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타앙!
총성과 함께 지화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었다.
빠르게 지나간 탄알이 그녀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가하성!”
그녀가 피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가하성이 곧장 키메라를 데리고 도망쳤다.
지화자가 황급히 그를 쫓으려고 했지만.
퍼엉―!
가하성이 던진 연막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지화자가 기침을 터트렸다.
자욱하게 피어난 연기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매웠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평범한 연막이 아닌 모양이었다.
지화자가 이를 갈며 가볍게 봉을 휘둘러 연기를 걷어냈다.
가하성은 이미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키메라 역시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하성……!”
지화자가 짓씹듯이 그의 이름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새끼가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마음 같아서는 가하성을 쫓지 않고 싶었다.
키메라에게 당하든 말든 자신이 상관할 게 뭐란 말인가?
더욱이 그는 자신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그 키메라가 알고 지냈던 아이란 이유로 말이다.
‘바보같은 놈.’
지화자는 사리분간 못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지금 가하성이 딱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망할.”
콜럭거리며 작게 기침을 토해내고는 다리를 움직였다.
가하성을 쫓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그가 흘린 피가 있었으니까.
지화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땅을 박찼다.
* * *
가하성은 키메라를 안아든 채 계속 달렸다.
그는 지화자한테서 충분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야 멈춰섰다.
가하성은 곧장 키메라를 살폈다.
“지후, 괜찮아?”
그의 품에 꼭 안겨있던 키메라가 붉은 눈을 끔뻑였다.
가하성이 애써 미소를 그렸다.
“지후야, 형이야. 형이 누군지 알아 보겠어?”
키메라는 아무 대답없이 계속 눈만 끔뻑였다.
그러다 키메라가 입을 열었다.
말을 하기 위해 그런 줄 알았지만, 작은 괴물은 가하성의 너덜해진 손목을 그대로 물어버렸다.
“윽……!”
가하성이 미간을 좁혔다.
안 그래도 뼈가 드러날만큼 상처를 입은 곳이었다.
가하성은 이를 악 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을 따라잡은 지화자가 아이를 죽여버릴 테니까.
“지후야.”
가하성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불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이에게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김지후!”
가하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제 손목을 물고있던 아이의 떼어냈다.
아이의 입가에 피가 흥건했다.
가하성이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형이 꼭 고쳐줄게. 분명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 방법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하성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않느가?
‘처음 키메라가 확인됐던 게 5년 전이야.’
그 5년 동안 미치광이 과학자들 나름대로 발전했을 터.
그러니까 되돌릴 수 있을 거다.
괴물에서 인간으로 말이다.
그래야만 했다.
지후는…….
가하성이 입술 안쪽을 꾹 깨물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가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가하성이 걸음을 떼자, 아이는 그와 발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후야, 다른 애들은 어디 있어? 너 혼자 여기 있었던 거야?”
‘김지후’였던 것은 말이 없었다.
가하성의 피가 흥건한 입술을 혀로 핥으며 입맛을 다시기만 했다.
“괜찮아. 다른 애들도 형이 찾아줄게.”
그리고 아이와 똑같은 꼴이라면 고쳐줄 거다.
가하성은 그렇데 다짐하며 다시 움직였다. 키메라의 손을 꼭 쥔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온갖 기자재가 쌓여있는 창고같은 곳에 그는 도착했다.
‘여기가 어디지?’
가하성이 미간을 좁혔다.
평범한 주택 아래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니.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의문은 나중에 해결하자.’
지금은 아이들을 찾아 보호해야 했다.
“지후야. 태연이랑 민승이 어디 있는지 알아?”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가락을 들었다. 가하성은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가.
“키야아아악!”
“캬아아아!”
숨을 들이마셨다.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쇠창살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아…….”
가하성이 입을 뻐금거렸다.
“안 돼.”
김지후도, 그리고 감옥 안에 있는 아이들도 가하성에게 있어서 중요한 아이들이었다.
고아원에 방문할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나오던 아이들이었는데.
‘그랬는데, 왜.’
왜 저렇게 됐단 말인가?
가하성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리에 털쩍썩 주저앉았다.
“오, 아가. 어디를 갔나 했더니.”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가하성의 곁에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이고 있던 키메라가 활짝 웃었다.
아이는 그대로 난데없이 나타난 여자에게 달려갔다.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여자가 키메라를 번쩍 안아 들고는 말했다.
