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유은영이 멍하니 서있다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우종문 부장님, 제 옆에 있는 사람은.”
“잠깐만요, 팀장님.”
지화자가 유은영의 입을 막고는 나섰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저는 유은영이라고 합니다.”
“유은영?”
“네, 부장님께서 병원에 실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조치를 취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네가 말인가?”
우종문이 놀라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지금 몇 년도인지 아십니까?”
“20X□년이지 않나?”
20X□년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었다. 즉, 우종문은 지난 6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화자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네.’
우종문에게 지유화에 의해 몸을 빼앗겼을 당시의 기억을 들어보려 했건만.
‘저런 상태에서는 물어봤자지.’
지화자가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집어삼킨 후 말했다.
“팀장님, 저는 의사를 만나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네? 아, 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는 우종문을 향해 고개를 꾸벅인 후 병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기 무섭게 유은영이 우종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부장님. 정말 유은영 씨에 대해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세요?”
“그렇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이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은 이마를 짚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유은영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곤 말했다.
“유은영 씨께서는 저희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입니다.”
“전담 어시스트 힐러?”
우종문이 미간을 좁혔다.
“지화자 팀장, 자네는 힐러따위 팀에 들일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말이죠.”
유은영이 삐질거리며 우종문이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남김없이 말해줬다.
“그런…….”
우종문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의사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충격이라도 먹을까 싶어 이야기하지 않았나 봅니다. 깨어나신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에게 자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군.”
“하하.”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화자가 의사와 함께 돌아온 건 그때였다.
“우종문 씨, 몸은 좀 어떠십니까?”
“딱히 이상이 느껴진 곳은 없습니다. 그보다 의사 선생, 내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이 친구한테서 들었는데…….”
우종문이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은영은 눈치껏 지화자와 함께 자리를 피해줬다.
병실을 나오기 무섭게 지화자가 물었다.
“부장한테 이야기했어? 지금이 20X□년도가 아니라는 걸?”
“네, 어차피 곧 알게 되실텐데 미리 말해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건 그렇지.”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이 병실 안쪽을 흘긋거리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의사 선생님이 뭐래요?”
“일시적인 현상이래. 곧 기억이 돌아올 거라고는 하는데.”
지화자가 벅벅 머리를 긁적이고는 웅얼거렸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유은영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화자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말문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우종문 부장, 금방 기억을 되찾을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종문 부장님만 일어나면 모두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해결이라니?”
“우종문 부장님께서 옥상에서 추락한 걸로 지화자 씨가 되도않는 의심을 샀었잖아요.”
“내가 아니라 언니가 산거지. 이 몸은 언니의 몸인걸.”
“어쨌든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이제 의심을 모두 털어버리나 했더니 우종문 부장님께서 기억을 잃어버리실 줄이야.”
“걱정하지 말래도?”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오히려 부장이 기억을 잃은 게 다행일 수도 있잖아.”
“다행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말에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우종문 부장은 절대로 스스로 뛰어내린 게 아니야.”
“그건 알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갑자기…….”
꺼내는 거냐고 물으려던 유은영이 입을 닫았다.
우종문은 혼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그 말은 즉, 그를 옥상에서 밀친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
“우종문 부장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군요.”
“멀쩡하게 깨어났다면 말이지.”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곧 다른 팀장들이 도착할 거야. 언니가 알아서 잘 설명해줘.”
“지화자 씨는 어디 가고요?”
“병원에서 나를 부른 이유가 따로 있더라고. 잠시 볼 일 좀 보고 올게.”
그러면서 지화자가 말했다.
“너무 늦는 것 같으면 먼저 택시타고 돌아가도록 해.”
“네? 네, 알겠어요.”
유은영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화자의 말대로 각 팀장들이 속속 도착했다.
유은영은 그들에게 상황을 알려주며 우종문이 너무 놀라지않게끔 주의를 시켰다.
