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오, 서이안 길드장.”
나화진이 사람 좋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군. 센터에는 무슨 일인가? 참고로 지화자 팀장은 지금 게이트 공략에 들어갔다만?”
거짓말.
서이안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지화자’가 게이트 공략에 들어가지 않은 거야 나화진도 알 터.
그러니 이렇게 센터를 나오는 걸 거다.
S급 게이트 공략이 시작되면, 그 공략이 끝날 때까지 센터를 지켜야하는 게 국장의 의무.
더욱이 현장 파견 부서의 우종문이 자리를 비우고 있는 지금, 그의 책임은 막중했다.
‘어떻게 할까?’
‘지화자’와 ‘유은영’이 부탁한 건, 나화진의 발목을 붙잡는 것.
서이안이 나화진 뒤로 서있는 비서를 흘긋거렸다.
“서이안 길드장?”
나화진이 자신의 비서를 보는 그의 시선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내 말했듯, 지 팀장은.”
“지화자 팀장님을 보러 찾아온 거 아닙니다.”
서이안이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도대체 언제 지화자를 보러 왔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녀를 보러온 적이 많기는 했다.
지화자가 엿을 먹여서.
자신이 엿을 주고 싶어서.
뭐, 그런 이유로 말이다.
어쨌거나 서이안은 나화진을 향해 센터를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저는 국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나를?”
“네, 국장님.”
나화진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잠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으음.”
나화진이 곤란하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그에 서이안이 비딱하게 말했다.
“지화자 팀장의 일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화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이안의 입에서 거론된 이름에 나화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 있던 비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리를 피해드리겠습니다. 서로 말씀 나누십시오.”
어떻게 보면 비서가 눈치껏 자리를 비켜준 것처럼 보였지만.
‘나화진 국장이 저 비서에게 허락을 구한 것 같은데?’
다르게 보면 이렇게 보였다.
서이안이 센터로 도로 돌아가는 비서를 향해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서이안 길드장.”
불린 이름에 곧장 시선을 거뒀지마는.
“지화자 팀장에 대해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
묻는 말에 서이안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
“우와,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나화진 국장님이 저렇게 펄쩍펄쩍 뛰는 걸까요?”
유은영이 가하성이 해킹해 준 CCTV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지화자는 심드렁했다.
“나한테서 지유화가 살아있는 걸 들었다니 뭐니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겠지.”
자신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당히 털어 놓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뒷담한 거 일러바치고 있는 게 아닐까?”
“전자가 낫네요.”
후자라면 나화진에게 어떤 소리를 들을지 끔찍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출발해야지.”
지화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센터와 가까운 건물 옥상.
“나화진 국장님의 비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세요?”
“센터 안에 있겠지.”
나화진을 두고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거다.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그 사람, 정말 지유화일까요?”
“그럴 거야.”
99.9% 가능성이 그 비서가 지유화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0.1% 가능성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지화자가 그 걱정을 덜어줬다.
“설사, 아니라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마.”
유은영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보는 사람에 따라 재수 없게 느껴질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지화자란 인간이 싸가지 없는 거 센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 싸가지 없는 사람 평판 바뀐 지 오래 됐거든요?!”
불퉁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곧,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유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언니.”
나화진의 비서가 지유화가 아니라면 사과하면 되고, 정말 그녀가 지유화라면.
‘붙잡는다.’
어떻게든 붙잡아, 그 목숨을…….
유은영이 고개를 살짝 흔들어 생각을 털어내고는 내밀어진 손을 꼭 맞잡았다.
“네, 지화자 씨.”
***
“그런…! 역시, 썩……!”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센터 안을 가득 울렸다.
도대체 서이안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기에 저리 화를 내는 걸까?
나화진의 비서가, 아니.
지유화가 물끄러미 밖을 보며 작게 하품했다.
‘이제 이야기를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사랑하는 동생이 우종문을 이용해 게이트 공략에서 빠졌단다.
그것도 유은영과 함께.
‘유승민 씨 때문이려나?’
알아본 바, 제 동생은 그와 한 번 스캔들이 난 전적이 있었다.
그녀라면 유승민에게 큰 일이 생긴 것을 알 터.
‘하지만 유승민 씨의 행방은 묘연해졌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내버려둔 그 장소에서 그가 사라진 건 확실했다.
‘유은영 씨께서 유승민 씨를 찾은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유승민을 찾고자 게이트 공략을 포기한 건 아닐 거다.
지화자도 유은영도 인정하기 싫긴 하지만,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한 사람들이었으니.
‘그럼, 뭘까?’
도대체 왜 사이좋게 게이트 공략을 포기한 거지?
그것도 S급 게이트 공략을.
