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가하성은 결국 김지후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그가 아이를 포기하게 되면 벌어질 일이야 뻔했으니까.
센터에서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김지후에게 온갖 실험을 자행하려고 할 터.
가하성은 제 조카가 그런 꼴을 당하게 둘 수 없었다.
“제가 외삼촌인 건 때가 되면 말하려고 해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김지후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게 어떠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간섭할 수는 없지.’
그렇기에 유은영은 가하성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그를 말없이 격려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하성이 픽 웃었다.
“지후랑 함께 살려면 새로 집을 구해야겠네요. 지금 제가 살고있는 곳은 너무 좁으니까요.”
“그 전에 회복부터 하세요.”
유은영이 붕대가 감긴 왼손을 턱으로 가리키고는 말했다.
“회복하기 전까지 복귀는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명령이에요.”
엄한 목소리에 가하성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제대로 회복도 않고 복귀했다가 상처가 덧나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저는.”
“가하성 씨.”
유은영이 그의 목소리를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지후는 자기가 가하성 씨를 다치게 했다는 걸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그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간에 유은영이 말하려는 바는 이랬다.
아이에게 괜한 죄책감을 심어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회복에 전념하라고.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가하성이 입을 열었다.
“네, 팀장님. 저, 그런데 제가 퇴원하기 전까지 지후는 어디에서 지내게 되나요?”
“센터에서 지내게 될 거예요.”
“아… 역시 그렇겠죠……?”
가하성이 우물쭈물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저기, 그게.”
가하성이 답지 않게 뜸을 들이며 유은영의 눈치를 살폈다.
“가하성 씨?”
가하성이 부르는 목소리에 크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팀장님께서 지후를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가하성이 ‘지화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 * *
“그래서?”
“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지화자의 서슬 퍼런 눈빛에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맡아 주기로 했죠.”
“언니!!”
“아이, 깜짝이야.”
유은영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화자는 그녀를 향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한테 일 다 맡기고 가버리더니 이런 소식을 들고 와?!”
유은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미리 상의드리지 못한 건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가하성 씨랑 같은 의견이라서요.”
“무슨 의견?”
“지후를 센터에 맡길 수 없다는 의견이요.”
지화자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센터가 무슨 감옥인 줄 알아?”
“지후한테는 그렇게 느껴지겠죠. 아까 애가 있는 방을 보니까 진짜 감옥처럼 보이던걸요?”
지화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일부 동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반대야.”
이건 이거였다.
지화자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집이 뭐 게스트 하우스라도 되는 줄 알아? 리아와 라이만으로도 북적북적한데.”
“그렇게 북적거리지도 않는데.”
“쓰읍.”
유은영이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어쨌든 나는 반대야.”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요.”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속셈이야?”
“네?”
“순순히 물러가다니. 언니답지 않아.”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속셈 같은 거 없어요. 일단, 사무실로 돌아갈까요?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비워둔 것 같으니까요. 다들 걱정하겠어요.”
“걱정은 무슨.”
어쨌거나 지화자는 유은영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됐다.
“누나아!”
김지후를 말이다.
지화자가 제품에 와락 안기는 아이의 모습에 놀란 눈으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얘가 왜 여기 있어?’
지화자는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 시선에 유은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근무 시간에는 저희 팀에서 지후를 봐주기로 했어요.”
“뭐?!”
가 아니라.
“뭐라고요?!”
지화자가 빼액 소리 질렀다.
“말도 없이 이렇게 결정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김지후를 보고 있던 팀원들을 쳐다봤다. ‘지화자’ 좀 말려보라는 듯이 말이다.
“나랑 오빠는 좋은데.”
“맞아요! 저랑 리아는 애들 좋아하니까 상관없어요!”
“저도 상관없습니다.”
리아와 라이를 뒤이어 하태균이 사라 좋게 웃으며 말했다.
‘도움 안 되는 녀석들!’
지화자가 얼굴을 와락 구기고는 유승민을 쳐다봤다. 유승민이 그 시선에 싱긋 웃었다.
“지화자 팀장님이 좋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 망할 시스콤!
아무래도 0팀에 제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누나, 지후 싫어요?”
“응?”
“싫으면 나갈게요.”
지화자를 꼭 끌어안고 있던 김지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지후는 혼자서 잘 있을 수 있어요. 일곱 살이지만 다들 지후보고 어른스럽다고 했어요.”
어른스러운 거랑 혼자서 잘 있을 수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지화자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는 게 보였다. 지화자가 그 모습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누나는 지후 안 싫어.”
“정말요?”
아이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유은영’을 쳐다봤다. 지화자가 아이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럼.”
“우와!”
김지후가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누나가 지후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하하.
지화자가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퇴근이 가까워진 시간.
김지후는 지화자의 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이를 안은 채 불편하게 업무를 보고 있던 지화자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지후 데려다 놓으려고요? 그런 거라면 제가 데려다 놓을게요.”
“아니요.”
지화자가 유은영의 호의를 거절하며 말했다.
“제가 데리고 가려고요.”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화자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요, 아무것도.”
유은영이 고개를 살짝 내젓고는 웃었다. 그 얼굴에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무슨 속셈이야?”
“네?”
“순순히 물러가다니. 언니답지 않아.”
“딱히 속셈 같은 거 없어요. 일단, 사무실로 돌아갈까요?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비워둔 것 같으니까요. 다들 걱정하겠어요.”
속셈 같은 거 없다고 하더니.
지화자가 자신의 품에서 잠들어 있는 김지후를 쳐다봤다. 유은영은 분명 자신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을 거다.
‘망할 언니 같으니라고.’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제 퇴근들 하죠?”
“그럴까요?”
유은영이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그동안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을 테니 오늘은 모두 일찍 들어갑시다. 어때요?”
“나는 좋아!”
“저도요!”
리아와 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유은영과 지화자와 함께 가야 하니 그런 걸 거다.
조기 퇴근을 반긴 건 하태균과 유승민도 마찬가지.
하태균이 짐을 챙기며 유승민에게 물었다.
“같이 하성이 병문안 가지 않겠습니까?”
“가하성 씨요? 저는 아직 그분과 친하지 않은데…….”
“이번 기회로 친해지면 되겠군요! 갑시다! 여기서 병원까지 뛰어서 15분이면 됩니다!”
“네?”
하태균이 유승민을 억지로 잡아끌고 나갔다.
“저, 잠깐만요! 지화자 팀장님이랑 할 이야기가!”
‘지화자’가 유승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자, 그럼 저희도 가죠?”
“네에!”
리아와 라이가 활기차게 대답했다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유은영’의 품에서 곤히 자고 있는 김지후가 깨어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곧 사무실의 불이 꺼졌다.
“아, 잠시만요.”
지화자가 품에 안겨있던 김지후를 유은영에게 넘기며 말했다.
“잠시 사무실에 다녀올게요. 두고 온 게 있어서요. 주차장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네, 알겠어요.”
김지후를 품에 안은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리아와 라이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화자는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똑똑, 굳게 닫힌 문을 가볍게 노크한 후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국장님, 접니다.”
“들어오게.”
허락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지화자가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국장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