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49화 (149/200)

제149화

“그래, 왔군.”

“시간을 많이 내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괜찮네.”

나화진이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지화자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오늘 나화진을 만나게 된 건 지유화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유은영’을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떠보고자 지화자는 나화진과 만나게 됐다.

‘이렇게 자리를 가지게 될 생각은 없었지만.’

유은영의 부탁으로 김지후에 관한 일을 상부의 허락을 구한 것뿐인데 이렇게 됐다.

‘당연히 나화진의 귀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곧장 자신과 만나자고 연락을 해 올 줄이야.

지화자가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집어삼킨 후 물었다.

“지유화 씨는 오지 않았나 보네요. 만나고 싶었는데.”

“유화는 바쁘다네.”

나화진이 ‘유은영’에게 차를 권하면서 입을 열었다.

“복귀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거든.”

“복귀라니요?”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나화진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킬킬거리며 웃었다.

“유화는 곧 센터로 복귀할 거라네. 자네의 빌어먹을 팀장을 몰아내고서.”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는 이유가 뭔가요?”

“당연히 유화가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기 때문이지.”

나화진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가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입을 마음대로 놀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시는 게 아니라요?”

나화진이 싱긋 웃었다.

“잘 아는군. 유화가 왜 그렇게 자네를 마음에 들어하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가.”

그것참 영광이네요.

지화자는 속에서 올라오려는 말을 꿀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유화 씨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죠?”

“자네도 유화가 많이 보고싶나 보구만?”

“당연하죠.”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지유화 씨는 어떻게 보면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걸요.”

더 완즈 인 더 서울.

대한민국 최고 규모의 백화점이 붕괴됐을 당시, 지유화는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각성자였다.

백화점을 붕괴시킨 장본인이면서 말이다.

“직접 만나 감사 인사를 꼭 하고 싶네요.”

“조만간 그렇게 될 거라네. 지금 일어난 일만 처리되면.”

지금 일어난 일?

지화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의문을 표하자 나화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네도 잘 알고 있는 일이네.”

“무슨 일이죠? 짐작이 가는 게 없는데.”

“김지후.”

나화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지화자가 표정을 굳혔다.

“그 이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꼬마와 관련된 일이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겠지?”

아주 잘 알아들었다.

지화자가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박신애였던가요? 최 박사의 조수로 있었던 여자요.”

“그래.”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화자가 이를 악물며 다시금 물었다.

“그 여자한테 몬스터를 조달해 준 사람이 설마…….”

“유화라네.”

쿠웅!

지화자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S급 몬스터인 퀸 하르퓌아가 그런 곳에 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분명 조력자가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유화라니.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가 키메라가 됐던 지후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린 건 알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이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참자.’

지유화가 무슨 꿍꿍이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센터로 복귀할 거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어떤 식으로 저를 몰아내고 돌아온단 말인가?

그러니 참아야 했다.

지화자가 꽉 쥔 손을 부들부들 떨 때, 나화진은 뒤늦게 그녀가 왜 분노하는지 알아차렸다.

“아아, 유화 때문에 김지후인가 뭔가 하는 그 꼬마 녀석이 키메라가 됐다고 생각해서 그러나보군.”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지마는.

그렇지만 지화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화진이 그에 말했다.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이었을 뿐이라네.”

지화자가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웬 헛소리를 들은 건가 싶어 귀를 긁기까지 했다.

대의를 위한 희생? 김지후를 비롯해 결국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버린 두 키메라가?

“하하!”

지화자가 실소를 터트렸다.

갑작스럽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나화진이 미간을 좁혔다.

“아아, 죄송합니다.”

크흠, 헛기침을 하며 잠시 목을 가다듬은 그녀가 싱긋 웃었다.

“지유화 씨께서 큰 뜻을 품고 계신가 보네요.”

“그렇다네.”

나화진이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화는 더는 사람들이 게이트로 고통받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네.”

“그게 무슨 소리죠?”

“자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A-Index는 지금 수명을 다 하고 있지.”

그에 지화자가 말했다.

“그래서 각국의 기관들이 새로운 대체재를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 중인 것으로 아는데요. 노후화 된 A-Index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고요.”

“그렇지. 하지만 게이트는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네. 당장 올초에 게이트가 곳곳에서 터지지 않았던가?”

“그건……!”

지화자가 목소리를 높였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일이 지유화에 의해 비롯된 일이란 것을 말해서는 안 됐다.

지화자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그건 시스템 통제 부서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지 않습니까?”

나화진이 픽 웃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공표되어 있지. 하지만 실상은 아니라네. 올초에 일어났던 일은 모두 A-Index가 게이트를 포착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것.”

개소리 하네.

지화자가 터져 나오려는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그래서 그게 지유화 씨께서 벌인 일이랑 무슨 상관이죠?”

“유화는 더는 게이트가 일어나지 않을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유화의 말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하더군.”

나화진이 싱긋 웃었다.

“걱정 말게. 유화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으니.”

지화자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지유화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웃기는 소리 말라지.

지화자가 주먹 쥔 손에 힘을 줬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 들었지만 그녀는 힘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분노를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유화, 그녀에게 불가능한 일이 없는 이유. 그건 바로 그녀를 막는 모든 걸 죽여버리고 지워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유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일을 모두 실천시킨 거였다.

‘빌어먹을.’

울컥 튀어나오려는 감정을 애써 다스리며 지화자가 말했다.

“지유화 씨가 더더욱 보고 싶네요. 게이트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라니.”

“그래. 조만간 유화한테서 직접 연락이 갈 거라네.”

지유화와 만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만 수차례. 드디어 그녀가 ‘유은영’에게 직접 연락을 해줄 거란다.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보겠습니다.”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뚜벅뚜벅.

지하 주차장을 울리는 구둣발 소리에 유은영이 고개를 들었다.

“지화자 씨?”

“언니.”

지화자가 지친 낯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밖에 나와 있어?”

“리아 씨랑 라이 씨가 지후랑 너무 즐겁게 놀고 있어서요.”

“지후 깼어?”

“네.”

지화자가 픽 웃었다.

“리아랑 라이 때문이지?”

“어떻게 알았어요?”

“안 봐도 뻔하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차 밖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즐겁게 놀고 있나 보네.”

“동생이 생긴 기분이라 즐거운가봐요.”

“리아랑 라이가?”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늦으셨네요?”

“나오는 길에 국장님을 만났거든. 이야기 좀 나눈다고 늦었어.”

“으윽.”

유은영이 질린 얼굴을 보였다.

“퇴근하는 사람 붙잡고 귀찮게 구는 거 아닌데!”

“어쩌겠어? 국장한테 붙잡힌 내 잘못이지.”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며 차에 올라탔다.

“누나!”

“누나랑 형이랑 잘 있었어?”

“네!”

김지후가 밝게 대답했다.

“누나 집에 가면 하성이 형아 있어요?”

“아니, 없어.”

“왜요?”

“가하성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중이니까. 퇴원하고 너 데리러 올 거야.”

“정말요?”

“그래.”

지화자가 김지후에게 손수 안전벨트를 메어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집에서 밥 잘 먹고 말 잘 듣고 그래야 해. 알겠지?”

“유은영아, 지화자 집이잖아.”

“맞아요! 은영 누님은 집 없잖아요!”

저 자식들이.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리아와 라이를 쳐다봤다.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그 시선을 무시했다.

“자자, 어서 출발하기나 하죠?”

유은영의 재촉에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차를 몰았다.

그렇게 매끄럽게 도로를 내달릴 때.

“유은영 씨, 나화진 국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죠?”

유은영이 갑작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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