‘암만 부장님을 자신들 대타로 내세웠다고 해도 뒷감당하기 힘들텐데.’
물론, 우종문만 보낸 건 아니고 간호 관리 부서의 부장도 함께 있단 소리를 들었지만.
‘그 대머리는 내 알 바 아니고.’
지유화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설마…….’
그녀가 만에 하나의 상황을 가정하려고 할 때였다.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무슨 일로 국장님을 찾아오신 겁니까?”
갑작스럽게 질문일 들려왔다.
지유화가 답지 않게 놀란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다.
“…조수현 팀장님.”
조수현.
자신과 평생을 약속했던 남자.
그가 지친 낯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유화가 애특하게 미소를 그리고는 말했다.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지화자 팀장님 일로 급히 하실 말씀이 있다 하셔서요.”
“그렇습니까?”
조수현이 놀란 눈을 보이고는 성큼 다리를 움직였다.
“가지 마세요.”
지유화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조수현이 가볍게 대꾸했다.
갑작스럽게 팔이 붙잡혔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태도였다.
변함이 없다.
자신과 함께 사랑을 나눴을 때나, 저가 사라진 지금이나.
조수현은 정말 한결같았다.
지유화가 물끄러미 제가 사랑한 남자의 얼굴을 담으며 말했다.
“나화진 국장님께서 지금 화가 많이 나셨거든요.”
“그거야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지 팀장님에 대해 허황된 이야기를 펼치고 있을 테니까 화가 나신 걸 겁니다.”
조수현이 가볍게 대꾸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에 지유화가 주먹을 꼭 쥐었다.
“그거야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지 팀장님에 대해 허황된 이야기를 펼치고 있을 테니까 화가 나신 걸 겁니다.”
언제 그런 걸 신경썼다고!
마음 같아서는 조수현을 붙잡아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내가 돌아왔다고, 살아 있다고.
그러니 서이안이 나화진에게 제 동생에 대한 헛소문을 지껄이든 말든 신경쓰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마는.
‘안 돼.’
지금까지 잘 참지 않았던가?
센터 내 여러 사람의 몸을 차지하면서 조수현을 수십 번도 넘게 만났었다.
그러니 지금도 참아야했다.
감히, 저를 두고 동생의 이름을 거론한 그를 보내줘야했다.
그렇게 지유화가 조수현한테서 애써 시선을 돌렸을 때.
“…유은영 씨?”
그녀는 제 앞에 나타난 유은영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유은영’이 지유화를 향해 싱긋 웃으며 입을 뻐금거렸다.
안녕.
‘유은영’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지유화가 표정을 굳혔다.
‘설마, 나인 걸 알고 있나?’
그럴 리가!
‘유은영’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알 리가 없다.
그렇지마는.
‘도대체 뭐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저를 쳐다보는 저 눈빛은!
지유화가 그녀에게 무엇이라 입을 열려고 할 때.
“잠시만요!”
‘유은영’이 몸을 돌려버렸다.
지유화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쫓았다.
“……?”
그 광경을, 센터 밖으로 나가려던 조수현이 보고 있다는 걸 모른 채로 말이다.
***
“유은영 씨, 잠깐만요! 멈추세요!”
성격 그대로네.
지화자가 픽 웃었다.
자신의 언니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굴다가도, 제 예상에서 조금 벗어난 일이 생기면 눈에 띄게 당황하고는 했다.
“유은영 씨!”
지금처럼 말이다.
지화자는 그렇게 지유화를 자신의 비밀 장소로 데리고 왔다.
“유은영 씨, 잠시만!”
“네, 멈췄습니다.”
지화자가 자리에 멈추고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화진 국장님의 비서 분께서 무슨 일로 저를 그렇게 쫓아오신 거죠?”
지유화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자신이 암만 불러도 무시하더니! 이제와서 저런 질문이라니!
하지만 그녀는 곧 능숙하게 표정을 감추고는 말했다.
“S급 게이트 공략을 도중 포기했다고 들었습니다.”
“도중 포기한 적 없습니다. 공략에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도중 포기라니요.”
“아, 말을 고치죠.”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무슨 이유로 부장님들을 공략에 대신 내보내신 거죠?”
“일개 비서한테 그 이유를 말해주고 싶지 않은데요.”
지유화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에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장난이에요. 팀장님 흉내 좀 낸 것 뿐인데, 제가 장난이 좀 심했나보네요.”
“…장난이요.”
“네.”
‘유은영’이 짓궂게 말했다.
“그래서 어때요? 저 잘 흉내낸 것 같나요?”
그건, 지유화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지유화가 ‘유은영’이 쳐다보는 곳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그걸 제 흉내라고 낸 거예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어둠 속에서 눈에 익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