“걱정했잖아.”
다정한 목소리에 키메라가 까르륵 웃었다.
”그보다 누구를 데리고 온 거니? 엄마가 낯선 사람은 바로 먹어버리라고 했지?”
그 말에 가하성은 가까스로 정신을 챙겼다.
“당신이야?”
날선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가하성이 이를 드러내며 다시금 물었다.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거, 당신이냐고.”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여자가 미소를 그렸다.
“그나저나 정말 잘 됐네요. 애들 먹이가 부족해서 곤란하던 참이었거든요.”
따악!
손가락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갇혀있던 감옥 문이 열렸다.
“얘들아, 맘마 시간이란다.”
“키야아아악!”
감옥 안에 있던 키메라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가하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하성이 황급히 총을 들었지만 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나도 형처럼 되고 싶어!”
“나도!”
재잘거리던 목소들이 귓가를 울려댔다. 가하성은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총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멍청아!”
화르륵!
가하성의 앞으로 불꽃이 튀었다.
“키야아악!”
“키에에엑!”
가하성에게 달려들었던 키메라들이 갑작스로운 불꽃에 펄쩍 뛰며 물러났다.
가하성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렸다.
“가하성! 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팀장님…….”
“등신같이 죽을 생각 아니라면 어디 자빠져 있어.”
지화자가 불꽃을 걷어냈다.
“잠깐만요, 팀장님!”
가하성이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고는 빌었다.
“애들 죽이지마세요! 네?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을 거예요!”
“가하성.”
지화자가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고는.
“정신차려.”
쫙!
가하성의 뺨을 그대로 때려버렸다.
“다음은 손이 아니라 주먹이야. 정신 똑바로 챙기도록 해, 가하성. 네가 아는 애들은 더는 없으니까.”
이곳에 있는 건 괴물들뿐이다.
가하성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화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 걸음을 돌렸다.
“이봐, 아줌마.”
여자가 꿀꺽 침을 삼켰다.
“센터의 귀한 분께서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왜 왔을 것 같아?”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걱정마. 당장 죽이지는 않을 거야. 이것저것 알아낼 게 있으니까. 죽여도 그것들 알아내고 죽일테니 너무 무서워하지마.”
여자가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만만 하시네요?”
“그럼.”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너같은 건 한 주먹거리거든.”
말을 끝내자마자 지화자는 움직였다. 순식간에 여자의 앞에 당도한 거다.
그녀 앞을 세 마리의 키메라가 지키고 있었지마는.
“꺄악!”
여자를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키메라들이 뒤늦게 반응했지만 이미 늦은 때.
지화자가 괴물들을 향해 경고의 눈빛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줌마, 하나만 묻자. 키메라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어… 없어……!”
“그래? 살려줄 이유가 하나 줄어들었네.”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여자가 기겁하며 외쳤다.
“차, 찾을게! 찾을게요!”
“괜찮아. 못 찾을 거 아니까.”
여자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멈춰!”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지화자가 미간을 좁히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웬 남자가 가하성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이 녀석이 죽는 꼴 보기 싫으면, 당장 내 아내를 놓아줘.”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가하성, 저 자식은 뭘 저렇게 순순히 인질로 잡혔단 말인가?
‘정신이라도 놓아버린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더더욱 희게 질려있는 것을 보면.
‘상처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나 보네.’
처음 키메라에게 물리면서 난 상처가 독이 된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피를 흘려댔는데 멀쩡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화자가 한숨을 내쉬고는 여자를 손에서 풀어줬다. 쥐고있던 무기도 아래로 놓았다.
남자가 두 눈을 번뜩였다.
“손 들어.”
지화자는 남자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두 손을 번쩍 든 거다.
남자가 그에 여자에게 눈짓했다.
“여보.”
“응! 알겠어!”
뭘 알겠다고 하는 건지, 지화자는 금방 알게 됐다.
“윽……!”
목에서 강해지는 강한 충격에 지화자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기절하지 않을 텐데, 저 미친 부부가 뭘 가지고 저를 공격한 건지 모르겠다.
지화자가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었지만, 한 번 더 가해지는 충격에 그녀는 결국 두 눈을 감고 말았다.
‘빌어먹을.’
지화자는 의식의 끈을 완전히 놓기 전에 바랐다.
부디, 유은영과 몸이 바뀌지 않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