그때까지도 지화자는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소식이 없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으니.
“아니, 그런데 국장님은 뭐하고 계신 거야? 우종문 부장님이 깨어나셨으면 가장 먼저 달려오셔야하는 거 아니야?”
“영웅, 진정해. 국장님은 지금 바쁘잖아.”
“호걸이 말이 맞아. 국장님께선 지금 키메라 일로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계신다고?”
바로, 나화진 국장이었다.
영웅호걸과 나혜선의 대화로 그의 부재를 알아차린 유은영이 두 눈을 낮게 가라앉혔다.
“곧 다른 팀장들이 도착할 거야. 언니가 알아서 잘 설명해줘.”
“지화자 씨는 어디 가고요?”
“병원에서 나를 부른 이유가 따로 있더라고. 잠시 볼 일 좀 보고 올게.”
한국 종합 병원 측에서 ‘유은영’을 부른 이유가 뭘까?
‘우종문 부장님의 기억 때문은 아니야.’
그런 거라면 ‘유은영’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힐러를 불렀어야했다.
그러니 그녀를 부른 건.
‘한국 종합 병원 측의 관계자가 아니야.’
유은영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마자 걸음을 돌렸다.
“지화자 팀장, 어디가?”
나혜선이 그렇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화자를 찾으러 가야했기에.
* * *
지화자는 한국 종합 병원의 옥상에 가꿔진 공중 정원을 걷고있는 중이었다.
형형색색의 꽃이 가득 피워진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암만 밤이 깊어진 시간이라고 해도 사람 한 두명은 있을법한데 말이다.
하지만 지화자는 그런 것따위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계속해서 걸었다.
공중 정원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말이다. 바로 그곳에 ‘유은영’을 부른 사람이 있었다.
지화자가 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곳에 멈춰 서서는 입을 열었다.
“나화진 국장님.”
“오, 왔는가?”
한국 종합 병원 측의 관계자를 이용해 ‘유은영’을 부른 사람.
그는 바로 나화진이었다.
우종문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은 진작 그에게 전해졌었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한국 종합 병원에 도착한 나화진은 우종문의 기억에 이상이 있음을 알고 쾌재를 불렀었다.
기억이 온전했다면 죽였을 거다.
지유화.
그녀를 위해서 말이다.
나화진이 ‘유은영’을 반기며 싱긋 웃었다.
“잘 찾아왔군.”
“조금 헤맸습니다.”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깨어나신 건 아시는지요?”
“당연히 알지.”
나화진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우종문 부장이 기억을 잃은 것 역시 잘 알고 있다네.”
“그렇군요.”
지화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꾸하고는 물었다.
“그래서 저를 부른 이유가 뭔가요? 참고로 제 힘으로 우종문 부장님의 기억을 되찾아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겠지.”
나화진은 그런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유은영’을 이용해 우종문의 기억을 되찾아줄 생각따위 그는 하지 않았다.
우종문이 기억을 되찾았다가는 지유화가 곤란해질텐데 그럴 수야 없었다.
나화진이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유은영, 자네에게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서 불렀네.”
지화자가 표정을 굳혔다.
나화진이 말한 ‘소개해줄 사람’이라는 게 누구인지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나화진이 살짝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재잘거렸다.
“원래라면 직접 자네를 찾아갔겠지만 우종문 부장이 갑자기 의식을 되찾으면서 상황이 좀 곤란해졌거든.”
그렇게 그가 말을 끝마쳤을 때.
“국장님, 말은 바로 해야죠. 상황이 곤란해진 게 아니라 귀찮아진 거예요.”
어둠이 짙게 깔린 곳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화자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쿵쿵!
지화자가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를 무시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다.
곧,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유은영 씨?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정말 보고 싶었답니다.”
지유화가.
“제 동생이 곁을 내주는 사람은 유은영 씨가 처음이라 너무 신기했거든요.”
웃는 낯으로 ‘유은영’에게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