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50화 (150/200)

제150화

지화자가 뒷좌석을 흘긋거렸다.

리아와 라이는 김지후와 노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든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 언니 분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눴어요.”

“…지유화 씨에 대해요?”

“네.”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우리 국장님께서 지유화 씨의 오랜 팬인 것 같더군요.”

유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지유화의 팬이라면 지화자에게 있어서는 적이나 다름 없었다.

지유화.

그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지화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유은영이 입매를 비틀었다.

“국장님께서 제 언니를 좋아하시는 줄 몰랐네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죠.”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네, 당연히 괜찮죠. 괜찮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요?”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은 할 말이 많은 얼굴을 보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께서 그러시다면 그런 거겠죠.”

나화진과의 일에 대해 더는 물어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고마워요, 팀장님.”

“그런 인사는 됐네요.”

유은영이 불퉁하게 말하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마치 시간 같았다.

지화자와 몸이 바뀐지 고작 몇 달째. 그러나 그 시간이 1년은 훌쩍 지난 느낌이었다.

‘나도 많이 바뀌었고.’

유은영이 지화자를 흘긋거렸다.

앞만 보고 묵묵히 운전을 하는 모습이 마치 석고상 같았다.

‘지화자 씨는 그대로인 것 같단 말이지.’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모두 안고 가려는 점에서 그랬다.

‘나한테 좀 기대주면 좋을 텐데.’

유은영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 * *

김지후는 당분간 리아와 라이와 함께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좁지 않을까요?”

“글쎄요. 방이 워낙 커서 셋이 지내도 불편함은 딱히 없을 것 같은데요?”

유은영이 지화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와 라이의 방은 안 그래도 넓은 지화자의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이었다.

셋이서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은 사놓는게 좋을 것 같네요.”

“필요한 물건이요?”

“옷이나 장난감같은 거요.”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옷은 리아나 라이 옷 중에 남는 거 입히면 되고, 장난감은 필요할까요? 어차피 저희 출근할 때마다 데리고 다녀야할텐데.”

유은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죠?”

“농담 아닌데요.”

정말 진담으로 말하는 소리인 듯했다. 유은영이 기가 차다는 얼굴을 보였다.

“왜 그러세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서요.”

“갑자기 웬 칭찬?”

“칭찬 아니거든요.”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앞머리를 쓸어올리고는 말했다.

“리아와 라이의 옷이 지후한테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센터가 애한테 얼마나 심심한 곳인데!”

무조건 장난감 하나는 쥐어줘야한다면서 유은영이 말했다.

“마침 내일 주말이니 같이 쇼핑하러 가요.”

“싫어요.”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리아랑 라이, 저 녀석들 데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지후까지 세 명을 데리고 다니자고요? 차라리 팀장님 혼자 다녀오세요.”

“그래도 돼요?”

유은영이 두 눈을 빛냈다. 그 시선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지화자는 백기를 들었다.

“알겠어요. 내일 같이 나가요.”

유은영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지화자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일 백화점 문 열자마자 쇼핑하러 갈 거예요. 일찍 자세요.”

“네엡!”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지화자는 그 밝은 목소리에 짧게 혀를 차고는 방으로 향했다.

달칵.

방문을 닫자마자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쇼핑이라니.”

그런 걸 즐길 정신따위 없는데 성가시게 됐다.

“언니는 왜 저렇게 오지랖이 넓은 거야?”

지화자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가 픽 웃었다.

유은영은 처음부터 그랬다.

갑작스럽게 터진 게이트에 휘말렸던 날, 그녀는 지화자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우물거렸었다.

“저기요.”

“……?”

“이거 드실래요?”

그렇게 인연이 될 줄 몰랐다.

원래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폐급 힐러.

‘이제는 C급 힐러지.’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지화자가 침대에 풀썩 몸을 눕힌 후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유은영은 자신이 부여받은 성언의 뜻을 이제 알게 됐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가 자신의 힘이 성장하는 걸 내버려둘까?

‘내버려두지 않겠지.’

C급에서 B급, B급에서 A급으로 성장할수록 유은영은 저를 원망할테다.

‘남은 건 언니 스스로 성장하는 것뿐인데.’

그런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야 가능한 방법인데, 그러기 위해선 둘 중 한 명이 치명상을 입어야만 했다.

“아, 머리 아파.”

지화자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유은영의 성장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 지금 생각해야하는 건 지유화였다.

‘조만간 나를 만나러 올 거라고 했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당장 그녀는 남의 몸을 차지해 움직일 수 있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언니한테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유은영에게 말했다가는 그녀는 호들갑을 떨며 자신을 걱정할 게 뻔했다.

지화자는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유화와의 일을 제 선에서 정리하고 싶었다.

가족 일에 제3자가 끼어드는 건 달갑지 않았으니. 아무리 유은영이 제 몸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그랬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지유화가 이 몸을 차지해서 언니한테 접근하는 건데.’

그런 일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지유화가 어떻게 타인의 몸을 뺏는지 알면 좋을 텐데.”

그 순간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번호에 전화를 끊을까 했지만 지화자는 그러지 않았다.

“여보세요?”

―유은영 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한국 종합 병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은영 씨!”

벌컥 문이 열리며 유은영이 방 안에 들어왔다. 지화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유은영 역시 지화자와 똑같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한테 전화라도 온 모양새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통화 중에 급히 지화자의 방에 찾아온 거였다.

유은영이 기쁜 기색을 갖추지 않고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조금 전에 깨어나셨대요!”

지화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보세요? 유은영 씨?

“곧 가겠습니다.”

지화자가 전화를 끊은 후 몸을 일으켰다.

“바로 가실거죠?”

“가야죠.”

지화자가 코트를 챙겨 입고는 입을 열었다.

“리아, 라이. 지후랑 같이 집 지키고 있어.”

“왜? 무슨 일인데?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 생겼어?”

“맞아요. 화자 누님이 할아버지 이야기하던데 돌아가시기라도 한 거예요?”

리아와 라이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지화자와 유은영을 쳐다봤다.

김지후는 두 눈을 데굴 굴리기만 했다. 아이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유은영이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깨어나셨다고 해서 잠시 보고 오려고 그러는 거니 너무 걱정마세요.”

“할아버지, 깨어났어?”

“정말요?!”

리아와 라이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네, 괜찮은지 확인 좀 하고 올 테니까 지후 좀 부탁할게요.”

“응!”

“네!”

리아와 라이가 걱정말고 다녀오라면서 유은영과 지화자를 배웅해줬다.

두 사람은 그렇게 퇴근하자마자 한국 종합 병원으로 달려가게 됐다.

* * *

유은영이 지화자와 함께 우종문의 병실로 향하며 물었다.

“저라면 몰라도 지화자 씨는 왜 부른 걸까요?”

“힐러라서 부른 거 아닐까?”

“그래봤자 C급인데요?”

“폐급이 아닌 게 어디야.”

“그것도 그렇네요.”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우종문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유은영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종문 부장님, 무사히 깨어나셨겠죠?”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옥상에서 추락하며 머리를 부딪쳤던 양반이야.”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제발 제정신이셨으면 하네요.”

“그러기를 빌자.”

우종문이라면 지유화가 어떻게 타인의 몸을 차지하는지 알 터.

그에 대해 들으려면 그가 제정신이어야만 했다.

유은영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부장님, 지화자입니다.”

“저도 왔습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뒤를 따라 병실 안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창 밖을 구경 중인 우종문의 모습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부장님?”

유은영이 조심스럽게 부르자 그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아…….”

우종문이 두 눈을 끔뻑이다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

유은영이 안도하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우종문이 ‘유은영’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