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55화 (155/200)

제155화

쥐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유은영과 지화자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지화자 씨, 지금 우종문 부장님께서 뭘 물으신 거죠?’

‘내가 언제 C급 힐러가 됐냐고 물었는데.’

‘그걸 왜 물으신 걸까요?’

‘이상해서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왜요?’

‘왜기는!’

지화자가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으려는 찰나.

“유은영?”

“아, 넵.”

우종문이 그녀를 불렀다.

“내 질문이 어려웠는가?”

“아닙니다.”

지화자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다만, 당황스러워서요.”

“뭐가 말인가?”

“그야,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지난 5년 간의 기억을 모두 잃지 않으셨습니까?”

“않았네.”

“네?”

지화자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에 우종문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내 기억은 멀쩡하다는 소리지.”

“아니, 그런.”

지화자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종문을 쳐다봤다.

우종문이 이해한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을 비롯해 모두를 속이게 돼서 미안하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는 걸 먼저 말해두지.”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화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5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알려진 우종문이 사실은 멀쩡하다니!

“우종문 부장님, 혹시 지유화 씨 때문에 그런 겁니까?”

유은영이 표정을 굳히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우종문이 순순히 인정했다.

“지유화가 도대체 누구의 몸에 빙의되어 있는지 알 수가 있었어야지, 원.”

그래서 기억을 잃은 척, 사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우종문이 말했다.

“사실, 유화가 자네들한테 빙의되어 있지 않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네.”

‘지화자’는 ‘유은영’의 몸에 지유화가 빙의했더라면 진작 알아차렸을 거다.

더욱이 지유화는 ‘지화자’를 무척 끔찍하게 여겼다.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로 말이다.

“그런데도 저와 팀장님까지 속인 겁니까?”

지화자가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 뾰족한 질문에 우종문이 미안하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지유화가 가진 힘을 주의하느라 그랬다네.”

그러면서 우종문이 말을 이었다.

“남의 몸에 빙의하는 것 말고, 귀신이라도 된 것처럼 이 곳을 떠돌아 다닐 수도 있지 않는가?”

일 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화자도 유은영도 지유화가 가진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두 사람한테는 내 다시 한 번 더 사과하지.”

“아닙니다, 부장님.”

지화자가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부장님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그보다 내 질문에 답 좀 해주지 그러나?”

우종문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내가 알기로 자네는 분명 D급 힐러였네. 맞는가?”

“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자네를 C급 힐러라고 부르더군. 이 역시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지화자가 막힘없이 대답하고는 유은영을 쳐다봤다.

마치, 그녀의 비밀을 우종문에게 일러줘도 괜찮겠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화자가 ‘유은영’의 비밀을 밝혔다.

“부장님, 저는 남을 해칠수록 힘이 강해집니다.”

“그게 무슨.”

“쉽게 말해, 남에게 상처를 입힐수록 등급이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그런……!”

우종문이 경악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당장 부장님의 앞에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지화자가 저를 가리키며 말했다.

“참고로 저는 언제든지 B급 힐러가 될 수 있습니다.”

B급 힐러 뿐이랴?

“마음만 먹으면 A급, S급 힐러도 될 수 있습니다.”

유은영이 가진 힘이 그랬다.

우종문은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각성자 중 A-Index의 오류로 등급이 잘못 측정돼서 수정되는 경우야 몇 번 보기는 했다.

하지만 눈 앞의 ‘유은영’과 같은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화자 팀장님이 유일합니다.”

“그렇군.”

우종문이 턱을 쓸어내렸다.

“당분간, 아니. 될 수 있으면 계속 비밀로 하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안타깝게도 제 힘에 눈독을 들인 사람이 있지만요.”

“눈독을 들였다니? 도대체 누가?”

“지유화 씨가요.”

‘유은영’의 단조로운 대답에 우종문이 침음을 흘렸다.

그 역시 지유화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몸이 빼앗겨 이 사달이 나고 말았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떤 조건으로 등급이 오르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으니까요.”

“꼭 실제로 만나본 것처럼 말하는군.”

“실제로 만났으니까요.”

“지금 뭐라고 했나!”

우종문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유화를 만났다고?!”

“네, 부장님.”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부장님께서 처음 정신을 차린 날, 지유화를 만났습니다. 병원의 옥상 정원에서요.”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우종문의 낯빛은 희게 질려갔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말이다.

“보다시피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지화자 팀장님이 저를 격리조치 시켰을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마는…….”

우종문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보면 볼수록 유은영, 자네는 지 팀장과 꼭 닮았군.”

“네? 제가요?”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며 말을 고쳤다.

