실 거예요?”

“곧 퇴근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화자와 가하성.

두 사람은 원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었다.

유은영이 ‘지화자’를 흉내내면서 거리감이 많이 좁혀졌다고 하나, 둘은 따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다.

유은영이었다면 이 침묵을 불편하게 느꼈을 거다.

하지만 지화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에서 자료를 몇 개 챙기고는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어디 가세요?”

“회의장에요. 전남지부장님과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하.”

전남지부장과 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냐는 등의 그런 질문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가하성은 말했다.

“다녀오세요.”

의외의 인사가 들려왔다.

지화자가 놀라 가하성을 쳐다봤다가 무심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먼저 퇴근하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가하성이 그녀와 마찬가지로 무심히 대답했다. 지화자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문을 닫았다.

* * *

전남지부장과의 이야기는 쉽게 끝이 났다.

게이트 공략 도중 사망한 정우영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전남 지부가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화자 팀장. 국장님께 잘 좀 이야기해주시게나.”

“네, 지부장님.”

지화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는 것을 끝으로 화상 회의가 종료됐다.

눈앞에 떠 있던 홀로그램 창이 사라진 걸 확인한 그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정우영이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전남지부장이 까다롭게 나왔을 테니까.’

그렇게 나왔다면 그를 설득한다고 밤을 지새웠을 거다.

지화자는 뒷목을 꾹꾹 누르고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대로 퇴근할까 했던 그녀는 사무실로 걸음을 돌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지화자는 전남 순천에어 있었던 S급 게이트에 관한 보고를 최대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집에 들어가기도 싫고.’

유은영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화자는 그녀와의 대화를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냥 속시원하게 그간의 일을 털어 놓으면 될텐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지화자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음?”

사무실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무실 불은 끄고 퇴근을 해야할 거 아니야?”

이대로 퇴근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

“하여튼간에.”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이게 뭐야?”

지화자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문서를 주워들었다.

가하성이 퇴근하면서 챙기지 못한 서류인 듯했다. 사무실을 나갈 때는 보지 못한 것이니 말이다.

‘칠칠맞기는.’

지화자가 가하성의 자리에 서류를 놓아주려고 할 때, 그녀는 보고 말았다.

“최 박사……?”

오래전에 세상에서 지워버린 이름을 말이다.

최 박사.

그녀는 몬스터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라이와 리아를 탄생시킨 미치광이 과학자였다.

끝내 센터에 붙잡혀 우종문의 힘에 의해 정신을 놓아버린 여자이기도 했고.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야근 중이셨나보네요?”

“네, 뭐. 알아볼 것도 있어서요.”

야근은 개뿔.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릴 때였다.

“팀장님?”

퇴근한 줄 알았던 가하성이 돌아왔다.

“가하성.”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그에게 ‘촤 박사’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서류를 내밀었다.

“알아볼 게 있다고 하더니. 최 박사에 대해서는 왜 조사하고 있었대?”

가하성이 표정을 굳히고는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남의 물건 함부로 손대지 마시죠? 아무리 팀장님이라고 해도 불쾌한데요.”

“손댄 거 아니야. 떨어져 있던 거 주웠을 뿐이지. 그보다 나 역시 불쾌하거든?”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말해. 최 박사는 왜 조사하고 있던 거야? 라이랑 리아도 알아?”

“모릅니다. 그보다 최 박사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럼?”

“팀장님께서는 알 필요 없습니다.”

가하성이 지화자한테서 서류를 빼앗아 들고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지화자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입을 열었다.

“가하성 씨, 그렇게 나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네?”

가하성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존댓말을 했다가 반말을 해대는 꼴이 꼭 지난 겨울의 그녀를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지난 겨울의 지화자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았다면 눈 앞의 그녀는…….

‘나사가 조일대로 조여져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그래, 처음 만났던 그녀와 똑같았다.

가하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 지화자는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최 박사는 추종자가 여럿 있죠. 대부분 소탕했지만, 어디에서 쥐새끼처럼 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요.”

“그래서요?”

“똑똑하신 분이 왜 그렇게 물으시는 걸까?”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가하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제가 최 박사를 추종하는 새끼들한테 정보를 팔아넘기려고 오해하시는 거 아니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뿐이에요.”

