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24. 현실과 이상
2월 23일.
현재 시각 오후 11시 20분.
“하태균 씨, 지화자 팀장은 아직 소식 없어?”
신영웅이 짜증스럽게 물었다.
지화자뿐만이 아니었다.
유은영도 리아와 라이도 소식이 없었다.
빌어먹을 0팀이라고 욕하기에는 바로 앞에 하태균이 있었다.
신영웅이 짜증스럽게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구시렁거렸다.
“오늘 게이트 공략인 거 잊은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겁니다.”
당장, 퇴근 전에 게이트 공략 잘 끝내고 내일 쉬자면서 덕담까지 나누고 헤어졌었던 그녀다.
하태균이 신영웅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생기셨나 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
신영웅이 얼굴을 찌푸렸다.
“애초에 일이 생겼으면 연락을 줘야지! 지 팀장 믿고 인원 많이 안 꾸렸는데 어쩔 거야?”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하태균이 튀어나오려는 말을 꿀꺽 삼키며 우물쭈물거렸다.
“영웅, 태균 씨한테 괜히 화풀이하지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신영웅이 툴툴거렸다.
“나는 그냥 답답해서 이러는 것 뿐이라고!”
“그게 화풀이야.”
신호걸이 신영웅을 달랬다.
자신을 아이처럼 대하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신영웅이 잔뜩 화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지화자 팀장은? 연락 돼? 뭐래?”
“질문은 하나씩만 해.”
신호걸이 픽 웃으며 말했다.
“우선, 지화자 팀장이랑은 전혀 연락이 안 돼. 내 연락을 일부러 피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직원들 연락도 안 받더라고.”
“그게 정말이야?”
“응.”
신호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태균 씨 말대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암만 그래도 연락은 줘야지!”
신영웅이 그러면서 짜증을 낼 때였다.
끼이익―!
검은 세단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그들 앞에 멈춰섰다.
“뭐야? 야! 너희 통제 제대로 안 해?! 여기까지 차가 들어오게 하면 어떻게 해?!”
신영웅이 센터의 직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신호걸은 자신들 앞에 멈춰선 차에 다가갔다.
똑똑, 가볍게 창을 두드린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차 좀 빼주시겠어요? 곧 게이트 생성 예정이라서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창문을 내리지도 않았다.
신호걸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차를 밀고 들어온 건지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모든 창이 검은색으로 짙게 선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곤란한데.’
곧 게이트가 생성될 거다.
‘힘을 사용해야 하려나?’
민간인이 휘말리게 내버려뒀다가 역풍을 맞을 바에야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이것, 참. 자율 주행 자동차라고 해서 문도 알아서 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군.”
차 문이 열리며 운전자가 스스로 내렸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신호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 부장님?”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다름아닌 우종문이었기 때문이다.
“신호걸 팀장, 오랜만이네. 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해야할 일인 걸요?”
그 전에.
“부장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애초에 어떻게 온 거지?
“언제 퇴원하신 겁니까?”
“퇴원은 아직이네.”
“네?”
신호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우종문은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아직 기억이 온전치 않거든.”
“그런데, 왜…….”
퇴원을 한 거냐고 물으려던 순간, 우종문이 말했다.
“병원에서 그러더군. 소싯적에 즐겨 했던 일이나 그런 일을 하다보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이지.”
“아하, 그렇군요.”
아니, 잠깐.
신호걸이 놀란 눈을 보였다.
우종문이 소싯적에 즐겨 했던 일이라니.
‘그건 게이트 공략이잖아.’
우종문이 괜히 현장 파견 부서의 부장인 게 아니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할 당시, 가장 많은 게이트를 공략했던 각성자로 명성을 떨쳤었다.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몬스터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이 특기였다고 하던가?
신호걸이 꿀꺽 침을 삼키고는 그를 향해 물었다.
“부장님, 설마.”
아니겠지?
신호걸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번 게이트 공략에 지화자 팀장 대신 참가하게 됐네. 잘 부탁한다네.”
우종문이 게이트 공략에 참가하고자 이곳에 온 거라는 것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신호걸은 머리를 부여잡고 싶었다. 당장 신영웅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종문은 웃는 낯으로 뒷좌석 문을 열었다.
“라이, 리아. 내리거라.”
“네, 할아버지!”
“응, 할아버지!”
라이와 리아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차에서 내렸다. 지화자와 유은영은 보이지 않았다.
지화자야, 우종문이 그녀 대신 왔다고 하니 그러려니 싶지만.
“저, 부장님. 유은영 씨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지화자 팀장이랑 같이 보냈다네.”
