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한국 종합 병원 근처에서 남녀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고마워요, 국장님.”
“아니다, 유화야.”
나화진이 손사레를 치고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정말 괜찮겠느냐? 나는 걱정되는구나.”
“무엇이요?”
“유은영 말이다.”
나화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게 하등 쓸모 없은 폐급 힐러이지 않느냐?”
“국장님도, 참.”
지유화가 못말린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말은 바로 하셔야죠. 유은영 씨는 폐급 힐러가 아닌, C급 힐러에요.”
또한, 성장 가능성이 많은 각성자이기도 했다.
“F급에서 E급, E급에서 D급. 그리고 이제 C급.”
지유화의 미소가 짙어졌다.
“국장님께서는 이 세상에 힐러란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아무렴, 그렇지.”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A급 힐러만 해도 우리 센터에 있는 구순철 부장과 이혜나 팀장이 제일이니.”
그리고 국내에 S급 힐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S급 힐러는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도 안 될 정도로 수가 적었다.
“그러니까 유은영 씨가 특별하다는 거예요.”
“C급이 한계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야 실컷 이용만 하고 벌려야죠.”
지유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우리 동생이 특별하게 여기고 있으니까요.”
지유화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 동생은 좀처럼 곁에 사람을 두지 않거든요. 국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렇지.”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화, 너와 자매 지간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그 녀석은 언제나 날이 서있으니.”
쯧쯧, 짧게 혀를 찬 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는 걱정되는구나.”
“무엇이요?”
“유은영은 네 말대로 지화자와 사이가 각별해. 그런 녀석이 유화 너를 도와줄까?”
“네.”
지유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은영 씨는 도와줄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고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도와주도록 하마.”
“감사해요, 국장님. 정말, 돌아오자마자 국장님을 찾아가기를 잘한 것 같아요.”
나화진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나야말로 돌아와줘서 고맙다, 유화야.”
진심 어린 목소리에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동생은 저런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을 거다.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도.
죽기 전과 똑같이 모두의 외면을 받으며 지냈을 거다.
그래, 그랬어야 한다.
지화자.
사랑해 마지 않는 제 하나뿐인 동생의 존재 의의는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뿐이니까.
“자, 그럼 갈까요? 개벽을 위한 준비를 다시 시작해야죠.”
“그러자꾸나.”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유화는 씨익 웃으며 밤하늘을 쳐다봤다.
다른 곳보다 빛이 덜해서 그런지, 별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것이 잘만 눈에 들어왔다.
‘좋아.’
지유화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모든 건 내 뜻대로.’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유은영이 필요했다.
“제 손과 발이 되어주세요.”
그 부탁에 그녀는 뭐라고 대답을 했더라?
“네, 지유화 씨.”
그래, 그렇게 대답했었다.
당황할만도 했는데 영광스럽다는 듯 기분 좋다는 듯 아주 벅찬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하지만 지유화는 믿지 않았다.
유은영이 그리 답하기전, 빠르게 표정을 굳히는 걸 봤었기에.
그러니 지유화는 바랐다.
유은영이 나화진과 똑같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난 충성심을 제게 보일 것을.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국장님.”
“음?”
“자리 좀 만들어주실래요?”
“유은영과는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느냐?”
“유은영 씨 말고.”
지유화가 걸음을 옮기며 미소를 그렸다.
“유승민 씨와 자리 좀 만들어 주세요.”
***
“에취!”
0팀의 사무실을 울리는 기침 소리에 유은영이 물었다.
“유승민 씨, 감기 걸리셨어요?”
“네? 네, 그런가 봐요.”
유승민이 코를 훌쩍이고는 배시시 웃었다.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아니요.”
유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이라도 다녀오세요. 괜히 팀원들한테 감기 옮기지 말고.”
“네…….”
유승민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지화자, 너무해.”
“맞아, 너무해요.”
언제 그와 친해졌는지, 리아와 라이가 쫑알거렸다.
“유은영도 너무해.”
“맞아, 너무해요!”
“나는 왜?”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힐러니까 승민이 오빠 치료해주면 되잖아!”
“그런데 안 해주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해!”
참새가 지저귀듯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힐도 계속 받으면 내성 생기는 거 몰라? 당장 죽기 전이 아니면 병원가서 치료받는 게 나아.”
“그래도!”
리아가 빽 소리 질렀다.
“나랑 오빠가 승민이 오빠한테 감기 옮으면 어떻게 해?”
“옮는 거지.”
“지후도 옮으면?”
“그건…….”
좀 곤란하다.
김지후가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입원 중인 가하성이 난리를 칠 테고, 그렇게 되면.
“아오, 진짜.”