“지화자 팀장님!”

가하성이 빼액 소리 질렀다.

“최 박사에 대한 정보를 넘기려면 진작 넘겼겠죠! 그 새끼가 저희 손에 잡혔을 때요!”

“그러니까요.”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때 넘겼으면 되는 일인데, 왜 지금 그 새끼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던 거냐고요. 수상하게.”

물론, 지화자는 가하성이 최 박사의 추종자들에게 정보를 팔 생각따위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묻는 건, 가하성이 위험한 짓을 할까 싶어서였다.

물론, 그가 위험한 짓을 하든 말든 지화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애초에 관심도 두지 않았을 테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언니한테 물들었나 보지.’

어쨌거나 지화자의 말에 가하성이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최 박사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던 거 아니라니까요!”

“그럼?”

들었던 질문이 또 날아들어왔다.

가하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최 박사와 비슷한 새끼들 많이 있었던 거 아시죠? 그 새끼들 모두 팀장님이 족쳐버린 것도요.”

“알지.”

자신이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했던 일인데 설마 모를까봐?

“그 새끼들 좀 찾고 싶어서요. 그래서 최 박사 조사하고 있었던 거예요.”

최 박사는 추종자가 많았던만큼 발이 넓었었다. 그러니까 그녀와 같은 인간들을 많이 알고 지냈다는 소리다.

가하성이 사납게 머리를 긁고는 말했다.

“애들이 사라졌거든요.”

“무슨 애들? 가하성 씨한테 자식이 있던가?”

“제 자식 말고 고아원 애들이요! 그리고 제가 무슨 자식이 있다고 그래요?!”

“있을 수도 있지. 그보다 웬 고아원?”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아.”

얼빠진 소리를 냈다.

가하성이 고아원 출신이란 것을 뒤늦게 떠올렸기 때문이다.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애들이 왜 사라진 건데?”

“저도 몰라요. 며칠 전에 좋은 부모 만나서 입양갔다고 하더니 연락이 끊겼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고아원의 원장이 자신에게 연락을 했다면서 가하성이 입을 열었다.

“애들 데리고 간 작자들에 대해 알아보니까 수상해서요. 옛날에 팀장님 도와서 최 박사 쪽 건드릴 때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최 박사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던 거야?”

“네. 이제 됐죠?”

묻는 말에 지화자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됐어.”

가하성이 굳이 최 박사와 그녀와 같은 인간들을 파헤친 건, 본능적으로 느낀 바가 있어서일 거다.

‘가하성은 감이 좋으니까.’

지화자가 턱을 어루만지고선 입을 열었다.

“안내해. 애들 데리고 간 인간들 집으로.”

최 박사는 물론, 그녀와 같은 미친 과학자들은 족친지 오래였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녀와 같은 인간이 또 나타나서는 라이와 리아를 탄생시켰던 실험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을 지도.

어쨌거나 가하성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지화자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 * *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

유은영은 팔짱을 낀 채 현관문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센터에서 도대체 뭘 하고 계시는 거야?”

전화도 해봤지만 지화자는 받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연락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유은영이 얼굴을 찌푸릴 때.

우웅!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유은영이 황급히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화자 팀장님]: 미안, 오늘 못 들어갈 것 같네. 내일 센터에서 봐. 택시비 줄 테니까 택시타고 오고. 아님, 유승민 씨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

유은영이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일곤 빼액 소리 질렀다.

“지화자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지화자가 센터에 가지 못하게 그녀를 붙잡을 걸 그랬다.

자신이 왜 지금까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은영이 얼굴을 구겼다.

‘분명, 내가 꼬치꼬치 캐묻는 게 싫어서 이러는 걸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을 리가 없었다.

유은영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지화자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해 최대한 좋게 좋게 풀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유은영이 ‘C급’이라 기록되어 있는 자신의 등급을 확인하고는 표정을 굳혔다.

날이 밝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맞이한 아침.

지화자는 출근하지 않았다.

“하성이 오빠도 안 오네.”

“그러게. 하성이 형,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는데.”

가하성도 출근하지 않았다.

유은영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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