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어쨌거나 아이는 ‘유은영’의 품에서 진정했다.
“저렇게 얌전한 아이였군요.”
김지후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던 조수현이 멍하니 읊조렸다.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김지후가 작게 움찔거리고는 비척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미안해요.”
아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렸다.
금방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에 조수현이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 아저씨 괜찮으니까.”
김지후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다시 ‘유은영’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파르르 여린 어깨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결국 울음을 터트린 것 같았다.
지화자가 어색한 손길로 아이의 등을 토닥여줬다. 조수현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유은영’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지화자’가 그러지 말라고 그녀에게 눈빛을 쏘아붙인 후 조수현에게 말했다.
“상처 꼭 치료받으세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금방 낫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수현이 고개를 꾸벅인 후 방을 나갔다. 그러기 무섭게 김지후가 다시 ‘유은영’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저 때문이에요?”
“응? 뭐가?”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저씨 나간 거요. 제가 못되게 굴어서 그런 거예요?”
“아니야, 지후야.”
그렇게 말한 건 유은영이었다.
“그 아저씨는 지후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나간 것뿐이야.”
“정말요?”
“응, 정말.”
유은영이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그래봤자 ‘지화자’의 얼굴.
아이의 눈에는 사람 좋게 보이지 않았다.
김지후가 그녀의 웃는 얼굴에 흠칫 놀라며 ‘유은영’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지화자는 마음 같아서는 아이의 손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랬다가 울기라도 하면 시끄러워질 테니까.
그보다.
“김지후.”
“네?”
“정확히 얼마나 기억하고 있어?”
“유은영 씨!”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지후, 깨어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런 건 천천히 물어봐도 되잖아요!”
“그랬다가 기억이 휘발되기라도 하면 곤란한 거 아시잖아요.”
유은영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입을 닫게 한 지화자가 김지후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아이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하성이 형을 아프게 했어요.”
“그리고?”
김지후가 고개를 저었다.
“하성이 형을 아프게 한 것밖에 모르겠어요.”
“다른 건 기억 안 나?”
“네에.”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성이 형 많이 다쳤어요?”
“응.”
“아니!”
지화자와 유은영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이가 놀란 눈을 보이며 지화자와 유은영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지화자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유은영을 쳐다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가하성은.”
“많이 안 다쳤어, 지후야.”
유은영이 그 입을 손으로 막고는 말했다.
“하성이 형 보러 갈래?”
“보러 갈 수 있어요?”
“물론이지.”
유은영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화자가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팀장님, 김지후의 외출은 상부에서 허락이 떨어져야 할 텐데요.”
“그렇겠죠? 그러니까 저 대신 허락 좀 받아와주세요.”
“뭐라고요?”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유은영은 김지후를 안아들며 또박또박 발음했다.
“저 대신 상부에서 허락 좀 받아 달라고요. 저는 이대로 지후 데리고 가하성 씨 면회 좀 다녀올 테니까요.”
“잠시만요! 팀장님!!”
지화자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때.
유은영은 김지후를 데리고 유유히 센터를 빠져나가버렸다.
허허, 지화자가 실소를 터트리며 센터를 빠져나가는 유은영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많이 컸네.”
우리 언니가 저렇게 뻔뻔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어쩌랴?
유은영은 지금 제 상사인데.
‘그리고…….’
지화자가 눈빛을 낮게 가라앉혔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지화자 팀장님께서 구조한 김지후의 일로 연락드렸습니다.”
* * *
“지후야!”
“하성이 형!”
유은영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단숨에 가하성에게 달려갔다.
“하성이 형, 미안해!”
김지후가 가하성을 와락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지후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냥 하성이 형이 엄청 맛있어 보여서, 그래서 그랬는데!”
“괜찮아.”
가하성이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달랬다. 그 모습에 유은영이 입술을 오므렸다.
‘저렇게 웃을 수도 있으셨구나?’
언제나 찌푸리고 있는 표정만 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보기 좋네.’
가하성이 김지후와 정확히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일단 자리를 피해 주기로 했다.
“팀장님.”
그런 유은영의 걸음을 가하성이 붙잡았다.
“네, 가하성 씨.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그게…….”
가하성이 우물쭈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잠시 나가 있을게요.”
“네,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거듭되는 감사 인사에 유은영이 손사레를 치고는 병실을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유은영이 미소를 그렸다.
김지후를 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를 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두 손 놓고 있었다가는 분명 후회했으리라.
유은영이 복도 창가에 기대며 바깥 풍경을 구경할 때였다.
“팀장님.”
“아, 가하성 씨. 지후는요?”
“잠들었어요.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더라고요.”
하긴, 눈을 뜨자마자 낯선 풍경에 낯선 사람까지 마주했으니 많이 놀랐을 거다.
“가하성 씨께 데려오기를 잘한 것 같네요.”
싱긋 웃는 얼굴에 가하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
“감사 인사는 이제 받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가하성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저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많이 하셨잖아요.”
지화자가 무슨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은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알아서 다행이네요.”
정말이지, 지화자가 할법한 대답이었다.
가하성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팀장님께 못 할 말도 많이 했고요.”
“그렇기는 하죠.”
첫 만남 때부터 틱틱거리던 그의 모습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유은영이었다.
크흠, 가하성이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지후는 저희 누나가 남겨두고 간 아이예요.”
“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야기에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놀란 얼굴이 보이지 않는지 가하성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돈을 좀 모으고 난 후에 지후랑 같이 살려고 했어요. 하지만 좋은 곳에서 지후를 입양하려고 한다는 소리에 애를 그냥 보내줬죠.”
“왜…….”
“부모가 있는 게 좋잖아요.”
가하성이 지친 낯으로 웃었다.
“지후는 제가 외삼촌인 거 몰라요. 그냥 고아원에 자주 놀러오는 착한 형이라고 알고 있죠.”
그러니까 비밀 좀 지켜달라면서 가하성이 말했다.
“저한테는 하나 남은 가족이라 본의 아니게 팀장님께 막무가내로 굴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숨기는 거예요?”
“제가 외삼촌인 거요?”
“네. 지후는 가하성 씨가 외삼촌인 걸 알면 엄청 좋아할 거예요.”
“원망하지 않을까요?”
가하성이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렇잖아요. 돈이 없어서 계속 고아원에서 지내게 했어요. 저는 원망했었거든요.”
그의 누나 역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동생을 고아원에서 지내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어요. 누나는 그때 제가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뭐, 나중에 알고난 후에도 돈이 없어서 저를 데리러 오지 못했지만요.”
그래서 많이 원망했어요.
가하성이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이며 망가진 왼 손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제가 누나의 입장이 되니까 알겠더라고요. 가슴을 쥐어뜯는 심정으로 그랬다는 것을.”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지후 앞에 가족이라고 나타날 자격 없어요.”
유은영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가하성 씨, 지후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해요.”
“네, 고아원 원장님께서 다시 잘 돌봐주실 거예요.”
“지후는 이제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네?”
가하성이 놀라 물었다.
“왜요? 왜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데요? 그럼, 우리 지후는 어디로 가라고요!”
“가하성 씨께서 보호자가 되어 주세요.”
“저는……!”
“그러지 않으면 센터가 지후를 직접 전담하게 될 겁니다. 이것저것 좋을대로 실험하면서요.”
“실험이라니요!”
빼액 지르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후는 리아와 라이와 비슷한 상태가 됐거든요. 안 그래도 키메라가 인간으로 다시 되돌아 온 최초의 사태라 센터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데…….”
유은영이 가하성을 향해 슬쩍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가하성 씨가 아이를 포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가하성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