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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8화 (178/200)

제178화

싫다, 싫어.

저 광경을 이렇게 다시 또 보게 되다니.

“역시 태어나서는 안 됐어.”

지화자를 향한 말이었다.

그 작은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그럼, 죽이지 그랬어?”

하지만 지유화는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지화자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이용해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살려뒀으면서.”

그런데 이제 와 태어나서는 안 됐다니 뭐니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참 웃겨.”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싸울 수 있게 됐네.”

그녀가 무기를 다시 쥐며 얼굴 위에 미소를 그렸다.

“어쩌냐, 지유화?”

지유화도 지화자도 서로 똑같이 피투성이었다.

다르다면 지화자는 그 상처가 모두 멎었다는 것.

지유화가 쓰러지는 건 시간 싸움이었다.

그녀에게 유은영이 붙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사실인데도 지화자는 불안했다.

“괜찮아요.”

그 불안을 유은영이 잠재웠다.

“지화자 씨께서 다치면 제가 곧장 치료해드릴게요.”

“어떻게? 내가 있는 곳까지 오려고? 됐어. 그러다 저 자식이 언니 목을 날려버릴 걸?”

유은영은 신체 접족이 이뤄진 상태에서만 힐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언니는 이제 빠져 있어.”

“아니요.”

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쿨럭거리며 그녀가 기침을 토해냈다.

“언니!”

유은영의 입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지화자를 향해 괜찮다는 듯 웃어 주고는 스스로에게 힐을 사용했다.

“저는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지켜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도망 안 가요.

유은영이 단호하게 말을 덧붙이고는 입을 열었다.

“저, 이제 유능해요.”

지화자가 입술을 오므렸다가 픽 웃었다.

“누가 뭐래?”

그러고는 휙 몸을 돌렸다.

유은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는 매우 유능해졌다는 것.

‘C급 힐러는 무슨.’

아마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크게 성장을 한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지화자는 말했다.

“서이안, 우리 언니 잘 부탁해.”

지유화는 자신의 상처가 유은영으로 인해 회복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그러니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유은영을 노리려고 들 터.

지화자의 말에 서이안이 구시렁거렸다.

“유은영 씨가 언제부터 네 언니였다고 그래?”

그러는 자기는 언제부터 유은영을 폐급 힐러가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겟다.

“어쨌든 잘 부탁한다고.”

서이안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역시 지화자와 함께 지유화를 상대하고 싶었다.

동경이자 이상이었던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되겠지.’

애초에 그녀로부터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하리라.

그 때문에 서이안은 순순히 지화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유은영 씨, 내 옆에 꼼작말고 붙어 있어.”

“안 그래도 그럴 거예요.”

괘히 나서서 지화자에게 폐를 끼칠 생각따위 없었다. 당돌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서이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화자가 왜 그렇게 싸고 돌았는지 이제 좀 알겠네.”

자신과 같은 부류니 계속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서이안, 그 역시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까.

어쨌든 간에.

“뒤로 물러나있자.”

서이안의 말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피할 때, 지화자는 다시 지유화의 앞에 섰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 대치인지 모르겠다면서 지화자는 자신의 언니에게 인사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지유화.”

하! 지유화가 실소를 터트렸다.

“기다려주기는 누가 기다려줬다고 그러는 걸까?”

“아, 기다려준 거 아니었어?”

지화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우리를 공격할 힘이 다 떨어져서 쉬고 있었던 거야? 하긴, 그럴 만도 해.”

지화자가 자기 멋대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죽어가고 있는 몸뚱이에 네 나이도 나이니 말이야.”

“닥쳐!”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뺨을 스치고 간 것 때문에 지화자의 힌 피부에 붉은 생채기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제 언니를 쳐다봤다.

한때는 두려워했고 무서워했던, 자신의 하나뿐인 언니를.

그 시선에 지유화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보지 마.”

가엾다는 듯, 불쌍하다는 듯.

“그딴 눈으로 보지 말라고!!”

지유화가 비명을 지르듯 고함을 내지르고는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지화자의 앞에 나타난 그녀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콰과광!

폭발음과 함께 자욱하게 연기가 일었다.

지화자가 봉을 휘둘러 그것을 걷어 내고는 지유화를 찾아 다리를 올렸다.

퍽!