지화자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곧장 유승민의 앞에 선 그녀가 그를 향해 힐을 시전했다.
“어, 음, 은영아?”
“일 중에는 그렇지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을 텐데요?”
“아, 넵.”
유승민이 뻘줌한 얼굴로 두 눈을 데굴 굴렀다.
그 와중에 하태균이 말했다.
“승민 씨는 좋으시겠습니다.”
“뭐가 말이죠?”
“동생 분이 힐러셔서 말입니다.”
“아, 하하.”
유승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좋기는 하죠.”
저 몸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가 정말 제 동생이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에요.
유승민이 튀어나오려던 말을 꿀꺽 집어 삼키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인사는 됐고, 점심 시간에 병원이나 가세요.”
“네엡.”
유승민이 싱글벙글 웃었다.
지화자의 걱정이 생각보다 기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동생의 얼굴이라 그런 걸 거다.
유승민은 그리 생각하며 업무에 집중했다.
그렇게 점심 시간이 됐다.
“팀장님께서는 오늘도 병원에 가실 겁니까?”
“네, 그래야죠.”
‘지화자’가 겉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리아랑 라이 좀 부탁할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하태균이 자신만 믿어 달라며 활짝 웃었다.
“나도 따라가고 싶은데!”
“저도요!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나는 하성이 오빠!”
리아랑 라이가 손을 번쩍 들고는 졸랐다.
“안 돼.”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유은영’이었다.
“우종문 팀장님께서 아직 많이 아프다고 했잖아. 가하성 씨도 그렇고. 사람 많이 몰려가면 다들 피곤해 할 거야.”
“히잉.”
“우는 소리 내도 안 돼, 리아.”
“쳇.”
리아가 불맨 소리를 냈다.
“지후가 하성이 오빠 많이 보고 싶어 하던데.”
“네가 잘 좀 말해줘.”
김지후는 센터 내 연구실에 있는 중이었다.
‘지화자’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각종 실험이 행해졌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비호 덕분에 아이는 지금 보호만 받고있는 중이었다.
괜히 아이를 건드렸다가는 센터의 미친 개가 연구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게 뻔하니 말이다.
“자자, 리아 씨. 우종문 국장님이랑 가하성 씨한테 리아 씨 안부 꼭 전해드릴 텐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알겠죠?”
“우웅.”
리아가 불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유은영은 팀원들을 향해 맛있는 식사 하라면서 지화자를 끌었다.
“아참!”
그러다 말고 유은영이 사무실 안쪽에 고개를 빼곰 내밀었다.
“유승민 씨는 병원 꼭 다녀오셔야 해요! 알겠죠?”
“네, 팀장님.”
유승민이 활짝 웃었다.
‘유은영’이 ‘점심 시간에 병원이나 가세요’라고 말했던 것보다 더 환하게 말이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한국 종합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정말 많이 오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에요.”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인 후 우종문이 입원해 있는 곳을 찾았다. 가하성에게는 우종문의 병문안을 끝내고 찾아갈 생각이었다.
“부장님, 저희 왔습니다.”
우종문의 병실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과 눈인사를 나눈 유은영이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아, 왔나?”
곧장 인사가 날아들어왔다.
정신을 차린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우종문은 빠르게 회복했다.
센터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가 웃는 낯으로 지화자와 유은영을 반겼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주지 않겠나? 내 이 친구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네.”
“네, 부장님.”
그렇다는데 계속 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종문과 대화를 나눴던 직원이 병실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전했다.
“부장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지화자와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기껏 찾아와줬는데 밖에서 기다리게 만들었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부장님.”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보다시피 무척 괜찮네. 지금 당장 퇴원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이게 다 유은영, 자네 덕분인 것 같군.”
“제가 뭘 했다고요.”
“뭘 했기는.”
우종문이 사람 좋게 웃었다.
“이렇게 나를 찾아올 때마다 힐을 시전해주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도 저는 고작 C급일 뿐입니다. 부장님께 별 효과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도 고맙네.”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지 팀장.”
“네, 부장님.”
“밖에 사람이 있나 좀 봐주겠나? 내가 조금 전 그 친구에게 앞에 있던 경호원들과 커피나 한 잔 사먹으라고 돈을 좀 쥐어줬거든.”
“아, 잠시만요.”
유은영이 병실 밖을 살폈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변에도?”
“네, 부장님.”
그 대답에 우종문이 안심하고는 말했다.
“그럼, 지금이 적기인 것 같군.”
수상쩍은 말에 유은영이 지화자와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유은영, 자네. 언제 C급 힐러가 됐지? 분명 E급, 아니. D급 힐러이지 않았나?
우종문이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