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0화 (170/200)

제170화

“언니는 내가 싫어?”

어린 날,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일곱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주 어린 날에 말이다.

자신과 네 살 차이나는 언니는 그때 웃으며 말했었다.

“내가 내 동생을 왜 싫어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은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목에 다다른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나는 내 동생이 정말 좋아.”

“저, 정말?”

“응, 정말.”

자신의 언니는 주위 어른이 예쁘다며 칭찬하던 미소를 내보이며 재잘거렸다.

“너를 이용해 나를 돋보기에 만들 수 있으니까.”

화자야, 내 동생.

“나는 네가 정말 좋아.”

어린 시절의 지화자는 그때 깨달았다.

자신의 언니가 저를 좋아할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란 것을.

* * *

“허억……!”

지화자가 가쁘게 숨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지? 병원인가? 나화진은 잡혔나? 언니는?

‘그래, 언니.’

나화진의 독에 당하면서 유은영과 다시 몸이 바뀌었을 거다.

‘주변에 지유화는…….’

없다.

분명, 눈을 뜨자마자 그 망할 낯짝을 볼 줄 알았는데 말이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그 인간은 자신을, 아니. 유은영을 잠시 놓아준 모양이다.

하긴, 유은영을 포섭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인간이다.

‘제정신이라면 언니를 해치려고 할 리가 없지.’

그러나 지화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유화가 제정신인가?’

아니다.

지유화는 결단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일어났어요?”

드르륵, 병실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지화자가 놀란 눈을 보였다.

“가하성?”

“다행히 기억에 문제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닌 모양이네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히는 순간.

“그보다 팀장님, 진짜 제정신이에요?! 상황이 아무리 급박하다고 해도 그렇지! 멍청하게 칼빵 맞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가하성이 화를 냈다.

지화자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기 그지 없는 말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너, 지금 뭐라고.”

“제정신이냐고!”

“아니, 그 전에. 내가 뭐라고?”

“팀장님이요. 저희 0팀의 팀장님. 뭐야. 설마 기억에 문제 생겼어요? 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지화자가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끝에서 매만져지는 얼굴은 절대 유은영의 것이 아니었다.

“…이럴 수가.”

몸이 바뀌지 않았다.

분명 유은영과 몸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팀장님?”

가하성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의사 부를까요?”

지화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팀장님! 무슨 짓이에요?!”

손등에 꽂혀있던 주삿바늘을 곧장 빼버렸다.

피가 튀며 침대가 엉망이 됐다.

지화자가 대충 휴지를 뽑아 지혈하며 말했다.

“가하성, 곧 퇴원이지?”

“그렇기는 한데!”

“그럼, 부탁 좀 하자.”

도대체 저 망할 팀장은 자신을 얼마나 부려먹으려는 걸까?

하지만 가하성은 물었다.

“무슨 부탁이요?”

“유은영 씨 좀 찾아줘.”

“유은영 씨요?”

가하성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는…….”

드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

“팀장님! 깨어나셨습니까?!”

“지화자야!”

“화자 누님!”

0팀의 팀원들이 우루루 병실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이 모습을 보였다.

지화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유은영이 그 시선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신 차리셨네요? 그보다.”

성큼, 지화자에게 다가선 그녀가 힐을 시전했다.

“함부로 주삿바늘을 빼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게, 그러니까.”

지화자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다 목소리를 낮춰 유은영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다친 곳은?”

“다친 곳이요?”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는데요?”

없다니?

그럴 리가 없다.

제정신이 아닌 주제에, 제정신인 척 유은영을 포섭하려던 여자가 자신의 말에 두 눈이 돌아갔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왜 그러세요?”

묻는 말에 지화자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언니.”

“언니요? 갑자기 왜 그렇게 부르세요?”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그에 지화자가 멍하니 그녀를 보다 무기를 꺼내 들었다.

“팀장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놀라 소리 질렀다.

“화자 누님, 뭐하는 거예요?!”

“지화자야! 무기 내려놔!!”

라이와 리아도 경악하며 외쳤다.

하지만 지화자는 침착하게 팀원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뒤로 물러나. 저거, 유은영 씨 아니니까.”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은영은, 아니.

유은영인 척 구는 것은 당혹스러워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팀장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저 유은영이에요!”

“유은영인척 구는 빌어먹을 놈이겠지.”

지화자가 유은영을 흉내내는 것을 향해 무기를 치켜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도 그래. 네가 진짜 언니였다면 미쳤냐고 아주 발광을 했을 거라고.”

그러면서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언니, 어디 있어?”

“아… 아아…….”

유은영인 척 흉내내던 것이 바람빠진 소리를 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가 되어서야 0팀의 모두는 깨달았다.

저 여자는, 유은영이 아니다.

곧 웃음을 멈춘 것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쉽네.”