가볍게 지유화를 걷어찬 그녀가 봉을 들었다.

“……!”

지유화가 황급히 검을 휘둘러 그것을 막았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싸움이 곧 시작됐다.

지화자는 밀었고 지유화는 계속 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힘에 지화자가 웃었다.

“지유화, 처음보다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은데?”

분명 처음 맞붙었을 때는 자신을 가볍게 압도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조금씩 밀려나는 그녀의 모습에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만 발악하는 게 어때?”

“닥쳐.”

누가 발악을 하고 있단 말인가?

밑바닥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치던 건 언제나 지화자였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고?

‘웃기는 소리.’

지유화가 이를 악물었다.

“나는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개벽의 날을 다시금 불러 올 거다.

오직, 각성자들만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의 우두머리로 세상을 이끌어나갈 거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영웅으로 살게 되겠지.

그래야만 했다.

“너만 죽이면 돼.”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거다.

‘아니지.’

지화자를 죽인 후 처리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유은영.’

지유화가 지화자 뒤로 보이는 여자를 흘긋 쳐다봤다.

그녀의 힘을 이용해 어떻게든 이 빌어먹을 몸뚱이를 치료해야 했다. 원래는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저를 돕게 만들 생각이었지만.

‘됐어.’

친절하게 사근사근 대하는 건 이제 끝이다.

지유화가 이를 악물고선 젖 먹던 힘을 쥐어 짜내 동생을 밀쳤다.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리는 순간.

“윽……!”

지유화가 그녀의 밀치고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건 아니었다.

“언니!”

지유화가 노리는 건 유은영이었으니.

“서이안! 막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유은영의 곁을 지키며, 싸움의 여파를 막아내고 있던 서이안이 주먹을 들었다.

쿠웅―!

바닥을 찍은 주먹에 보랏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유은영을 향해 팔을 뻗었던 지유화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빠르게 표정을 풀었다.

“이안아.”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서이안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모습에 지유화가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였다.

“너 역시 나를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서이안이 사과했다.

“돌아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지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왔잖아.”

이렇게.

그녀는 가슴 위로 손을 얹고는 웃는 낯으로 말을 덧붙였다. 서이안이 그에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제가 아는 지유화 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상냥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맞아, 지금도 그래.”

사람들을 이용해 키메라를 만들어냈을 뿐, 그녀는 여전히 겉으로 보기에는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지유화는 항상 그랬다.

그 이면을.

“네가 몰랐을 뿐이지.”

서이안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랬다.

그런데 자신이 달라졌다니 뭐니 모두가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

지유화의 날 선 목소리에 서이안은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요. 몰랐습니다.”

서이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막으려고 합니다.”

동경이자 이상이었던 대상을.

서이안은 자신의 손으로 저지시키기로 결심했다.

지유화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왜들 이럴까?”

나는 모두를 위하려고 그러는 건데, 왜 자꾸 내가 달라졌다니 뭐니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 걸까?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지유화가 분노하며 기운을 터트렸다.

“으윽!”

거칠게 불기 시작한 광풍에 유은영이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꺅!”

그녀의 몸이 뒤로 밀쳐졌다.

서이안이 유은영을 거칠게 밀어버린 탓이었다.

무슨 짓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따.

서이안이 그런 행동을 한 건, 다름아닌 지유화 때문이었으니까.

지유화가 자신의 손을 막고 있는 남자를 보고서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안아, 내가 예전에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말하지 않았니?”

그러면서 그녀는 히죽거렸다.

“네가 이길 수 없는 강자에게는 모든 힘을 쏟아야한다고.”

서이안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내보이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 지유화를 막고 있는 손에 독을 풀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지유화 님이 제게 해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죠.”

“그래?”

“네.”

서이안이 지유화의 손을 꽉 잡고서는 웃었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은 동료화 함께 나누라고요.”

지유화가 흠칫거리고는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안녕.”

그녀는 지화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식간에 지유화의 앞에 도달한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나를 잊고 있는 것 같아서 직접 와줬는데 불만 없지?”

지유화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웃고있던 지화자의 표정은 빠른 속도로 굳어졌다.

“이제 그만 죽어.”

아니.

“내 인생에서 제발 영원히 꺼져버려.”

그 말과 함께 지화자가 봉을 세게 휘둘렀다.

퍼억!

살갗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지유화가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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