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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67화 (167/200)

제167화

사랑해마지 않는 동생이 눈 앞에 나타났다. 자신을 죽인, 하나뿐인 동생이 말이다.

지유화는 파르르 입술을 떨다 싱긋 웃음을 지었다.

“지화자 팀장님.”

그 부름에 유은영이 코웃음을 쳤다.

‘계속 속일 생각인가 보네.’

어떻게 할까? 다 알고 있으니 그런 연기따위 집어 치우라고 할까?

‘공격할 수는 없어.’

그랬다가는 애꿎은 비서만 다칠 거다.

지유화라면 위험에 처한 순간, 바로 저 몸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므로.

유은영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쉰 후 말했다.

“진채화 비서님이라고 맞죠?”

“네?”

“이름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알아보니 한 달 전에 입사하셨던데, 사내 따돌림이라도 당하고 계신가 봐요?”

그게 아니라면 신입이 이런 늦은 시간 동안 나화진을 보좌하고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지유화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여러 생각으로 뒤죽박죽이었다.

유은영이 제 동생과 함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센터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나인 걸 아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지화자는 자신을 본 적이 없고, 유은영은 줄곧 제 본모습만 봐왔으니.

하지만 두 사람이 뽐내고 있는 기세는 마치 자신이 ‘지유화’인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들킨 것 같은데.’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모면하면 좋을까?

계속 ‘진채화’인 척 굴까? 아님,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서는 이곳에서 저 두 사람을 처리할까?

‘유은영 씨라면 몰라도.’

지유화가 제 동생을 흘긋거렸다.

‘내가 없는 사이에 더 강해졌네.’

지유화의 입매가 비틀렸다.

순식간에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 지화자와 유은영이 긴장했다.

아차.

지유화가 표정을 풀며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먼저, 유은영 씨. 저는 사내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 않답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나화진 국장님을 보좌하기로 한 건 제 의사예요.”

부드러운 태도에 지화자가 긴장을 풀며 말했다.

“일 욕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그냥, 배우고 싶은게 많아서 이럴 뿐이에요.”

싱긋 웃으며 대꾸하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진채화’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제 언니는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나올 거라 생각은 했지마는.’

생각이 현실이 되자 역겨워졌다.

멀쩡히 살아있는 주제에 남의 몸을 뒤집어쓰고 행동하는 거나, 그 몸으로 온갖 더러운 일을 ‘세상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꾸미고 있는 거나.

‘가증스러워.’

지화자는 그 모든 것이 역겹고 또한 가증스러웠다.

죽었으면 그대로 썩어 문드러질 것이지. 그러지 않고 돌아온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건 아니지.’

지화자는 지유화를 잘 알았다.

당장, 제 손에 죽을 때만 해도 그녀는 말하지 않았던가?

“내 동생, 네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겠지. 그 기억으로 나는 돌아올 거야.”

그때는 웬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됐어.’

지화자가 잡념을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건 ‘진채화’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지유화를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

그렇게 해서 그녀를 세상에 모두 드러내는 거다.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눈짓했다.

이제, 시작해도 좋다는 무언의 의미였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니.”

지유화를 불렀다.

작게 몸을 움찔거린 지유화가 그녀에게 물었다.

“지화자 팀장님, 왜 자꾸 저를 ‘언니’라고 부르는 걸까요?”

“언니니까 언니라고 부르죠.”

실제로 ‘진채화’는 지화자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지유화는 알았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는 게 아닌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대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떻게 알았어?”

지유화는 속 편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로 했다.

어차피, 눈앞의 두 사람은 이미 이 몸속에 든 알맹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계속 아니라고 모르는 척 구는 것도 웃기는 꼴.

그렇기에 지유화는 웃는 낯으로 다시금 물었다.

“내 동생, 어디 한 번 말해봐. 나인 거 어떻게 알았어? 유은영 씨께서 말해줬니?”

지유화가 미소를 그리며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두 눈은 아니었다.

웃음기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지유화의 눈빛에 ‘유은영’이 흠칫거렸다.

그 앞을 ‘지화자’가 막았다.

“그렇게 설치고 다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줄 알았어?”

지유화가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 동생,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언니한테 대들 줄도 알고.”

“닥쳐.”

‘지화자’가 사납게 말했다.

“네가 그동안 저지른 짓, 모두 알고 있어.”

“그러니?”

지유화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게 뭐 어쨌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 태도가 유은영을 화나게 만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빼액 지르는 목소리에 지유화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깔!