“네에?!”
신호걸이 경악했다.
우종문의 말대로 유은영은 그에 비하면 필요 없는 인력에 속했다.
그렇다고 해도 힐러이지 않는가?
그녀가 계속 폐급 힐러였다면 몰라, 유은영은 이제 C급 힐러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S급 게이트 공략에서 힐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인력이었다.
신호걸의 걱정을 알아차렸는지, 우종문이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걱정말게. 능력 좋은 힐러가 곧 올 테니.”
능력 좋은 힐러라니.
신호걸이 살포시 미간을 좁히던 그때.
“우, 우종문 부장님!”
누군가 저 멀리서 우종문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영웅호걸이 입을 쩍 벌렸다.
뛰어오고 있는 대머리 남자가 눈에 익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오, 왔군.”
우종문이 활짝 웃으며 달려오고 있는 남자를 반겼다.
“구순철 부장, 여기라네.”
우종문이 말한 능력 좋은 힐러란, 다름 아닌 간호 관리 부서의 부장인 구순철이었다.
영웅호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나도 모르겠어.”
도대체 어쩌다 상사와 게이트를 공략하게 됐을까?
그 이유를 영웅호걸은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빌어먹을 지화자.”
“동감이야.”
우종문이 그녀에게 부탁했든, 그녀가 우종문에게 부탁했든 이 모든 일은 지화자 때문이란 것을.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게이트 생성 됐습니다!”
오후 11시 27분.
A-Index에서 알린 시간이 되자마자 게이트가 생성됐다.
***
“이래도 되는 걸까요?”
“언니, 뒤늦게 후회해봤자 소용 없어. 그리고 지금쯤이면 이미 게이트 들어갔을 걸?”
현재 시간 오후 11시 30분.
게이트에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지화자가 웃었다.
“게이트 공략을 뺄 수 있는 방법이랍시고 나한테 재미난 계획을 늘어놓던 언니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런 적 없거든요.”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우종문 부장님께 못할 짓을 한 것 같아서 그래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우종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게이트 공략을 부탁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우종문 부장이 좋다면서 웃는 거 봤잖아?”
“그거야 지유화한테 엿먹일 방법 있다고 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대로 엿 먹야지. 땅 그만 파고.”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의 말대로 이런 일을 벌인 이상, 지유화에게 제대로 엿을 줘야 했으니까.
‘이왕이면 아예 꼬리를 잡는 게 좋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키메라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지유화를 잡았을 거다.
“서이안 길드장님은요?”
“일러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곧 연락 올 거야.”
“나화진 국장님은 어떤가요?”
지화자가 자신의 앞에 놓인 노트북을 몇 번 조작하고는 말했다.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네. 우리가 게이트 공략에서 빠졌다는 걸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야.”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국장실에 있는 건 분명한데 말이다.
그녀는 가하성의 도움으로 센터 내 모든 CCTV를 해킹한 참이었다.
키메라를 들먹이며 지유화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흘리지 않았더라면 이러지 못했을 거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지화자는 유은영이 들었다면 놀랄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CCTV를 확인했다.
CCTV 화면 속에서 나화진이 모습을 드러낸 건 그 순간이었다.
“움직인다.”
“누구요?”
“나화진.”
그 말에 유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화진의앞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를 땋아 올리고 있는 여자는 바로 나화진의 비서였다.
자신이 그와 유승민의 일로 한바탕했을 때, 같은 비서들과 함께 수군거렸던 사람.
하지만 유은영은 알았다.
그녀의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지유화겠죠?”
“그럴 거야.”
한낱 비서의 뒤를 나화진이 지킬 리가 없으니.
설마, 비서의 몸을 차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서이안 길드장님께 연락 좀 넣어 주세요.”
“응, 알겠어.”
“그럼, 저도 움직여볼게요.”
유은영이 모자를 푹 눌러썼다.
평소 입고 다니던 정장이 아닌, 한없이 가벼운 차림을 한 그녀는 쉽게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지화자가 자리를 떠나려는 유은영에게 당부했다.
“언니, 무슨 일 생기면 알지?”
그 몸에 치명상을 입혀 서로의 몸을 바꾸는 것.
유은영이 지화자가 당부하는 말을 알아차리고는 웃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지화자’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상에 누워있던 우종문을 무리하여 움직이게 만든 이상, 이번 계획은 꼭 성공시켜야했다.
유은영은 그렇게 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각.
“나화진 국장님.”
‘유은영’의 연락을 받은 서이안이 센터를 나오던 나화진의 앞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