그러고는 지화자를 향해 두 팔 벌려 달려 들었다.

환하게 몸을 빛내며 말이다.

지화자가 빠르게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유은영인 척 구는 것과 순간 눈이 맞아버렸기 때문이다. 유은영이 아닌데도 지화자는 그녀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나도 많이 물려졌어.

지화자가 자조적으로 웃던 그때.

콰과광!

굉음과 함께 병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유은영을 흉내내던 것은 흔적도 없이 뭉개졌다.

그 모든 일을 저지른 남자가 병실 안에 들어서며 구시렁거렸다.

“야, 지화자. 너 구해준 거 벌써 두 번째야. 이거 어떻게 갚을래?”

지화자가 형체도 없이 뭉개진 것을 보고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화자?”

“아, 그렇지. 참.”

지화자가 웃음을 멈추고는 서이안을 향해 말했다.

“고마워.”

그녀가 건넨 감사 인사에 서이안이 입을 쩍 벌렸다.

“왜 그래?”

“지, 지화자가 고맙다고 인사하다니! 내일 세상이 멸망할 거야!”

미친놈.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가하성.”

“네? 네, 팀장님.”

“내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제 알겠어?”

가하성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부탁을 하나 했더니.

“유은영 씨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별 일은 아니야.”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빌어먹을 언니가 잠시 지랄하는 중이거든.”

“네?”

가하성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물었지만 지화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태균, 너는 리아랑 라이와 함께 여기 남아서 뒷정리 좀 해.”

“네, 팀장님.”

하태균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싫어!”

“저도요!”

리아와 라이가 고집을 부렸다.

“유은영한테 무슨 일 생긴 거지? 나도 갈래!”

“저도 갈래요!”

“그리고 지화자, 너 다쳤잖아!”

“얼마나 누워 계셨는지 알아요?”

“무려 하루동안 누워 있었어!”

“죽은 줄 알았다고요!”

쫑알쫑알 시끄럽게 구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에게 못된 소리를 하는대신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었다.

유은영이 하던 것처럼 말이다.

“걱정하지마. 나 혼자 가려는 거 아니니까.”

“누구랑 같이 갈건데?”

리아가 올망졸망 두 눈을 뜨며 물었다.

지화자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서이안 길드장님.”

“그래, 이 녀석들아. 지화자는 나랑 같이 움…….”

서이안이 말을 멈췄다.

“뭐?”

그가 곧 놀란 눈으로 지화자를 향해 물었다.

누가 누구와 함께 움직인다고?

“야, 지화자. 너, 미쳤!”

지화자가 서이안의 입을 막았다.

“그럼, 다들 부탁 좀 할게. 특히 가하성. 유은영 씨 관련해서 뭔가 나오면 바로 연락하도록 해.”

“네, 팀장님.”

지화자는 그대로 서이안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굉음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웅성대며 길을 터줬다. 지화자는 그렇게 병원 밖으로 나온 후에야 서이안을 놓아줬다.

“야! 지화자! 너 미쳤냐?!”

“안 미쳤어. 그보다 각오나 단단히 하고 있도록 해.”

“무슨 각오?”

“지유화 쳐죽일 각오.”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빌어먹을 인간이 유은영 씨 데리고 있는 중일 테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어떻게 아냐고?

지화자가 서이안의 차에 올라타고는 말했다.

“당연히 정신을 잃기 전에 지유화랑 같이 있었으니까 알고 있는 거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서이안이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하지만 지화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턱짓하며 말했다.

“출발해.”

서이안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지유화.

한때, 자신의 이상이자 동경이던 사람을 만나러 갈 거라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상도 동경도 모두 때가 묻어 잿빛으로 물들어버렸지만 그래도 서이안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지유화에 대한 진실을.

“그런데 지화자.”

“왜.”

“유승민 씨라고 했나? 그 폐급 힐러 오빠. 그 사람한테 알려줘야하지 않아?”

동생에게 벌어진 일을.

지화자가 표정을 굳혔다.

“됐어.”

유승민이라면 유은영의 소식을 듣는 순간 불편한 몸을 끌고 움직이려고 할 터.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유승민 씨에게는 상황이 해결된 후에 말해줘도 괜찮아.”

그러니까.

“더 밟아.”

서이안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엑셀을 밟았다.

***

“으윽…….”

유은영이 앓는 목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일어났어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은영이 이를 까득 깨물고는 제게 인사를 건넨 여자를 노려봤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요. 저는 유은영 씨랑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질러?”

“어쩔 수 없잖아요.”

지유화가 진심으로 안타까워 죽겠다는 듯 서글프게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유은영 씨께서 자꾸만 저를 화나게 만드시니까요.”

유은영이 사납게 얼굴을 구겼다.

지금 당장 양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 저 빌어먹을 면상을 한 대 쳐버리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