공간이 다 울릴 정도로 배를 잡고 웃던 그녀가 돌연 표정을 굳히고는 물었다.

“내 동생, 나를 사람으로 여기고 있기는 했니?”

저게 무슨 소리일까?

유은영이 살포시 미간을 좁히는 찰나, 지화자가 나섰다.

“지유화, 그 몸에서 나와.”

“어머, 유은영 씨.”

지유화가 입술을 오므렸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보네요?”

지화자는 말없이 제 언니를 노려봤다. 날 선 눈초리에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뭐, 좋아요.”

그 대답과 함께 진채화의 몸 위로 흐릿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 그녀의 몸 위로 피어오른 연기가 형태를 이루었다.

“아, 이건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단 말이야.”

지유화가 곱슬기가 도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

“어? 어어?”

지유화에게 빙의되어 있던 진채화가 정신을 차린 건 그때였다.

앳된 얼굴인 그녀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 화들짝 놀라 소리 질렀다.

“지,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 씨? 두 분, 여기서 뭐하세요?!”

그것도 잠시.

“지…! 지유화……!”

진채화가 지유화를 알아보고는 경악했다. 지유화가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주고는.

“윽!”

진채화의 목을 가볍게 쳐 기절시켰다.

“진채화 씨!”

‘지화자’가 놀라 소리 질렀다.

“걱정마, 기절시킨 것뿐이야. 우리 대화를 듣게 내버려두면 피차 곤란해지지 않겠니?”

지유화가 동생을 안심시키며 미소를 그렸다.

“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래? 나는 우리 동생에게도, 그리고 유은영 씨께도 순순히 잡혀주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

당연히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지유화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웃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자매의 정(情)을 오붓하게 나눠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우리 화자는 어떻게 생각하니?

덧붙여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바라던 바야.”

죄없는 아이들을 키메라로 만든 여자다. 또한, 소중한 가족에게 위협을 가한 인물이다.

지유화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유은영 씨, 물러나 계세요.”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괜히 돕겠다고 나서면 방해물만 될 테니.

“어머, 유은영 씨께서는 함께 하지 않나요?”

“네.”

“그거 아쉽네요.”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 씨께서 가진 힘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유은영’이 비딱하게 웃었다.

“제 힘이 보고 싶다면 다치도록 하세요.”

이왕이면 아예 죽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어줬으면 했다.

그녀의 날 선 목소리에 지유화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타앗!

눈 깜짝할 사이에 ‘지화자’의 앞에 도달했다.

“……!”

유은영이 반사적으로 봉을 꺼내 휘둘렀다. 지유화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윽!”

‘지화자’의 턱을 걷어찼다.

마치, 짐승과도 같은 몸놀림.

타앗!

동생을 걷어찬 지유화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고선 웃었다.

“우리 동생, 실력이 많이 녹슨 것 같네?”

“닥쳐.”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화르륵!

곧, 그녀의 주위로 불꽃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유화가 그에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한 번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유화야!”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의 다리를 멈춰세웠다.

“…수현 씨.”

지유화가 헛숨을 삼키고는 저를 부른 남자를 돌아보았다.

“너, 네가 어떻게.”

조수현이 입을 뻐금거리는 순간.

‘기회다.’

유은영이 움직였다.

조금 전, 단 한 번의 경합으로 그녀는 알아차렸다.

지유화는 짐승이다.

짐승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빨을 감췄을 때를 노려야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래, 그랬는데.

“지화자 팀장! 그만두십시오!”

조수현이 그녀를 막아버렸다.

쿠궁!

유은영이 휘두른 무기가 그의 팔에 가로막혔다.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조수현 팀장님, 좋은 말로 할 때 비키세요. 당신이 뒤에 숨기고 있는 여자는 범죄자입니다.”

“그럴 리가요!”

애초에 지유화는 죽었다. 동생의 손에 무참하게 심장이 찔려 죽어버렸는데.

“제발,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화자 팀장님…….”

자신의 뒤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수현 씨.”

수십 번을 그리워하던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면서.

“조수현 팀장님, 비키세요.”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정말 제 약혼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눈앞에서 죽은 그녀가 살아 돌아왔다고.

조수현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조수현 팀장!”

그때, ‘유은영’이 목소리를 높여 그를 불렀다.

“두 번 말 안 합니다.”

철컥.

지화자가 대 몬스터용 특수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둘이 사이좋게 쏴 죽여버리기 전에 당장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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