“뭐, 그래서 제가 유은영 씨를 곁에 두고 있죠.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당연히 유은영은 그 시선을 무시했다.

“어쨌든 우종문 부장님, 부장님의 기억이 멀쩡하다는 사실은 다른 분들께 비밀로 하겠습니다.”

“부디 그래주게.”

우종문이 ‘지화자’의 손을 덥썩 잡고는 말했다.

“내 자네들이야 멀쩡하다는 걸 확신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니거든.”

지유화가 언제 어디에서 누군가의 몸을 빼앗아 나타날지 모른다.

유은영도 지화자도 우종문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우종문은 안심된다는 듯 웃었다.

* * *

유은영과 지화자는 센터의 점심 시간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왔다.

우종문의 병문안을 끝낸 후, 곧장 가하성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가하성, 그 자식은 왜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지후 때문에 그런 거겠죠.”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지화자를 달랬다.

“얼마나 걱정되겠어요? 하나뿐인 조카가 낯선 사람들이랑 함께 지내고 있는데.”

“그렇게 걱정되면 빨리 낫기나 할 것을.”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고는 삼각 김밥을 입에 물었다.

“그보다 우종문, 그 인간. 정말 능글맞지 않아?”

“네? 왜요?”

“왜기는.”

지화자가 입에 물고 있던 삼각 김밥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우리를 비롯해서 모든 팀장들을 속였잖아. 기억을 잃었다고.”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유은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오히려 우종문 부장님이 정말 대단하던데요?”

“대단하기는 하지.”

지유화가 한 번 더 접근할 것을 대비해 모두를 속였따.

가히 대단하다고 말할 말 했다.

“그보다 앞으로가 문제네요.”

우종문의 말대로 언제 어디에서 지유화가 남의 몸을 빼앗아 나타날지 모른다.

유은영의 걱정에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지유화를 막아 보자며?”

지화자가 무심하게 내뱉은 말에 유은영이 입술을 씰룩였다.

“네, 그렇죠. 지유화, 그 빌어먹을 인간은 어떻게든 저나 지화자 씨 앞에 나타날 테니까요.”

그 빌어먹을 인간이라니.

지화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왜 웃어요?”

“언니가 누군가한테 그렇게 강한 적의를 보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

“딱히 처음도 아닌데요?”

“아니, 처음이야.”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지유화, 그 자식도 참 대단하다니까? 언니 입에서 ‘빌어먹을’이란 소리가 나오게 하다니.”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제가 욕한 거 비밀이에요.”

“누구한테? 지유화한테?”

“그 인간은 관심 없고요!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이라고요!”

“뭘, 비밀까지야. 나 원래 욕 잘해.”

“그러시겠죠!”

두 사람이 티격태격 다툴 때, 점심을 먹으러 나간 다른 팀원들이 돌아왔다.

“지화자야! 유은영아!”

“누님들, 돌아오셨네요?”

“늦으신 줄 알았는데, 두 분 모두 점심은 드셨습니까?”

차례로 리아와 라이, 하태균이 말을 건넸다.

유은영이 자신을 향해 달려온 리아를 번쩍 안아 들고는 하태균의 말에 대답했다.

“네, 먹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삼각 김밥만 주워 먹었지만요.”

“주워 먹었다니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타박하고는 물었다.

“유승민 씨는요? 병원 갔나요?”

“아니요. 국장님께서 부르셔서 잠시 올라갔습니다.”

“승민이 오빠,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니더라고!”

리아가 하태균의 말을 뒤이어 재잘거렸다.

“맛난 거 먹으면 나을 것 같다고 해서 태균이 오빠가 승민이 오빠한테 고기 사줬어!”

망할 오랑우탄이!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죄송해요, 하태균 씨. 제가 괜히 유승민 씨한테 병원에 가라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해서…….”

“아닙니다. 안 그래도 유승민 씨께는 언제 한 번 제대로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하태균이 사람 좋게 웃었다.

“그보다 나화진 국장님께서 왜 유승민 씨를 부르신 거죠?”

지화자의 물음에 리아와 라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맞아요, 저희는 몰라요.”

“하태균 씨도요?”

“네? 네, 뭐. 그렇습니다.”

하태균이 머리를 긁적였다.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유승민 씨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더라고요. 국장님의 연락이었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유승민 씨께서 나화진 국장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나화진.

어느 순간부터 그 이름만 들으면 일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별 일 없어야할텐데.’

나화진은 유승민이 ‘유은영’의 오빠라는 걸 안다.

그리고 지유화가 ‘유은영’을 제 편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지화자가 닫힌 문을 쳐다보며 그리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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